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특권 줄이고 의석은 늘리자

나는 재작년부터 국회의 예산 사용실태를 조사하는 일에 참여해 왔다. 내가 속해 있는 ‘세금도둑 잡아라’라는 시민단체와 ‘좋은예산센터’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라는 세 단체가 연합을 했다. 독립언론인 ‘뉴스타파’까지 협업했다.

[하승수의 틈]국회, 특권 줄이고 의석은 늘리자

특수활동비, 업무추진비, 정책개발비 등 국회 예산 중에서 엉뚱하게 쓰이고 있을 확률이 높은 예산부터 조사를 시작했다. 정보공개 청구를 하고, 국회가 정보를 비공개하면 무조건 소송을 제기했다.

그렇게 해서 첫 번째로 ‘입법 및 정책개발비’라는 예산 항목부터 자료를 받게 되었다. ‘입법 및 정책개발비’는 국회의원들이 불법 정치자금을 받지 말고, 열심히 정책 개발을 하라고 만들어진 예산이다. 2005년부터 국회 예산에 신설됐는데, 1년에 86억원 정도가 책정된다.

그런데 공개된 자료를 본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입법 및 정책개발비’ 중 일부는 국회의원들이 500만원 이하의 소규모 정책 연구용역을 발주하는 데 사용되는데, 용역을 수행한 연구자들이 전혀 전문성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대학생, 자유기고가, 인턴비서 같은 사람들이 연구자로 되어 있는 용역들이 여럿이었다. 게다가 국가의 보건복지정책 전반에 관한 연구를 제약회사 주임이 하는가 하면, 토목회사 과장이 인사청문회 제도에 대한 연구자로 되어 있었다.

더 충격적인 사실들도 밝혀졌다. 이은재, 황주홍 의원은 거짓으로 연구용역을 발주하고 명목상의 연구자로부터 돈을 돌려받았다. 백재현 의원은 정체불명의 단체에 8건, 4000만원의 연구용역을 줬는데, 그중 2건은 완전히 다른 기관의 보고서를 베낀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비리도 빙산의 일각에 불과해 보인다. 국회가 정책 연구용역 보고서 원문을 비공개하고 있어서, 민간 차원에서 조사를 하는 것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보고서가 공개된다면, 표절 보고서, 엉터리 보고서들이 수없이 발견될 것이다.

그렇다면 국회의원들이 연봉이나 지원이 적어 이런 비리를 저질렀을까? 그렇지 않다. 국회의원들의 연봉은 수당을 포함하면 1억5000만원이 넘는다. 그리고 사무실 운영비, 공과금, 소모품비, 주유비, 차량유지비까지 깨알같이 국민 세금으로 지원받는다. 9명의 개인 보좌진도 주어진다. 의장단, 상임위원장, 특별위원장 같은 보직을 맡으면 특수활동비, 특정업무경비, 업무추진비 같은 예산도 쓸 수 있다. 그런데도 뭐가 부족해서 정책 개발에 쓰라고 준 돈까지 빼먹었을까?

이유는 단순하다. 대한민국 국회는 감시받지 않는 특권집단이다. 그래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국회는 전면 개혁을 해야 한다. 모든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독립된 감시기구를 두고 감시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국회의원들의 과도한 연봉을 줄이고 개인 보좌진 규모도 줄여야 한다.

흔히 국회의원들은 자신들이 장차관급 대우를 받아야 한다 생각하는데, 완전히 잘못된 생각이다. 국회의원은 행정부·사법부의 엘리트들, 재벌과 같은 자본권력을 견제하고 국민의 시선에서 문제를 풀어야 하는 존재이다. 따라서 국회의원의 연봉은 장차관급에 맞출 게 아니라 노동자의 평균 연봉 수준에 맞추는 게 옳다.

이렇게 국회의원 특권을 없애면서, 국회 의석은 늘려야 한다. 내년도 국회 예산이 6300억원에 달할 예정이다. 이 돈으로 300명의 국회의원을 쓸 게 아니라, 360명을 쓰는 것이 국민들에게 이득이다. 개인 보좌진과 연봉을 줄이면서 낭비되는 예산을 없애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어떤 직역이든 숫자를 늘려야 특권이 줄어든다. 변호사 숫자가 늘어나면서 변호사 사무실 문턱이 낮아진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반면에, 국회의원 숫자를 줄이자는 주장은 특권을 더 강화하자는 얘기나 마찬가지다. 민주주의가 잘되는 국가들을 보더라도 대체로 인구 대비 국회의원 숫자가 우리보다 많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은 인구 10만명당 한 명 정도의 국회의원을 뽑는다. 국회의원 숫자를 늘리면 선거제도 개혁도 쉬워진다. 노무현 전 대통령, 노회찬 전 의원도 ‘국회의원 숫자를 늘려서라도 선거제도를 개혁하자’고 주장했다.

대안은 나와 있다. 각 정당이 받은 득표율에 비례하여 의석을 배분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선거제도를 바꾸는 것이 대안이다. 이렇게 되면 정당들이 정책으로 경쟁하고, 일하는 국회가 될 수 있다. 다양한 세력들이 국회에 들어가 서로 감시하게 되므로 부패도 없어질 수 있다. 그러려면 현재 지역구 253석, 비례대표 47석으로 되어 있는 국회 구성을 바꿔야 한다. 비례대표 의석을 100석 정도로 늘리고 국회의원 총수를 360석 정도로 하되,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해야 한다.

마침 올해 말까지 국회에 정치개혁특위가 구성되어 이 논의를 할 예정이다. 시간이 많지는 않다. 국회의원들의 특권을 없애고 현재의 국회 예산을 동결한 상태에서 국회의원 숫자를 360명으로 늘리자. 그리고 동시에 선거제도를 개혁하자. 이것이 부패 없는 국회, 일하는 국회를 만드는 지름길이고, 진정한 정치개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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