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행위예술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2014.04.21 21:02
안희경 | 재미 저널리스트

“정의롭지 못한 지도자들보다 개인 각성이 위기 극복 동력”

“예술가, 물질 덩어리가 되어버린 세계의 늘 깨어있는 전사”

사회학자 울리히 벡이 쓰는 단어 가운데 ‘재난사회’란 것이 있다. 이는 ‘너무 늦은’ 상태를 말한다. ‘위험사회’는 조종간만 잘 작동하면 얼마든지 피해갈 수 있는 상황이지만, 재난사회는 몰락의 공포가 구성원을 사로잡는 경우라고 한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위험사회’ 속에 살고 있음은 분명하다. 지금까지 이 기획을 통해 짚어 온 우리 문명의 상태와 가까운 미래에 대한 진단이 그러했다. 그런데 세월호 침몰을 바라보며 우리 집단의 정서는 어쩌면 재난사회 속으로 들어와 버렸는지 모른다. 사고 이후 드러나는 다수 선원의 비정규직화, 친기업적 규제 완화, 작동되지 않는 감시·감독 행정, 책임을 회피하려는 관료주의의 비효율성…. 이 사건은 전 지구적으로 작동되는 위험의 증거를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그 속에서 대중은 살아있는 자의 슬픔과 자책으로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누구라도 희생자가 될 수 있는 구조와 그 지경까지 밀려오도록 우리는 무엇을 했는가라는 회한 때문이다.

오늘 <문명, 그 길을 묻다>는 개인의 의식을 깨워 세상을 바꿔내려는 현대미술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와 함께 예술과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이 글에 지금 우리가 느끼는 위협의 실체나 구조의 덫을 파헤치는 내용은 없다. 다만 모든 사회 변화의 시작이자 완성을 책임지는 구성원 개인의 각성을 이야기할 것이다. 한 생각이 세상을 바꾸는 출발이듯 어려운 시절 한 개인의 각성은 위기를 돌파하는 보다 지긋한 행동의 동력이 될 수 있으리라 여긴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21세기 세계 대중에게 가장 추앙받는 행위예술가다. 2010년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이뤄진 작업 ‘예술가가 여기 있다(Artist Is Present)’는 평론가들에 의해 뉴밀레니엄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선정되었다. 이 작업에서 아브라모비치는 미술관이 열리는 아침부터 문이 닫히는 저녁까지 꼼짝 않고 찾아오는 관객과 마주 앉아 침묵으로 소통했다.

736시간의 퍼포먼스가 이어지는 동안 모마를 찾은 관객은 뉴욕시민보다 많은 850만명이었다. 도시 전체를 작품 속으로 끌어들였다는 평이다. 예술가 한 명이 이끌어 낸 개인들의 변화가 번져가며 거대 도시 뉴욕을 깨웠다. 아브라모비치와의 만남은 지난달 13일 뉴욕 맨해튼에 있는 그의 스튜디오에서 이뤄졌다.

2010년 뉴욕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퍼포먼스 ‘예술가가 여기 있다’에서 아브라모비치(오른쪽)가 독일 작가이자 동료 행위예술가인 울라이와 손을 맞잡고 있다. | ⓒMarco Anelli

2010년 뉴욕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퍼포먼스 ‘예술가가 여기 있다’에서 아브라모비치(오른쪽)가 독일 작가이자 동료 행위예술가인 울라이와 손을 맞잡고 있다. | ⓒMarco Anelli

▲ 현대인들은 내면과 단절… 자신이나 타인과 소통 못해
예술가는 관객의 거울이 되어 그들이 마음 열고 깰 수 있도록
창작활동하는 것이 소임

안희경 = 예술이 세상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아브라모비치 = 아니요. 안타깝게도 못합니다. 요제프 보이스는 예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했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절대로. 세상은 각성된 개인이 모두 실천할 때만 변화될 수 있습니다. 예술은 세상이 나아갈 길은 보여줄 수 있어요. 하지만 의식의 변화는 개인이 이루는 겁니다.

안 = 예술가의 몫은 무엇이죠?

아브라모비치 = 예술가 역시 스스로를 인식하도록 깨어나야 합니다. 그런 다음 여러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보도록 대중의 인식을 열어야 해요. 저는 예술은 에너지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습니다. 예술은 오로지 에너지예요. 현대인은 자연의 에너지와 연결되었던 끈을 놓쳐 버렸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도 잃었구요. 기술과 속도가 지배하는 도시에 살면서 자신의 내면과도 소통하지 않습니다. 완전하게 단절돼 있죠. 예술가로서 제 목적은 바로 그 관계를 회복시키는 창작을 하는 건데요. 제일 먼저 관객이 현재 이 순간에 깨어 스스로를 바라보게 만드는 겁니다. 세계가 물질 덩어리가 되어버린 오늘날 예술가는 전사가 돼야 합니다. 전사의 역할은 새로운 영역을 정복하는 건데 이는 스튜디오 아트로는 충분하지 않아요. 사람들 속에서 작업하는 공적 역할을 통해 인류의 의식을 바꾸는 게 필요하죠. 이것이 오늘날 예술가의 몫입니다.

안 = 의식을 바꾸는 길은 어디에 있나요?

아브라모비치 = 저는 동방정교회 전통에서 자랐습니다. 어릴 적 할머니와 함께 교회에 가곤 했어요. 세르비아, 그리스, 러시아정교회의 이콘 회화에서 매우 감명을 받았더랬죠. 이콘에는 내면의 깨달음을 향하는 여정이 담겨 있어요. 순수한 의식 상태지요. 그렇게 우리는 빛을 생성하고 바깥 세상을 비춥니다. 내면에서 나오는 빛입니다. 의식의 변화죠. 그리고 예술가가 되고 지금까지 40년 가까이 다른 문화권으로 공부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현대사회에서 의식 변화를 이뤄내는 길을 내기 위한 공부입니다. 최근 3년 동안은 민중 속에서 치유 의식을 하는 브라질 치유자들과 함께했습니다. 티베트에서는 명상을 했고 일본과 한국에서는 샤먼의 문화를 배웠어요. 인도네시아에서는 제어된 상태에서 어떻게 육체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지 익혔습니다. 불 위에서 걷기, 바람을 타는 법 등. 이런 서로 다른 지식을 돈이 지배하는 서구 문화에 적용해봤어요. 여기서 도달한 결론이 사람은 오로지 자기 자신과 오랜 시간 대면할 때 내면의 빛을 볼 수 있다는 단순한 깨우침입니다. 저는 마리나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스스로의 내면과 마주하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예를 들어 타인과 침묵 속에서 마주보기, 한 시간 동안 팔을 떼지 않고 단 한 번만 이름을 쓰는 시도, 소리가 차단된 공간에서 시간 보내기 등을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학교를 만들어 시민들과 함께합니다. 학교는 뉴욕에서 2시간 떨어진 허드슨이라는 곳에 있는데요. 이 도시는 규모가 작아도 뉴욕이 갖고 있는 모든 걸 다 갖추고 있습니다. 인종차별, 빈부격차, 부패한 정치인…. 그 도시의 모든 시민이 학교를 거쳐서 자기 스스로를 만나는 법을 익히고 내면의 소리를 들으면서 생활한다면 나비의 날갯짓처럼 세상을 깨워나가지 않을까요?

안 = 불가에서도 모두 이들이 내면에 밝은 지혜를 갖고 있기에 격식에 매이지 않는 원래 성품대로 산다면 고통은 사라질 거라고 했습니다. 그 잠재력을 깨우는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작동원리는 무엇입니까?

아브라모비치 = 현재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가는 겁니다. 우리는 과거도 미래도 만질 수 없어요. 과거는 이미 벌어졌고 미래는 아직 벌어지지 않았으니까요. 그러나 현재는 벌어지고 있습니다. 현재야말로 우리가 관련될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이에요. 보세요. 이 세상에 순간마다 얼마나 많은 나쁜 일들이 벌어집니까. 우리가 스스로에게서 완전하게 차단돼 있기 때문이에요. 지구상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문제의 원인이 이 지점으로 모입니다. 더 이상 도덕성이 없습니다. 책임감, 정직이 사라졌어요. 불안하기 때문이죠. 탐욕의 전쟁을 만들고 지금도 서로를 죽이고 있어요. 21세기인데 왜 변하지 않고 있나요? 삶에 대해, 우리 자신의 가치관을 바꾸는 가능성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정작 필요한 일을 하지 않음으로써 이 지구를 더 다양한 방식으로 죽여가고 있습니다. 일본에서 벌어진 일, 시리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 모든 곳이 미쳐 돌아갑니다.

1983년 암스테르담 카레 극장에서 행위예술가인 울라이와 함께한 퍼포먼스 ‘피에타’.

1983년 암스테르담 카레 극장에서 행위예술가인 울라이와 함께한 퍼포먼스 ‘피에타’.

▲ 삶과 가치관 바꾸는 데 진지하게 접근하지 않아
전쟁·반복된 희생 등과거와 변함없는 21세기
사회와 세상을 바꾸는 데는 구성원 개인 각성이 출발점

안 = 선생께서는 1997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세상을 향해 강렬한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발칸 바로크(Balkan Baroque)’라는 작업으로 동포인 세르비아인의 죄를 고백했습니다. 선생의 조국인 구유고 연방이 해체된 다음 발칸반도는 크로아티아 전쟁부터 보스니아 전쟁, 코소보 전쟁까지 10년을 전란에 휩싸였고 보스니아 전쟁만으로도 30만명이 죽었죠. 1995년에는 보스니아 내 이슬람 거주민 8000여명을 학살하는 인종청소도 있었구요.

아브라모비치 = 제가 자란 나라에서 전쟁이 벌어졌을 때 너무나 죄의식이 들었어요. 옳지 못한 살육이었습니다.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여하라는 요청이 왔을 때 그 일에 대한 제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베오그라드에 갔죠. 그리고 세 사람을 인터뷰했습니다. 빨치산 출신 유고 국민영웅이었던 제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35년 동안 쥐를 잡아온 한 남자입니다. 그는 발칸에서 어떻게 늑대-쥐를 만드는지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 이야기는 구석에 몰리게 되면 자기 가족까지 잡아먹는다는 동물과 마찬가지 처지에 놓이게 된 인간의 두려움을 설명해줍니다. 저는 비엔날레 전시실에서 죽은 소의 피 묻은 뼈를 씻었습니다. 피는 완전히 닦이지 않습니다. 닦일 수 없는 것이니까요. 살인의 죄는 씻겨지지 않아요. 모든 전쟁과 연결되는 이미지를 창조한 겁니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여러 형태의 살육을 고발하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수많은 정의롭지 못한 지도자들한테 둘러싸여 있지만, 그래도 두 명의 위대한 지도자와 함께했었습니다. 간디와 만델라입니다. 그들은 살육의 매듭, 인과의 반복된 희생을 끊고 앞으로 나아갈 줄 알았어요. 9·11이 터진 이후 부패한 미국 지도자들이 보여준 모습과는 달랐습니다. 9·11 테러가 일어났을 때 수전 손택은 이런 말을 했어요. 미국 사람들이 참 싫어하는 말인데요. ‘9·11은 매일 모든 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왜 미국 사람들은 자기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죽음에 몰리고 어딘가에서 죽어가고 있어요. 멈춰야 합니다. 달라이 라마는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오직 우리가 용서를 배울 때만이 살육을 멈출 수 있다’고요. 저는 이 말이 늘 가장 가슴에 와 닿습니다. 인류에게 가장 힘든 일이 용서하는 일입니다.

안 = 9·11이 벌어졌을 때 일부 미국인들은 ‘세계인을 향해 그간 저질러온 우리 자신의 탐욕을 사죄할 기회’라고 했습니다. 그 기회를 피의 보복으로 흘려 보냈기에 오히려 미국이 더 고립되었다고 안타까워들 합니다. 사건에 대해 작은 틀에서 대응하기보다는 근원적인 해결과 진전을 위해 나가야 한다는 의미에서 ‘용서’라는 결단의 의미를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만, 제 스스로에게 적용하는 것조차 참 어려운 과제입니다.

아브라모비치 = 사람들은 해결책이 어디 다른 곳에서 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항상 그 상황에 대해 비판을 하죠. 우리 자신을 먼저 돌아보며 보다 적극적으로 ‘좋아, 그럼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갈 수 있는 나의 길은 무엇이지?’라는 식으로 실천 방법을 찾지 않습니다. 그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근원적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비판하기는 쉽지만 각자 무엇을 하겠다는 결심까지 끌어내는 것은 쉽지 않죠. 빵을 굽는 사람이라면 늘 마음을 모아 자기가 만든 빵이 세상에서 파장을 만들고 역할을 하며 퍼져가는 것을 염두에 두고 깨어있는 시간으로 사는 겁니다. 그것이 전사의 모습입니다. 중국사람들은 ‘모든 장대한 전진도 첫 발걸음에서 시작된다’고 했어요. 첫 걸음을 떼야죠. 지구상에 사는 모든 인간이 의식을 깨우는 첫 걸음을 내디딘다면 우리는 다른 상황 속에 있게 될 거예요. 마음가짐을 말하는 겁니다. 뉴욕 모마에서 했던 제 작업에 동참하러 850만명이 모인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곳이 뉴욕이었기 때문이에요. 넌더리 나는 도시라서요. 지하철에서 거리에서 누구도 눈을 마주치지 않죠. 넋은 빼놓고 잰걸음에 휩쓸려 일터로 지하철로 왔다갔다 합니다.

안 = 임신한 여인이 아이를 태운 유모차를 들고 지하철 계단을 내려 가는데도 뉴욕 멋쟁이 신사들이 마라톤하듯 스쳐가더군요.

아브라모비치 = 거기 온 사람 중에서 78명은 제 앞에 21번 이상 앉은 이들입니다. 그들이 그룹을 만들었어요. 매달 저녁을 먹고 우리는 친구가 되었죠. 그리고 잊을 수 없는 한 여인과 아기가 있습니다. 아시아인인데 아기 머리를 포대기로 폭 감싸놓았더군요. 그녀가 저를 바라봤습니다. 아주 많은 고통을 느낄 수 있었어요. 아프고 아프고 아픈 고통이오. 제 안에서도 깊은 슬픔이 치밀어 올라왔습니다. 그녀는 그렇게 앉아있다가 일어나기 전에 아이 머리를 덮은 포대기를 걷어 딸 아이를 제게 보여줬습니다. 아기 머리에 길다란 흉터가 있었습니다. 제 삶 속에서 그런 슬픔은 그날 처음이었어요. 1년이 지나고 모마에서 제 앞에 앉았던 분들의 사진을 모은 책이 나왔습니다. 그녀와 아기 사진도 있었죠. 그녀도 봤나 봅니다. 제게 편지를 썼어요. “그 때 우리 딸은 8개월이었습니다. 뇌종양을 앓고 있었고요. 그날 아침 병원에 갔는데 의사가 이제 항암치료를 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딸이 곧 죽는다고 말했어요.” 네, 그래서 그녀는 병원에서 나와 그날 아침 미술관으로 온 거였어요. 그냥 제 앞에 앉으려구요. 그 어린 아기는 죽었습니다. 올해 그 아기 엄마를 제 다큐멘터리 상영장에서 만났는데요. 행복해보였습니다. 새 생명을 잉태하고 있었습니다.

안 = 저도 모마에 갔었습니다. 캘리포니아에서 밤새 비행기를 타고요. 떠들썩한 보도로만 접했을 때는 먹지도 움직이지도 않고 진행되는 고행을 보여주는 기록경기 같은 퍼포먼스겠지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본 장면은 장엄한 소통이었습니다. 행위예술가가 거울이 되어 관객이 자신을 직시하도록 깊게 마음을 열게 하며 상대의 고통까지 나누는 모습이었어요. 주위에 몰려있는 관객까지 꼼짝 못했습니다. 우리 일상에서 흔한 장면인 의자 두 개를 놓고 마주 앉는 심심한 일이 대단한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아브라모비치 =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준다는 아이디어예요. 상대에게 아무 평가 없이 시간과 관심을 주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영혼을 볼 수 있어요. 오래 앉아있을수록 더 깊은 마음 상태로 들어갑니다. 상대는 내 에너지를 더 많이 느끼게 되지요. 그들과 나의 삶을 진정으로 바꿔내는 경험이었습니다. ‘예술가가 여기 있다’ 프로제트 이후 뇌과학자들과 한 작업이 있습니다. 뇌파를 보여주는 일렉트로엔세파로그라피 캡을 쓰고 한 실험인데요. 마주 앉아 눈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뇌파가 전기가 통하듯 연결됩니다. 낯선 사람일지라도 눈과 눈을 마주하는 것만으로 소통이 이뤄지는 거죠. 우리는 고도 소비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텔레비전은 자꾸 소비하라고 하죠. 사들이고 또 사들이고. 그래서 우리는 단출한 곳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핵심으로 가는 거예요. 삶의 의미는 거기 있어요. 예술은 진실을 말하는 겁니다. 그리고 진실은 단순합니다. 이 단순함으로 돌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 한 모금이면 되는 핵심, 그 속에 군더더기는 없죠.

안 = 그러면서 가득 채워지는 거군요.

아브라모비치 = 네, 개인 각자는 평범한 대중이 아닙니다. 이들은 살아있는 사람들이고. 저는 그들과 연결되어 머무는 겁니다. 모마 퍼포먼스에서 중요했던 건 아주 약한 존재로 제가 마음을 열고 있었다는 것인데, 우리 개개인은 그렇게 연약함을 드러내며 연대를 이뤄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날 수많은 타락한 정치인들과 함께 살고 있기에 우리의 권력을 만들어야 합니다. 서로 연결된 에너지로 정신적 각성을 담아내는 전 지구적인 정치 시스템을 만들어야 해요. 그것은 그냥저냥한 권력이 아니에요. 자신의 내면의 빛으로 세상이라는 망 속에서 움직이는 자신을 비추고 세상을 비추는 깨어있는 권력입니다. 혼이 담기지 않으면 그 권력은 타락합니다. 위험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물질적인 문화를 바꾸는데 노력해야 합니다. 저는 세상의 에너지를 바꾸는데 혼을 다하는 예술가로 살아가겠습니다.

▲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주류 시각 깨는 적극적 행위예술 활동으로 세계 주목


ⓒKnut Bry and Ekebergeparken, Oslo, 2013

ⓒKnut Bry and Ekebergeparken, Oslo, 2013

유고슬라비아 출신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c·68)는 21세기를 대표하는 현대미술가다.

구유고 연방에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빨치산 전사로 유고 건국에 앞장선 국민영웅인 아버지와 미술가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다. 1960년대 유고슬라비아에서 예술가로 두각을 나타냈고 1970년대 들어 유럽 전역으로 활동의 폭을 넓힌 그는 반세기 가까이 기존의 시각을 깨는 적극적 행위예술 활동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는 행위자와 관객의 관계를 탐험해왔고, 그 소통을 통해 물질에 압도당하는 세상에서 생명의 존엄을 자각하도록 관객을 이끌었다. 1997년 베니스 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을 수상했으며 2010년 뉴욕 MoMA 회고전 이후 더욱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그는 오는 6월11일부터 런던 서펜타인 미술관에서 새로운 도전을 한다. 미술관에 있던 모든 예술작품을 치운 뒤 오로지 작가 혼자 미술관 문을 직접 열고 문 닫는 시간까지 관객과 예술을 이야기하며 미술관을 점유하는 행위예술이다. 특히 비싼 가격으로 거래되는 예술품이 진을 치는 도시 런던에서 아브라모비치는 예술의 가치를 투자 상품 혹은 비싼 가격이 아닌 에너지로 바꿔내고자 한다.

작품과 더불어 주요 활동으로 2013년 개관한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학교’(http://www.mai-hudson.org)를 운영한다. 시민들에게 내면의 소리에 귀기울일 수 있는 환경과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설립한 학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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