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55분간 국영방송서 대국민 연설
‘역사적 러시아’ 일부…국경 부당 설정
우크라 돈바스에 군 진입 정당성 밝혀
냉전 종식 이후 30년 서방의 무시 담겨
공산혁명서 강제병합 국가 언급은 빠져
우크라이나가 점점 더 위험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군사적 충돌로 이어진다면 러시아에도 파괴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그런 위험에도 불구하고 푸틴 대통령은 왜 군사행동을 멈추지 않을까.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의 갈등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푸틴 대통령은 지난 21일 밤(현지시간) 55분간의 TV연설을 통해 자칭 도네츠크·루간스크 인민공화국 승인을 밝히며 이유를 상세하게 설명했다. 푸틴 대통령은 연설에서 우크라이나는 ‘역사적 러시아’의 일부였으며 1917년 공산혁명으로 소비에트연방(소련)이 성립하면서 부당하게 국경이 설정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숫자를 근거로 제시하며 구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는 옛 소련의 부채탕감 의무 등을 떠안고 옛 소련에서 독립한 국가들에게 무역특혜 등 경제적 지원을 펼쳤으나 우크라이나는 반러시아 행보로 우의를 손상시켰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를 서방과 손잡고 핵무기를 개발해 러시아를 위협하는 나라로 묘사했다. 또 부패로 비판받았던 친러시아 성향 지도자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을 몰아낸 2014년 우크라이나 혁명 이후 우크라이나의 부패와 경제난 등은 더욱 심해졌으며 인구의 30%를 차지하는 러시아계 주민들에 대한 탄압이 자행됐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의 의도는 연설의 말미에 명확히 드러난다. 그는 냉전시절 소련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영역을 30년 전인 1997년 상태로 되돌릴 것을 요구했다. 그는 냉전종식 이후 지난 30년 동안 나토가 러시아의 안보를 위협해왔다고 주장했다. 1990년 소련이 독일 통일을 승인하는 대신 유럽과 미국이 나토를 동쪽으로 확장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저버렸으며 미국은 소련과 맺은 각종 군축조약을 탈퇴하고 현재는 우크라이나 영공에서 대러시아 정찰기를 띄우고 무기를 배치했다며 일련의 과정을 “목구멍에 칼을 들이댄다”고 표현했다.
푸틴 대통령의 연설은 ‘진실’과 ‘의도적 왜곡’을 모두 담고 있다. 러시아가 혼란에 빠져 있던 시절 나토가 약속을 어기고 동진해 러시아를 위협했다는 점은 여러 전문가들이 동의하고 있다. 국제문제 저널리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뉴욕타임스(NYT) 칼럼에서 “1990년대 소련의 붕괴에도 불구하고 나토가 동진을 한 것은 잘못된 결정”이라며 “이 전쟁은 푸틴의 야망, 전략, 불만의 산물이지만 미국이 불길에 부채질한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언급한 대목에 관해서 “지정학적 명예훼손”이라고 표현했다. 특히 우크라이나가 독립적인 역사와 전통 없이 소련의 은혜로 탄생했으며 현재 핵무기 개발 계획이 있다고 전한 내용은 터무니없다고 평가받는다. 푸틴 대통령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우크라이나 역사에 대한 왜곡된 시각을 가질 수 있다.
‘피해자’로서의 러시아만 부각된다는 문제도 있다. 러시아에 적대적인 동유럽 국가들은 공산혁명 과정에서 소련에 강제병합되는 등 ‘소련 제국주의’를 경험했다. 이 같은 과거나 주변국을 위협하는 현대 러시아의 ‘유라시아주의’에 대해서도 푸틴 대통령은 언급하지 않는다. 유라시아주의는 러시아가 서구와는 다른 독자적인 정체성과 문명을 갖고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해, 옛 소련이 지배했던 권역을 되찾고 종주국으로서 역할을 하려는 정치적 움직임으로 나타나고 있다. 정재원 국민대 유리시아학과 교수는 “나토의 동진 역시 제대로 이해하려면 러시아의 팽창주의에 동유럽 국가들이 느끼는 공포까지 감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푸틴의 전쟁’은 근본적으로 제국주의에서 비롯됐다는 비판이 유엔에서 나왔다. 마틴 키마니 유엔 주재 케냐 대사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연설에서 열강의 식민지배로 인해 아프리카 국가들이야말로 종족, 언어 등과 무관하게 국경이 만들어져 고통받았던 역사를 언급했다. 그는 “제국이 붕괴하거나 후퇴하면서 만들어진 모든 국가 안에는 이웃나라와 통합하기를 소망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며 “우리는 죽어버린 제국의 자취로부터 완전히 회복해야 하지만 새로운 형태의 지배와 억압에 다시 내몰려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키마니 대사는 “(무력으로 국경을 바꾸려 하지 않는 이유는)지금의 국경에 만족해서가 아니라 평화가 구축할 수 있는 더 위대한 것을 원하기 때문”이라 말했다. ‘유라시아주의’의 속내를 담은 연설을 ‘탈식민주의’ 관점에서 비판한 것이다.
푸틴 대통령의 생각과 우크라이나 위기의 이해를 위해 A4용지 20장 분량의 원문을 4분의 1 분량으로 요약해 번역, 게재한다. 원문은 러시아 매체 ‘네자비시마야 가제타’에서 확인할 수 있다. 크렘린궁이 공개한 영어 번역본 등을 참고하고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았다.
▶러시아어 연설전문 : https://www.ng.ru/politics/2022-02-22/100_putin21022022.html
▶크렘린궁이 공개한 영어 번역본 : http://en.kremlin.ru/events/president/news/67828
▶[관련기사]러·우크라 사태를 이해하려면 우크라이나 역사를 보라…‘유럽 최후의 대국 우크라이나의 역사’ : https://www.khan.co.kr/culture/book/article/202202181437001
<푸틴 TV연설 요약문>
우크라이나는 단순한 이웃 나라가 아니다. 우리(러시아)의 역사, 문화, 정신적 공간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일부이며 동료, 친구뿐만 아니라 혈통, 가족관계로 연결돼 있다.
현대 우크라이나에 해당하는 고대 러시아(‘루스’라는 고대 민족. 현대 러시아·우크라이나·벨라루스인의 근간으로 여겨짐)의 서남부 영역은 역사적으로 러시아 민족(현 러시아인. 푸틴이 고대 루스족과 현대 러시아인을 의도적으로 혼용해 쓰고 있다고 보임)과 러시아 정교 공동체의 일부로 여겨 왔다. 그러나 1917년 10월의 공산혁명 이후, 레닌과 그의 볼셰비키 동지들이 신생 공산주의 정권을 안정시키기 위해 제정 러시아의 역사적 영토를 제멋대로 분리, 역사적 관련성이 없는 당시의 거주민들에게 할양하는 전략적 실수를 저질렀다. 이후 대조국전쟁(독·소전쟁)의 결과로 독일이 점유하던 과거 폴란드, 헝가리, 루마니아의 일부분이 소련에 할양되었으며, 마지막으로 1954년 니키타 흐루쇼프(제2대 소련 공산당 제1서기)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우크라이나에 크림 반도를 선물했다. 이것이 소비에트 우크라이나의 영토가 형성된 과정이다.
소련 성립 초기 레닌과 볼셰비키들이 저지른 전략적 실책은 1991년 통일 국가의 붕괴로 이어졌다, 당시 공산당 내 여러 분파들은 권력투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민족자결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한 환상을 이용했다.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지역의 엘리트들과 급진 민족주의자들은 이러한 기회를 이용, 독립을 쟁취했고, 공을 스스로에게 돌렸다. 그러나 이는 볼셰비키와 소련공산당 지도부의 전략적 실책으로 인한 ‘역사적 러시아’의 붕괴이다.
이 모든 불의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민은 소련 붕괴 이후 발생한 새로운 지정학적 현실과 신생 독립 국가들을 인정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의 존엄과 주권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여러 지원을 제공했다.
전문가들의 추계에 따르면 러시아가 특혜 무역과 저금리 차관 등을 통해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재정상의 이익은 1991년부터 2013년까지 약 2500억 달러에 달한다.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1991년 말까지 외국과 국제기금에 대한 소련의 부채는 약 1000억 달러에 달했다. 처음에는 각국의 경제적 잠재력에 비례한 구소련 모든 공화국들의 연대 반환을 가정하였으나, 결국 2017년에 이르러 소련의 부채 모두를 갚은 것은 러시아였다. 그 대가로 새로 독립한 국가들은 소련의 해외자산에서 자신들의 몫을 포기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1994년 12월 (러시아가 소련의 부채를 다 갚는 대신 다른 국가들은 소련의 해외자산을 포기하는) 협정을 체결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를 비준하지 않았고 이후 이행을 거부, 해외의 구소련 자산에 대한 청구권을 제기했다. 이러한 모든 불리함에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공개적이고, 정직하며, 그들의 이익을 존중하는 협력을 추진해 왔다. 단적으로 2011년에 양국 교역액은 500억 달러를 초과했다. 이는 팬데믹 이전인 2019년 우크라이나의 모든 대 EU 교역량의 총합을 상회하는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의 관계에서 권리와 이득은 챙기면서도 의무를 부담하지 않았으며, 러시아와의 대화를 서방과의 협상을 위한 구실로 사용하려 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우크라이나는 그 영토에 사는 수백만 명이 공유하는 역사적 기억을 부정하고 자신들의 국가성을 세우려 했다. 우크라이나 사회는 러시아 공포증과 신나치즘의 형태를 취하는 극단적인 민족주의의 부상에 직면하였으며, 신나치주의자들 중 일부는 북 코카서스에 산재하는 테러리스트 집단에 가담하여 러시아의 영토를 위협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안정적이고 오랜 국가성을 가진 적이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크라이나 “과두정”의 친서방 정책은 대내적으로는 국민의 삶과 복지가 아닌 그들 자신의 이기적인 이익을 위한 것이었으며, 대외적으로는 러시아의 지정학적 경쟁자들에 대한 복무의 대가로 우크라이나 국민들로부터 빼앗은 수백만 달러를 서방 은행에 예치하기 위함이었다. 산업, 금융 엘리트 그룹, 그리고 그들에 포획된 정당과 정치권은 민족주의자와 급진주의자에 의존했다. 이들은 집권 이후 우크라이나 동남부의 수백만 시민들을 비롯한 자신들의 유권자들을 배신하고 러시아와의 우호 관계와 문화적 다양성을 위한 이중언어 정책을 유지하겠다는 약속을 거부했다. 이들 급진주의자들은 약한 정부를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는 과정에서 민족주의와 부패라는 바이러스로 더럽혔으며, 다민족 국가를 기반으로 하는 우크라이나의 실질적인 주권, 국민들의 진정한 문화적, 경제적, 사회적인 이익을 교묘히 저버렸다. 우크라이나의 선거 절차는 과두 정치세력 간의 권력 재분배를 은폐하는 역할을 담당했을 뿐이다.
부패한 시스템에 대한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정당한 불만을 이용해 급진파는 2014년의 유로마이단(2013년 11월 우크라이나의 유럽연합 가입을 요구한 대규모 시위. 2014년 빅토르 야누코비치의 하야와 망명으로 이어짐) 쿠데타를 부추겼고, 그 과정에서 미국 등 외국 정부의 직접적이고 금전적인 지원을 받았다. 키예프와 각 도시에서 수많은 사상자를 낳았다. 정권을 찬탈한 민족주의자들과 그들의 지지세력은 반대파에 대한 반헌법적이고 공개적인 탄압을 자행했다. (미국이 유로마이단 시위대를 공개적으로 지지한 것은 사실이지만 돈을 제공했다는 증거는 제시된 적 없다.)
유로마이단은 우크라이나를 민주주의와 진보로부터 퇴행시켰다. 쿠데타의 주역들은 우크라이나를 내전의 나락으로 몰아넣었고 가혹한 사회경제적 위기를 불러왔다. 2014년 이후 우크라이나의 공공요금은 작게는 30%에서 크게는 세 배 가까이 인상됐고, 제정 러시아와 소련 시절 동안 건설되었으며 전 소련과 우크라이나의 자랑이었던 산업 기반은 낙후되거나 무너졌으며, 많은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었고, 그 이익은 몇몇의 호주머니 속으로 사라졌다. 소련 시절 조성된 천연가스 운송 시스템은 운영이 위험할 정도로 노후화됐다. 그 결과 2019년의 자료에 따르면 전 인구의 15%에 해당하는 600만명의 사람들이 일자리를 구하러 다른 나라로 이주해야만 했다. 심지어는 팬데믹 상황인 2020년 이후 6만명이 넘는 의료 인력들이 그들의 고국을 등졌다. 가난, 절망, 그리고 산업기술 잠재력의 상실. 이 모든 것이 이미 수년 동안 헛된 환상으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농락한 친서방 선택이 의미하는 것인가?
위와 같은 경제적 쇠퇴는 국민들에 대한 수탈을 동반하고 있다. 외국 정부의 지령과 외국 네트워크의 일환인 비정부 기구들의 활동은 중앙정부, 지방정부, 국영기업과 민간기업에 이르는 정부의 전 영역에 막대한 영향을 행사하고 있다. 현재 우크라이나에는 독립된 사법부가 존재하지 않는다. 서방의 요구에 따라 키예프 정부는 국제기구 대표자들에게 각급 법원의 고위급 인사들을 선출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미국 대사관은 여러 반부패 관련 정부기관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는 우크라이나 정부가 스스로 국가성을 버리고 탈주권화를 진행, (서방에)정치경제적으로 예속된 꼭두각시(마리오네트)임을 증명한다.
탈러시아화와 강제동화를 향한 과정도 계속되고 있다. 2019년 국가 언어법(우크라이나의 유일한 국어로 우크라이나어를 지정한 법. 우크라이나 주민의 67%는 우크라이나어, 30%는 러시아어, 3%는 기타 언어를 사용한다)의 제정은 러시아인으로서 자신의 정체성, 언어, 문화를 보존하고자 하는 시민들이 우크라이나에서 이방인임을 분명히 했다. 러시아 정교회로부터 우크라이나 정교회가 독립하려는 움직임은 정치적인 도구로 전락했다.
크림반도의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러시아와 함께 하기를 선택했다. 이는 키예프 정부를 자극하였고, 크림의 시민들과 주요 인프라에 대한 (이슬람)극단주의자들의 공격으로 이어졌다. 우리는 외국 정보기관이 이와 같은 공격의 배후에 있다는 증거를 확보하고 있다. 우리는 또한 우크라이나가 자체 핵무기를 만들 계획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여전히 소련이 설계한 100km 이상의 사거리를 가진 소련의 핵 기술과 항공, OTR-21 작전 전술 미사일(소련의 단거리 지대지미사일)과 그러한 무기를 운반하는 수단을 보유하고 있다.(우크라이나는 1994년 핵 확산 방지를 위해 오히려 자발적으로 소련 시절의 핵무기를 폐기했다.)
2021년 3월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 대항하고 러시아령 크림반도와 돈바스에 대한 테러를 기획하는 새로운 군사 전략을 채택했다. 최근 몇년 동안 훈련을 구실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군대는 우크라이나 영토에 거의 지속적으로 존재했다. 우크라이나 군대의 명령 및 통제 시스템은 이미 나토와 통합되어 있다. 이는 개별 부대와 소부대를 포함하여 우크라이나 군대의 지휘권을 나토 본부에서 직접 행사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미국과 나토는 잠재적인 군사 작전의 전구로 우크라이나 영토의 무분별한 개발을 시작했다. 정기적인 합동 훈련은 분명한 반러시아적 초점을 가지고 있다. 또한 우크라이나가 독자적인 핵무장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은 뜬소문이 아니다.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나토 군사 그룹의 빠른 구축을 위한 은폐 역할을 하는 것은 분명하다. 우크라이나 영공은 러시아 영토 모니터링에 사용되는 미국 전략 및 정찰 무인 항공기의 비행이 허용된다. 미국은 크림반도에 비슷한 시설을 만들려고 했지만 (우크라이나 영토였으나 2014년 주민투표로 러시아 귀속을 지지한)크림반도와 세바스토폴(크림반도 남단 항구도시)이 계획을 무산시켰다. 우리는 이것을 기억할 것이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오랫동안 나토 가입을 위한 전략적 과정을 공론화했다. 물론 각 국가는 자체 보안 시스템을 선택하고 군사 동맹을 체결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안보를 보장하기 위한 선택이 다른 국가에 위협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은 러시아의 안보에 직접적인 위협이다.
2008년 4월 북대서양 동맹의 부쿠레슈티 정상 회담에서 미국은 우크라이나와 조지아가 나토 회원국이 될 것이라는 결정을 밀어붙였다는 것을 상기시켜 드리겠다. 미국의 유럽 동맹국 다수는 이미 그러한 전망이 가진 위험성을 잘 알고 있었지만, 고위급 파트너의 의지에 따라야 했다. 미국인들은 단순히 그들을 이용한 명백한 반러시아 정책을 수행했다.
그들은 나토가 평화를 사랑하고 순전히 방어적인 동맹이라는 것을 계속해서 우리에게 확신시키려 한다. “러시아에 대한 위협은 없다.” 1990년 독일 통일 문제가 논의되고 있을 때 소련 지도부는 미국으로부터 나토 관할권을 동쪽으로 확장하지 않을 것을 약속받았다.
모든 것이 공허한 소리로 판명됐다. 우리는 중부 및 동부 유럽 국가의 나토 가입이 모스크바와의 관계를 개선하고 무거운 역사적 유산에 대한 두려움을 해소하고 심지어 러시아에 우호적인 국가 벨트를 만들 것이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일부 동유럽 당국은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러시아의 위협’이라는 고정관념을 가져와서, 러시아를 대상으로 한 집단방위 구축을 주장했다. 그 무렵에는 개방적 분위기와 우리의 선의 덕분에 러시아와 서방의 관계가 우호적이었다. 러시아는 독일과 중·동유럽 국가에서 군대를 철수하는 등 모든 의무를 다하여 냉전의 유산을 극복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우리는 러시아-나토 이사회 및 OSCE(유럽안보협력기구)를 포함하는 다양한 협력 옵션을 지속적으로 제안했다.
더군다나 지금까지 공개적으로 말하지 않았던 것을, 처음으로 말하려 한다.(실제로는 이전에도 밝힌 적 있다.) 2000년에 퇴임하는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모스크바를 방문했을 때 나는 그에게 “미국은 러시아를 나토에 가입시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라고 물었다. 그 대화의 세부 사항을 모두 공개하지는 않겠지만, 미국인들이 이 기회에 실제로 어떻게 반응했는지는 실제로 우리나라를 향한 실질적인 조치에서 볼 수 있다. 이것은 북카프카스의 테러리스트에 대한 공개적인 지원, 나토 확장에 대한 우리의 요구와 안보 우려에 대한 무시, 탄도탄 요격 유도탄(ABM) 조약 탈퇴 등이다. (전략미사일의 보유를 제한하는 협정으로 1972년 미국과 소련이 체결했으며 2002년 미국이 일방적으로 파기했다)
왜 우리를 적으로 돌리는가. 정답은 하나뿐이다. 그것은 우리의 정치 체제나 다른 것에 관한 것이 아닌, 러시아와 같이 강력한 독립 국가가 필요하지 않다는 이유이다. 이것은 모든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이것은 러시아에 대한 전통적인 미국 정책의 기원이다.
오늘날, 지도를 한 번만 봐도 서방 국가들이 나토가 동쪽으로 이동하는 것을 막겠다는 약속을 어떻게 “지켰는지”를 알 수 있다. 간단히 말해 우리는 속았다. 우리는 다섯 차례의 나토 확장을 차례로 목격했다. 1999년 폴란드, 체코, 헝가리, 2004년 불가리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2009년 알바니아와 크로아티아, 2017년 몬테네그로, 2020년 북마케도니아.
결과적으로 나토의 군사 기반시설은 러시아 국경에 직접 도달했다. 이것은 유럽 안보 위기의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되었으며, 국제 관계의 전체 시스템에 가장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상호 신뢰의 상실로 이어졌다.
미국이 중거리 핵전력 조약을 파기한 후 펜타곤은 이미 최대 사거리 5500km의 탄도 미사일을 포함한 모든 범위의 지상 기반 공격 무기를 공개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이러한 시스템이 우크라이나에 배치되면 러시아의 유럽 영토 전역은 물론 우랄산맥 너머의 목표물을 모두 타격할 수 있다. 토마호크 순항 미사일의 모스크바까지의 비행 시간은 35분 미만, 우크라이나 하르코프(우크라이나어 하르키프) 지역의 탄도 미사일은 7-8분, 극초음속 공격 무기는 4-5분이다. 이것은 직접 “목구멍에 들이대는 칼”이다.
우리는 이에 대해 협상의 길을 갈 용의가 있다고 강조하되, 모든 문제를 러시아의 기본적인 제안이 반영된 하나의 패키지로서 복합적으로 검토하기를 원했다. 여기에는 세 가지 핵심 사항이 포함되어 있다. 첫번째는 추가 나토 확장을 방지하는 것이다. 두번째는 동맹이 러시아 국경에 타격 무기 시스템을 배치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유럽에서 블록의 군사적 잠재력과 기반 시설이 러시아-나토 건국법이 서명된 1997년 상태로 복귀하는 것이다. 무시된 것은 바로 이러한 우리의 근본적인 제안이다.
돈바스의 상황에 대해 우리는 키예프의 집권 엘리트가 분쟁 해결을 위해 민스크 패키지를 이행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지속적이며 공개적으로 선언, 평화적 해결에 관심이 없음을 확인한다. 그들은 오히려 2014년과 2015년에 이미 있었던 것처럼 다시 돈바스에서 전격전을 조직하려 한다. 2014년 이후 집권한 우크라이나 정권 자체의 공격적이고 민족주의적인 성격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그것은 완전히 2014년 쿠데타의 산물이며 폭력, 유혈, 무법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돈바스 문제에 대한 다른 해결책을 생각해내지 못했거나 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오래 미뤄왔지만 도네츠크 인민공화국과 루간스크(우크라이나어 루한스크) 인민공화국의 독립과 주권을 즉각 인정하기 위한 결단이 필요하다. 나는 러시아 연방 의회가 이 결정을 지지하고 두 공화국과의 우호 및 상호원조 조약을 비준할 것을 요청한다. 이 두 문서는 가까운 시일 내에 준비되고 서명될 것이다.
키예프에서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적대행위의 즉각적인 중단을 요구한다. 그렇지 않으면 유혈 사태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모든 책임은 전적으로 우크라이나 영토를 통치하는 정권에 달려 있다. 러시아 시민과 모든 애국 세력이 오늘의 결정을 지지할 것을 확신한다.
※러시아 및 중앙아시아 정치 연구자 이준석씨(서울대 정치외교학부 박사과정)가 러시아어 원문과 대조해 번역 감수 및 교정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