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들이 보는 6·13 교육감 선거

2018.05.20 09:58 입력 2018.05.20 10:11 수정

“당사자가 보는 시각은 다르던데요.” 중학교 2학년 딸을 둔 학부모 이선영씨(39)가 학교 수업 준비를 해가는 딸을 보며 느낀 점이다. 얼마 전 딸은 사회 수업시간을 앞두고 선거에 관한 내용을 생각해 오라는 당부를 들었다. 이씨와 어떤 교육정책과 공약이 필요한지 대화하면서 딸은 진로 결정에 도움이 되는 교육시간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평범하게 중·고교를 다니면서 성적을 높여 어느 대학에 보낼지만을 주로 생각하던 이씨와는 달리 딸의 진로 고민은 더 구체적이었던 것이다. 패션에 관심이 많지만 한편으로는 관심이 많다는 것만으로 쉽게 장래 직업으로 삼겠다고 마음먹기는 또 어렵다는 게 딸의 고민이었다.

다양한 직업세계를 골고루 생각해볼 수 있는 진로교육이 필요하다는 딸의 가상공약은 반 친구들에게도 반응이 좋았다. 보다 여러 방면의 특성화고를 만들어야 한다는 공약부터, 일반고는 물론 중학교에도 직업탐구 수업이 늘어야 한다는 공약까지 이씨의 딸이 내놓은 아이디어와 이어지는 급우들의 생각도 나왔다. “진로수업에 관한 공약 말고도 교문 주변 학원버스 주차장을 따로 만들어야 한다는 아이디어나 급식을 먹고 싶은 만큼 자기가 퍼가게 하자는 얘기도 인기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막상 학부모가 돼도 잘 모르는 학생들만의 요구는 또 있는 거겠죠.” 막연히 입시 위주 교육을 벗어나자거나 사교육을 줄이자는 류의 공약이 나올 것이라 예상했던 이씨는 학생들이 내놓은 가상공약들이 꼭 필요한 것들이라 놀랐다고 말했다.

교육감 선거는 지방선거의 또 다른 축이다. 지방자치의 한 축인 광역·기초 지자체장과 지자체 의회 의원 선거에 비해 교육감 선거는 교육자치의 측면까지 얽혀 있다. 지역 교육감이 교육현장에서 집행할 수 있는 교육정책의 재량이 크기 때문이다. 교육에 관한 정책만큼은 교육감이 지자체 정책과 독립적으로 수립·시행할 수 있다. 일반적인 공직선거가 공직선거법에 따라 치러지는 것과는 달리 교육감 선거는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에 따라 치러지는 것도 교육자치를 보장하려는 취지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역설적이다. 교육감 선거에 대한 관심은 함께 치러지는 지자체장 선거에 비해 크게 낮다. 그렇다고 유권자들이 교육과 학교 정책에 무관심한 것도 아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홈페이지에 ‘우리 동네 공약지도’ 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다. 지방선거 관련 빅데이터를 수집해 분류한 이 자료를 보면 50대 키워드 가운데 전국에서 가장 관심이 높은 이슈는 ‘교육’이 1위에 오른 것을 비롯해 ‘청소년’(3위), ‘학교’(5위), ‘학생’(7위) 등 교육 관련 문제에 대한 관심이 가장 높았다. 교육에는 관심이 높지만 정작 지역 교육정책을 관장하는 교육감 선거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떨어지는 묘한 상황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4월 10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전국동시지방선거 아동공약 발표회에 참석한 어린이들이 서울시교육감 및 서울시장에게 제안하는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4월 10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전국동시지방선거 아동공약 발표회에 참석한 어린이들이 서울시교육감 및 서울시장에게 제안하는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교육은 관심 높지만 교육감 선거는 낮아

교육에 가장 관심이 높은 유권자층인 학부모들이 보기에는 선거와 교육이 동떨어져 보이는 지금의 상황은 일종의 착시현상에 가깝다. “자기 아이를 곧 대학에 보내야 하는 고등학생 학부모라면 입시대책에 제일 큰 관심을 보이는 게 당연하겠죠. 그런데 지금은 아이가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지만 중학교 다닐 때까지만 해도 학교폭력이나 왕따 같은 문제에 더 관심이 컸거든요.” 고교생 자녀를 둔 자영업자 강호석씨(45)는 학부모들이 교육에 보이는 관심도 자녀의 연령대에 따라 달라진다고 말했다. 학부모가 자녀의 학교생활에 보이는 관심은 일단 자녀의 나이에 관계없이 성적을 기본으로 깔고 있다. 하지만 초등학교 시절엔 통학환경이나 방과후 활동, 중학교 때는 학원과 사교육, 그리고 고등학교에 들어서서는 입시정책과 학생부 등 보다 구체적인 대학입시 대비방안 등으로 옮겨간다. 그리고 대입 후에는 교육 전반에 관한 관심이 급격히 줄어든다.

시기마다 학부모들의 관심사가 조금씩 이동해간다는 점은 바꿔 말하면 ‘맞춤형’ 공약과 정책이 필요하다는 뜻이 된다. 거꾸로 보면 교육감 선거에서는 후보마다 제각기 맞춤형 공약을 준비하더라도 관심을 보이는 쪽은 전체 유권자의 일부에 국한된다는 얘기도 된다. 불특정 다수의 일반적인 유권자를 상정하고 대비하는 다른 선거와는 달리 오히려 후보 간의 정책 차이를 부각시켜 알리기 어렵다는 뜻도 되는 것이다.

“흔히 학부모가 되면 자녀 공부 많이 시키고 좋은 대학 많이 보내는 쪽으로 공약 내거는 교육감 후보를 좋아할 것 같지만 막상 보면 그렇진 않아요. 학생 성적만 놓고 봐도 상위권이거나 학부모 재력이 되는 쪽도 수능시험 위주 입시정책을 선호하는 편과 학생부나 입학사정관 전형 등 다방면을 보는 게 좋다는 편이 나눠지니까….” 서울 노원구에서 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박모씨(43)는 교육정책에 대한 학부모들의 입장이야말로 쉽게 분류하기 힘들 정도로 가지각색이라고 말한다. 특히 다른 지역에 비해 학업과 교육에 관심이 높은 동네이기도 하면서 지역 안에 소득과 학업수준 편차가 큰 편이기도 한 노원구 같은 곳에서는 그 정도가 심하다는 것이 박씨의 분석이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이 학생이 중·하위권이면 보다 경쟁이 덜하면서 입시 결과만으로 모든 게 정해지지 않는 정책을 내건 후보를 선호할 수밖에 없겠죠. 거기에 학부모의 정치성향까지 결합되면 특정 후보를 더 열렬히 지지하게 될 수도 있지만 그 반대도 충분히 가능한 거고요.”

교육감 선거 결과가 당장 ‘밥줄’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이들 사교육시장 관계자들은 여느 학부모들보다 더 큰 관심을 보이는 집단이다. 상반되는 입장에 있는 공교육계의 교사들만큼이나 이들 업계는 교육감의 교육정책 변화에 민감하다. 자녀의 성적과 진학에 관심이 높은 학부모들을 가장 가까이서 접하는 이들이기 때문에 학부모들이 원하는 지점을 잘 파악하고 있기도 하다. 경기 수원시에서 학원을 운영하는 김종태씨(50)도 “지금의 교육감 선거구도는 대부분의 지역에서 보수와 진보의 대결로 굳혀지고 있지만 교육에 한해서만큼은 학부모들이 상당히 실리적인 선택을 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대학입시 정책을 포함한 고교 교육정책에서 보수와 진보 성향의 교육감 예비후보들이 가장 극명하게 나뉘는 부분은 자립형 사립고나 외국어고·국제고와 같은 특목고의 존폐 문제다. 진보성향 교육감 예비후보들이 자사고와 특목고를 일반고로 전환하겠다는 공약을 내건 데 비해 보수성향 예비후보들은 학교 선택의 다양성이라는 점을 들어 존치하겠다는 공약을 내놓고 있다.

5월 16일 부산 부산진구 송상현광장에서 부산시 교육감ㆍ부산시장 선거 예비후보자들이 정책선거를 다짐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5월 16일 부산 부산진구 송상현광장에서 부산시 교육감ㆍ부산시장 선거 예비후보자들이 정책선거를 다짐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학부모들의 선택은 이념보다는 실리

보수와 진보 양쪽으로 나뉜 후보들의 공약이 같은 진영 안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 올해 교육감 선거 이후 교육현장에서 지역별 교육정책의 특성이 줄어들 소지가 크다는 전망도 나온다. 지난해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시·도 교육청의 권한을 강화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기 때문이다. 교육부의 초·중등교육 관련 업무와 권한 대부분을 지역 교육청으로 이양한다는 안이 공약으로 제시된 바 있어 이번 선거에서 당선되는 교육감은 전보다 더 강한 권한을 갖게 될 수 있다. ‘좋은교육감후보추대본부’와 ‘민주진보교육감예비후보연석회의’ 같은 보수와 진보 양쪽의 예비후보 연대기구가 만들어져 공약 상당 부분을 공유하는 만큼 같은 진영이 당선된 지역 간에는 정책의 차이가 크지 않게 되는 것이다.

자사고·특목고 존폐 문제 외에도 평교사 교장 공모제 도입 찬반(진보·보수)이나 유치원에서의 영어수업 금지 찬반(진보·보수) 등 보수와 진보 간의 입장차가 확연한 교육 현안까지 교육감의 재량으로 결정하게 될 수도 있다. 이해관계가 걸려 있어 찬반 여론이 격렬하게 맞서는 주제들이다. 반면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공통적으로 내놓고 있는 공약도 있다. 미세먼지에 대비해 학교와 유치원에 공기청정기를 설치하는 등의 교육환경 관련 공약이 대표적이다. 누구보다 학부모들이 강하게 요구하고 있는 대책이다.

“아파트에서 보면 애들 다니는 초등학교가 보이는데 미세·초미세먼지 ‘나쁨’으로 나온 날에도 애들은 쉬는 시간마다 공 차러 나오고 체육시간에 달리기도 하고 야외활동에 전혀 제약이 없더라고요. 어린 애들이니까 뛰어놀고 싶어하는 거야 알겠는데 선생님들이 그냥 내버려두는 게 이해가 안 갔어요.” 학부모 신모씨(35)는 초등학교 3학년인 아들을 등굣길에 마스크를 씌워가며 보내도 정작 학교 수업시간에 창문을 열어두니 아무 소용이 없다며 답답해 했다. 미세먼지가 걱정인 부모와 아랑곳하지 않고 야외활동을 하는 자녀, 그리고 별다른 대책이 없는 학교와 교사의 문제는 인터넷에서도 흔하게 발견된다. 선관위 지방선거 정책제안 게시판에도 단골로 올라오는 문제다.

신씨 역시 인터넷 맘카페 등에 올라온 글들처럼 학교에 전화를 걸어 체육 같은 옥외수업을 중단하고 창문이라도 다 닫아달라는 요청을 했지만 그때뿐이었다. “‘창문을 닫긴 할 텐데 죄송하지만 애초에 공기청정기가 없으니 닫아도 별 효과는 없다’는 선생님 말이 이해가 되면서 웃픈(웃기면서 슬픈) 감정이 들더라”는 신씨는 “각 반 학부모끼리 돈 모아서 설치하면 안 되냐고 물으니 법규상 불가능하다는 것도 허탈하고 답답했다”고 말했다.

미세먼지 문제에 손 놓고 있는 학교현장의 문제는 과거 교육감 선거에서의 무상급식이나 학교안전 문제처럼 가장 관심이 쏠리는 정책주제가 되고 있다. 달라진 점은 무상급식의 경우 보수와 진보 후보들 간에 입장차가 명확했던 것과는 달리 미세먼지는 그러한 대척점을 찾기 힘들다는 점이다. 지난 2014년의 교육감 선거에서 주된 화두에 올랐던 학교안전 문제는 직전에 발생한 세월호 참사 때문에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수학여행을 포함한 학교 학생활동 전반에서의 안전지침 강화를 내세우면서 부각됐다. 결과는 보수정권의 안전사고 대응문제에 대한 분노가 겹쳐 진보성향 교육감이 대거 승리하는 쪽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번 교육감 선거에서 부상한 교육현장의 미세먼지 대책 문제는 보수·진보와 상대적으로 무관하다는 점 때문에 선거에서의 선택 기준으로 작용할 가능성은 낮은 편이다.

학생자치권 강화냐 vs 교권 강화냐

학부모들을 넘어 사회 전반의 지지와 반대를 이끌어냈던 무상급식 정책과 비슷한 선상에 있는 무상교복 지급 정책도 예상만큼의 반향은 얻지 못하고 있다. 일부 지역의 교육감 예비후보들이 지자체장 후보들의 정책과 연계된 무상교복 지급을 공약으로 내놓고는 있다. 하지만 급식은 12학년에 걸친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의 폭넓은 학생층이 대상인 데 비해 교복은 상대적으로 해당되는 연령대가 좁을 수밖에 없다. 무상교복 공약을 적극적으로 펴고 있는 한 지역 교육감 예비후보 캠프의 관계자는 “예전 무상급식 논란에서 반대 목소리를 냈던 보수 쪽이 여론전에서 불리한 결과를 얻었다는 교훈이 있어서인지 이번에 우리쪽이 무상교복 공약을 내도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않고 있다”며 “사실 무상교복 공약은 예상보다 반응이 미지근해서 다른 쪽으로의 정책 차별화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의 사회적 흐름에 따라 진보 성향의 교육감 예비후보들을 중심으로 평화·통일교육과 성평등교육을 강화한다는 큰 틀에서의 교육정책도 나오고 있다. 한반도에 평화국면이 조성되는 상황을 유리하게 활용하겠다는 속내가 담긴 것이다. 성평등교육 역시 학교 교육현장에서도 성평등에 기반을 둔 교육방향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높아지면서 이에 대한 응답 격으로 마련된 공약이다. 이러한 공약들은 보수성향의 예비후보들과는 가장 차별화되는 것이긴 하지만 유권자들의 반향은 크지 않아 진보진영 내부에서도 장기적인 안목으로 추진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나오기도 한다. 한 진보성향 교육감 예비후보 캠프의 관계자는 “시대적 요구가 담겨 있는 정책들이기 때문에 단지 표를 얻느냐 마느냐의 문제를 넘어 상징적인 의미도 있다고 본다”면서도 “당선이 된 후에 실행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다고 보지만 모든 교육정책이 그렇듯 효과가 나타날 수 있게 장기적으로 추진할 수 있겠느냐를 본다면 불확실하다”고 말했다.

반대로 확실한 표를 의식하고 유권자층을 노린 정책공약도 있다. 진보성향 예비후보들이 대체로 학생자치권을 강화하려는 공약을 내는 데 비해 일부 보수성향 예비후보들은 교권을 강화하는 대책을 내놓고 있다. 투표권이 없는 학생들에 비해 교육감 선거에 관심도는 높으면서 표의 결집도 가능한 교사들의 표를 노리는 것이 현실적으로는 더 나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학생인권조례 대신 교권보호조례를 제정하거나 교원 안식년제 도입, 직책에 따른 교사수당 인상 등을 제시한 정책들이다.

무상급식이나 학교안전 문제와 같은 큰 선거 이슈가 사라졌지만 이를 대체할 수 있도록 학생과 교사, 학부모를 향한 구체적인 정책 또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교육계 인사들의 시각이다. 서울시 교육감 후보들의 공약을 평가하는 활동기구인 ‘2018 서울교육감 시민선택’(시민선택)은 구태의연한 교육공약을 남발하거나 실현 가능성과 타당성을 따지지 않은 무책임한 공약을 내는 후보를 가려내고 후보들이 시민들의 피부에 와닿는 공약을 제시하게 만들려는 취지로 발족했다.

시민선택을 발족한 안상진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연구소장은 “이전 교육감 선거에서는 무상급식 같은 대형 이슈가 선거판을 장악해서 교육감 후보들의 교육 전문성을 세부적으로 검증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지만 오히려 이번 선거에서는 큰 이슈가 사라져 자세한 확인과 검증이 이뤄질 수도 있다”며 “평가와 검증을 위해서는 후보자들의 정책이 구체적이어야 하는데 선거가 한 달도 남지 않은 현재까지 후보들이 여전히 선언적인 내용만 나열하거나 구체적인 정책 발표를 미루는 점에는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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