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조카와 대화하려면 알아두세요

2015.02.18 11:48

경기 시흥에 사는 주부 박모씨(56)는 최근 스마트폰 메신저에서 쓰는 줄임말을 배우는 데 열심이다. 딸에게 ‘심쿵’이란 줄임말과 그에 어울리는 이모티콘을 배우면 하루이틀 사이에 남편과의 채팅창에서 그것을 활용해 대화를 나눠본다. 가족 채팅방에서 ‘꿀잼’, ‘까비’와 같은 단어를 배우고 나면 가끔 친구들과의 공간에서도 이런 말들을 슬쩍 던져보고는 한다. 딸과 비슷한 또래들이 쓰는 유행어를 쓰면 자신도 10·20대가 된 것 느껴진다고 박씨는 17일 말했다.

카카오톡 등 스마트폰 메신저가 활성화되면서 10·20대 사이에 줄임말을 쓰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번 설 연휴에도 어른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많은 단어들이 10대들의 입에서 통통 튕겨져 나올 것이다. 10대들이 쓰는 줄임말에 대해 어느 정도 미리 안다면, 오랜만에 만난 손주나 조카들에게 보다 친근하게 다가가는 한 방법이라고 전문가들은 전했다. 예를 들어, 이번 설에 손주와 기념사진을 찍은 뒤 마음에 들지 않은 사진이 있다면 “이건 그냥 ‘프사’말고 ‘갠소’로 하자”라고 말해보는 것이다. ‘프사’는 스마트폰 메신저에 이름과 함께 뜨는 ‘프로필 사진’의 줄임말이고, ‘갠소’는 공개하지 않고 ‘개인 소장’하자는 의미다.

또 TV에서 방송하는 설 특집 프로그램을 같이 시청하다 쓸 수 있는 줄임말도 있다. 매우 재미있다는 뜻의 ‘꿀잼’, 재미없다는 뜻의 ‘노잼’도 있다. 여기에 강조하는 의미의 ‘핵’을 붙여 ‘핵노잼’이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너무 식상하고 재미가 없을 때는 ‘노답(답이 없다)’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이 같은 줄임말은 그 의미를 대충 짐작은 할 수 있지만, 전혀 이해를 할 수 없는 줄임말도 있다. 예를 들어 탤런트 김혜자씨의 이름을 내건 편의점 즉석식품 이름에서 유래한 ‘혜자푸드’는 가격 대비 내용물이 알찬 음식을 일컫고, 야구 용어에서 따온 ‘사못쓰(4할도 못 치는 쓰레기)’도 있다.

사못쓰에 쓰레기라는 표현이 있듯 줄임말 중에는 다소 불쾌하게 들리는 말도 있다. 최근 15살 중학생 딸을 둔 주부 김모씨(43)는 딸과 함께 TV를 보다가 딸이 메신저를 하는 것을 힐끔 봤다. 딸은 친구와 ‘개이득(큰 이득을 봤다)’ ‘개존잘(매우 잘 생겼다)’ ‘극혐(극도로 혐오)’ 등 봐도 뜻을 알 수 없는 단어들로 대화했다. 김씨는 딸에게 그게 무슨 얘기냐고 물었고, 딸은 궁금해 하는 김씨에게 설명해줬다. 김씨는 “우리 때도 신조어 같은 것을 만들어서 쓰긴 했지만, 요즘 애들이 쓰는 말은 뜻을 유추하기도 힘들다”며 “줄임말을 쓰는 것 자체로 잔소리를 하기는 뭣하지만 그래도 굳이 듣기 싫은 표현을 쓰는 것은 좋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손주·조카와 대화하려면 알아두세요

최근에는 일본어나 자기비하적 내용이 담긴 줄임말도 많이 쓰이고 있다. ‘낫닝겐’은 영어 ‘NOT’와 ‘닝겐(인간의 일본어)’의 합성어로, 아주 멋지거나 훌륭해서 인간이 아닌 듯하다는 의미다. 또 ‘동양인’과 ‘죄송’의 합성어 ‘똥송’이라는 말도 있다. 동양인이라 죄송합니다라는 뜻의 똥송은 자신이 동양인이면서 서양과 비교해 한국이나 아시아를 스스로 낮춰 쓰는 표현이다. 이와 비슷한 센송(조센징의 ‘센’과 ‘죄송’을 합친 말)도 있다.

전문가들은 줄임말을 세대간 격차를 벌이는 부정적인 면도 있지만 긍정적인 면도 있다고 분석했다. 이정복 대구대 교수(국어국문학)는 “사회에서 다양한 계층이 같이 쓰는 게 언어이다 보니 다른 사람에게 공격적으로 다가가는 말이 많은 것도 문제”라면서도 “언어는 의미전달만 하는 게 아니라 교류·재미·오락적 기능도 있다. 유행어나 줄임말을 사용하면 언어생활이 재밌어지고 새로운 말을 만들어내면서 언어 창의성이 늘어나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갈등과 공격을 일으키는 언어는 함께 사용을 자제하는 분위기로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한다”며 “어감은 안 좋지만 ‘개이득’, ‘개꿀잼’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재미를 주니 모든 신조어에 대해 부정적으로 바라볼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이진성 인천대 교수(영어교육학)는 줄임말이 유행하는 것을 ‘현상’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그는 “물론 지금의 줄임말이 세대 간 단절을 보여주긴 하지만 언어는 세대 간 불통의 하나일 뿐 언어 때문에 의사소통을 못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꼭 부정적으로 이런 현상을 바라볼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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