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승훈 ‘미소 속에 비친 그대’

2018.03.11 20:55 입력 2018.03.11 20:57 수정

[노래의 탄생]신승훈 ‘미소 속에 비친 그대’

1990년, 어학테이프 납품회사인 덕윤산업(대표 이성균)에 근무하던 사맹석 부장에게 나이트클럽 DJ였던 김창환이 무명가수의 데모테이프를 내밀었다. 1970년대 송창식, 윤형주 등 ‘쎄시봉’ 멤버들과 어울리며 음악을 했던 사 부장은 음반을 제작했지만 큰 재미를 못 보고 숨 고르기 중이었다. 별 생각 없이 받아둔 데모를 자동차에서 듣던 사 부장은 자세를 고쳐 앉았다. 이미 6~7곳의 기획사를 돌면서 퇴짜를 맞은 노래의 주인공은 대전 다운타운에서 노래하다가 상경한 신승훈. 발라드의 정석을 무시한 노래와 보기 드문 미성이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영세업체였기에 제작비가 없었다. 도매상에서 어음을 할인하여 가까스로 서울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마쳤다. 타이틀곡은 신승훈이 만든 ‘미소 속에 비친 그대’로 결정했다. 신승훈은 처음 만들어본 곡이 덜컥 타이틀곡으로 결정되자 놀랍고도 두려웠다.

사 부장은 ‘촌놈’ 신승훈의 얼굴 대신 안경과 악보만 강조한 앨범을 만들었다. 1990년 8월 말, 사 부장은 따끈따끈한 앨범을 들고 MBC FM에 갔다. 당시 가요프로그램을 담당하던 진현숙 PD가 “오랜만에 들을 만한 발라드가 나왔다”면서 너무 좋아했다. 라디오의 여성작가들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신승훈은 대전 다운타운에서는 유명했다. 특히 여성 관객들이 신청하는 팝송을 너무 잘 불렀고, 레퍼토리가 1000곡에 달했다. 재야에서 갈고닦은 노래 솜씨가 여심을 흔드는 데 성공한 것이다.

“너는 장미보다 아름답지 않지만 / 그보다 더 진한 향기가.” 홍보를 시작한 지 한 달여 만에 신인은 절대로 설 수 없었던 <가요톱 10>과 <MBC 인기가요>에서 출연 요청이 왔다. 신승훈을 출연시켜 달라는 리퀘스트가 쇄도한 것이다. ‘얼굴 없는 가수’의 계획이 흔들렸다. 할 수 없이 서울 방배동 양복점에서 양복을 사고, 구두는 빌려 신고 방송에 출연했다. 데뷔앨범만 70만장이 팔렸고, 2집 ‘보이지 않는 사랑’은 100만장을 넘겼다. 소위 라인음향 ‘사맹석·김창환사단’의 신화가 그렇게 시작됐다. 그들은 신승훈에 이어 노이즈, 김건모, 박미경, 클론을 만들면서 가요계 기록들을 갈아치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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