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침공

화염병까지 만들며 필사항전 …아슬아슬한 키예프 사수

2022.02.27 01:38 입력 2022.02.27 15:20 수정

우크라이나군 병사들이 25일(현지시간) 키예프역을 지나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우크라이나군 병사들이 25일(현지시간) 키예프역을 지나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새벽 키예프 거리에서 찍은 것으로 보이는 30초 분량의 화상연설에서 “적의 공격을 격퇴했다. 키예프와 주변의 주요 도시들은 여전히 우크라이나 정부 통제 하에 있다”며 “우리는 모두 여기에 있다. 우리의 독립과 국가를 지키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전날밤 러시아군의 대대적인 공세를 막아낸 뒤 올린 영상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무기를 지급하겠다”며 국내외의 우크라이나인들도 돌아와 침략에 맞서 싸우자고 촉구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로이터연합뉴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로이터연합뉴스

러시아군은 전날밤 북부의 키예프를 포위하고 집중공세를 펼쳤다. 우크라이나군에 따르면 러시아군은 개전 즉시 동시다발적 미사일 공격으로 군 기지를 타격해 우크라이나 대공방어망에 큰 피해를 입히고, 하루 만에 키예프 앞 32km까지 진격했다. 사보타주(비밀파괴공작) 단체도 키예프에 진입했다. 블라드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군부와 더 협상하기 쉬울 것”이라며 우크라이나 군에 쿠데타를 하라는 공개 메시지를 밝혔다. 도시 내에서는 후방 파괴공작이 벌어지고 밖에서는 미사일과 러시아 지상군이 몰려오면서 25일 밤 수도 함락도 예상됐다. 러시아군이 속전속결로 키예프를 접수한 다음 친러시아 괴뢰정부를 세울 것이라는 것이 군사 전략가들의 관측이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25일 낮 유럽 정상들에게 보내는 영상 메시지에서 “지금이 내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게 되는 것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그래픽

경향신문 그래픽

키예프 외곽까지 접근한 러시아군은 격렬한 저항에 맞닥뜨렸다. 시가지 곳곳에서 총격전이 벌어졌다. 시코르스키 기념 공항에서 2.4㎞가량 떨어진 키예프 남서부 지역의 한 아파트가 미사일에 맞아 파괴됐다. 이 공격으로 최소 6명이 다치고 수십명이 대피했다고 AFP통신 등이 전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최고 고문인 미하일로 포돌리악은 우크라이나 방송에서 러시아군이 “사보타주 부대와 정찰 부대가 도시 안에 있지만 우크라이나 경찰과 민병대들이 맞서고 있다”고 밝혔다. 결혼서약 뒤 민병대에 동반입대했다며 소셜미디어(SNS)에 사진을 올리거나, 화염병 만드는 방법을 공유하는 시민들도 속속들이 나타났다.

전투가 격렬해지자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와 협상을 논의한다며 작전중단을 지시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정부가 회담을 거부해 26일 새벽 다시 공격을 재개했다고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이 밝혔다. 러시아군은 사망자 수를 밝히지 않았지만 벤 월러스 영국 국방장관은 러시아군 450명 이상이 인원이 사망했다고 밝혔다고 CNN이 보도했다.

26일(현지시간) 미사일 공격을 받아 파괴된 키예프의 한 아파트 모습. / 로이터연합뉴스

26일(현지시간) 미사일 공격을 받아 파괴된 키예프의 한 아파트 모습. / 로이터연합뉴스

흑해 연안의 도시 오데사, 마리우폴, 헤르손, 니콜라예프 등 우크라이나 남부에서도 교전이 벌어지고 있다. 러시아군은 이날 우크라이나 남부의 인구 15만명 규모의 도시 멜리토폴을 점령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멜리토폴 함락이 사실이라면 러시아 침공 이후 상당한 규모의 도시가 러시아 수중에 넘어간 최초의 사례라고 로이터통신은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해당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BBC에 따르면 영국 국방부도 러시아 발표를 믿을 수 없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군은 크림반도에서 북상하는 러시아군을 상대로 좀 더 힘겨운 전투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군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최남단 지미니섬(뱀섬)의 국경수비대는 투항을 권고하는 러시아군에 “꺼져라”는 무전을 보내고 공격을 받아 수비대원 13명 전원이 사망했다. 러시아는 섬 점령 뒤 조금씩 북상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은 해병대 공병 비탈리 샤쿤 볼로디미로비치(사진)는 크림반도와 헤르손을 잇는 다리에 지뢰를 설치하고 자폭해 러시아군의 진격을 늦췄다고 밝혔다.

비탈리 샤쿤 볼로디미로비치/우크라이나군

비탈리 샤쿤 볼로디미로비치/우크라이나군

수도 함락마저 예상되던 ‘대공세’를 우크라이나가 견디면서 러시아군이 일시적으로 주춤해졌다. 영국 국방부는 “러시아군의 진격속도가 일시적으로 느려졌다”며 “병참보급의 어려움과 우크라이나군의 완강한 저항 때문으로 보인다”고 전했다고 BBC가 보도했다. 전황은 여전히 우크라이나에 위태롭다. 군사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국경에 배치한 병력 3분의 1을 투입하면 키예프는 끝내 함락될 것이라 보고 있다. 영국의 국제 안보 연구기관인 왕립합동군사연구소의 전문가 잭 와틀링은 “키예프 점령이 실패한 러시아군이 전열을 재정비할 가능성이 있다”고 BBC에 말했다.

러시아군이 속전속결 전략에서 절멸전으로 방향을 돌려 더 많은 인명을 살상할 수 있는 공격수단을 사용할 가능성이 있다.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 전투기 6대와 헬리콥터 1대를 격추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군 소식통을 인용해 전했다. NYT는 실제 전투기 격추 사실을 확인하지 못했지만 우크라이나군이 “전투기 격추”를 주장한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봤다. 현재까지는 미사일 공격으로 이뤄지던 러시아군의 폭격이 앞으로는 전투기로 이뤄질 것이라고 우크라이나군이 보고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는 전투기 격추설을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인의 완강한 저항을 확인한 러시아는 부담을 안게 됐다. 점령에 성공해 친러시아 정권을 세우거나 우크라이나를 분단해도 오랜기간 강렬한 저항이 예상된다. 러시아의 전쟁비용이 커진다는 의미이다.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교장관은 “우리의 찬란하고 평화로운 도시 키예프가 러시아의 지상군, 미사일 공격 아래 하룻밤 더 살아남았다”며 “전 세계에 요청한다. 러시아를 완전히 고립시켜 달라. 외교관을 추방하고 석유 금수 조치를 취하고 경제를 망가뜨려 러시아의 전쟁범죄를 멈춰달라”고 트위터에 적었다.

우크라이나 보건부는 러시아의 침공 이후 어린이 3명을 포함해 최소 198명이 죽고 1115명이 부상했다고 집계했다. 켈리 클레멘트 유엔난민고등판무관은 러시아 침공 이후 최소 12만명이 우크라이나를 떠났으며 85만명이 국내 실향민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그는 상황이 악화될 경우 최대 400만명의 우크라이나인이 피란길에 오른다고 전했다.

26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키예프에서 폴란드와 인접한 리비우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한 어린이와 여성이 불안한 표정으로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26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키예프에서 폴란드와 인접한 리비우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한 어린이와 여성이 불안한 표정으로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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