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 열망은 오직 불로소득 욕망에서 비롯됐을까

2021.04.10 11:15 입력 2021.04.13 10:09 수정

경질된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서울 강남구 청담동 아파트 보유자다. 최근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 전 전셋값을 대폭(14%) 인상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널리 알려졌다. 김상조 전 정책실장이 처음부터 강남 아파트 보유자는 아니었다. 2017년 5월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드러난 이사궤적을 보면, 서울 중랑구에 살다 자녀의 중학교 입학 즈음 서울 양천구 목동으로 주소지가 바뀐다. 고등학교 입학 즈음에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으로 주소를 옮긴다.

같은 시기 인사청문회를 겪은 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현재 장관급인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 주거지 전입 흐름도 비슷하다. 서울 강북구 미아동에서 자녀의 중학교 입학 즈음해 대치동으로 주소를 옮긴다. 자녀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쯤 서울 용산구 이른바 ‘동부 이촌동’의 한 아파트로 주소가 바뀐다. 청문회 당시 이 이파트를 직접 보유했다. 행정구역상 서빙고동이지만 동부 이촌동 권역으로 묶이는 이 이파트는 올초 조합설립인가를 받아 재건축 가능성이 커졌다. 한강을 낀 이촌동 일대는 살기 좋고 자산가치는 뛰어나지만, 강남에 비해 교육여건이 부족한 곳으로 꼽힌다.

두 교수 출신 인사들은 자녀 교육과 향후 자산가치를 고려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뿐이었을까. 노영민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서울 서초구 반포에 있는 아파트 대신 청주의 아파트를 팔려 했다.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은 서울 동작구 흑석동 재개발 예정지 상가로 내 집 마련과 노모 봉양을 하려 했다고 밝혔다. 무려 3주택자였던 최정호 국토부 장관 후보자는 2019년 3월 인사청문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당시 최정호 후보자는 잠실, 분당(장관 지명 직전 딸에게 증여), 세종(분양권)에 집을 보유했다.

청와대와 그 주변 인사를 겹쳐보면, 한국사회에서 부동산 시장이 들썩이게 되는 유인이 드러난다. 이들은 자녀교육(입시), 노후 보장, 부모 봉양을 내세우면서 암묵적으로 자산가치 상승을 노린다. 20·30대에겐 서울에 몰린 일자리 문제까지 맞물린다. 복잡한 현실을 정부 인사들이 스스로 입증했지만,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 가격 상승 요인으로 다주택자의 투기 욕망을 줄곧 언급했다. 정작 서울 집값을 잡으려 추진한 3기 신도시에서 부동산 투기 의혹이 불거지면서 상황은 더 꼬였다. 갈피를 잃은 부동산 정책은 여당이 대패한 재보궐선거 결과의 한 원인이 됐다. 정준호 강원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자산시장은 욕구와 욕망이 한데 섞여 부딪히는 곳이다. 각자의 이해관계가 작동하는 경제문제를 도덕으로만 접근해 풀 수 있는 게 아니었는데 너무 안일했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2020년 8월 국회에서 홍남기 경제부총리와 당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과 함께 부동산 시장 안정화를 위한 주택공급 확대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당정협의를 가졌다. | 국회사진기자단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2020년 8월 국회에서 홍남기 경제부총리와 당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과 함께 부동산 시장 안정화를 위한 주택공급 확대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당정협의를 가졌다. | 국회사진기자단

■다수가 서울살이를 원하는 이유

문재인 정부는 집값 안정을 공언했다. “집값을 잡겠다”는 발언이 쏟아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부동산 가격 충분히 잡을 수 있다고 확신”(2017년 8월), “강력한 방안을 강구해 반드시 부동산 가격을 잡겠다”(2019년 11월), “반드시 집값을 잡겠다는 의지가 중요하다”(2020년 7월)고 말했다. 다주택자 투기 수요 압박도 이어졌다. 당시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은 “다주택자들은 내년 4월까지 살지 않는 집을 파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했다.

주요 타깃은 서울 강남3구였다. 정부는 강남3구에 투기 수요가 몰리고, 강남3구가 서울 집값을 끌어올린다고 봤다. 2018년 9월 5일, 장하성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은 TBS 라디오 인터뷰에서 “모든 국민이 강남에 가서 살려고 하는 건 아니다. 살아야 할 이유도 없고 거기에 삶의 터전이 있지도 않다”고 말했다. 강남 집값을 잡고 부동산 투기를 막겠다는 맥락에서 한 발언이었다. 본인은 강남(서울 송파구 아파트)에 살면서 “강남 살 필요 없다”고 말해 분노를 키웠고, 사람들이 왜 강남에 살려고 하는지 이해하려는 노력이 없는 발언이라는 점에서 더 문제적이었다.

강남은 살기 좋은 곳의 상징처럼 여겨진다. 교육, 교통, 의료, 자산가치 상승 가능성 등이 모두 우수하다. 시·군·구별 삶의 질 지수를 보면, 강남구(0.958)는 서울에서 용산구(0.963) 다음으로 높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강남 3구는 수많은 공공재가 투입된 뒤 점차 매력적인 곳이 됐고, 그러면서 자본화가 이뤄졌다”고 했다. 그렇다면 강남 3구를 비롯한 서울 주요 지역에 살지 않더라도 양질의 교육을 받고 노후 걱정을 덜 수 있게 하는 정책이 필요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교육제도부터 대치동에서 돈을 많이 쓰면 유리한 구조다. 다 한쪽으로 몰리니까 부동산 투자 유인도 더 생길 수밖에 없다. 강남으로 대표되는 ‘살기 좋은 곳’으로 쏠리는 욕망을 분산했어야 했다”고 했다.

“집값을 잡겠다”던 정부 정책은 유기적으로 추진됐을까. 문재인 정부는 입시제도를 정작 강남 3구에 거주하는 학생들에게 유리하다고 여겨지는 ‘정시 강화’로 방향을 틀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들의 입시 비리 의혹으로 ‘공정성’ 논란이 불거진 뒤다. 자산에 목매지 않도록 복지를 강화할 재원이 필요하다면 과감한 증세가 필요했지만 이마저도 주저했다. 세 부담 인상을 꺼려하는 여론을 의식한 ‘눈치보기’만 이어졌다. 문재인 정부 집권 초기 보유세 인상은 집값 안정을 노리면서 재원 마련도 할 수 있는 카드였다. 정부가 2018년 9월 발표한 종합부동산세 개편안은 기존 종부세액(1조5000억원)에 추가 세수 1조150억원을 더 걷는 데 그쳤다. 참여정부 마지막 해인 2007년 거둔 2조7671억원보다 적었다. 우석진 교수는 “정부 초기 재정개혁특별위원회에서 부동산 보유세를 올린다는 액션만 취하고 ‘핀셋 증세’라고 하면서 정작 상승분은 미미했다. 부동산 가격이 대폭 상승한 뒤 이제 와서야 보유세를 올린다고 하니 역풍이 더 거센 것”이라고 말했다.

집값을 잡겠다는 반복된 공언은 집값 폭등으로 되돌아왔다. 왜 서울에 유독, 강남 3구에 특히 사람들이 몰리는지 고민이 부족했던 탓이 크다. 정책 실패와 더불어 세계적으로 돈이 풀려 유동성이 늘어나는 국면까지 맞물렸다. 너도나도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으다의 줄임말)’을 이야기했다. 가격 상승은 서울 전역으로 확대됐다. 남아 있는 살기 좋은 곳을 더 오르기 전에 구매하려는 수요가 대거 몰렸다. 지난 3월 정부가 발표한 지난해 공동주택 공시가격 상승률을 보면 노원(34.66%), 성북(28.01%), 강동(27.25%)순으로 높았다. 강남(13.96%), 서초(13.53%)는 서울시 평균(19.91%)보다 낮았다. 공시가는 부동산 보유세 산정의 기준이 되는 가격이다.

불만은 쌓여갔다. 문재인 정부 4년간의 누적분이다. 한국갤럽 조사결과를 보면, 올해 4월 첫째 주 문재인 대통령 직무 수행평가를 ‘잘못하고 있다’고 대답한 이들 중 40%가 부동산 정책을 부정평가 이유로 꼽았다. 문재인 정부 부정평가 이유로 부동산 정책은 22주 연속 1위를 기록했다. 부동산 정책 실기는 여당의 재보궐선거 참패로 이어졌다.

서울 송파구 롯데타워 서울 스카이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서울 시내 아파트. | 이준헌 기자

서울 송파구 롯데타워 서울 스카이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서울 시내 아파트. | 이준헌 기자

■일부의 ‘욕망’으로 치부할 수 있나

문재인 정부는 줄곧 ‘부동산 욕망’을 죄악시했지만, 역설적으로 자산 증식을 원하는 개인의 욕망에 부합해왔다. 크게 오른 집값은 개인이 보유한 자산가치 상승에 기여했다. 서울 강남구 한 아파트(172㎡)는 지난 4월 5일 54억3000만원에 거래됐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7월에는 27억5000만원에 팔렸다. 이 아파트 소유자는 앉아서 자산가치를 2배 가까이 불렸다. 이승철 서울대 인류학과 교수는 “사실 문재인 정부에선 자산 가격이 급격히 올라 자산경제로의 이행을 가속화했다. 어떻게 보면 자산가들의 욕망에 부합한 측면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부동산을 둘러싼 욕망이라고 했을 때 어느 계층의 어떤 욕망인지를 먼저 살펴봐야 한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는 서울 아파트 보유자들의 자산을 불려줬지만 정작 표는 받지 못했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제1투표소는 투표수(1815명) 중 93.7%(1700명)가 오세훈 서울시장을 찍었다. 부동산값이 뛴 뒤에야 뒤늦게 올린 보유세 부담분이 고가 주택 보유자를 똘똘 뭉치게 했다. 결국은 정치의 실패다. “보유세 부과 기준인 공시가의 인상도 철저한 계획하에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정상화했어야 했다”(정준호 교수), “보유세도 집값이 비싸지 않을 때 어느 정도 선진화해놓고 부작용을 없애는 장치를 뒀어야 한다. 예를 들어 소득이 없다면 납부이연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이 있다”(하준경 교수)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그렇다고 ‘부동산 욕망’이 값비싼 부동산을 가진 이들의 이해관계에만 얽혀 있는 것은 아니다. 다수의 ‘먹고사니즘’과도 맞물린다. 김도균 제주대 사회학과 교수는 ‘창작과비평’ 2020년 여름호(6월)에서 “한국사회에서 부동산 문제가 유독 뜨거울 수밖에 없는 이유도 부동산이 단지 투기와 욕망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생존의 문제와 엮여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중산층의 자가소유를 ‘생존주의 주거전략’으로 규정한 <내 집에 갇힌 사회>(김명수·2020)에는 ‘돌에 새긴 연금’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집(자산)이 곧 노후를 보장하는 연금 역할을 한다는 의미에서의 비유다.

부동산과 ‘생존의 문제’는 이른바 ‘자산기반복지’ 체제로 설명된다. 공적 복지가 부족하니 개인이 자산을 마련해 안전망을 구축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정부가 보장하지 않는 노후를 개인 자산을 지렛대 삼아 대비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정준호 교수는 “노인복지를 비롯해 노후 안전망이 부실한 상황에서 노후자금을 마련하겠다고 월세을 받는 것조차 부도덕한 욕망으로 접근하니 문제”라고 했다. 집 한 채라도 없으면 살기 팍팍한 현실을 아는 20·30대도 부동산 정책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한국갤럽이 올해 3월 2주차부터 4주간 매주 진행한 대통령 직무 수행평가 이유를 가중해 합산한 결과를 보면, 문재인 정부를 부정평가한 ‘학생’의 39%가 부동산 정책을 이유로 꼽았다. 이는 사무·관리직(44%) 다음으로 높은 수치다.

주택 구매력이 있는 중산층 혹은 중상층 이상의 목소리가 증폭돼 여론에 반영되는 것은 아닐까. 하준경 교수는 “중산층 이상의 목소리가 과대대표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만 주택을 보유하려는 욕구가 있다고 보긴 어렵다. 대부분이 집을 사 계층사다리를 올라가고 싶어하는 욕망이 있는데 지금은 모든 주택 가격이 뛰어버린 상황”이라고 말했다. 서울만 놓고 보면 소형 아파트나 다세대·다가구 주택 가격도 오르는 추세다. KB국민은행 월간 주택동향을 보면, 지난 3월 서울 소형 아파트(60㎡이하) 평균 매매가격은 7억6739만원이었다. 1년 전에 비해 1억4193만원 오른 액수다. 최근에는 주택 가격 상승과 함께 전·월세 가격도 급격히 뛰었다. 이승철 교수는 “고소득이지만 충분한 자산을 소유하지 못한 중산층에서 피해를 본다고 느끼는 사람이 가장 많겠지만, 그 외의 사람들도 무관할 수 없는 이야기다. 능력을 떠나 서울의 아파트 보유 가능성이 점점 희박해지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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