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메달 놓치고 홀로 조기 귀국한 이강석

2010.02.19 18:20 입력 2010.02.21 11:55 수정

“라커룸 돌아와 펑펑 울어… 4년 뒤 다시 도전해야죠”

지난 16일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m 2차 레이스를 마친 이강석(25·의정부시청)은 끊어질듯 가뿐 숨을 몰아쉬며 기록을 확인했다. 34초988. 합계 70초041로 앞서 달린 나가시마 게이치로(일본)에 이어 2위. 아직 4명이나 레이스를 남겨둔 상황. 금메달은 이미 날아갔고, 동메달도 기대하기 힘들었다.

금메달 놓치고 홀로 조기 귀국한 이강석

“기록을 보는 순간 울컥했어요. 경기장에서 눈물을 보일 수 없어 꾹 참다가 라커룸으로 나와서 한없이 울었어요.” 토리노올림픽 동메달 이후 4년간 별렀던 밴쿠버올림픽 금메달을 놓치고 18일 저녁 홀로 쓸쓸히 귀국한 그의 목소리는 아직도 떨리고 있었다.

최종 순위는 4위. 0.03초 차이로 동메달을 놓친 것도 아쉬웠지만 경기시간이 늦춰져 올시즌 세계랭킹 1위의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 게 정말 억울했다.

1차 레이스 도중 정빙기가 고장나 2시간 가까이 경기가 지연됐다. 처음엔 30분만 늦춘다더니, 자꾸 다시 미뤘다. 이강석은 몸을 풀다가 쉬기를 3번이나 반복해야 했다. “제가 아주 예민한 편이거든요. 훈련도 계획대로 딱딱 맞춰서 해야 기록이 좋고, 그렇지 못하면 기록이 좋지 못해요.”

이강석은 그날 경기시간에 최상의 컨디션을 맞춰놓고 있었다.

“전날 한 번도 깨지 않을 정도로 잘잤고, 경기장에 도착해 스케이트 탈 때도 좋았어요. 그런데 몸을 데웠다 식혔다 반복하다 보니 흐름이 무너지더라고요.”

모태범(21·한체대)처럼 500m가 주종목이 아니었다면 영향을 덜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타고난 스프린터인 이강석은 단거리인 500m에 모든 걸 걸고 밴쿠버 땅을 밟았다.

설상가상 1차 레이스에서 옆 코스의 가토 조지(일본)가 부정출발을 해 압박감이 심해졌다. 한 번 더 부정출발이 나오면 가토든 이강석이든 실격이었다. 깨진 리듬과 심리적 압박감에 마지막 곡선주로에서 몸이 흔들리는 등 평소 하지 않던 실수가 나왔다.

이강석은 한바탕 눈물을 쏟은 뒤 숙소로 돌아왔다. 달리 하고 싶은 것도 없고 입맛도 없었다. 18일 열리는 1000m에는 나가지 않기에 훈련할 필요도 없었다. 이틀 동안 침대에 누워 멀뚱멀뚱 천장만 바라봤다. 경기장에서는 이상화(21·한체대)의 추가 금메달 소식이 들려왔다.

머릿속엔 지난 4년의 고생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입에 단내가 나도록 훈련했다. 지금은 깨졌지만 2007년 3월엔 세계기록(37초25)도 세웠다. 지난해 5월 갑자기 맹장이 터져 수술을 해야 했다. 끈질긴 훈련으로 제 컨디션을 찾았건만….

“ ‘수많은 월드컵 우승, 세계랭킹 1위가 다 무슨 소용이냐’는 생각밖에 안들었다”는 이강석은 이틀 동안 잠을 이루지 못한 끝에 동료들보다 먼저 집에 돌아오기로 결정했다.

귀국길은 쓸쓸했다. 18일 인천공항에는 가족과 취재진 몇 명이 그를 맞았다. 어머니(노정희씨·50)는 아무 말 없이 상처를 안고 돌아온 아들을 토닥여주었다. 19일 경기 양주 집에서 아침밥을 먹으며 이강석은 어머니에게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겠지?”라고 물었다. 얼른 잊혀지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는 아직 젊다. 4년 뒤 소치올림픽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이후 4년을 말하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 “당연히 다시 도전해야죠. 하지만 당분간은 아무것도 안하고 집에서 푹 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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