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김여정의 DVD

2020.07.12 21:37 입력 2020.07.12 21:38 수정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젠 틀어 볼 방법조차 없는 비디오테이프 몇 개를 집 안 어딘가에 추억의 물건으로 간직하고 있다면, 필시 ‘옛날 사람’이다. 그때 그 시절에는 결혼식·회갑연에 유치원 재롱잔치 비디오가 일상 문화였다. 손바닥보다 조금 큰 직사각형의 비디오테이프에 각종 영상을 기록하고 보관하는 것은 획기적인 일이었다. 1980년대 이후 외환위기 무렵까지 비디오테이프 녹화·재생 기기인 VTR은 필수 혼수품으로 꼽혔다. 고 최진실이 TV를 보면서 타 채널의 축구 중계를 녹화하는 장면과 함께 “남편 퇴근 시간은요, 여자 하기 나름이에요”라는 카피로 공전의 화제를 모은 것이 1989년 삼성전자 VTR 광고였다.

일세를 풍미했던 비디오는 2000년대 들어 DVD에 밀려난다. 외환위기를 겪은 명예퇴직자 등이 창업한 비디오 대여점 수가 우후죽순처럼 늘어나 2003년 8000여곳에 이르렀으나 이후 급격히 쇠락했다. 디지털다기능디스크 또는 디지털비디오디스크를 뜻하는 DVD는 ‘꿈의 영상 기기’로 불렸다. 화질이 비디오보다 2배 이상 뛰어났고, 음질도 CD 이상이었다. CD와 똑같은 작은 크기의 한 면에 120분 분량이나 담는 것도 강점이었다. 영화 팬들은 비디오를 잊을 수밖에 없었다.

영상 기록·보관·시청의 패러다임을 바꾼 것으로 평가됐던 DVD도 지금은 한물간 상태다. 작품 소장에 가치를 두는 일부 레트로 마니아가 아니라면 애써 DVD 타이틀을 찾지 않는다. 블루레이 같은 고선명·고용량 저장장치가 계속 발전하는 게 우선 이유다. 그리고 이제는 영상 콘텐츠를 외부 장치에 담아둘 일이 별로 없다. 인터넷 공간에서 언제든 찾아보고 유·무료로 컴퓨터나 온라인상에 내려받아 두면 된다. 손톱만 한 USB에 10배, 100배의 데이터를 담을 수 있으니 DVD는 저장 기기 자체로도 의미 없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지난 10일 담화에서 미국의 독립기념일 행사 DVD를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싶다는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혀 해석이 분분하다. 마음먹으면 쉽게 구할 영상인데 콕 집어 DVD를 말한 게 의아하다. 북한이 지금 철 지난 DVD시대를 지내고 있는 것인지도 궁금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미국의 반응을 타진하는 시그널로 언급됐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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