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감축협정’ 피해 핵 소형화 경쟁…세계는 다시 ‘냉전시대’

2018.02.09 17:09 입력 2018.02.09 17:21 수정
김진호 국제전문기자

2018년 핵태세검토보고서(NPR) 8쪽에 수록된 2010년 이후 각국의 핵무기 운반수단 추가 개발 현황. 러·중에 이어 운반수단을 많이 개발한 나라로 등재한 북한은 화성-12·13·14·15형 등 대륙간탄도미사일급 장거리 로켓 5종을 포함해 총 9종의 육상 및 2종의 해상발사 수단을 확보한 것으로 집계됐다. 러시아는 14종, 중국은 9종을 늘렸지만, 미국은 공중발사 수단을 1종 늘린 것으로 표기했다. 위 사진은 16쪽에 수록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화성-14형 로켓을 시찰하고 있는 장면이다.

2018년 핵태세검토보고서(NPR) 8쪽에 수록된 2010년 이후 각국의 핵무기 운반수단 추가 개발 현황. 러·중에 이어 운반수단을 많이 개발한 나라로 등재한 북한은 화성-12·13·14·15형 등 대륙간탄도미사일급 장거리 로켓 5종을 포함해 총 9종의 육상 및 2종의 해상발사 수단을 확보한 것으로 집계됐다. 러시아는 14종, 중국은 9종을 늘렸지만, 미국은 공중발사 수단을 1종 늘린 것으로 표기했다. 위 사진은 16쪽에 수록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화성-14형 로켓을 시찰하고 있는 장면이다.

인류는 핵전쟁의 재앙에 과연 더 근접했는가. 그래서 냉전시대처럼 핵무기 개발에 다시 국가적 명운을 걸어야 하는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지난 2일 발표한 핵태세검토보고서(NPR)는 두 가지 질문에 모두 “그렇다”는 답을 내놓았다. 미국과 러시아, 중국 등 핵보유국들이 핵테러와 핵확산이라는 글로벌 위험에 공동대응했던 시대에 종말을 고했다. 대신 ‘강대국들 간 경쟁’이 다시 시작됐음을 선포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여부에 따라 짧게는 4년, 길게는 8년간 적용될 NPR이 단순히 지난해 북한의 6차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때문에 작성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새 NPR에 따라 바뀌게 될 미국의 핵무기 교체·개발·관리·배치·운용 계획은 필연적으로 한반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평창 동계올림픽 이후 상당 기간 계속될 북핵 위기와도 무관치 않다. 한반도 거주민 입장에서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는 변화다.

■러시아·중국의 핵무기 개발에 맞대응하자는 논리

2018년 NPR은 전략핵무기 감축을 축으로 하는 미국 핵정책의 본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 미국은 새 NPR 발표 이후에도 러시아와의 신전략핵무기감축협정(뉴스타트)을 2021년까지 연장, 준수할 것이라고 거듭 확인하고 있다. 미국과 러시아는 3대 전략핵무기로 불리는 ICBM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및 장거리 전폭기의 핵탄두 수를 1550개(배치 기준)로 제한키로 했다. 문제는 뉴스타트가 적용되지 않는 전술핵무기, 즉 저강도(low-yield) 소형 핵무기 분야다. 보고서는 2010년 NPR 이후 러시아와 중국의 핵무기 개발 및 현대화가 현저하게 진행됐다는 점을 강조했다.

특히 러시아가 자율 핵기뢰 및 단거리탄도미사일(SRBM) 등 저강도 소형 핵무기를 2000기 정도 개발, 보유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러시아의 핵무기 독트린 및 훈련, 성명을 짚어본 결과 러시아는 이러한 소형 핵무기를 선제사용할 의도를 내비치고 있으며, 이러한 오판을 바로잡는 것이 미국의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지적했다. 특히 자율 핵기뢰의 경우 미군에 포착되지 않고 태평양을 건너와 미국 서해안을 방사능 오염시킬 수 있는 무기라면서 위험성을 부각시켰다. 러시아가 이처럼 핵무기 사용의 ‘문턱’을 낮춘 만큼 이를 다시 올리기 위해 미국도 저강도 소형 핵무기 옵션을 다양화해야 한다는 말이다. 구체적으론 F35와 전폭기의 공격능력을 개선하는 한편 단기적으로 SLBM을 저강도 소형 핵무기로 개조할 방침이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의 첫번째 임기 중에 실행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장기적으론 2010년 NPR에서 퇴역시킨 잠수함발사순항미사일(SLCM)을 저강도로 개발, 생산비용을 줄인다는 포석이다. 특히 아시아 지역에서 수십년 동안 억지 역할을 해냈던 SLCM이 트럼프의 첫 임기 내에 저강도 소형 핵무기로 돌아오게 됐다.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은 “(테러리즘이 아닌) 강대국 간 경쟁이 국가안보의 최우선 초점”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6일 하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선 저강도 소형 핵무기 개발이 러시아와의 대화에서 협상칩으로 사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트럼프가 북한에 대해 원색적으로 핵공격을 위협하는 데 질색했던 기성 제도권의 핵무기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2010년 NPR 이후 러시아의 핵위협을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은 계속 있어왔다고 한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일했던 핵전문가 프랭클린 밀러는 뉴욕타임스에 “우리가 핵무기에 대한 의존을 줄이면 다른 나라도 따라올 것이라는 버락 오바마의 이론은 먹히지 않았다”면서 “(올해 NPR에 따른) 새 시스템은 빨라야 2026년이나 2027년에나 자리 잡기 시작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만시지탄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이번 NPR이 러시아의 핵위협을 과장, 과잉대응함으로써 오히려 핵전쟁의 위험을 더욱 높일 것이라는 비난이 끊이지 않고 있다.

■“미국 전력망·통신망에 대한 재래식 공격에도 핵무기로 보복”

문제는 전략무기는 인류절멸의 각오가 없다면 사용하기 불가능하지만, 소형 핵무기는 더 쉽게 발사버튼을 누를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러시아가 낮춘 핵무기 선제사용의 문턱을 다시 높이기 위해 미국도 소형 핵무기 개발에 나서야 한다는 NPR의 논리와 모순된다. 저강도 소형이라도 일단 핵무기 사용이 상대방에 포착된다면, 맞대응을 불러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의 전력망 또는 휴대폰 통신망 등 주요 인프라에 대한 재래식무기 공격에 대해서조차 미국이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대목에 비난이 집중되고 있다.

건강한 지구와 더 안전한 세계를 추구하는 참여과학자연맹(UCS)은 새 NPR이 오히려 미국의 안보를 더 위험하게 만들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미국이 사이버공격과 같은 ‘새로운 형태의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핵전력과 재래식전력의 통합운용을 강화한다는 방침이 결국 핵전쟁 위험을 높이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NPR은 핵·재래식전력의 통합운용을 위해 전투사령부와 지원전력을 재조직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참여과학자들은 군사계획과 훈련, 연습 과정에서 핵·재래식전력을 통합운용한다면 러시아와 중국은 미국이 핵전쟁을 준비하고 있다고 판단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저강도 소형 핵무기는 바로 핵·재래식전력의 통합운영에 적합한 무기로 제시됐다.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왼쪽)이 지난 6일 워싱턴 의사당에서 열린 하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 합참 부의장인 폴 셀바 공군 장군과 나란히 앉아 2018년 핵태세검토보고서(NPR)의 취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워싱턴 | EPA연합뉴스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왼쪽)이 지난 6일 워싱턴 의사당에서 열린 하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 합참 부의장인 폴 셀바 공군 장군과 나란히 앉아 2018년 핵태세검토보고서(NPR)의 취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워싱턴 | EPA연합뉴스

UCS의 리스베스 그로널드 부국장은 미국은 이미 2가지 형태의 저강도 소형 핵무기를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장거리 폭격기에 적재한 중력탄 100 B61과 유럽 5개국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공군기지에 배치한 150 B61이 그것이다. 각각 0.3㏏에서 170㏏ 사이에서 폭발력을 조정할 수 있다. 가장 낮은 0.3㏏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한 핵폭탄에 비해 폭발력이 50배 낮다. 역시 장거리 폭격기로 옮길 수 있는 200개의 공중발사순항미사일(ALCN)도 5~150㏏ 사이의 저강도 소형 핵무기다. 이러한 소형 핵무기들은 1~2년 내 핵·재래식전력 통합훈련에 동원될 수 있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방차관보를 지낸 앤드루 웨버는 뉴욕타임스에 “우리는 이미 많은 저강도 소형 핵무기들을 갖고 있기에 어떤 공격이라도 막아낼 수 있다”면서 “새 계획은 소설”이라고 일축했다. 러시아의 무모한 독트린을 거울로 비추듯이 따라함으로써 핵전쟁의 가능성을 높였다는 지적이다. 워싱턴포스트는 6일 “일군의 핵 매파들이 작성한 트럼프 행정부의 NPR은 미국을 다시 냉전시대로 데려가고 있다”고 비난했다.

■트럼프의 핵무기 정책이 한반도에 주는 함의

NPR은 북한을 러시아와 함께 핵 선제공격을 실행할 가능성이 있는 국가로 지목했다. 러시아가 기왕에 개발한 저강도 소형 핵무기의 성능을 과신, 선제사용의 유혹을 느끼고 있다면, 북한은 한·미 양국군에 비해 뒤처진 재래식 군사작전을 지원하려는 목적에서 핵무기를 선제사용할 수 있다고 짚었다. 여기에 북한은 핵 및 미사일 프로그램은 물론, 화학·생물무기 및 재래식전력으로 미국과 동맹국, 협력국에 전례 없는 위협을 가하는 국가로 지목했다. 러시아와 중국은 미국의 잠재적인 적국이지만, 적어도 핵확산 국가는 아니다. 하지만 북한은 잠재적인 핵위협 국가인 동시에 제3국에 핵무기 및 핵물질을 이전할 수 있는 ‘수평적 확산 위협’으로도 꼽혔다.

UCS가 지적하듯이 미국이 핵전력과 재래식전력을 통합운용하면서 소형 핵무기를 동원한 계획·연습·훈련을 강화한다면 이는 러시아나 중국, 북한 등 핵보유국들의 오인을 유도하기 쉬운 환경을 만든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코피 전략’과 같은 제한적 예방전쟁에 저강도 소형 핵무기가 동원될 가능성도 높아진다. 특히 미국이 새로 개발할 잠수함 발사 소형 핵무기 2종(탄도미사일 및 순항미사일)은 한반도 주변 수역에서 북한에 잠재적 위협을 가할 것이 분명하며 이는 역으로 북한의 오판을 야기할 위험을 높인다. 트럼프 행정부의 NPR은 세계가 핵전쟁의 위협에 더욱 다가갔다면서 그 대안으로 새 핵무기 정책을 제시했다. 하지만 바로 그 새 정책이 세계를 더욱 위험에 빠뜨릴 공산이 커진 것이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