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햄리 CSIS 소장 "미 대선 끝나는 11월까지 북·미 길고 차가운 교착상태 지속될 것"

2020.01.05 18:28 입력 2020.01.06 11:59 수정

미국 최고의 외교정책 연구기관 중 하나인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의 존 햄리 소장은 “(올해 11월3일) 미국 선거가 끝날 때까지 미국과 북한 사이엔 길고 냉담하고 차가운 교착상태가 펼쳐질 것”이라고 말했다.

햄리 소장은 지난 2일(현지시간) 워싱턴 CSIS 내 자신의 사무실에서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정치의 계절에 접어들고 있고, 민주당은 트럼프 대통령이 아무것도 얻지 못했음에도 북한에 계속 주기만 한다면서 대북정책 실패를 주장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진전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새로운 정상회담을 하자고 말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2018년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을 두고 “매우 폭넓은 방향을 수립했지만 구체성이 부족했다”면서 “구체성을 발전시키기 위한 실질적인 회담이 있어야 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미국의 방위비 분담금 대폭 인상요구에 대해선 “멍청한 짓이다. 미군은 용병으로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게 아니다”라면서 “우려하는 건 트럼프 행정부가 터무니 없이 높은 금액을 요구한 다음 한국이 끝내 거절할 경우 병력을 빼는 핑계로 사용할 가능성”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햄리 소장과의 일문일답이다.

존 햄리 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소장이 지난 2일(현지시간) 워싱턴 사무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워싱턴|김재중 특파원 hermes@kyunghyang.coom

존 햄리 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소장이 지난 2일(현지시간) 워싱턴 사무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워싱턴|김재중 특파원 hermes@kyunghyang.coom

■ 북·미관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미국에 대한 강경 노선을 천명했다. 어떻게 평가하나?

“김 위원장이 보낸 메시지를 미국이 어떻게 보는지에 대해 묻는 것이라면 미국은 아직 그것을 내면화 할 기회가 없었다고 본다. 사람들이 크리스마스와 연말 휴가에서 막 돌아왔기 때문에 김 위원장이 말한 것에 대한 미국 내 반응들을 아직 많이 접하지 못했다. 특히 북한의 메시지가 나오기 직전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발생한 외교적 위기 때문에 정부 쪽 사람들은 그것에 정신이 쏠려 있다. 이 때문에 나도 미국이 김 위원장의 최근 연설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에 대해 아직 명백하게 감을 잡지는 못했다. 김 위원장이 이런 식으로 연설을 할 것이라는 예상은 많았다. 다만 북한이 말한 새로운 전략적 무기가 무엇인지에 대해 사람들이 궁금해 할 것이다. 이 무기가 그들이 이미 해온 것과 질적으로 다른 것일지는 의문스럽다. 아마 잠수함발사미사일(SLBM) 시스템일 가능성이 있지만 아직 국방부 쪽 친구들의 얘기를 들어보지 못해 확실치 않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김 위원장의 메시지는 비관주의를 강화시켰다고 생각한다. 아시다시피 미국이 북한과 평화협정을 맺을 수 있다는 전망이 있었지만, 이에 대해 아주 깊은 비관주의가 존재했던 것도 사실이다. 내 생각엔 북한의 메시지가 상황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지는 않았다고 본다.”

-북한은 자신들이 핵실험장을 해체하고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를 중단했지만 미국의 대북적대시 정책이 바뀌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북한의 주장을 어떻게 평가하나?

“이것부터 말하자. 그간 어떤 미국 대통령도 북한 지도자를 만나지 않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싱가포르에서 김정은 위원장을 만났다. 이건 엄청난 일이다. 지난 50년 간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 벌어진 거다. 이건 매우 실질적인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은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중단시켰다. 그리고 하노이에서 다시 만났지만 북한 측에선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 트럼프 대통령은 정말로 능동적이었다. 하지만 하노이에서 북한이 아무 것도 내놓지 않자 철수했다. 내가 알기로 미국은 북한과 실무회담을 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북한은 단 한번의 예외를 제외하곤 모두 거부했다. 한번의 실무회담조차 그리 대단하거나 유용한 대화가 아니었다. 그들은 그 회담을 완전한 실패이자 재앙이라고 규정했다. 나는 미국이 많은 것을 했다고 본다.”

-북한이 새로운 전략적 무기를 선보이겠다고 한 만큼 행동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북한이 이른바 ‘레드라인’을 넘어설 경우 트럼프 대통령은 어떻게 반응할 것으로 보는가?

“아직 알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재개했을 때 부정적으로 반응하지 않았다. 그들은 장거리는 아니지만 단거리 미사일을 시험발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것이 ‘표준적인 발사’라면서 레드라인을 넘어선 것이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나는 트럼프 대통령이 보인 이같은 반응이 올바르다고 보지 않지만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레드라인이 아니었다. 북한이 ICBM을 발사한다면 미국이 무엇을 할 것인지 아직은 알 수 없다. 우리는 이미 제재를 단행하고 있기 때문에 제재를 더욱 강화하거나 새로운 제재를 부과할 수 있을 것이다. 레드라인이 우리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어떤 것이라고 할 때 2010년의 천안함 피격 또는 연평도 피격 사건 같은 것이 발생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의 매우 강력한 반응을 유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것이 아니라면 미국이 앞서 해왔던 것과 다른 어떤 것을 할 것으로 상상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B-2 폭격기의 상징적 비행 같은 것 말이다. 한반도에 미군을 증파하거나 항공모함을 일시적으로 보내는 방안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무엇이 일련의 행동을 촉발시킬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북·미 간 긴장이 극에 달했던 2017년 전쟁위기설이 팽배했었다. 2020년 새로운 위기의 도래가 한반도에서 전쟁으로 확대될 가능성은 없을까?

“그렇지는 않다고 본다. 북한은 매우 신중하게 계산된 행동을 하고 있다. 그들은 전쟁이 시작되면 얼마나 재앙적일 것인지 알고 있을 것이다. 미국 역시 전쟁을 원치 않을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 내 일부 인사들이 잠시나마 이른바 ‘코피 전략’이라는 것을 검토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거부됐다. 핵무기를 가진 상대가 코피를 흘리게 할 수는 없다. 타당한 얘기가 아니다. 따라서 전쟁 또는 전쟁과 비슷한 충돌은 없을 것이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아마도 제재의 지속, 북한과 소통하려는 불규칙적 시도들, 그리고 한국군과의 낮은 수준의 협력 등 우리가 지금까지 해온 것의 연장선일 것이다.”

-북·미 정상회담으로 새로운 돌파구가 마련될 가능성은 없을까?

“김정은이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명령한다면, 워싱턴의 많은 전문가들은 그것이 인공위성 발사일 것으로 보고 있다. 왜냐하면 위성 발사는 그들의 진전된 미사일 능력을 과시하면서도 실질적인 군사적 행동이라고 규정하기에는 약간 부족한 것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위성 발사는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그리 많은 반응을 이끌어내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다고 트럼프 대통령이 ‘좋다. 다시 정상회담을 하자’라고 말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치의 계절에 접어들고 있고, 민주당은 트럼프 대통령이 아무것도 얻지 못했으면서 북한에 계속 주기만 한다면서 그의 대북정책이 명백하게 실패했다고 주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도 진전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또 한번의 정상회담을 하자고 말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매우 독특한 인물이기는 하지만 새로운 정상회담은 재선에 나서는 그가 지금까지 채택해온 이야기 방식에 맞지 않는다고 본다.”

-트럼프 대통령이나 김 위원장이 모두 국내 정치적 이유로 인해 ‘성과’가 필요하기 때문에 상반기 중 일종의 ‘스몰딜’을 시도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좋든 싫든 미국인들은 외교정책을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4월, 5월, 6월이 가까워질수록 미국 내 분위기는 더욱 더 국내 정치 쪽으로 쏠릴 것이다. 작은 합의, 스몰딜이라는 게 무엇을 말하는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트럼프 대통령에게 그다지 이득일까 싶다. 역설적으로 그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얼마나 적은 것을 했는지, 얼마나 적은 것은 얻었는지를 부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게 자신의 재선에 도움이 되리라고 보지 않을 것 같다. 따라서 나는 그런 것이 연내에 나올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물론 진짜로 큰 뭔가가 일어난다면 모르겠지만 현 상황에서 그런 것이 일어날 가능성은 지극히 낮아 보인다.”

-당신의 전망은 북·미 간 대치 및 교착상태가 상당히 오래 지속될 것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 미국 선거가 끝날 때까지 길고 냉담하고 차가운 교착상태가 펼쳐질 것이다. 미국이 김정은과 대화를 시작할 때부터 비핵화가 무엇인지에 대한 합의가 없었다. 우리에게 비핵화는 그가 가진 것을 제거한다는 의미였지만, 그에게 비핵화는 미국이 한반도에서 떠나는 것을 의미했다. 우리는 목표가 무엇인지에 대해 진정한 합의를 가지고 있지 않다. 최종 지점에 대한 진정한 합의가 없이는 단계적 절차를 수립하기가 매우 어렵다. 나는 북한 내부 정치는 잘 이해하지 못하지만 김 위원장도 국내적으로 체면을 차리기 위한 합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트럼프 대통령이 2018년 시작한 대담한 대북정책은 김 위원장 스스로 비핵화 의지를 천명하도록 했다. 하지만 현재는 큰 난관에 봉착해 있다. 어디서부터 잘못됐다고 보나?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정책은 매우 이례적이었다. 미국적 맥락에서 매우 대담했다. 전임 미국 대통령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행동을 했다. 어떤 나라의 지도자들도 사전에 구체적인 내용이 조율되지 않은 상태에서 만나는 일은 없다. 일반적으로 정부 수반들은 결과물이 어떤 내용인지 알 수 있을 때에만 만난다. 그 결과물이 어떻게 해석될 것인지에 대해 최대한 통제하기 위해서다. 이런 맥락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만남은 극히 이례적이었다. 두 정상이 사전에 조율된 결과물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만난다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었다. 싱가포르에서의 첫 만남은 올릴 수 있는 최대치의 성과를 올렸다. 나아갈 매우 폭넓은 방향을 수립했다. 하지만 구체성이 부족했다. 다음 단계로 구체성을 발전시키기 위한 실질적인 회담이 있어야 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듣기로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후 미국이 오랜 시간을 기울여 북측이 회담에 나오도록 했지만 북측 대표단은 구체적인 것을 전혀 가져오지 않았다. 미국 측은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어떤 것 없이 하노이에 오지 말라고 촉구한 것으로 안다. 하지만 북한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런 것이 북한의 오랜 협상 전술인지, 섣불리 협상테이블에 뭔가를 올렸다가 나중에 김 위원장의 질책을 받을 것을 두려워하는 북한의 관료주의 때문인지, 아니면 김 위원장이 뭔가 지침을 내려줄 것을 기다렸기 때문인지, 아무도 확실한 이유는 알지 못한다. 여하튼 북한은 하노이 협상 테이블에 어떤 새로운 것도 가져오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을 결렬시킨 주요 원인이었다. 내가 이 정부에 속한 사람은 아니지만 정부 관계자들로부터 들은 내용이다. 내게 편견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무엇이 잘못됐냐고 묻는다면 싱가포르 정상회담과 하노이 정상회담 사이에 구체성이 부족했던 점을 들고 싶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6월 판문점에서 김 위원장을 다시 만남으로써 일을 진행되도록 하기 위한 길을 찾고 싶다는 열망을 보여줬다. 하지만 판문점 회동 그 자체는 실질적 회담이 아니었다. 합의문 한장 남기지 않았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합의에 도달할 길을 찾가를 원한다는 것은 명확하게 시사했다. 하지만 내가 아는 한 그 이후 고위급이 만나는 회담이 단 한차례 열렸고, 회담에 대한 양측의 해석도 완전히 달랐다. 실무 수준에서 구체성의 결여, 이것이 바로 잘못된 지점이다.”

-문재인 정부는 북한을 대화로 유도하기 위해선 제재 완화와 같은 인센티브가 필요하다고 보는 것 같다. 하지만 워낙 촘촘한 대북제재 때문에 남북한이 협력을 도모할 공간이 극도로 좁은 것이 사실이다.

“문재인 정부의 의도를 잘 안다. 이건 진짜 딜레마다. 우리는 북한과 함께 할 평화 의제가 필요하고,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30년 후를 생각해 보자면, 미국은 한국이 아시아에서 민주주의의 강력한 지지자가 되기를 바란다. 현재 한국은 동아시아 대륙에서 민주주의 깃발을 쥐고 있는 유일한 국가이다. 한국은 중국·러시아를 이웃으로 두고 있으며, 이는 매우 어려운 환경이다. 따라서 우리는 한국이 가능한 강력하기를 바란다. 그게 민주주의, 그리고 미국의 가치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한국이 가장 강력해질 수 있으려면 북한이 중국의 확장된 지역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이 통일이 되어야 한다. 미국의 이익을 매우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민주주의 깃발을 쥐고 있는 강력한 한국을 동맹국으로 갖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평화 의제를 증진시켜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북한이라는 매우 어려운 현실과 직면해야 한다.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데려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제재 환경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면에서 함정에 빠져 있다. 이것이 고통스런 현실이다. 나는 문재인 정부가 일이 진행되도록 하기 위해 연구와 대화, 경비초소 폐쇄와 같은 것들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안다. 그들은 이러한 평화 의제를 촉진시킬 방법을 찾기 위해 매우 열심히 노력해 왔다. 그러나 핵심 모순의 해결은 불가능할 것이다. 정말 실망스러운 현실이다. 우리 모두는 북한이 좀 더 실질적인 무언가를 협상 테이블에 가져오기를 희망했다. 스티븐 비건 국무부 부장관은 몇차례 연설을 통해 미국이 점진적 접근법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명백한 신호를 보냈다. 물론 북한이 완전하게 핵무기를 포기해야 하고 비가역적인 상태가 됐음을 우리가 완전하게 검증할 수 있어야 하며, 그 전에 우리는 아무것도 해서는 안된다고 말하는 보수적인 미국인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내가 보기에 비건 부장관은 이것이 실현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수차례 연설에서 단계별 접근법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아마도 이 때문에 비건 부장관과 존 볼튼 전 백악관 국가보좌관 사이에 긴장이 존재했을 것이다. 이처럼 미국 측에선 실무 수준에서 앞으로 나갈 의지가 있었으나, 안타깝게도 실무 수준은 김정은-트럼프 수준과 연결되지 않았다.”

■ 한미관계와 동아시아

-2019년은 한·미 관계에서도 격동의 해였다.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과 관련해 미국이 현재보다 5배 많은 50억달러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져 한국 내에서 많은 공분을 일으켰다.

“분명히 말하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에 50억달러를 요구한 것은 잘못이다. 멍청한 짓이다. 미군은 용병으로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게 아니다. 우리는 한국을 보호하기 위해 주둔하는 게 아니고 한국도 이를 위해 미국에 돈을 지불하는 게 아니다. 우리는 동맹이다. 우리가 이런 동맹을 가질 수 있었다는 건 행운이다. 따라서 트럼프 행정부의 방위비 분담금 인상 관련 논리는 출발부터 잘못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해온 오랜 역사가 있다. 내가 우려하는 건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이 도저히 수긍할 수 없는 터무니 없이 높은 금액을 요구한 다음 한국이 끝내 거절할 경우 미국인들에게 ‘이것 봐라. 한국이 적절한 대가를 지불하는데 실패했다’고 말하면서 병력을 빼는 핑계로 사용할 가능성이다. 이것 역시 잘못이다. 내가 주변의 미국인들에게 이와 관련해 말할 때 항상 강조하는 게 있다. 지난 50여년 간 미국이 한국으로부터 군사적 도움을 필요로 할 때 한국은 언제나 호응했다. 항상 그랬다. 비슷한 기록을 가진 나라는 호주가 유일하다. 그런데 이제 와서 한국이 돈을 더 내지 않기 때문에 한국이 근본적으로 우리를 실망시켰다고 말하는 것은 전혀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이건 정직하지 못한데다 미국의 이익과 안보 측면에서도 사실과 다르다. 다시 말하지만 미국의 목표는 한국이 아시아에서 강력한 민주주의의 촉진자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핵심이다. 한국은 60년 전 완전한 파괴와 빈곤을 딛고 이제 세계에서 11번째로 큰 경제를 가진 가장 성공적인 민주주의 국가가 됐다. 강력한 한국보다 민주적 가치의 승리를 더 잘 보여주는 역할모델은 없다.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처럼 미국이 한국에게 더 많은 돈을 강요하거나 한국을 포기한다면 매우 큰 실수가 될 것이다.”

-한국 정부가 일본의 수출규제 때문에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을 연장하지 않겠다고 결정했을 당시 미국 정부와 의회는 한국 정부를 매우 격렬하게 비판했다. 한국 내에선 미국이 은근히 일본의 편을 든다는 반응이 나왔다. 그리고 미국이 한·일 간의 협정에 대해 왜 그토록 격하게 반응하는지 의아하다는 반응도 있었다. 한·일 관계를 바라보는 미국의 시각은 무엇인가?

“미국에게 중국의 부상은 금세기에 직면한 가장 큰 도전이다. 나는 미·중 경쟁이 필연적으로 폭력으로 귀결될 운명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리의 강력한 두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이 아시아에서 우리와 공조하는 것은 극도로 중요하다. GSOMIA는 우리가 공유하는 국가안보 이슈에 관해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틀을 제공했다. 나는 한국과 일본 사이의 역사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불거진 양국 간 분쟁이 우리에게 극히 중요한, 3국이 항구적이고 안정적인 정보 협력을 하도록 해주는 것을 위협했다. 우리는 이에 대해 비판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GSOMIA 종료 결정이 한국의 이익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나는 한·일 간의 참혹하고 고통스런 역사를 잘 안다. 그에 대해선 질문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과거에 일어날 일들을 바꾸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우리는 미래에 대해서만 뭔가를 할 수 있다. 그리고 GSOMIA는 미래에 관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우리가 이것을 유지하고 그에 기반에 협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제 우리는 엄연히 존재하는 역사적 불만에 대처하기 위한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것의 중요성을 축소하고픈 의도는 전혀 없다. 하지만 우리는 매우 다른 두가지를 조합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미국에서 매우 강렬한 반응이 나온 이유였을 것이다. 나는 한국과 일본이 사태를 약간 진정시킨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한·일 간의 긴장은 봉합은 됐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여전하다.

“한국과 일본 사이엔 두개의 층위가 있다. 일본 측의 수출 규제와 연관된 기술적인 차원이 있고, 이보다 큰 역사적 차원이 있다. 이 두 가지가 뒤섞여 있고, 우리는 두 문제를 모두 풀어야 한다. 수출 규제, 기술적인 문제는 상대적으로 풀기가 쉽겠지만 역사적인 문제는 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문제를 완전히 풀지는 못하더라도 문제의 일부를 푸는 데 도움이 되는 해법들은 있다. 나는 우리가 앞으로 나가기 위한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낙관한다.”

-한국에게 미국은 유일한 동맹국이지만, 중국은 가까운 이웃이자 중요한 경제적 파트너다. 미·중 경쟁이 심화될수록 한국이 느끼는 압력도 커지고 있다.

“4년 전 서울에서 열린 학술회의에서 있었던 일이다. 내가 마지막 세션 진행을 담당했는데 한·중 관계에 대한 미국의 시각이 이슈 중 하나였다. 나는 청중 400여명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한국이 중국과 더 긴밀한 경제적 유대 관계를 만들어야 하는가?’ 그렇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손을 들어보라고 했다. 거의 모두가 손을 들었다. ‘한국은 중국과 군사적·외교적으로 더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가?’ 겨우 2명이 손을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일부 미국인들은 한국에 대해 우려하지만 나는 전혀 그렇지 않다. 한국은 중국과의 아주 오랜 역사가 있고, 수차례 침략을 받았다. 한국인들은 결코 중국의 한 지역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한국인은 중국의 속국이 되길 바라지 않는다. 한국인은 강하고 독립적이며 응집력 있는 한반도를 원한다. 이것이 바로 미국이 한반도 통일을 밀어부쳐야 할 또 하나의 이유이다. 우리는 북한이 중국의 한 지역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은 한국이 중국과의 적대적 관계를 감당할 수 없음을 이해해야 한다. 한국은 중국과의 적대적 관계 속에선 살아남을 수 없다. 한국은 중국과 경제적으로 적대적인 관계에 빠진다면 정치적 독립성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진다. 따라서 미국은 한국이 차별되는 정책을 가지게 된다는 점을 현명하게 이해해야 한다. 일본이 하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그건 나쁜 게 아니다. 미국은 한국과 일본을 향해 중국과 미국 중 한쪽을 선택하라고 해선 안된다. 트럼프 행정부 내에 그렇게 하기를 바라는 이들이 일부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렇게 한다면 실수가 될 것이다. 그건 장기적 전략이 아니다. 감정일 뿐이다.”

■ 2020년 미국 대선과 21세기 세계질서

-올해 미국 대선에서 대외정책과 관련해 주목해야 할 점은 무엇인가?

“아직 민주당의 후보가 누가 될 것인지 모른다. 전통적인 민주당 정치인이 후보로 뽑힌다고 가정할 경우 서로 경쟁하는 두 세계관 사이의 논쟁을 보게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세계관은 세계 체제를 통해 미국이 취득할 수 있는 모든 것에 집중돼 있다. 세계 체제를 위해 더이상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미국이 누릴 수 있는 모든 이점을 최대한 취하려는 것이다. 나는 민주당 지지자는 아니지만 민주당 후보는 오늘날의 세계는 너무 복잡하고, 모든 문제도 너무 복잡하므로 이를 풀기 위해선 동맹이 필요하다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혼자서 할 수 없고 다른 이들과 함께 해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동맹과 동반자 관계, 국제기구들을 강화시킴으로써 우리가 직면한 문제들에 대처할 수 있다고 말이다.”

-그것을 국제주의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렇다. 하지만 국제주의가 미국은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직면한 문제들에 진정으로 대처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역동적인 국제주의적 정책이라는 점이다. 고립주의가 아니라 국제주의적 정책 말이다. 내가 젊은이들에게 항상 강조하는 것이 세상의 모든 복잡한 문제들은 수평적인데, 모든 정부들은 수직적이라는 것이다. 수직적인 정부들은 어떻게 수평적인 문제들을 풀 수 있을까? 함께 일하는 것이다. 문제가 미국의 국경에 접근할 때까지 기다려서는 문제를 풀 수 없다. 이게 바로 트럼프 대통령의 잘못이라고 내가 생각하는 점이다. 국경에 장벽을 건설하는 것으로는 이민 문제를 풀 수 없다. 중앙 아메리카 이민 문제의 원인에 대처해야 한다. 범죄, 일자리 부족, 환경 파괴 등이 수백만명이 고향을 등지게 만드는 것들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향을 떠나고 싶어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가족과 친구와 헤어지고 싶어하지 않지만 생존을 위해선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다고 느낀다. 우리는 이런 현실에 대처해야 한다. 내가 이 직업을 시작했을 즈음 북미자유무역협정(나프타)이 통과됐다. 당시 나왔던 주장 중 하나는 나프타가 통과되면 멕시코인들의 삶의 질이 올라갈 것이고 이로 인해 미국으로 향하는 멕시코인들이 줄어들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건 사실로 드러났다. 지난 8년간 미국으로 불법 이민하는 멕시코인보다 고국으로 돌아간 멕시코인이 더 많았다. 다시 말하지만 수직적 정부들은 수평적인 문제들을 다뤄야 한다. 이번 선거는 이에 관한 것이 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처럼 복잡하고 새로운 근대 세계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 혼자서는 이런 문제들을 풀 수 없다. 이런 문제들은 동반자들과 동맹, 그리고 국제기구들과 함께 할 때만 풀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선공한다면 외교정책에 변화가 있을까?

“우리가 그간 봐온 것들이 계속될 것이다. 그간 우리는 정책은 크게 바뀌지 않았지만 수사(rhetoric)가 크게 바뀐 것을 보았다. 이것들은 악영향을 낳았는데 미국의 친구들과 동맹들의 신뢰를 갉아먹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악의 경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를 없애버리길 원한다고 했지만 미국은 여전히 나토 회원국이고, 트럼프 대통령은 중동에서 철군하고 싶다고 했지만 미국은 여전히 중동에 병력을 주둔시키고 있다. 분명히 말해두건데 CSIS는 비당파적 기구이고, 나 역시 비당파적인 사람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되면 큰 변화는 없겠지만 대외관계에서 더 큰 신뢰 상실이 우려된다.”

-21세기 국제질서는 큰 변화를 겪고 있다. 현재의 상황을 과거 역사에 비유해 설명해줄 수 있는가?

“과거에 비유하자면 1946~47년과 가장 비슷하다고 느낀다. 하지만 이것이 ‘냉전’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현 상황은 냉전과는 다르지만 냉전의 가장 중요한 패턴을 공유하고 있다. 냉전 시기는 매우 다른 두 세계관이 경쟁했다. 이른바 자유주의적 국제질서 세계관은 정부가 개인의 권리와 자유, 그리고 사회의 요구 사이에 균형을 제공할 필요가 있으며, 두가지를 모두 보호하고 증진해야 한다고 봤다. 1946~47년 권위주의적 세계관은 공산주의의 지배였다. 정부가 사회와 개인들에게 자신의 의지를 부과했다. 정부의 권위는 외부의 원천에서 왔고, 사람들을 억압하고 강요했다. 어떤 면에서 이것은 지금 서구 체제와 중국, 그리고 러시아 사이에서 벌어지는 것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관리되는 민주주의’라는 신기한 말을 만들어 냈다. 관리되는 민주주의 같은 건 없다. 민주주의는 밑에서부터 올라오기 때문에 관리할 수가 없다. 다시 말해 ‘법의 지배(rule of law)’라는 세계관은 정부가 법 체계를 준수하고 개인과 사회를 위해 봉사할 책임을 지며, 항상 개인과 사회 사이의 균형을 찾는다. 반면 ‘법을 통한 지배(rule by law)’ 세계관에서 법은 사회에 정부의 의지를 부과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것과 유사한 역사적 상황이다. 그러나 이것은 냉전에 비해 훨씬 더 대처하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중국은 1946~47년 소련에 비해 훨씬 더 정교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소련에 비해 경제적으로 훨씬 크고 중요하며, 역동적인 지적 기반을 가지고 있다. 알다시피 소련은 고립됐고 경직된 세계괸을 갖고 있었다. 중국은 너무 크고 너무 역동적이다. 대처하기가 훨씬 더 어려운 이유이다. 이는 한국이 미국의 가장 강력한 동맹으로 남아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은 미국과 세계관을 공유하고, 세계가 더 나은 미래를 맞을 수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현실은 냉전에 비해 훨씬 더 복잡하고 우리는 함정에 빠져선 안된다. 다만 내가 우려하는 것은 너무 많은 미국인들이 냉전이라는 비유를 사용하고 현실을 이에 맞추길 원한다는 점이다. 바로 군사적 경쟁이다. 그렇게 간다면 큰 실수가 될 것이다. 관건은 경제적 활력, 사회의 역동성이다. 우리는 우리의 문제들을 풀어나가면서 우리의 체제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 존 햄리 소장은 누구?

존 햄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소장(70)은 워싱턴 정가와 싱크탱크에서 손꼽히는 오피니언 리더다. 미국 의회 예산국 부국장, 국방부 차관과 부장관을 역임하는 등 의회와 정부에서 국방 실무를 담당했고, 행정부는 물론 의회에 폭넓은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다. 2000년부터 CSIS 소장 겸 최고경영자(CEO)를 맡고 있으며, 김대중 전 대통령에서부터 문재인 대통령까지 워싱턴을 방문한 한국 대통령들을 모두 만났다. 그는 “우리 연구소는 비당파적 기관이며 나 역시 비당파적”이라고 했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정책에 대해선 거침없이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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