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가시티가 아닌 읍면장 직선제부터

2024.03.04 20:04 입력 2024.03.04 20:12 수정

작년에 전북 임실군 주민들 앞에서 강의를 할 일이 있었다. ‘임실군이 합계출산율 전국 2위라는 걸 아세요?’라고 물으니, 대부분 몰랐다고 한다. 그러나 사실이다.

‘지역소멸’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매우 불편하다. 인구가 줄어들고 고령화가 진행된다고 ‘소멸’이라는 단어를 쓴다면, 대한민국 전체가 소멸 위기이다. 초저출생으로 인해 대한민국의 인구도 감소하고 있고, 급속도로 고령화되고 있다. 그런데 마치 수도권은 괜찮고, 비수도권이나 농촌만 소멸할 것처럼 얘기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것은 위기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고, 상황만 악화시킬 뿐이다.

대한민국의 초저출생은 대한민국에서 사는 것이 힘들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많은 사람들의 삶이 팍팍하고 불안하다. 그것이 초저출생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런 현상은 수도권이 더 심각하다. 지역별 합계출산율 통계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통계청의 ‘2022년 출생통계’에 따르면 대한민국에서 합계출산율이 가장 낮은 곳은 서울이었다. 서울의 합계출산율은 0.59명으로 17개 시도 중 가장 낮았다. 이런 상황인데, 출산율이 낮은 서울을 확장한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질까?

상대적으로 합계출산율이 높은 곳은 농촌지역이었다. 전국 기초지방자치단체 중 합계출산율이 높은 다섯 곳은 전남 영광군(1.8명), 전북 임실군(1.56명), 경북 군위군(1.49명), 경북 의성군(1.46명), 강원 양구군(1.43명)이었다. 모두 농촌의 군(郡)지역이다.

기본적으로 결혼과 출산은 개인의 선택이지만, 급속도로 떨어진 출산율은 사회적 현상이다. 그리고 서울의 합계출산율이 농촌보다 더 낮다는 것도 사회적 현상이다. 사람들은 서울을 선호하는데 실제 서울에서 살기는 팍팍하다. 높은 주거비용, 긴 출퇴근시간, 치열한 경쟁 등으로 인해 삶이 힘든 것이다. 그것이 사람 사이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쳐서 낮은 합계출산율로 나타난다.

반면에 농촌을 선호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가 팽배하지만, 실제 농촌에서의 삶은 도시보다 나을 가능성도 있고,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가 상대적으로 풍부하게 맺어질 가능성도 있다. 농촌의 상대적으로 높은 합계출산율이 그 가능성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서울로 쏠리는 것은 일종의 ‘지역 간 서열의식’이 있기 때문이다. 같은 직업을 가져도 서울에서 일하고 싶어 한다. 이런 의식이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서울에 권력이 있으니 돈도 쏠리고 사람도 쏠려 왔다. 다른 지역 사람들이 서울을 부러워하게 만들어 왔다. 중앙집권적인 국가 권력구조가 ‘지역 간 서열’을 만들었고, 사람들의 의식도 거기에 따라가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중앙집권적 시스템은 건드리지 않고 ‘소멸위기’를 논한다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수도권 집중이 심각하지 않고 상대적으로 행복도가 높은 국가들을 살펴보면, 지방분권이 잘 실현된 국가들이 많다. 메가시티가 아니라, 제대로 된 지방자치를 하는 것이 대안이다.

특히 농촌지역 읍면의 자치권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발상을 전환해야 한다. 가장 풀뿌리라고 할 수 있는 읍면의 인구가 늘어나고 경제와 지역사회가 활성화되면, 인근 중소도시가 활성화되고 지방 대도시까지 활성화될 수 있다.

특히 면(面)이 중요하다. 면 지역의 인구는 전체 인구의 10%도 안 될 정도로 줄었지만, 면이 국토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73%에 달한다. 이렇게 광범위한 지역이 활성화된다면, 대한민국이 달라질 수 있다.

읍면의 활성화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자치권이다. 인구가 늘어나고 지역이 활성화되려면 ‘삶의 질’이 개선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농촌지역의 기초 생활단위인 읍면의 교육·복지·의료·교통·문화·환경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지역을 잘 아는 주민들이 계획도 세우고 실행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자치권이 보장되어야 하고, 자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예산도 있어야 한다.

유럽, 일본, 미국도 대체로 농촌지역에서는 읍면 단위 자치를 한다. 대한민국이 이런 보편적 경로에서 벗어난 것은 1961년 5·16 쿠데타 직후에 읍면 자치를 폐지했기 때문이다. 그전까지는 읍면장, 읍면의회를 모두 직선으로 뽑았다.

당장 과거로 돌아가지는 못하더라도, 읍면장 직선제부터 도입할 수 있지 않을까? 이미 몇몇 지방자치단체에서 읍면장 주민 추천제를 해 본 경험도 있다. ‘소멸위기’에 대한 대안은 메가시티가 아니라 풀뿌리 자치에 있다.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변호사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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