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은 벼농사 계기로 가축이 됐다” 영국 연구진 발표

2022.06.07 12:08 입력 2022.06.07 17:32 수정

정지윤 기사 /경향신문 자료사진

정지윤 기사 /경향신문 자료사진

닭은 한때 신비한 새였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인들은 해 뜨기 전 우는 닭을 ‘어둠을 물리치는 힘을 가진 새’로 여기고 숭배했다. 신라의 옛 이름 계림(鷄林)도 고대의 닭 숭배 흔적으로 여겨진다. 오늘날 닭은 세계에서 가장 널리 퍼진 식재료이다. 하루 평균 2억 마리의 닭이 도살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닭이 ‘신화적 대상’에서 ‘가축’이 된 과정은 많은 고고학자들이 궁금해하는 주제이다.

영국 카디프 대학 등 연구진이 닭의 가축화는 지금으로부터 3500년 전부터 시작됐으며 벼농사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고 가디언이 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연구에 따르면 닭을 가축화한 뒤에도 닭고기와 달걀을 먹는 데까지는 수백년이 걸렸다. 이는 1만년 전부터 중국이나 인도,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닭을 식용으로 길들여 7000년 전 유럽으로 전수했다는 기존 가설과 크게 다르다.

전문가들은 89개국 600개 이상의 장소에서 발견된 닭 유골을 방사성탄소 연대추정법을 활용해 분석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닭뼈는 기원전 1650년~1250년 태국 중부 신석기 시대 반논와트에서 발견됐다. 연구진은 인간이 벼농사를 시작하면서 동남아시아의 열대 정글에 살던 닭과 만났고, 닭은 쌀을 먹기 위해 나무에서 내려와 땅에 살기 시작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당시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시행된 벼농사는 모내기를 하지 않고 맨땅에 씨앗을 뿌리는 건답 농사였다.

가축화된 닭은 아시아 전역으로 퍼졌다. 그리스, 에트루리아, 페니키아 상인들의 해상무역로를 따라 중동과 북아프리카, 유럽으로도 전파됐다. 유라시아 서부와 아프리카 북서부 등지에서 발굴된 초기 닭 뼈들은 기원전 800년 이후 것으로 분석된다. 이에 따라 동남아시아에서 가축화된 닭이 지중해 지역까지 오는 데 1000년 가량이 걸린 것으로 연구진은 분석했다.

그레거 라르손 옥스포드 대학 교수는 “우리는 닭의 가축화 과정에서 많은 부분 잘못 알고 있었다”며 “건식 벼농사가 닭의 가축화와 세계적 확산을 부추기는 촉매제가 됐다는 사실을 이번 분석을 통해 알 수가 있었다”고 말했다. 독일 뮌헨 루드비히 막시밀리안대학의 요리스 페터스 교수는 “닭은 적응력이 뛰어난 데다 곡식을 먹는다. 해상무역로가 가축화된 닭을 아시아와 오세아니아, 아프리카, 유럽 등지로 퍼져나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인간의 벼농사로 인해 닭이 쌀을 먹게 되면서 숲에서 나와 가축이 되고 해상무역로를 통한 세계 전파도 가능했다는 의미이다.

닭은 가축이 된 뒤에도 오랫동안 식재료로 간주되지 않은 것으로 연구팀은 분석했다. 초기 닭이 도살 흔적 없이 매장된 무덤이나 인간의 무덤에 수탉과 암탉이 무덤 주인의 성별에 맞춰 부장 동물로 함께 묻힌 흔적이 근거가 됐다. 닭과 달걀은 3세기쯤인 로마 제국 시대에 음식으로 대중화되기 시작했다고 연구진은 전했다.

나오미 사익스 엑서터 대학 교수는 “닭고기 소비는 워낙 일반화돼 인류는 닭을 먹지 않았던 적이 없는 것 같지만, 이번 연구결과는 닭과 우리의 과거 관계가 훨씬 더 복잡했으며 수세기 동안 사람들은 닭을 찬미하고 숭배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연구결과는 두 편의 논문으로 작성돼 각각 영국 고고학 저널 ‘앤티쿼티’와 미국 ‘국립과학원 회보’(PNAS)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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