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선거개입, 국회와 언론은 어디있나

2013.06.23 21:53
강신주 | 철학자

우리는 불쌍하다. 알량한 도로교통법으로 헌법에 보장된 집회결사의 자유를 막는 나라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위 법률이 헌법에서 보장된 민주주의 정신을 부정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심지어 우리는 남루하기까지 하다. 자신의 통행을 가로막는다고 혹은 약속 시간에 늦었다고, 시위대 앞에서 욕설을 퍼붓거나 경적을 울리는 나라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소연할 곳이 없어서 공동체의 다른 성원들에게 힘을 모아달라는 시위를 부정하는 순간, 우리는 스스로 자신의 억울함과 분노를 토로할 공간 자체를 없애고 있다는 사실을 알까. 모든 사람에게 시위를 할 수 있는 자유를 보장하는 것은 곧 우리 자신이 시위를 할 수 있는 자유를 쟁취하는 지름길인데 말이다. 우리 공동체의 존망과 관련된 너무나도 중대한 일이 벌어졌다. 민주주의의 이념 자체를 부정하는 사건이니, 독재자 전두환의 재산을 환수하는 일이나 축구 국가대표 감독을 선임하는 문제보다 수백, 수천 배나 중요한 사건이다.

[철학자 강신주의 비상경보기]국정원 선거개입, 국회와 언론은 어디있나

국가정보원이 선거에 개입한 사건, 민주주의와 양립 불가능한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이건 헌법 정신을 교묘하게 제약하는 하위 법률을 만들어 아쉬우면 헌법재판소에 하소연을 하라는 식의 무책임한 입법 폭력보다 더 질이 나쁜 사건이다. 어쨌든 입법 폭력은 형식적이나마 최소한의 합법성을 갖춘 일이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국가정보원의 선거 개입은 그냥 민주주의를 노골적으로 부정하는 야만일 뿐이다. 최종적으로 국민의 통제를 받아야 할 공권력이 국민을 통제하려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독재이고 권위주의가 아닌가. 워터게이트 사건이 뇌리에 떠오르는 것은 단지 필자만일까. 워터게이트 사건은 미국에서 벌어졌던 공권력의 선거 개입 사건으로, 민주주의의 보루를 자처하던 미국의 모든 시민들은 당혹감을 넘어 분노의 감정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당시 대통령 닉슨의 사임으로 민주주의가 받았던 모욕과 상처는 조금이나마 치유될 수 있었다. 하긴 행정부의 최고 수장이 책임지지 않으면 누가 책임질 수 있다는 말인가.

뭐 복잡하게 먼 나라 미국의 사례를 생각할 필요도 없다. 우리의 경우에도 이승만을 권좌에서 물러나도록 만든 3·15 부정선거 사건이란 아픈 기억이 있지 않은가. 이승만과 닉슨의 차이는 이승만이 권좌에 쫀쫀하게 연연하다가 4·19혁명이란 국민적 저항에 직면해 하와이로 도망갔다는 것뿐이다. 어느 경우든 공권력의 선거 개입은 민주주의와 헌법을 수호한다고 취임 선서를 했던 최고 통치권자가 책임을 져야만 나름대로 미봉될 수 있는 중차대한 사건이다. 지금 국정 최고 통치권자가 책임져야 할 시급한 사건, 아이러니하게도 국가보안법에 걸릴 만한 사건이 다시 벌어진 것이다.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를 짓밟은 사건만큼 국가를 위기에 빠뜨리는 사건이 또 있을 수 있을까.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기 때문이다. 국가정보원 선거 개입 사건은 이렇게 비유해도 좋을 것 같다. 집을 지켜야 하는 개가 주인을 지키기는커녕 자신에게 먹을 것과 잘 곳을 제공한 주인을 물어버린 꼴이다. 민주주의를 지키는 성곽이 갑자기 사라진 꼴이다. 이제 국회의원들이 나설 차례이고, 언론이 나설 차례가 된 것이다.

개가 왜 주인을 물었는지 정확하게 원인을 진단하고 다시는 이런 미친 짓을 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야만 한다. 그리고 다시 민주주의 정신을 추스를 때다. 당연한 일 아닌가. 국회의원들은 행정부의 공권력을 감시하라고 선출된 대표자들이고, 언론은 행정부·입법부·사법부 등 권력기관이 국민을 제대로 대표하고 있는지 알려주어야 하는 신성한 임무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일러스트 | 김상민

일러스트 | 김상민

▲ “민주주의와 양립 불가능한 야만
워터게이트 사건 땐 닉슨 사임
국회의원·신문·방송·포털들
시민이 나서기 전에 움직여야”

그렇지만 상황은 이상한 식으로 돌아가고 있다. 몇몇 국회의원들은 다시 양비론을 조성하고, 부창부수격으로 유력 포털사이트나 주류 언론들도 민생 등의 경제적 사건이나 전두환 재산 환수 등 사회적 사건으로 쟁점을 희석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국가정보원과 긴밀히 연결된 수권 정당 국회의원들의 모습은 실망스럽지만, 무시해서는 안되지만 그러려니 무시하도록 하자. 당·정·청 회의라는 명목으로 항상 수권 정당 국회의원들은 국민을 대변하기보다 최고 통치자의 통치 행위에 대한 암묵적인 지지나 동조를 당연한 자신의 임무로 생각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국민과 민주주의를 위해 행정부를 감시해야 한다는 본연의 임무마저 방기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나 할까.

문제는 유력 포털사이트나 주류 언론들이 보이는 행태다. 민주사회에서 언론은 민주주의 이념과 정신으로 사건과 사실의 우선순위를 정해야만 한다. 지금 유력 언론들은 보수 사학계의 학자들과 비슷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 일부 사학자들은 일제시대와 독재 시절의 사건과 사실들 중 경제 발전으로 삶의 질이 상승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들만 선정하여 당시의 정치적이고 정신적인 억압상을 희석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지 않은가. 특정 사건이나 사실들에 주목할 때, 이미 특정한 선이해가 전제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포털사이트의 검색 우선순위를 보라. 혹은 유력 신문들의 헤드라인을 보라. 최고 통수권자의 사임까지도 가능한 중차대한 사건을 다른 쟁점으로 희석시키거나, 혹은 논점을 다른 식으로 변질시키고 있지 않은가. 민주주의의 가치가 훼손되었을 때, 가장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것이 자신들이라는 사실을 언론은 알고나 있는 것일까.

국가정보원이 교묘한 선거 개입으로 국민들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 것과 지금 주류 언론들이 논점 이탈이나 쟁점 희석화의 전략으로 국민들의 눈과 귀를 막으려는 것 사이에는 무슨 차이가 있다는 말인가.

민주주의의 가치가 훼손되는 순간, 언론출판과 집회결사의 자유는 근본적으로 위험에 빠질 수밖에 없다. 결국 유력 포털사이트나 주류 언론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목을 조르고 있는 중이다. 아니다. 어쩌면 이미 죽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국가정보원의 선거 개입에 맞서 싸우지 않아도 존재할 수 있다면, 이미 언론들은 정부기관지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 지금 국회의원도 언론도 민주주의 정신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아니 우롱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행정부의 공권력이 민주주의 가치를 훼손했는데도, 국회나 언론은 그것을 바로잡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이제 시민들이 직접 나설 수밖에. 아주 오랜만에 우리 대학생들이 시국선언을 시도하고 있고, 다양한 시민단체와 양심 있는 시민들도 자발적으로 민주주의를 위기에서 구하려는 청년들의 움직임에 동참하려고 한다. 결국 민주주의의 최종 보루는 우리 시민들의 단결된 힘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시민마저 위기에 빠진 민주주의를 구하지 않는다면, 다시 권위주의의 시대가 도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시민들이 직접 나서는 순간, 국회의원들은 그리고 언론인들은 모두 자신의 자리에서 물러나야만 할 것이다. 그들은 민주주의 앞에서 자신의 소임을 제대로 방기했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떻게 그 죄를 씻으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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