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다가 보여준 ‘폐업 엑시트’

2020.04.01 20:56 입력 2020.04.01 21:03 수정

오는 11일 타다 서비스가 종료된다. 이재웅씨는 자신이 명명한 타다금지법이 통과되기 직전, 페이스북에 ‘1만명의 드라이버는 갈 곳이 없다’라고 썼다. 법이 통과되자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에게 일자리를 잃은 드라이버들에게 사과하라고 호통쳤다.

[직설]타다가 보여준 ‘폐업 엑시트’

보통 1만2000명의 노동자를 고용하는 사장님이 폐업을 하면, 사회적 지탄을 받는 것은 물론 대표가 사죄한다. 이재웅씨는 혁신적으로 국회와 국가 탓을 했다. 더 황당한 것은 통보 방식이다. 과거에는 문자해고가 문제가 됐는데, 오늘날 혁신가들은 페이스북으로 폐업과 해고 통보를 한다. 대표의 페친이 아니라면, 회사가 망했는지도 알기 힘들다.

이쯤 되면 경영상 위기를 핑계로 정리해고를 하는 대기업이 착하게 보인다. 전통적 기업들은 희망퇴직 신청을 받아 퇴직금이라도 쥐여주고 내보낸다. 게다가 노동법은 기업이 정리해고를 하려면 50일 전에 근로자 대표에게 통보하고 협의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타다금지법이라는 말도 일방적 주장이다. 여객운송사업법은 빌린 차로 돈 벌지 말라고 못 박아 놓았다. 다만, 가족단위로 놀러 가면 택시를 이용하기 불편하기 때문에 11~15인승 승합차는 예외로 했다. 타다는 이 빈틈을 근거로 11인승 카니발과 운전기사를 빌려주면서 1~2명의 손님을 태우는 비효율적인 콜택시를 탄생시켰다. 택시는 면허수량을 제한받지만 렌터카는 규제가 없다. 렌터카로 콜택시를 하는 걸 허용하면 도로는 카니발로 점령될 것이다. 꼼수로 시작한 사업이, 언제든지 좌초될 수 있다는 것을 대표가 몰랐을 리 없다. 몰랐다면 무능한 거고, 알았다면 투자자들과 1만2000 드라이버들을 기망한 것이다. 국가는 기여금을 내고 사업을 지속해보자고 했지만, 이재웅씨는 여기서 혁신을 멈춘다라는 엉뚱한 말을 하고는 회사를 나와 버렸다.

사업가가 위험(risk)을 무릅쓰고 새로운 도전을 하는 건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문제는 실패에 대한 책임이다. 타다가 무책임하게 도망갈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다. 타다 드라이버들과 근로계약이 아닌 프리랜서 계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기사와 타다 사이에 중간관리업체를 둬 책임을 피했다. 용역계약과 간접고용이 합쳐진 최악의 형태다. 노동법을 지킬 필요가 없으니 사장은 일하는 사람을 맘대로 쓰고 버릴 수 있다. 그런데 승객이 사랑한 타다의 혁신은 프리랜서로 불리는 드라이버들이 근로자처럼 일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기사들이 출퇴근을 정확하게 하고, 손님에게 말을 걸지 않으며, 승차 거부를 하지 않은 것은 타다의 업무지시를 준수했기 때문이다. 여기엔 고정급 1만원의 비밀이 있다. 타다가 난폭운전을 하지 않고, 택시는 가지 않는 좁은 골목길을 들어간 이유도 많은 승객을 정신없이 태우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사실 타다 기사들이 받은 시간당 1만원은 최저임금 위반이다. 이들이 근로자였다면, 주휴수당, 연장, 야간, 휴일, 연차 수당과 퇴직금 등을 받을 수 있다. 타다 기사들도 알고 있었다. 지난 3월25일 박재욱 대표를 만나기 위해 VCNC를 찾은 타다비상대책위 소속 드라이버는 ‘최저임금 위반이라는 걸 알았지만, 타다와 함께하고 싶어서 참고 일했다’고 했다. 그들이 바라는 건, 대표들이 페이스북 대신 자신들과 대화하는 것이었다.

스타트업이 주식시장 상장, 매각, 합병 등을 통해 기업 가치를 실현시키는 것을 엑시트라 부른다. 배달의민족이 딜리버리히어로에 매각되면서 5조원짜리 엑시트를 보여줬다면, 타다는 성공적인 폐업의 엑시트를 보여준다. 만약 타다가 1만2000명의 드라이버에 대한 책임은커녕 진지한 대화 한 번 없이 사업을 종료하고 우리 사회가 이를 방치한다면, ‘잘되면 배민이고 못 돼도 타다’라는 신념을 가진 창업가들이 양산될 것이다. 이것이 스타트업이 말하는 혁신의 슬로건이 아니길 바란다. 사람은 필요할 때 빌려 쓰고, 필요 없으면 버려도 되는 렌터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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