선거제 개편, 역시나 여야 모두 ‘퇴행’ 중

2023.09.11 08:30

고양이에게 생선 맡긴 격…전문가 참여 기구 설치해야

지난 4월 선거제도 개선과 관련해 국회 전원위원회 회의가 열렸다.  / 박민규 선임기자

지난 4월 선거제도 개선과 관련해 국회 전원위원회 회의가 열렸다. / 박민규 선임기자

[주간경향] 선거제 개편의 목표는 ‘비례성 증진’이다. 비례성을 강화한 바람직한 선거제를 모색하기 위해 지난 3월에는 19년 만에 국회 전원위원회 회의를 열었다. 지난 5월에는 선거제 개편에 관해 500여명의 시민을 모집해 공론조사를 실시했다. 총선을 7개월 앞둔 지금, 국회에서 전개되는 선거제 개편 논의는 ‘비례성 증진’이라는 당초 목표와는 멀어져 있다. 국민의힘이 ‘병립형 회귀’를 고수하는 가운데, 여야의 협상 테이블에는 ‘‘병립형 회귀’냐 ‘위성정당 재현’이냐’와 같은 퇴행의 선택지들만 남은 것처럼 보인다.

지난 9월 1일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각각 의원총회를 열고 현행 소선거구제를 유지하고 전국을 수도권(서울·경기·인천), 중부(충청, 대구·경북, 강원), 남부(호남, 부산·울산·경남, 제주) 등 3개로 나눈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밝혔다. 비례대표 선출방식이나 비례대표 의석수 등과 관련해서는 합의점을 도출하지 못했다. 국민의힘은 비례대표 선출방식으로 병립형 비례대표제 회귀를 주장한다. 정개특위 안건으로 올라와 있지는 않지만, 김기현 대표 등 국민의힘 일각에서는 현재 300석인 의원 정수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민주당은 현행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유지하고 비례대표 정수를 늘리자고 주장한다.

‘병립형 회귀’는 퇴행

국민의힘은 ‘병립형 회귀’를 주장하면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유지할 경우, 다시 위성정당을 만들 수밖에 없다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병립형 비례대표제는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구분한 뒤, 정당득표율은 비례대표 의원 선출에만 적용하는 방안이다. 정당 득표율이 10%면, 현재 비례의석 47석 중 10%인 4.7석(반올림 5석)을 가져가는 방식이다. 2016년 총선까지 적용됐고 2019년 선거제 개편으로 폐지됐다.

병립형 비례대표제는 정당 득표율이 전체 의석수에 반영되지 않아 비례성이 떨어지고, 소수 정당의 원내 진입을 어렵게 해 양당정치를 강화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총의석을 정당 득표율에 따라 배분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이 대안으로 제시돼왔고, 2020년 총선에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됐다. 연동형에서는 정당이 지역구에서 정당 득표율만큼 의석을 확보하지 못했거나 초과 확보했다면 이를 비례대표 의석을 통해 조정한다. 지난 2020년 21대 총선에서는 비례대표 47석 중 30석에 한해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 결과와 일부 연동하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됐다. 이마저도 당시 미래통합당과 더불어민주당이 비례전용 위성정당을 창당하면서 선거제도 개편의 취지는 무색해졌다. 경실련 분석에 따르면, 위성정당을 창당하지 않았다면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의 비례대표 의석수는 6석, 15석이었다. 양당은 위성정당 창당으로 각각 17석 19석을 확보할 수 있었다.

국민의힘은 위성정당 출현을 막기 위해서는 병립형 비례대표제로 회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2020년 장제원 의원 등 국민의힘 의원들은 ‘병립형’을 골자로 한 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국민의힘 전신인 자유한국당은 2020년 의원 전원 명의로 헌법재판소에 ‘준연동형 비례제’에 대해 위헌심판을 청구하기도 했다. 지난 7월 20일 헌법재판소는 이를 기각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기존 병립형 선거제도보다 선거 비례성을 향상시킨 제도”이며 “헌법을 위배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헌재의 결정이 나오자,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국회 기자회견에서 “국민의힘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폐지 당론에 따라 21대 국회에서 무더기로 발의한 연동형 비례대표제 폐지 법안을 모두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거대 양당에는 이득?

정치권 일각에서는 국민의힘이 ‘병립형 회귀’에 민주당도 결국 합의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병립형’이 거대 양당에 이익인 만큼 민주당도 ‘병립형 회귀’에 타협할 수 있다는 우려다.

김찬휘 선거제도개혁연대 대표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 21대 총선에서 정의당·국민의당·열린민주당의 득표율은 21.9%였으나 세 당의 의석수는 4%에 불과했다. 김 대표는 “위성정당이 없었다면 3당은 비례의석 26석을 가져가야 했고, 47석이 다 준연동형인 지금의 경우라면 34석을 가져야 했다. 그런데 겨우 11석을 얻었다”라며 “그런데 이를 병립형으로 바꾸게 되면 10석으로 더 줄어든다”라고 말했다. 거대 양당의 입장에서 보면 병립형이 위성정당보다 더 이득이라는 분석이다.

전국단위가 아닌 ‘권역별 병립형’이 되면 거대 양당은 더 유리해진다. 김찬휘 대표는 “비례대표제 인원만 보장되면 권역별이 비례성도 증진하면서 지역갈등도 해소할 수 있는 열쇠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비례대표 의원 수는 크게 늘리지 않고 이를 3개의 권역으로 나눠버리면 소수 정당의 진입장벽은 더 높아진다”라고 말했다. 예컨대 계산상 편의를 위해 비례대표 의석수를 48석으로 상정하면 전국단위 병립형 비례대표제라면 4% 득표 정당에 2석(1.92석)이 배정된다. 그런데 3개 권역으로 나누고 각 권역에 16석을 배정하면, 진입장벽이 높아져 6% 이상을 얻어야 1석을 확보할 수 있다. 김찬휘 대표는 “21대 총선에 적용하면 권역별 병립형의 경우 3개의 정당의 의석수는 10석 이하로 떨어진다”라고 말했다.

지난 7월 3일 여야 ‘2+2 선거제 개편 협의체’가 발족했다. / 성동훈 기자

지난 7월 3일 여야 ‘2+2 선거제 개편 협의체’가 발족했다. / 성동훈 기자

‘준연동형’이 유지될 경우 다시 ‘위성정당 재현’이 우려되는 만큼 민주당으로서는 손해 볼 것 없는 ‘병립형’으로 회귀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김찬휘 대표는 “(민주당이 병립형으로 회귀한다면) 2020년 위성정당을 만들 때의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비판하며 “민주당은 민주당이 절대다수 의석을 얻으면 개혁이 증진될 거라고 했지만 3년이 흐른 지금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게 증명됐다. 민주당은 병립형에 타협하지 말고 국민의힘이 위성정당을 만들더라도 다른 진보정당들과 연정하는 방식을 선택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민주당 내에서는 ‘병립형 회귀’와 ‘준연동형 폐지’를 둘러싸고 다양한 의견이 오가는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당 측 관계자는 “지난번 의총에서 보니 당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는 상황이다. 또 우리 주장대로 준연동형으로 유지된다고 해도 국민의힘에서 위성정당을 만들 문제가 있다”라며 “협의가 하나로 모이기는 어려운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민주당에서도 서영교 의원, 김종민 의원이 병립형 비례대표제를 골자로 한 선거법을 발의한 바 있다.

공론조사 결과와 어긋나

양당의 논의는 지난 5월 시민 500여명이 참여한 공론조사 결과와도 어긋난다. 정개특위는 선거제 개편 공론화를 위해 시민참여단을 모집했고, 시민참여단은 지난 5월 발제, 패널토의, 토론, 전문가 질의응답 등 숙의 토론을 진행했다. 지난 8월 29일 2024정치개혁공동행동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5월 국회에서 실시한 시민 공론조사 결과에서 병립형보다 비례성이 개선된 제도개혁방안을 지지한 의견이 52%였고, 병립형은 41%에 불과했다”라며 “만약 거대 양당이 공론조사 결과를 무시한다면 이는 약 11억원의 예산을 들인 공론조사 실시의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공론조사 결과 비례대표 의원 정수 확대에 대한 지지도가 대폭 증가했지만, 이에 대한 논의도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국민의힘 일각에서는 국회의원 정수를 10% 감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비례대표를 더 늘려야 한다는 의견은 숙의 전보다 43%포인트 증가한 70%를 기록했고, 의원 정수 확대 역시 찬성 의견이 20%나 늘었다. 경실련은 “국민의힘은 국회의원 수 축소를 주장했다. 국민 공론조사 결과와 정면 배치되는 제안이다. 이를 견제해야 할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의힘을 핑계삼아 의석수 확대에 적극 나서지 않고 있다”며 양당을 비판했다.

선거제 개편은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양당 원내수석부대표와 정개특위 간사로 이뤄진 ‘2+2 협의체’에서 논의돼왔다.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는 선거제 개편이 양당의 ‘밀실야합’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거대 양당만 참여하고 정의당 등 소수 정당은 소외되면서 선거제 개편이 다가오는 양당의 수싸움으로만 전개될 수 있다는 우려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지난 9월 1일 자신의 SNS에 “이번 선거법 개정의 핵심은 비례성 강화다. 그래서 비례대표 수와 연동률이 핵심 쟁점인데 그 이야기는 빠졌다. 그렇다면 몸통 없이 다리부터 그렸다는 것인가. 아니면 이미 그려진 몸통은 가리고 발표한 것인가”라며 “선거법 개정을 논의해야 할 정개특위는 개점휴업 상태로 만들고 철저히 밀실 양당 협상으로 진행된 그 내막을 도무지 알 길이 없다”고 말했다. 참여연대는 “밀실 협상의 과정은 알 수 없으나, 양당이 혹여 병립형 비례대표제로의 회귀를 추진한다면 이는 분명한 선거제도의 개악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다 보니 선거제도 개편을 이해당사자인 국회의원에게 맡기지 말고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기구를 설치해 결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현재의 제도를 통해 당선된 현역 의원들이 자기 자신을 선출하는 선거제를 왜곡되지 않게 개혁하리라 기대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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