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신부 홍성남

2013.05.24 21:28 입력 2013.08.23 21:49 수정
백영옥 | 소설가

틱낫한 욕 많이 했다… 살 집 부서질 땐 평상심 대신 크게 싸워야

홍성남 신부가 지난 10일 서울 중구 명동 가톨릭회관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김문석 기자  kmseok@kyunghyang.com

홍성남 신부가 지난 10일 서울 중구 명동 가톨릭회관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김문석 기자 kmseok@kyunghyang.com

▲ “신부는 거주지가 불분명하고 마피아 조직이나 군대와 비슷…
순수하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오해”

명동성당을 가던 길에 오래전 일 하나가 떠올랐다. 붙잡는 사람 없는 그곳에 우연히 들어간 적이 있다. 성당에는 띄엄띄엄 사람들이 앉아 고개를 숙인 채 기도를 하고 있었다. 평소엔 접할 수 없는 높이 때문이었을까. 성당 천장 위에선 희미하게 피어오르는 햇볕이 날아다녔고, 한없이 내가 작게 느껴졌다. 기도를 하다가 나는 조금 울먹였던 것 같기도 하다. 머릿속에는 천상의 소리처럼 무엇인가 스쳐 지나갔다. “내 죄를 사하노라!” 태어나서 신부님과 단 한번도 말해본 적 없는 나 같은 사람은 고해성사라도 하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지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만약 신부가 고해성사를 듣다가 “차라리 헤어지세요!”라거나 “억지로 용서하지 마세요!”라고 말한다면 어쩌겠는가. 몇 번 용서해야 하냐고 묻는 베드로에게 예수는 일곱번씩 일흔번은 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화나고 욱하는 일이 많아, 성당 방 안에 샌드백을 걸어놓고 욕을 하며 마구잡이로 때렸다고 말하는 남자가 멀쩡히 신부복을 입고 있다면, 우리는 그를 어떻게 마주대해야 하는 걸까. ‘지각 있게 주는 것도 사랑이지만, 지각 있게 주지 않는 것도 사랑이다’라는 스캇 펙의 말을 눈을 부릅뜬 채 인용하는 사람이라면 말이다.

홍성남 신부가 자신에게 전화를 건 스토커에게 노래까지 불러주던 천사 같은 보좌신부에서 스스로의 감정에 솔직히 대응하며 욕을 하게 되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렸다. 노래와 욕바가지 사이의 간격이란 그런 것이어서, 하느님께 죄를 고하던 고문 같은 기도 시간이 자신과의 대화로 바뀌기 시작한 시간도 나이 마흔다섯이 지나서야 가능해진 일이라고 했다.

■ 화가 나면 화내고 미우면 미워하는 게 건강한 인간

“신부나 스님을 순수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건 오해입니다. 출가하는 사람들은 독한 부분이 있어요. 나를 알고 싶은 갈망이 강하니까요. 하느님이 나를 부르신다, 산에 들어가 도를 닦겠다고 나가지만 자기중심적인 사람들이 가는 거죠. 어떤 면에선 출가고, 어떤 면에선 가출인 겁니다. 전 대학 졸업하고 군대까지 다녀온 뒤 늦게 신학교에 들어가 나중을 기약하며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어요. 신부는 거주지가 불분명하고 마피아 조직이나 군대와 비슷해요. 반은 종교인이고 반은 군인들이고. 신학교는 육사와 아주 비슷해요. 축구를 하면 신학생들이 육사생도를 이긴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정말 많이 다칩니다.”

- 어떤 계기로 상담심리를 공부하게 됐나요?

“신학교 학생일 때 ‘밀알회’라는 곳에 들어가 쿠바 혁명사와 체 게바라를 만났어요. 저런 놈이 신부가 어찌 될까 걱정들이 많았지만 위태위태하게 신부가 됐어요. 본당 신부 되고 나서 2년 동안은 사랑을 많이 받았어요. 그러다 명동성당으로 발령을 받았는데, 그게 청년단체 지도신부였고 그때 그쪽 사람들과 코드를 잘 맞추지 못했어요. 신학생 때 알던 것과 많이 다르더군요. 그렇게 어찌어찌 평범한 신부생활을 했는데 매너리즘에 빠진 거예요. 그때, 누군가 상담을 받으면 좋겠다고 해서 수도회 신부님께 상담을 받았던 거죠. 신부님 앞에 앉으니 내 얘길 하라고 하길래, 할 말이 없어서 화가 났던 일들을 말하기 시작했죠. 한 시간이 되니 나가라고 하더군요.”

- 한 시간요?

“한 시간에 상담료가 5만원이에요. 신기한 건, 화를 내는 대상이 처음엔 근래 사람들이었는데 점점 과거로 내려가더군요. 결국 사이가 좋지 않았던 아버지 얘기까지 하게 됐어요. 사제라는 모습으로 거룩하고 경건한 모습만 보여주려 했지, 내 맘에 한 번도 손을 댄 적이 없기 때문에 창피하면서도 한편 시원하기도 했어요. 마지막으로 상담 신부님께 인사라도 하고, 그동안 했던 얘기를 덮으려면 입막음을 해야 될 것 같아서 감사했다고 폼나게 인사를 하고 나오려는데, 그분이 그러더군요. 할 얘기 다 하셨죠? 그럼 이제 제가 얘길 해도 될까요? 그리고 그날부터 5년 동안 제 심리분석을 해주셨어요.”

- 5년간의 정신분석 기간에 ‘내 안의 화나고 토라진 어린아이를 만났다’고 하신 기억이 나네요.

“맞아요. 모든 문제가 내 안에 있다는 걸 깨달았죠. 그래서 화를 참지 말고 내라! 미우면 끝까지 미워해라. 마음이 끝까지 가야 사랑도 생기는 거라고 말했죠. 얼핏 복음서와 반대되는 말을 하니까 사제관에선 날 미쳤다고 말했어요. 평화방송에선 검열에 걸려서 하차한 적도 있고요.”

- 검열요?

“시어머니와 불화 중인 며느리에게 시어머니 옷가지를 방에 깔아놓고 뛰면서 욕 좀 하라고 했거든요. 내가 시어머니를 밟으라고 한 것도 아니고 옷을 밟으라고 한 건데 그게 왜 문제인지, 안 그럼 화병으로 죽어요, 죽어. 상담 받는 분 중에 술주정 부리고 일 안 하는 남편을 참고 산다는 부인이 있기에 내 동생 같으면 헤어지라고 하겠다 했더니, 이혼 조장 신부라고 난리가 났었죠. 어느 분은 본당 신부 자체가 금서다, 란 얘기까지 나올 정도였으니까.”

- 금서요?

“제 강론은 거룩한 종교인이 될 사람을 위한 게 아니라 건강한 신앙인들을 위한 거예요. 고달픈 신경증 환자들을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 존재하는 거죠. 환자들에게 예수님이 하실 말씀이 뭐가 있겠어요. 병을 낫게 해주겠다, 그거밖에 없거든요. 12사도는 종교적 지도자가 될 사람들이었어요. 복음서의 대부분은 그 제자들에게 하는 얘기들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라! 이런 건 환자들이 들을 얘기가 아니에요. 그 원수가 정말 원수라면 감당 못할 요구를 받는 것이고, 그러면 내가 정신병에 걸릴 수도 있는 문제가 되는 거죠. 성경에서 이런 말이 나온 맥락이 있어요. 그건 융의 이론처럼 바깥에 있는 것이 내 안에도 있다는, 예를 들면 히틀러가 밖에만 있는 게 아니라 내 안에도 있다는 얘기예요. 그걸 액면 그대로 원수를 사랑하란 말로 이해해서 따라 살려다 잘 안되니까 신경증 걸린 신앙인들이 참 많아요.”

■ 모든 종교의 문제는 어릴 적 부모와의 관계 연장선

- 가톨릭에는 고해성사라는 좋은 해방구가 있지 않나요?

“고해성사는 운영자에 따라 다르게 쓰입니다. 심리 치료소가 되는가 하면 재판장이 되기도 하고요. 신도들이 힘들다고 말하면 신부들은 그럼 그분을 위해 기도하란 말을 해요. 그러면 그 사람은 자기가 잘못했다는 사실을 공인받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생긴 게 병적인 죄책감이고 그게 더 진행되면 독성 수치심이 돼요.”

- 좀 삐딱한 생각일지 모르지만 한평생 자식도 없이 먹고살 걱정 없는 수도자들이 일반인들의 인간관계 갈등을 얼마나 세심히 이해할 수 있을까, 그분들 스스로 한계를 느끼진 않을까 생각한 적이 있어요.

“그걸 느낀 게 가좌동 성당 신부 때였어요. 제가 5년 넘게 재개발을 보면서 거대 공룡들이 초식동물 잡아먹는 무법천지를 봤어요. 그때 처음 돈이 하느님이 됐구나란 걸 안 거죠. 감방에 가더라도 돈을 생각해요. 조합 임원 중에 감방에 갈 일이 있으면 장애인인 아들을 감방에 보냅니다. 그럼 빨리 나오거든요. 평범한 사람들은 생각도 할 수 없는 영악한 편법들이 판치는 데가 거기예요.”

- 그때 화가 증폭된 건가요?

“그때 나한테 제일 많이 욕먹었던 게 틱낫한 스님이었어요. 그 양반이 얘기는 내 마음속에 화의 길을 만들지 말라는 건데 그게 절간에서는 가능해요. 하지만 살 집이 부서지고, 날아가는데 평상심이 어디 있어요. 작은 분노는 틱낫한 스님이 말씀하신 방법이 좋아요. 하지만 중자부터는 좀 달라요. 대자는 아예 전쟁을 벌여야 되는 거예요. 그건 싸워서 이겨야 돼요. 그런 놈들을 용서해주면 내가 무기력해집니다.”

- 가좌동 성당 얘기 중에 인상적이었던 게, 철거돼서 황량한 그곳 성당 화단에 꽃을 심고 정리하면서 신부님이 ‘청소도 투쟁임을 배운다’고 독백한 부분이었어요.

“그 다음 얘기는 책에 안 썼어요. 제가 치운 쓰레기는 성당 문 밖에 다 버렸거든요. 그러니까 성당 안만 깨끗했죠. 재개발 지역이라 쓰레기차가 아예 안 올라왔고, 일부러 구청 사람들 보라고 그렇게 했습니다. 철거업체들이 주민을 쫓아내는 방법이 그거예요. 사람들이 나가면 용역들은 그 집을 딱 절반만 부셔요. 그리고 유리창 잔해를 길에다 깔아 흉측하게 만들죠. 그럼 나머지 동네 사람들이 길 다니기가 너무 무서운 거예요. 그래서 하나 둘 집에서 사람들이 나가면 나간 집을 또 절반쯤 부셔요. 그렇게 부숴나가다가 안 나가고 버티면 그 옆집에 새벽 4시나 5시쯤 불을 지릅니다. 용역들은 재개발지역을 슬럼가로 만드는 특유의 작전이 있어요. 제가 가장 힘들었던 건 주민들도 돈의 이해관계에서 입장이 전부 다르다는 거였죠.”

■ 인간의 마음이 건강하려면 역동성이 있어야

- 철거현장에 남아 있던 사람들이 성당 불빛을 좇아 동네를 걸었단 얘길 읽었어요. 성당 안은 평온했나요?

“전 평온한 거 안 좋아해요. 인간의 마음이 건강하려면 역동성이 있어야 해요. 가만히 있는 것에는 심리적 등창이 생겨요. 중환자실에 오래 누워 있는 환자들은 등이 썩잖아요. 게다가 우린 처음부터 평화라는 게 없는 민족이었어요. 북한과 이렇게 대치하는 한 무의식 중에 늘 불안이 깔려 있어요. 그것을 인정하고 이겨낼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을 찾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스님들도 가끔 상담하는데 거기도 연옥이더군요. 어쩌면 바깥보다 더 심할 수도 있어요. 어떤 심리학자가 인간이 종교를 가지면 좀 더 포악해진다는 말을 하기도 했어요.”

- 종교 때문에 포악해진다?

“주님의 뜻을 자기 뜻으로 합리화시키면 포악해져요. 종교방송에서 설교하는 거 잘 보세요. 구체적이지도 않은 얘기를 하느님의 말씀인 것처럼 전하고, 사실과 자기 의견을 분별해 말하지도 않고요. 일부 종교인들이 마귀니 사탄이니 하면서 믿음으로 협박하고 공포를 조장하기도 하고.”

- 공포가 종교의 전략은 아닐까요?

“인간의 불안을 먹고사는 업체가 종교하고 보험회사하고 점쟁이, 정치가들이에요. 이 사람들은 사회가 평화로우면 먹고살 게 없으니 끊임없이 양쪽에서 포를 쏴대죠. 그중에 제일 영악한 자들이 종교인이에요. 나는 종말론 부르짖는 사람들 보면 정상이 아닌 것 같아요. 불안을 야기해서 밥벌이하는 한심한 놈으로밖에 안 보여요.”

- 종교인으로 사는 건 어떤가요?

“신부는 신도들의 관심을 엄청나게 받는 돈 못 버는 연예인 같아요. 그리고 심리적인 고아들에게 부모의 역할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죠. 그래서 많이 상처받지만 그래도 해야 하는 일이고요. 종교인들에게 조언하고 싶은 건, 감당 못하겠으면 내려놓을 줄도 알아야 한다는 거예요. 예수님은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얘기했는데 99마리가 더 중요해요. 그 얘길 했다가 욕을 바가지로 먹었지만, 싸가지 없는 어린 양은 밖에서 쌔빠지게 고생하면 돌아옵니다. 그게 복음서에 나오는 돌아온 탕아 얘기잖아요.”

- 돌아온 탕아가 신부님 자신이라고 느끼나요?

“거의 모든 종교의 문제는 어릴 적 부모와의 관계의 연장선이에요. 신은 없다! 하는 건 아버지와의 관계가 안 좋은 사람들이에요. 광신이다, 그럼 아버지의 부재감을 느끼는 겁니다. 전 신학적 신앙이 아닌 심리적 관점에서 봤고, 하느님이 참 무서웠어요. 아버지를 정말 무서워했거든요. 제가 생각하는 하느님은 자유로움이에요. 나는 종교가 백혈구라고 봐요. 사회를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는 수도자에게 거는 기대가 있어요.”

- 성당이나 교회야말로 공동체의 형태를 갖추고 있는 곳 아닐까란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세상에는 친밀한 타인과 그렇지 않은 타인만 존재하는 건 아닐까란 생각도 들어요.

“제가 생각하는 공동체는 각자 따로 살면서 필요할 때 모이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한국 사회 공동체가 깨지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전 재개발 현장에서도 공동체를 봤어요. 신부들은 그냥 한 달에 한 번 회합해서 헤어지는 존재들이었는데, 그때 내 손을 잡아주더군요. 정의구현사제단도 조직이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기자들이 만든 말이에요. 사회분쟁에 관심 있는 사제들이 헤쳐 모이는 형태인 거죠. 우리가 남이가, 라는 말은 정말 위험한 말입니다. 우린 남이에요! 서로가 남인 사람끼리 공존하는 게 가장 건강한 겁니다.”

- 원하는 걸 가질 수 있는 건 큰 행복인데 그보다 더 큰 행복은 갖고 있지 않은 걸 원하지 않는 거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후자가 종교적인 삶에 가까운 건가요?

“근본적인 처방은 가져야 돼요. 애들이 장난감을 갖고 싶어 하면 실컷 사줘서 질리게 만들어야 해요. 제가 아는 비움은 지겨우니까 동생도 주고 여기저기 주는 거예요. 가난하게 자란 사람이 절간 들어간다고 갑자기 도인이 되나요? 그런 거 없어요. 그래서 나는 신학교 들어가는 애들한테 어차피 장가 못 가니까 여자친구 실컷 만나라고 해요. 혼자 사는 인간들은 수컷끼리만 있으면 포악해져요. 그래서 나는 남자들이랑은 절대 술도 안 먹어요. 수녀님들도 똑같아요. 나 같은 노인네가 가도 부드러워져요. 그게 음양의 조화예요. 균형이 중요해요.”

- 신부님은 천당 가실 것 같나요?

“천당 간다는 보장은 없어요. 천국인데 매일 기도만 하라고 해봐요. 찜질방처럼 뜨듯한 연옥에 앉아 화투치는 게 낫지. 예전에는 죽음 이후의 생각을 많이 했는데 지금은 생각이 바로 ‘지금 여기’에 있어요. 라틴어로 ‘Hic et nunc(힉 앳 누크)’라고 해요. Here and now. 예수님도 산상설교에서 행복 선언 하셨잖아요. 지금 행복하지 않고 우울하면 천당 간다고 행복해지겠어요?”

■ 일단 나를 먼저 만나야 하느님도 건강하게 만나게 돼

- 신부나 목사님의 믿어라, 의심하지 말라는 말이 저는 늘 의심스러웠습니다.

“만나본 적 없으니 당연히 의심을 하죠. 어떻게 보면 종교도 억지가 많아요. 그래서 믿음을 강조하기 시작하면 자책하게 되는 거고. 히틀러가 독실한 신자였잖아요. 측근도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어요. 어떤 게 진정한 신앙심인지 짚어봐야지. 일단 나를 먼저 만나야 하느님도 건강하게 만나게 돼요. 건강한 이기심은 내가 행복해야 남도 행복하다는 겁니다. 근데 성격 장애, 병적인 이기심은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 딴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들죠.”

-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기만 한다면, 사람이 변할 수 있는 건가요?

“성격은 안 바뀝니다. 장미가 백합이 되진 않아요. 근데 많은 사람들이 자기는 할미꽃인데 장미가 되고 싶어 해요. 많은 종교들이 그게 회개라고 생각하고 있고요. 가톨릭의 성인, 멘토? 그들과 같아지면 안돼요. 나를 피워야지, 내가 왜 백합이 돼야 해. 민들레고 제비꽃이라도 그것이 시들고, 활짝 피고는 자신에게 달려 있어요. 닭이 독수리가 되는 게 아니고, 새장 속을 나와 하늘 높이 나는 게 구원이라고 생각해요.”

- 종교인의 행복지수가 가장 높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어요.

“확실히 몸이 고달프고 돈도 적게 벌죠. 하지만 내가 가고 싶은 길을 간다는 건 너무 기뻐요. 카푸치노 안 먹는 대신 자판기 커피 마시면 되는 겁니다. 근데 열성적인 수도자들은 아예 마시지 말자예요. 나는 수도원 체질이 아니고 그냥 세상 사람들과 어울려서 저렴하고 맛있게 살고 싶어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비포 미드나잇>의 영화 포스터를 보았다. 문득 18년 전, <비포 선라이즈>에서 사랑에 빠진 여자가 남자에게 한 말이 떠올랐다. “이 세상에 만약 신이 있다면, 신은 너나 나 우리 안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우리 사이에 존재한다고 믿어.” 오직 신을 사랑할 것을 맹세한 신부가 내게 마지막으로 했던 말 역시 그러한 것이었다. “나 혼자 기도할 땐 수없이 하느님을 봅니다. 워낙 갈망하니까 무의식이 주님을 보여준 거죠. 하지만 그건 상상임신 같은 거예요. 제가 아는 깨달음은 사람과 사람이 부대끼면서 생깁니다.” 어쩌면 신은 그렇게 존재들의 ‘사이’에 깃드는 것이 아니겠는가. 너나 내가 아니라 우리들 사이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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