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중국이 아니다…거침없는 ‘전랑외교’·고양된 애국주의

중국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국기 게양식이 진행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중국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국기 게양식이 진행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중·한 관계 발전은 우리에게 필요한 일이다. 장사를 할 수 있어 경제에 좋을 것이고, 대만과의 관계도 단절시킬 수 있다.”

1992년 ‘한·중 외교관계 수립에 관한 공동성명’의 서명 당사자였던 첸치천(錢其琛) 전 중국 외교부장은 2003년 출간한 회고록 ‘외교십기(外交十記)’에서 한·중 수교에 관한 덩샤오핑(鄧小平)의 생각을 이렇게 전했다. 당시 덩샤오핑은 중국 내 반대파들을 설득하기 위해 한·중 수교는 ‘유익무해(有益無害)’한 것이란 논리를 내세웠다. 경제적으로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대만을 고립시켜 통일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할 수 있기 때문에 손해날 게 없다는 논리였다.

한·중 수교는 탈냉전 시대에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결과물이었다. 중국 입장에서는 정치·경제·외교적 측면에서 모두 한국과의 수교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특히 경제적 측면에서는 압축 성장을 경험한 한국의 경제발전 노하우를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1992년 수교 당시 중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420달러로 한국(8126달러)의 19분의 1 정도에 불과했다. 전체 GDP도 4920억달러로 한국(3560억달러)의 1.4배 수준이었다.

지난 30년 동안 중국의 경제 규모는 폭발적으로 성장했고, 명실상부한 주요 2개국(G2) 반열에 올라서며 국제적 위상은 크게 달라졌다. 이는 외교적 태도에도 반영됐다. 한·중 수교 당시 중국은 덩샤오핑이 내세웠던 ‘도광양회(韜光養晦·빛을 감추고 힘을 기름)’를 외교정책의 근간으로 삼고 있었다. 이후 장쩌민(江澤民)·후진타오(胡錦濤) 시대 20년을 거치며 G2로 성장한 중국은 유소작위(有所作爲·필요한 일에 적극 나섬)와 화평굴기(和平崛起·평화롭게 부상함)를 내세워 보다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2012년 이후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집권기는 ‘대국굴기’를 표면화한 시기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중국몽’과 ‘분발유위(奮發有爲·떨쳐 일어나 할 일을 함)’를 앞세운 공격적인 외교 전략이 본격화됐다. 미·중 갈등이 표면화됐고 중국은 ‘전랑(戰狼·늑대전사)외교’를 구사하며 더는 발톱을 숨기지 않았다. 막강해진 경제력을 기반으로 한 ‘힘의 외교’가 시작된 것이다. 2016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 결정 이후 중국이 가한 경제 보복을 통해 한국도 쓴맛을 경험했다.

중국의 달라진 위상과 외교 전략은 중국인들의 정서에도 영향을 미쳤다. 한·중 수교 이후에 태어난 중국의 ‘주링허우(九零後·1990년대생)‘와 ‘링링허우(零零後·2000년대생)’는 톈안먼 사태 이후 강화된 애국주의 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다. 성장 과정에서 중국의 눈부신 경제 발전을 목격했고, 이전 세대와는 다른 풍족한 환경 속에서 자라났다. 국가에 대한 자긍심이 강하고 때로는 배타적 민족주의 성향도 나타낸다. ‘샤오펀훙(小粉紅)’으로 불리며 온라인 상에서 맹목적인 애국주의를 분출하는 네티즌 집단을 주도하는 것도 이들이다. 외국기업에 대한 불매운동과 애국소비 열풍의 중심에도 이들이 있다.

중국의 젊은 세대는 한류 문화의 영향을 받고 자랐다. 그러나 2020년 방탄소년단(BTS)의 ‘밴 플리트상’ 수상 소감 논란이나 지금도 때때로 불거지는 김치·한복 논란에서 보여지듯 이들은 한국 문화나 연예인을 막연히 동경하지 않는다. 오히려 역사적·민족적·문화적 우월감이 강하다.

베이징의 한 한국 교민은 “20여년 전 처음 중국에 왔을 때만해도 한국인을 대하는 중국인들의 태도는 지금보다 훨씬 우호적이었고, 일부러 한국 문화나 언어를 배우기 위해 찾아오는 이들도 있었다”며 “사드 사태 때 같은 반한 감정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과거와는 분명한 인식의 격차가 존재하고 때로는 한국을 그저 변방의 작은 나라 정도로 취급하는 경향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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