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들어올수록 마을은 불행해졌다

2021.02.20 16:37 입력 2021.03.03 17:40 수정

국내 원전이 세워진 지역은 모두 바닷가에 있어 경치가 수려하다. 고리원전 인근의 부산 기장군 월내 해수욕장은 한때 국내 6대 해수욕장의 하나로 꼽힐 정도로 아름다움을 자랑하던 곳이다. 해운대 백사장의 몇 배에 달하는 규모였다. 원전 건설로 허리가 끊기거나 사라졌지만 지금도 임랑에서 월내 쪽으로 해수욕장이 있다. 고리에서 월성 원전으로 이어지는 해변 쪽에는 펜션과 카페가 적지 않다. 하지만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원전 인근을 찾는 관광객은 줄고 있다.

월성원전을 끼고 있는 양남면 나아리에서 큰 식당을 운영했던 성혜중씨(73)는 “자고 일어나면 뉴스 터지는데 누가 오겠어요? 무지한 사람들만 오지”라고 말했다. 나아리에서는 문 닫은 가게를 쉽게 볼 수 있다. 마을 중심가에 있는 당구장 건물은 1·2층이 통째로 비어 있었다. 당구장이었음을 알리는 창문 유리에 붙은 스티커의 가장자리 부분이 떨어지고 있었다. 영업 당시 사용했을 것으로 보이는 집기가 그대로 방치된 건물도 여럿 보였다.

자영업을 하는 주민들은 방사선 피폭의 위험보다 비어 있는 상가가 자신의 미래가 될까 무섭다. 월성 3호기 삼중수소 누출 논란이 일자, 마을 중심가에 “탈핵단체가 우리 마을을 사람 못 살 곳으로 만든다” “바나나 6개, 멸치 1개가 뭐가 위험하냐”는 내용의 현수막이 걸린 이유도 이런 맥락이다.

월성 원전이 위치한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에 있는 건물. 1층 식당과 2층 당구장이 모두 비어있다./ 이석우 기자

월성 원전이 위치한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에 있는 건물. 1층 식당과 2층 당구장이 모두 비어있다./ 이석우 기자

■“한수원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

그렇다고 집과 가게를 처분하고 나가기도 어렵다. 팔리지 않기 때문이다. 나아리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김홍희씨(55)는 “가게가 안 나가니까 그냥 자기 건물 버려두고 외지로 나가 장사하는 사람도 많아요. 지금 남아 있는 사람들은 한수원에 의지하거나 돈이 없어 못 나가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재산권 행사가 불가능한 곳에서 주민들이 기댈 곳은 김씨 말처럼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뿐이다. 원전이 들어서게 되면 반경 5㎞ 이내 지역은 ‘발전소 주변지역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지원금을 받는다. 전력산업기반금을 재원으로 한 기본지원금과 전력사업자(한수원)가 주는 사업자 지원사업비가 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건 사업자 지원금이다. 사업자가 돈을 집행하는 탓에 한수원이 이해관계에 따라 지원대상을 선정해 주민들을 ‘길들인다’는 건 공공연한 소문이다. 박갑용씨(부산시 시민안전대책위원회)는 “한수원이 지원사업을 선정하면서 자기에게 유리한 사람에게 지원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 김홍희씨는 ‘핵쓰레기장’인 맥스터 건설 반대에 나선 이후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한수원과의 거래가 뚝 끊겼다. 도시락 단체 주문은 물론이고 김씨 단골 한수원 직원들도 발길을 끊었다. “지원금은 법에 따라 나오는 것이고, 나는 여기 주민으로서 건강에 대한 우려를 할 수 있는 것 아니에요? 그런데 이런 목소리를 내면 한수원 소비가 끊기게 되니까 장사하는 사람들은 목소리를 낼 수가 없어요.” 김씨는 이날 “어차피 오는 사람도 없다”며 식당 문을 열지 않았다.

경향신문이 양이원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2016~2020년 원전본부 사업자 지원사업 선정결과’를 보면 학교나 소방서 등 공공영역에 쓰이는 비용도 있지만 새마을운동회, 전우회, OO봉사회, OO축제위원회 등 마을 단체에 지원되는 금액이 상당한 부분을 차지했다. 지원금을 받는 단체가 원전에 우려를 표하기는 쉽지 않다.

새로운 원전이 지어질 때면 비슷한 일이 반복된다. 한수원 지원금은 어떤 이유에선지 한쪽으로 쏠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소외된다. 월성과 고리원전 주민들이 30년 넘게 겪고 있는 일이다.

경북 경주 월성원자력본부 홍보관 앞에서 더불어민주당 의원단이 삼중수소 검출 점검을 위해 월성원전을 긴급 방문하려 하자 일부 경주 양남면민이 의원들의 출입을 저지하고 있다. / 연합뉴스

경북 경주 월성원자력본부 홍보관 앞에서 더불어민주당 의원단이 삼중수소 검출 점검을 위해 월성원전을 긴급 방문하려 하자 일부 경주 양남면민이 의원들의 출입을 저지하고 있다. / 연합뉴스

■마을회에 지급되는 지원금 갈등

지난 2015년 월성1호기 재가동에 따라 나아리는 66억5000만원을 지원받았다. 한수원은 이 돈을 ‘마을회’에 지급했다. 마을회는 원주민 위주로 꾸려진 기구다. 법적 효력은 없지만 행정기관이나 한수원은 암묵적으로 마을회를 인정한다.

문제는 마을회의 폐쇄성이다. 나아리 상가번영회장을 맡고 있는 오종태씨(60)가 철물점을 운영한 지는 13년, 주소를 옮긴 지는 7년이 됐다. 그는 아직도 마을회에 가입하지 못했다. 오씨만이 아니다. 나아리 주민 830여명 중에 마을회 회원은 180명이 안 된다.

그렇다고 마을회에 속한 주민들이 이익을 보는 것도 아니다. 마을회는 이 돈으로 풀빌라와 게스트하우스를 지어 운영하고 있다. 여기서 이익이 나면 마을회 기금으로 쓴다는 것인데, 흑자를 내본 적이 없다. 상생협력금 66억5000만원에 풀빌라와 게스트하우스를 담보로 대출까지 한 상황이다.

마을회 회원인 황분희씨(73)와 김홍희씨는 한목소리로 “10원짜리 한장 못 만져보고 100억이 공중에 흩어져 버렸다”고 말했다. 마을에는 마을회 간부들이 일부러 적자를 낸다는 소문까지 돈다. 물건이 경매로 나오면 개인이 사들일 목적이라는 것이다.

지원금의 또 다른 축인 기본지원금은 어떨까? 주민들은 기본지원금의 수혜자로 경주시장과 기장군수를 꼽는다. 기본지원금은 주로 사회간접자본(SOC) 사업과 마을 행사에 쓰이는데, 사실 이는 원전 지원금이 없었다면 일반 예산에서 쓰였을 돈이기 때문이다.

고리원전 인근 주민들은 2007년 고리1호기 수명연장에 합의하면서 1610억원을 받았다. 이 돈 상당수가 해일 피해를 막는 이안제 설치에 들어갔다. 신정길 길천마을 이장은 “원전 건설로 해안매립을 하다 보니 해수면이 낮아져 해수욕장이 상실되고 그로 인해 월파가 심하다. 심지어 월내엔 배가 날아와 2층 창에 꽂힌 적도 있다. 그 피해가 극심해 이안제를 세웠는데 이건 원인을 제공한 한수원이나 관에서 해야 할 일이 아닙니까”라고 물었다.

지원금 덕분에 예산이 두둑해진 지자체는 선심성 사업을 마음껏 벌인다. 이는 다음 선거에서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신정길 이장은 “기장군이 매년 수백억씩 지원금을 받아도 여기에는 하나도 투자 안 해요. 선거용으로 인구가 많은 신도시에 다 뿌리지. 여긴 계속 피폐해지고 아무도 안 돌봐줍니다”라고 말했다.

이재걸 고준위핵폐기장 건설반대 양남면 대책위원회 사무국장도 “경주시가 매년 500억씩 받아갑니다. 그 돈으로 도로 새로 깔고 이상한 건물이나 짓고. 인구 6000명밖에 안 되는 면(양남면) 하나 버리고 지원금 받아 경주 시내에 선심정책을 쓰면 자기는 또 당선된다는 거죠”라고 말했다.

원전 인근 지역 주민들은 지자체의 이런 행태에 ‘박탈감’을 느낀다. 원전으로 인한 피해는 지근거리 주민들이 다 껴안는데 이득은 시내 사람들이 본다는 것이다. 여기서 또 다른 갈등의 축이 생긴다. 마을에서 서로를 미워하고 지자체장을 미워하고 시내 사람들을 미워한다.

몇십년 갈등 끝에 남은 건 패배주의다. 나아리 이주대책위가 만들어질 당시 74가구가 참여했다. 6년이 지난 지금 10가구 남짓만 남았다. 대책위에서 열심히 활동하던 이들 중 한명은 경주시의회 시의원이 됐다. “한수원의 개가 되지 않겠다”던 현수막을 걸었던 그는 이제 대책위를 찾지 않는다.

익명을 요구한 양남면 주민은 “나도 예전에는 열심히 싸웠어요. 그런데 이게 되나 하면? 안 돼요. 싸운다고 원전이 없어졌나? 더 생겼어요. 아무리 싸워도 안 돼. 싸우는 사람만 손해야… 어쩌겠어요. 돈이라도 받아야지”라고 말했다.

■“돈이 들어와도 마을은 더 불행해져”

오종태씨는 경주시청 앞에서 단식농성까지 했지만 변한 건 없다. 오씨는 “이전 이장이 지원금 때문에 검찰조사를 받다가 자살을 했어요. 옆에 마을(나산리) 이장도 자살했습니다. 그런데도 왜 안 고쳐집니까?”라고 말했다.

월성보다 앞서 폐로에 들어간 고리는 월성의 미래다. 고리 주민들은 원전이 지역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수원도 못마땅하다. 그러면서도 탈원전은 반대한다. 수명이 끝난 고리1호기 폐로도 반대했다. 이러나저러나 핵폐기물은 남아 있는데, 그럴 바에 지원금이라도 받게 원전을 가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적 자립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지원금마저 줄어들 경우 마을의 여러 복지 사업들이 좌초될 수 있다.

일본 최초의 원전이 들어선 마을인 도카이무라의 무라카미 다스야 전 촌장은 동일본대지진 이후 원전 폐로를 주장하면서 ‘원전 머니’를 비판했다. “일시적으로 지역을 풍족하게 해주지만 주민에게서 자립 및 자율의 희망과 긍지를 빼앗아 결국에는 공동체를 파괴한다.”

다른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지금 방식의 지원으로는 소수의 마을 주민, 그리고 지자체장들만 이득을 본다. 실제 양남면 발전협의회는 맥스터 추가 건설과 관련해 현금 지원은 절대 안 된다는 입장을 내걸고 있다. 원전 안전과 관련된 기금 등으로 활용하자는 제안이다.

박갑용씨는 “지원금을 집행하는 재단을 만들어 정부도, 주민도, 사업자도 손을 못 대게 하고, 주민이 필요 사업을 제안하면 타당성을 따져 선정하는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정수희 에너지정의행동 국장은 “그간 매년 몇백억씩 예산이 투입됐음에도 적절하게 활용 못 한 정치인의 반성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요즘 김홍희씨는 처음 나아리에 이사 왔던 때를 생각한다. 앞으로는 바다가 펼쳐져 있고 마을 사람들과 싸울 일도 없었다. 인터뷰 끝에 김씨가 조용하게 말했다. “참 신기하지예. 돈이 그렇게 많이 들어왔는데 마을은 더 불행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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