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다큐 ‘미스 아메리카나’ 주인공 테일러 스위프트 “여성혐오에 맞서…입마개 벗은 기분이에요”

2020.02.09 21:28 입력 2020.02.09 21:29 수정

팝 가수·그래미 10관왕 월드스타

‘미 국민 여동생’의 고백 큰 울림

불합리하게 차별받는 이들에 ‘존중받는 삶’ 요구 목소리 담아

지난 1일 공개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미스 아메리카나>는 미국 여성 싱어송라이터 테일러 스위프트가 대중의 인정이 유일한 가치 척도로 여겨지는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자신만의 생각을 정립하고 목소리를 내게 되기까지의 성장기를 담았다. 넷플릭스 제공

지난 1일 공개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미스 아메리카나>는 미국 여성 싱어송라이터 테일러 스위프트가 대중의 인정이 유일한 가치 척도로 여겨지는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자신만의 생각을 정립하고 목소리를 내게 되기까지의 성장기를 담았다. 넷플릭스 제공

“ ‘입마개’를 벗은 기분이에요. 너무 좋아요. 제 결정이고요. 이제 입에 붙였던 테이프를 떼어낼 시기예요. 영원히요.”

세계적인 여성 싱어송라이터 테일러 스위프트의 고백이 큰 울림을 주고 있다. 지난 1일 공개와 동시에 국내외로 뜨거운 반응을 받고 있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미스 아메리카나>를 통해서다.

스위프트는 컨트리 가수로 데뷔한 13세 때부터 뛰어난 재능과 화려한 외모로 큰 인기를 모았고, 이후 본격적으로 팝 가수로서의 이력을 쌓으면서는 그래미 10관왕에 빛나는 명실상부 ‘월드스타’에 반열에 올랐다. 그러면서도 쉽게 마약이나 성 추문에 휩싸이는 미국 팝 스타들과는 다르게 독보적인 ‘바른 생활 이미지’를 구가하며 미국의 ‘국민 여동생’으로 사랑받았다. 4400만달러에 달하는 막강한 부를 쌓아올릴 만큼 전 세계적으로 성공한 스타에게 ‘입마개’라니, 도대체 그를 억압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미스 아메리카나>는 스위프트의 아티스트로서의 성공 가도에 집중하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최근까지도 그의 삶을 옥죄고 있었던 미국 엔터테인먼트 업계와 사회적인 여성 혐오의 굴레를 드러내고 비판하며, 스스로 목소리를 내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담았다.

다큐멘터리 초반 스위프트는 “어렸을 때부터 가졌던 도덕적 나침반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고 고백한다. 그는 더 많이 칭찬받는 ‘좋은 사람(Good Girl)’이 되는 것이 바로 ‘성공’이라 생각했던 “믿음 체계”가 어떻게 자신을 혼란과 불행에 빠뜨렸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좋은 사람’이란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불합리하게 차별받고 혐오받는 이들을 위해 발언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는 깨달음이 그의 삶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이야기한다.

“모르는 사람의 인정을 받기 위해 살고 그것을 통해서만 기쁨과 성취를 느끼게 된다면 나쁜 일 하나로 인해 모든 것이 무너질 수 있어요.” 그가 말하는 ‘나쁜 일’이란 2009년 MTV 뮤직 비디오 어워즈에서 힙합 뮤지션 카니예 웨스트로부터 당했던 모욕을 의미한다. 당시 웨스트는 17세의 나이로 최우수 여성 비디오상을 받기 위해 무대에 오른 스위프트의 마이크를 갑자기 빼앗아 “이 상은 비욘세가 받았어야 한다”고 외치는 만행을 저지른다. 관객석에서 쏟아진 야유를 경험한 스위프트에게 찾아온 것은 “나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는 강박이었다. 일에 매진한 결과 2011년 그는 당시 최연소 기록인 21세의 나이로 그래미 어워즈 ‘올해의 앨범상’을 차지하는 쾌거를 이뤘다.

명성은 높아졌다. 하지만 ‘좋은 사람’이 되고자 했던 목표는 점점 멀어졌다. 2016년 웨스트가 스위프트를 ‘디스(diss)’하는 곡 ‘페이머스(Famous)’를 발매했다. 이 곡에 항의한 스위프트는 도리어 ‘희생양’ 이미지를 갖고 싶어하는 가식적인 ‘뱀’처럼 보인다는 힐난에 직면했다. 짧은 연애를 계속한다는 이유로 ‘남성 편력’을 문제 삼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조금 살이 붙었을 뿐인데 터무니없는 ‘임신설’에 시달려야만 했다. 스위프트는 그렇게 자신의 ‘믿음 체계’를 회의하게 된다.

‘좋은 사람’보다는 ‘옳은 일’을 하는 사람이 돼야 한다는 생각의 전환은 2018년 미국 중간선거에서 스위프트가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최초로 공개하는 장면에서 극적으로 드러난다. 과거 미국의 컨트리 여성 그룹 ‘딕시 칙스’가 부시 대통령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판하면서 폭력에 가까운 사회적 지탄을 받았던 것을 보고 겪은 그였기에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앞서 2016년 미국 대선에서 그 어떤 정치적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비판받았던 그다. 하지만 라디오 DJ에게 성추행을 당하고 2017년 소송전까지 벌였던 그에게 여성폭력방지법에 반대하는 공화당 의원의 당선을 막아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사람을 존중하는 법을 열심히 배웠어요. 그렇게 여성 혐오에 대한 인식을 바꾸려고 했죠. 갖다 버려야 하는 거예요. 가지지 않으려고 저항하고요. 걸레 같은 여자는 없고, 계집년이라는 말은 없어요. (여성 지도자에게 주로 사용되는) ‘나댄다(Bossy)’라는 말도 없어요. ‘보스(Boss)’만 있을 뿐이죠.”

여성 혐오와 맞서기 시작한 그는 이제 더 이상 44사이즈의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밥을 굶지 않는다. 페미니스트로서 목소리 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2017년 미국 타임지는 ‘올해의 인물’로 미투 운동을 주도했던 스위프트를 뽑았고, 지난해 빌보드는 ‘최근 10년간 최고의 여성’상을 수여했다.

“연예계에서 종사하는 여성이 35세가 되면 이미 한물간 신세로 버려지는 사회에서 해결해야 할 일이 많아요.” 그렇게 스위프트의 이야기는 온몸으로 편견을 돌파하며 살아가는 세상 모든 여성들의 이야기가 된다. 세상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항상 ‘반짝거릴 것’을 요구받는 전 세계의 여성 연예인들, 그리고 평범한 여성들이 스위프트의 성장담에 공명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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