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타운 건국선언’…가상국가 시대가 온다?

2012.08.25 13:23 입력 2012.08.25 13:24 수정

·‘SM타운 건국선언’에서 실리콘밸리 연계한 ‘블루시드 프로젝트’ 까지

“SM의 음악과 퍼포먼스로 모두가 하나가 되는 뮤직네이션 SM타운의 국가 탄생을 선포합니다.” 가수 보아와 강타가 사전에 준비된 선언문을 읽었다. 8월 18일 서울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 이날 열린 ‘뮤직네이션 SM타운’ 가상국가 선포식은 ‘SM타운 라이브 월드투어3 인 서울’ 공연의 오프닝 세리모니였다.

전 세계 30여개 나라에서 이날 공연에 참석한 팬들은 박수를 쳤다. 가상국가 국기가 게양되었다. 보아나 강타, 소녀시대, 슈퍼주니어 등의 뮤지션은 이날 행사의 주최자인 SM엔터테인먼트 소속 가수다.

지난 8월 18일 서울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열린 ‘SM타운 라이브 월드 투어3 인 서울’ 행사에서 SM엔터테인먼트 소속 연예인들이 ‘가상국가 SM타운’의 깃발을 들고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8월 18일 서울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열린 ‘SM타운 라이브 월드 투어3 인 서울’ 행사에서 SM엔터테인먼트 소속 연예인들이 ‘가상국가 SM타운’의 깃발을 들고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온라인 가상국가, 신분증·가상화폐 제공

이날 참석자들에게는 SM타운이 만든 분홍색 ‘여권’이 주어졌다. SM엔터테인먼트 쪽은 별도의 홈페이지를 개설해 온라인에서 여권을 ‘판매’했다. 여권을 소지한 경우 전 세계 각 국가에서 SM엔터테인먼트가 벌인 공연과 이벤트 장에서 ‘오리지널 스탬프’를 날인해준다. 이날 행사를 전후로 SM 쪽은 “세계 최초의 가상국가 탄생”이라고 주장한 보도자료를 냈다. 평은 엇갈린다. SM 가상국가 선언에 대한 인터넷 반응은 “오글거린다”거나 “종교집단화되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많았다. SM팬덤 바깥의 반응이다.

“SM 쪽에서는 홍보성 이벤트로 생각해냈는지 모르지만, 이제는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가능하다면 이수만 대표와 만나서 진지하게 이야기해보고 싶다.” 사단법인 유엔미래포럼 박영숙 대표의 말이다. 그는 최근 SM타운의 가상국가 선언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글을 써서 한 인터넷 매체에 기고했다. 일단 박 대표에 따르면 ‘SM 가상국가 선언’이 최초는 아니다. 이를테면 린든 랩이 개발한 ‘세컨드 라이프’도 일종의 가상국가다. SNS의 일종인 세컨드 라이프에서 참가자들은 가상의 국가, 기관, 단체들을 만들 수 있다. 세컨드 라이프 상에서 통용되는 고유의 화폐단위도 있다. 박 대표는 위키피디아, 유엔미래포럼의 밀레니엄포럼도 비슷한 기능을 한다고 주장했다. 비슷하게 본다면 이미 게임머니가 거래되고, 그것이 다시 현실세계에서 아이템 거래 가 되는 리니지 등 게임도 ‘유사 가상국가’라고 할 수 있다.

인터넷을 찾아보면 ‘가상국가’를 자처하고 있는 곳은 많다. 2008년도에 만들어진 버트랜드(Wirtland)는 국가를 구성하는 시민을 위티즌(Witizen)이라고 지칭한다. 시민권을 얻은 사람에게는 신분증을 발급해주며, 지난 2009년에는 버트랜드 크레인이라는 이름으로 금화와 은화를 화폐로 내놓기도 했다.

SM타운의 ‘여권 발급’과 비슷한 아이디어는 이미 나왔다. 주식회사 남이섬의 경우 ‘나미나라공화국’이라는 테마로 관광코스를 운영하고 있다. 남이섬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경기도 가평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데, 선착장에 남이섬 측에서 붙인 이름이 ‘나미나라공화국 입국심사대’다. ‘여권’은 ‘나미나라 관광청’에서 발급한다. 1년짜리 단기여권은 1년 동안 남이섬을 자유롭게 입장가능하며, 평생 사용할 수 있는 국민여권은 여권과 국민증서, 우표 및 나미나라 화폐(나미통보)를 받을 수 있다.

SM타운이나 남이섬의 발상은 말하자면 일종의 ‘레토릭’이다. 만들어진 여권이 대한민국의 여권을 대신할 수는 없다. 무엇을 국가로 규정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사회과학자들 사이에서도 통일된 견해는 없다. 다만 영토성(territority)의 개념은 중요한 구성 부분 중 하나였다. 그런데 ‘가상국가’는 바로 이 영토성의 개념에서 벗어나 있다. 나라 사이의 경계, ‘국경’의 바깥에서 국가를 만들려는 시도는 존재했고 조만간 등장할 예정이다. 땅이 아닌 바다, 이른바 시스테딩(Seasteading)국가 건설 움직임이다.


현재 미국 실리콘밸리 인근 공해상에서 추진되고 있는 블루시드의 개념도. /블루시드 홈페이지

현재 미국 실리콘밸리 인근 공해상에서 추진되고 있는 블루시드의 개념도. /블루시드 홈페이지

‘홈스테딩’ 대신하는 ‘시스테딩’ 아이디어

시스테딩은 주거지(homesteading)에 대항해 만들어진 개념이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바다에서도 육지와 마찬가지로 영속적인 생활이 가능하다는 아이디어다. 이미 1960년대에 원류가 되는 아이디어가 있었다. 이를테면 낙태가 불법으로 되어 있는 미국의 주(州) 바깥의 바다에 낙태시술선을 띄운다든가, 해적 라디오를 방송하기 위해 바다를 이용하는 것이다.

시스테딩의 개념은 켄 뉴마이어가 지난 1981년에 낸 <농장을 팝니다>라는 책과 웨인 그램리히가 1998년에 시스테딩의 구상을 밝힌 글을 발표하면서 구체화되었다. 지난 2008년 4월 아이디어를 실현하기 위해 시스테딩연구소가 발족했다. 온라인 결제시스템 페이팔(paypal)의 창립자인 피터 시엘이 50만 달러를 쾌척하면서 프로젝트에 추진력이 붙었다. 현재까지 구상으로는 석유시추선과 비슷한 형태로, 검증된 모든 기술을 사용해 지속가능한 형태의 주거공간을 해상에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 약 200명이 거주하는 도시의 블록 하나 정도 크기로 만드는 시범 사업이 추진 중이다.

먼저 가시화될 가능성이 큰 것은 시스테딩에서 ‘스핀오프’되어 나온 블루시드(Blueseed) 프로젝트다. 블루시드는 시스테딩 연구소에서 일하던 맥스 마티와 다리오 뮤탑지자가 창업한 것으로, 2014년 3분기까지 실리콘밸리 앞 공해상에 세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블루시드가 추진된 배경은 이렇다. 미국 의회에서 창업비자법(Startup Visa Act) 처리가 지연되자, 기업적 시각에서 이에 대한 대안으로 나온 것이다. 미국 워킹비자를 받지 않더라도 이곳에서 일을 하거나 벤처기업이 입주하는 것은 가능하다. 즉 이곳에서 일하거나 창업하는 기업은 미국 이민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하지만 인근의 실리콘밸리와 연결은 가능하다. 위성과 해저케이블을 통해 대용량의 자료를 주고받을 수 있으며, 해상에 떠 있는 부이에 무선 와이파이(WiFi)를 설치해 실시간으로 온라인 협업이 가능하다. 게다가 블루시드에 입주해 있는 기업이나 개인은 세금을 내지 않는다. 각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소속한 국가에 세금을 내도록 되어 있다.

블루시드 쪽에서 내놓은 홍보자료에 따르면 블루시드는 실리콘밸리로부터 12마일 떨어진 공해상에 만들어지며, 수상페리를 이용하면 약 30분(편도)이면 실리콘밸리로 갈 수도 있다. 취업비자가 아니기 때문에 비즈니스·여행 비자만 갖고 있으면 된다. 블루시드 쪽에서는 “긴급한 용무가 있을 때는 헬리콥터로 약 15분이면 이동도 가능하다”고 밝히고 있다. 이용비용은 4인실 기준으로 1인당 월 1200달러인데, “샌프란시스코에서 동일한 조건으로 구할 경우 드는 비용(1750달러)보다 오히려 저렴하면서 동시에 창업 인큐베이팅 공간이 주어지기 때문에 더 유리하다”며 “더 핵심적인 이익은 전 세계에서 모인 창의적 인재들을 바탕으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블루시드 쪽에서는 주장하고 있다. 블루시드 내에서는 어떤 형식의 ‘창업’도 다 가능하지만 미국에서 불법화되어 있는 매춘이나 도박은 허용되지 않는다.

공해상 가상국가 곧 현실화

미국 콜로라도에 소재한 싱크탱크 다빈치연구소에 따르면 현재까지는 존재하지 않지만, 조만간 벌어질 사건인 최초의 ‘가상국가 탄생’에는 몇 가지 시나리오가 있다. 첫째로 가능한 시나리오는 유엔고등난민판무관(UNHCR) 주도의 가상국가다. 이를테면 보스니아 내전으로 많은 난민이 발생했는데, 인터넷 상에 ‘뉴보스니아’라는 가상국가를 만들어 이들의 출입국, 여행, 거주이전과 노동비자 발급 등을 전담하는 형태다.

또 다른 시나리오로는 ‘상업적인 국민국가’ 시나리오다. 이를테면 글로벌기업 마이크로소프트는 그 자신을 영토국가로 선언할 수 있다. 현재 마이크로소프트의 본사는 미국 시애틀 근처에 있지만, 언제든지 태평양이나 배, 심지어는 인공위성으로 옮기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초국적 자본 시나리오’는 언제든지 실현 가능하다. 구글의 경우, 구글 직원 본인이 원한다면 전 세계 어느 곳에서도 근무가 가능하다. 정김경숙 구글 상무는 “만약 직원이 이집트에서 근무를 원할 경우, 캘린더에서 언제부터 언제까지 그곳에서 일하겠다고 예약해놓고 컴퓨터만 들고 가면 된다”고 말했다. 일할 장소에 자리와 편의시설을 회사에서 마련해준다. 같은 이유로 서울 역삼동에 자리잡은 구글코리아 사무실에는 전 세계에서 온 많은 구글 직원들이 수시로 드나들고 있다.

결국 가상국가 출현의 함의는 무엇일까. 가상국가의 출현으로 영토적 경계선이 허물어지고 기존 주권국가가 무력화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을까. 박영숙 대표는 “구글의 경우에서 보듯, 어떤 사람이 대한민국 국민이지만 글로벌한 환경에서 일을 하고 거기에 소속되어 있다면 아이덴티티 문제는 이미 발생하고 있다”며 “비유적으로 이야기한다면 2024년이나 2025년쯤에는 한국이 싫어서 ‘SM 가상국가’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나올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아직 가상국가에 대한 본격적 논의나 검토는 국내에서는 거의 없었다. 박 대표는 ‘SM타운의 실험’을 정부에서도 적극적으로 도울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실 거버먼트(government)는 산업시대의 유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온라인 집단지성의 등장으로 기존의 낡은 제도가 걸림돌로 작용할 수도 있다”며 “미국 시스테딩의 경우 앞으로 있을지도 모르는 법적 분쟁을 대비하는 데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데, 미래엔 가상국가와 현존국가 사이의 갈등이 심각한 문제가 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 2004년 낸 <국민으로부터 탈퇴> 등 민족주의과 국민국가에 대해 연구해온 권혁범 대전대 정치언론홍보학과 교수는 “적어도 50년 내지는 100년 이내에 가상국가의 출현으로 주권국가체제가 무너질 가능성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한 가지 가능성이 있는 시나리오를 든다면, 자본의 힘 즉, 초국적 자본의 요구에 따라 가상국가가 만들어지는 것인데, 그렇다고 하더라도 주권국가 체제를 벗어나기는 어렵지 않을까”라고 예상했다.

한국미래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미래학회 차원에서도 아직 가상국가를 주제로 심포지엄 등의 행사를 연 기억은 없다”며 “만약 가상국가가 현실화된다면 보다 근본적으로 돌아가 국민국가라는 개념 자체의 재검토가 필요한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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