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등록 이주자의 불안한 삶, 더는 없도록” 드림라이더가 달린다

2013.07.31 22:14 입력 2013.07.31 23:32 수정

한인 부모 따라 이민 온 자녀들, 오바마의 ‘포괄적 이민개혁법’ 미 전역 돌며 필요성 알리기로

애나 정(한국명 정예소·19)과 사이먼 전(한국명 전성일·18)은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의 여파로 각각 9세, 6세 때 부모를 따라 미국에 왔다. 부모는 미국에 온 뒤 식당과 옷가게, 세탁소 일 등을 해왔다. 부모의 지위가 ‘미등록 이주자’이기에 자녀들 역시 불안한 학창 시절을 보냈다. 정양은 “미등록 이주자 자녀라는 사실이 알려져 추방될까봐 친구들에게도 사실을 숨겼다”고 말했다. 전군은 “지나가다 경찰만 봐도 괜히 두려웠고, 단속될까봐 바깥에 오래 머무를 수 없었다”고 말했다. 운전면허가 없어 늘 차를 얻어 타야 했고, 장학금 신청도 할 수 없었다. 친구들과 구별되는 점이 하나둘 늘어갔고, 심리적으로 더 위축됐다. 다시 돌아오지 못할까봐 미국 땅을 벗어나지 못하면서도 미국 내에서는 이방인으로 살았다.

지난해 좋은 소식이 있었다. 오바마 대통령의 ‘추방유예’(DACA) 행정명령이다. 어릴 때 부모를 따라 이민와 미등록 이주자가 된 젊은이들을 선별해 추방을 유예해주는 제도다. 두 사람은 그 대상이 돼 장학금을 신청하거나 거주민에 준하는 등록금을 내고 대학에도 진학할 수 있었다. 올가을 정양과 전군은 캘리포니아대학 버클리 캠퍼스와 어바나 캠퍼스에 나란히 진학한다. 하지만 추방유예 역시 한시적이기 때문에 이들은 시민권을 얻고 싶어한다. 그래서 오바마 대통령의 포괄적 이민 개혁법안을 지지한다.

이들은 중대 결심을 했다. 자신의 사연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함으로써 이민개혁법안의 필요성을 알리기로 한 것이다. 이제 막 딴 운전면허를 갖고 29일부터 열흘간 미국 전역을 차로 돌면서 사람들을 만나기로 했다. 29일 워싱턴을 출발해 버지니아·노스캐롤라이나·조지아·루이지애나·텍사스 주를 거쳐 로스앤젤레스로 간다.

드림라이더 로드트립에 돌입한 한인 청년들이 30일 오전 버지니아주 애넌데일의 한 한인마트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애넌데일 | 손제민 특파원

드림라이더 로드트립에 돌입한 한인 청년들이 30일 오전 버지니아주 애넌데일의 한 한인마트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애넌데일 | 손제민 특파원

‘드림라이더(Dream Riders)의 로드트립’으로 이름 붙인 이번 여행에서 두 사람은 자신들의 사연을 처음 공개하게 된다. 이주민들이 ‘미등록’ 지위를 공개하는 것은 성소수자의 커밍아웃에 비견된다고 한다. 정양은 “친구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걱정이 된다”면서도 “내 스토리를 공유함으로써 현실을 바꾸는 데 힘이 된다면 기꺼이 하겠다”고 말했다. 일행 중엔 지난 5월 오바마 대통령을 만나 미등록 이주자의 사연을 털어놓은 로스앤젤레스 민족학교의 케빈 리(한국명 이현규·23)도 있다.

아시아계 이민자는 미국 내에서도 ‘모범 이민자’로 알려져 오바마 정부는 이민법 개혁에 적극 활용하려 한다. 이들은 첫 일정으로 29일 아니 던컨 미 교육부 장관을 면담했다. 던컨 장관은 이튿날 블로그에 “드림라이더들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었다”며 “이 나라와 경제의 미래는 결국 포괄적 이민개혁법안 통과에 달렸다”고 썼다. 이민개혁법안은 민주당이 우세한 상원에서는 곡절 끝에 통과됐지만 공화당이 우세한 하원에서는 아직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하지 않았다. 미국 내 1100만명의 미등록 이주자 중 아시아계는 110만명, 한국계는 23만명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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