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2년의 현장, 광화문광장

2019.03.11 20:53 입력 2019.03.11 20:54 수정

[박래군 칼럼]탄핵 2년의 현장, 광화문광장

주말에 광화문광장 인근에 갈 때는 마음을 단단히 해야 한다. 태극기와 성조기, 심지어는 이스라엘기가 나부끼는 모습을 보고도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으면 안된다. 또 고성능 스피커에서 나오는 연설은 듣지 말고, 깃발에 쓰인 구호는 보지 않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 “5·18은 북한 인민군의 폭동” “민족반역자 문재인 끌어내리자!” “박근혜 무죄 석방” “탄핵 무효”와 같은 주장과 구호는 이곳에서는 매우 점잖은 것들이다. 군인들에게 내란 선동하는 구호들도 튀어나오고, 누구누구를 찢어 죽이자는 험한 말도 난무한다. 대한민국에서 이만 한 가짜뉴스와 혐오 표현의 경연장을 찾기 힘들 것이다.

[박래군 칼럼]탄핵 2년의 현장, 광화문광장

시대를 착각하게 하는 군가들도 들린다. 군복을 입은 노인들이 넘쳐나고, 그들 중에는 박정희 흉내를 낸다고 선글라스를 낀 이들도 많다. 황교안 대표의 당선을 축하하고 벌써부터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게 하소서”와 같은 목사의 기도 소리도 들린다. 성적인 설교로 유명해진 정광훈 목사가 대표로 있는 한기총이 태극기부대의 중요한 축을 이룬다. 북·미회담이 실패한 것을 하나님의 뜻이라 하고, 한·미동맹을 강화하고 공산주의를 무찔러야 한다는 주장은 단골 메뉴다.

이들은 자신들이 듣고 싶은 말만 전하는 유튜브 채널만 믿는다. 1000만 유튜버들을 조직해서 승리하자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것만이 진실이라는 확증편향이 지배하는 게 이들의 세계다. 그러니 탄핵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일이며, 그것도 헌법재판소의 음모이므로 탄핵 결정 2주년 집회는 당연히 헌재 앞에서 열렸고, 헌재는 당장 사라져야 할 악마 기관이라 한다.

2년 전 헌재의 박근혜 탄핵 결정에 눈물 흘리며 승리를 자축했던 시민들은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탄핵 결정 뒤에 잦아들 것이므로 무시하자고 했던 이른바 ‘태극기부대’가 촛불항쟁의 중심지인 광화문광장 일대를 매주 주말 점령하고 있다. 2년이 훨씬 지났음에도 그들은 지치지 않고 나오고 있고, 최근에는 오히려 세력이 더 강화되고 있다. 서울역, 대한문, 동아일보사, 동화면세점, 종각, 교보문고 앞 등에서 보다 극우적임을 경쟁하던 각각의 세력들은 집회 뒤에는 꼭 광화문광장을 한 바퀴씩 돈 다음에 해산한다. 매주 주말 광화문 일대는 이들의 집회와 시위로 혼란의 도가니가 된다.

그런 광화문광장의 초입에 세월호 천막이 있다. 세월호 참사 3개월 뒤인 2014년 7월에 세월호 유가족들이 진상규명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맨바닥에 앉아서 단식농성을 시작했다. 유민이 아빠 김영오씨가 40일간 단식을 했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문해서 격려했던 곳이다. 교황은 세월호 노란 리본을 떼라는 한국 천주교 성직자에게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 뒤에 몽골 텐트가 들어섰고, 분향소와 전시관, 시민들의 공간이 자리를 잡았다.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활동들이 지금까지도 꾸준히 펼쳐지는 소중한 장소다. 2016년과 2017년의 촛불항쟁은 이곳에서 시작되었고, 발화된 항쟁은 끝내 불의한 권력을 끌어내리는 쾌거를 이루었다.

그렇지만 요즘 매주 주말마다 이곳을 지키는 유가족과 시민들은 태극기부대 대오에서 날아오는 온갖 악담과 모욕들을 견뎌내야 한다. 지겹다, 이제 그만해라에서 빨갱이, 종북좌파까지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주장한다고 욕을 바가지로 먹는다. 혀를 끌끌 차면서 “죽은 애들 앞세워 돈 뜯어내는 떼쟁이”라고도 한다. 경찰이 조금이라도 소홀하면 당장 천막 쪽으로 난입해 폭력을 휘두르기 일쑤다. 어떤 때는 태극기부대 시위 대오 중에서 쇠구슬이 날아오기도 했고, 지난해와 올해 3·1절 때는 일부 시위 대오가 난입해서 전시물을 부수고 촛불조형물을 불태웠다. 태극기부대의 공격 대상이 되어 버린 세월호 천막은 4년7개월 만인 이번 주에 철거된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새롭게 단장된 기억공간이 들어선다.

주말 이곳에 나와 보면, 이런 민주주의를 만들기 위해 그해 겨울 꼬박 촛불을 들고 이 광장을 지켰나 회의감이 밀려온다. 저들이 석방을 주장하는 박근혜씨가 대통령이던 시절에는 광화문광장에서 집회도 할 수 없었다. 청와대로 가는 길엔 몇 겹의 경찰 차벽이 들어섰고, 물대포와 캡사이신을 장착한 경찰들이 막아섰다. 촛불항쟁 덕분에 지금 광화문을 거쳐 행진해서 청와대로 가고, 그 앞에서 집회도 할 수 있게 된 것이 겨우 2년밖에 안되었다는 사실은 무시된다. 넘실대는 촛불 바다의 감동은 가뭇없이 사라진 지 오래다.

정치개혁이 지연돼 이런 정치판이 만들어졌다. 탄핵 이전에 구성된 20대 국회는 사사건건 개혁의 발목을 잡아왔다. 새누리당에서 자유한국당으로 이름을 바꾼 적폐세력들은 개헌, 선거법, 권력기관의 개혁법안들을 모두 막아섰다. 국회는 촛불항쟁의 요구에 부합하지 못했다. 그 책임은 한국당에만 있지 않다. 정부는 이벤트와 레토릭만 근사하게 하면서 국민들의 기대감을 높여만 놓았지 촛불정신에 부합하는 정책을 실현시키지 못했다.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책임 있는 개혁정당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요즘은 개혁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정책을 집행하려 무던히도 애를 쓴다. 경사노위가 대표적이다. 경사노위는 경영계의 요구를 수용해서 사회적 대화를 제기하고, 노동계의 양보를 형식적으로 완성하는 기구로 활용한다. 정해진 답에 청년, 여성, 비정규직 대표를 들러리 세우려 한다. 초기부터 다부지게 적폐청산과 개혁을 밀어붙이지 못한 탓에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노동제의 효과는 사라지고 있다. 경사노위를 통해 노동권이 후퇴하면 가장 큰 피해자는 민주노총 조합원이 아니라 지금도 무권리 상태에서 신음하는 미조직 노동자들이다. 이들만 더 골병들게 된다.

그러니 주말 광화문광장은 정치 실패를 증명하는 뚜렷한 증거를 보여준다.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를 알고 싶다면 가짜뉴스와 혐오가 판치는 주말 광화문광장에 나와 보기를 권한다. 답은 현장에 있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