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여전히 ‘차별잇수다’

2019.12.01 20:39 입력 2019.12.01 20:40 수정

내가 여성으로서 경험한 차별을 처음으로 쏟아내던 날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혼잣말로 입안에 머물던 감정들이 우르르 말이 되어 쏟아졌다. 불편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불편하냐고 아무도 물어주지 않아서 말할 수 없었구나. 들어주는 사람이 존재하자 비로소 내 이야기가 의미를 갖게 됐다.

[NGO 발언대]여기, 여전히 ‘차별잇수다’

맞은편 동료가 맞장구치고 분석도 하며 거들었다. 자신이 겪은 경험도 나눠준다. “나만 겪은 게 아니었어.” 안도와 든든함은 용기가 되었다. 밤새 이어졌던 그날의 ‘수다’는 나를 페미니즘 운동으로 이끌었다. 말할 수 있는 장소와 동료는 싸울 수 있는 힘과 언어를 가지도록 응원해준다. 이런 경험을 통해 인내, 극복 등 개인의 영역이었던 차별은 사회의 과제가 된다.

“차별받은 경험을 나눠 주세요.”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차별에 맞서는 용기를 잇는 수다(차별잇수다)’가 말을 건넨다. 무엇이 차별일까? 차별하면 안된다는 말에는 어쩌면 내가 빠져 있는지도 모른다. 또 내가 받은 차별이 무엇인지 이야기할 기회도 드물다.

차별이 장애인, 노인, 빈민, 성소수자 등 사회적으로 취약한 어떤 사람들만의 일이라고 생각해 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차별의 의미와 사례를 내 삶과 연결시켜 생각하며 내 안의 소수자성을 만난다. 차별이 일부 소수자의 문제가 아니라 나, 우리의 문제로 다가온다. 장애인활동지원사인 중년 여성은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질문인데, 다음에 또 말하고 싶다”고 말한다.

차별받은 적 없다던 이도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비슷한 경험을 떠올리기도 한다. “그럴 땐 어떻게 맞서면 좋을까?” 차별의 이야기들이 많이 모일수록 원인을 찾기도 수월하다. 차별잇수다가 문제를 단박에 해결해 주지는 않지만 맞설 수 있는 동료를 만나게 해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차별에 공감하는 만큼 구조가 연결되어 있는 것도 발견하게 된다.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며 싸우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을 키운다.

2019년 전국 곳곳에서 진행해온 차별잇수다가 대항·대안적 말하기 활동의 의미를 나누는 자리를 오는 6일 갖는다. 혐오와 차별을 경험했지만, 사회가 규정한 소수자의 위치를 벗어나 그에 맞서 말하고 대항해온 사람들의 이야기다.

차별금지법 제정이 유예된 12년. 지역의 인권 관련 조례가 철회되고, 지난달 12일엔 안상수 의원 등 40명의 국회의원이 차별의 근거로 삼아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는 사유 중 ‘성적지향’을 삭제하고 성별을 남녀 두 개로 한정하는 ‘국가인권위원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더불어민주당 이개호, 서삼석 의원 등이 철회 의사를 밝히자 지난 21일 44명의 국회의원은 동일한 내용으로 재발의했다. 제도정치가 혐오와 차별에 부끄럼없이 나서고 있다.

그러나 다양한 현장에선 평등할 권리를 만들어가는 실천을 지속해왔다. 서로 다른 삶을 어떻게 말하고 만날 건지 준비하고 계속 이야기해왔다.

서로를 이해하는 다정한 눈빛, 말할 준비를 기다려주는 느린 시간, 손을 꼭 잡고 지지해주는 마음, 연대하는 분노, 긴장을 불러오는 토론, 혐오와 차별에 대항하는 용기. 말하고 공감하고 행동한 만큼 평등을 꿈꾸는 이들의 힘은 커져왔다.

그러니 내년에도 계속 차별잇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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