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 이야기

보양식 자라, 선모충 주의보

2013.09.11 18:20 입력 2013.09.11 18:30 수정
헬스경향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그 사건을 미리 알았다면 좋았을 뻔했어요. 그랬다면 저희가 그걸 먹지 않았을 텐데요.”

그녀의 말에 필자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매스컴에 보도된다고 해서 모든 이가 보는 것은 아니지만 8명 중 1명 정도는 그 기사를 봤을 테고 그들이 자라 대신 다른 것을 먹어 영양보충을 했을 수도 있으니까.

여기서 말하는 그 사건이 벌어진 건 지난해 9월이었다. 친구들끼리 자라회를 먹고 단체로 선모충에 걸린 것. 감염자들은 모두 얼굴이 붓고 근육통증이 심해 일상생활이 어려울 지경이었지만 병원 측에서는 제대로 된 진단을 내리지 못했다.

혹시나 해서 시행한 혈액검사 결과 놀랍게도 선모충이라는 기생충이 이 사단의 원인이었다. 회충약을 썼지만 환자들은 쉽사리 좋아지지 않았다. 창자 안에 있으면 약이 즉시 효과를 나타낼 수 있지만 선모충은 유충이 근육에 박혀 약기운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데다 유충이 죽으면서 배출하는 단백질이 염증을 더욱 악화시켰기 때문이다.

[기생충 이야기]보양식 자라, 선모충 주의보

8명의 증상이 완전히 없어지는 데는 한 달 정도 걸렸다. 문헌을 찾아보니 자라가 선모충의 원인인 경우는 2008년 대만의 레스토랑에서 자라회를 먹었던 일본인들이 유일했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자라로 인해 선모충에 걸릴 수 있음이 입증됐다.

이쯤 됐으면 자라의 위험성을 알려 더 이상의 감염자를 막는 것이 기생충학자의 임무지만 필자는 이 사건에 대해 논문만 한편 썼을 뿐 매스컴에 알리는 일은 최대한 자제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첫째, 선모충은 원래 파충류에 드물다. 이번에 자라에서 선모충이 나온 것은 백만분의 일 정도의 확률이었고 앞으로 또 나오기는 힘들 것이다.

둘째, 자라를 팔아 먹고사는 식당이 타격을 받을까 걱정됐다. 아주 위험한 질환이라면 얘기가 다르겠지만 선모충은 회충약으로 잘 치료되며 증상이 그리 심하지 않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런데 올해 8월 회사직원 8명이 여름보양식으로 자라회를 먹고 단체로 선모충에 걸려버렸다. 필자가 매스컴에 알리지 않았던 첫 번째 가정은 무너졌다.

게다가 이분들은 모두 같은 회사 직원들로 회사 사장은 “하루 다섯 군데 현장을 뛰고 있었는데 모두 중단됐다”며 한숨을 쉬었다. 선모충에 한 번도 걸리지 않은 필자의 판단이 너무 안일했음이 드러난 것이다.

병원에 입원 중인 젊은 직원은 “걷는 게 힘들 정도”라며 “교수님이 이 고통을 느꼈다면 증상이 심하지 않다고 얘기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필자는 작년에 선모충 문제를 이슈화하지 않은 것을 자책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같은 피해자가 더 이상 생기지 않게 해주세요.” 이 글을 쓴 것은 바로 그들의 요청 때문이다. 환자들에 따르면 선모충 진단을 받고 난 뒤 자라를 판 식당에 항의했는데 업주 측에서는 “우리랑 상관없다”며 외면했다고 한다. 지면을 빌어 식당 사장님께 한 말씀 올린다.

“사장님, 그게 아닙니다. 이번에 입원하신 분들은 사장님 가게에서 판 자라를 먹고 선모충에 걸린 겁니다. 우리나라에 선모충이 워낙 드물고 선모충의 자연계 생활사가 완전히 파악돼 있지 않아 그 책임을 온전히 사장님께 묻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사장님이 키운 자라가 선모충의 원인임은 분명합니다.

자라를 키울 때 그놈이 뭘 먹는지 꼼꼼히 살펴봐 주십시오. 언제 제가 한번 찾아뵙고 그 먹이들을 조사해 보겠습니다. 그 중 선모충을 가지고 온 놈이 있을 텐데 그놈만 조심한다면 앞으로 사장님께서 파는 자라회는 문제 없을 겁니다.”

환자분들도, 그리고 불안에 떠는 사장님도 모두 힘내시기를. 곧 추석이 다가오고 있으니까.

※칼럼의 내용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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