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민정수석에 직보… 가수·연예기획사까지 ‘무차별’

2010.11.17 22:03 입력 2010.11.17 23:36 수정
이인숙 기자

커져가는 ‘윗선 개입’ 의혹

대검 수사 분석보고서에 ‘BH·총리 보고’ 폴더 확인

수첩엔 언론사찰 추정 메모… 사찰 내용 은폐 시도한 듯

민주당 이석현 의원이 17일 공개한 대검찰청의 ‘(사찰 수사) 증거 분석보고서’와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직원들의 수첩은 청와대가 민간인 사찰에 개입하고, 직접 사찰도 한 것을 보여주고 있다.

청와대와 지원관실이 여야 정치인과 언론·예술계 등의 민간인까지 광범위한 사찰을 벌인 정황이 속속 나타나면서 검찰의 부실수사 논란이 증폭될 것으로 전망된다.

<b>무슨 얘기 나눌까</b> 민주당 이석현 의원(오른쪽에서 두번째)이 17일 국회 예결위에서 청와대 인사의 불법 사찰 개입 추가 의혹을 폭로하기에 앞서 의원총회에 참석해 손학규 대표(앞줄 오른쪽), 박지원 원내대표(앞줄 왼쪽)와 얘기를 나누고 있다. | 김정근 기자 jeongk@kyunghyang.com

무슨 얘기 나눌까 민주당 이석현 의원(오른쪽에서 두번째)이 17일 국회 예결위에서 청와대 인사의 불법 사찰 개입 추가 의혹을 폭로하기에 앞서 의원총회에 참석해 손학규 대표(앞줄 오른쪽), 박지원 원내대표(앞줄 왼쪽)와 얘기를 나누고 있다. | 김정근 기자 jeongk@kyunghyang.com

◇ 청와대 사찰 주도·개입 의혹 = 이 의원은 2008년 당시 박영준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 밑에서 일하던 국정원 출신 이창화 전 행정관이 사찰한 내역을 열거했다. 전 국정원장, 전 국정원 1차장 등 내부 인사는 물론 친이계 소장파(정두언·정태근 의원), 친박계(이성헌 의원), 민주당 정세균 대표까지 망라됐다.

이 의원에 따르면 포항 인근 경주 안강 출신의 이 행정관이 ‘영포 라인’의 핵심으로 지목되는 박영준 비서관 아래서 사찰 역할을 맡았다. 지원관실이 생기기 전부터 청와대에서 박 비서관 등 ‘영포 라인’의 주도로 이미 광범위한 사찰이 진행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된다.

이 행정관은 2008년 3월부터 청와대에 있다가 6개월 후 신설된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로 자리를 옮겼다. 이는 영포라인이 청와대와 지원관실을 잇는 불법사찰의 핵심 고리로 지목돼 온 것의 한 징표일 수 있다.

대검의 사찰 수사 분석보고서는 이런 의혹에 방증을 더하고 있다. 이 의원은 지원관실 기획총괄과 정영운씨가 쓰던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분석한 대검 보고서를 입수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검찰은 하드디스크 복원 과정에서 ‘다음(동자꽃)’이라는 파일이 ‘081001 민정수석 보고용’이라는 폴더 외에 ‘0927(BH보고)’ ‘1001(총리보고)’라는 폴더에도 저장돼 있음을 확인했다. ‘동자꽃’은 총리실의 민간사찰 피해자인 김종익씨가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쓰던 아이디이다. 김씨의 사찰내용이 담긴 파일이 청와대 민정수석뿐 아니라 ‘BH’로 지칭된 청와대의 다른 곳으로도 보고됐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아울러 총리에게도 보고됐다는 얘기다.

그러나 검찰은 추가 개입 정황이 나올 때마다 ‘수사하면서 다 들여다봤지만, 청와대의 개입을 입증할 증거가 부족하다’는 설명을 되풀이해왔다. 검찰은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윗선’으로 지목되고, 바로 밑 행정관이 증거인멸용 대포폰을 지원관실에 지급했던 이영호 전 고용노사비서관을 불러 6시간 조사한 뒤 무혐의 처분한 게 전부다.

◇ 광범위한 민간사찰 이뤄져 = 이 의원이 공개한 지원관실 공직1팀 원충연 사무관과 권중기 경정의 수첩에서는 민간인 사찰이 단순히 김종익씨 한 명에서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원 사무관은 수첩에 ‘이시우’라는 이름을 적어놨다. 문제는 그 이름 옆에 ‘비자금조성 부분’이라는 문구와 함께 ‘불법폭력집회의 배후자금 지원화’라고 적혀 있다는 사실이다. 이 문구들로 미뤄보면 이시우라는 사람의 비자금을 캐서 촛불집회의 자금을 댔는지 여부에 대해 조사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2008년 5월 말 이명박 대통령의 ‘촛불배후 발언’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권 경정의 수첩에는 7월8일 10시 회의 내용을 정리한 것으로 추정되는 메모가 나온다. 권 경정은 5가지 항목 중 두번째로 ‘PD수첩 정리(언론정리)’라고 적어놨다. ‘이면지’ ‘결재 공문’ 등과 함께 적힌 것으로 보아 검찰의 민간인 불법사찰 수사가 시작된 시점에서 총리실이 ‘PD수첩’ 및 언론에 대해 사찰했다는 내용을 감추려 한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당시 청와대와 정부는 MBC ‘PD수첩’을 촛불집회 세력을 선동한 배후로 지목했다.

권씨의 수첩에는 ‘트로트 가수. 20대 후반~30대 초반. 기획사인 ‘OOO엔터테인먼트. 소속 여가수 성폭행. 1심 재판 중. 피해자 진술은 16시부터 23시’라고 적혀 민간인 사찰 범위가 광범위했음을 보여준다. 이는 김종익씨 외에 민간인 사찰의 추가 정황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를 군색하게 한다. 이런 방증 자료를 확보해놓고도 수사를 김씨에만 국한해 서둘러 종결했다는 비판을 키울 수밖에 없다.

<이인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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