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일찍 낳았다고 핀잔” “남편 있다고 취업 탈락”… 20대 초반에 결혼 ‘어린 부부’가 사는 법

2015.04.26 21:32 입력 2015.04.26 21:54 수정
김원진·김상범·배장현·김서영·고희진 기자

▲ 20대 초반에 서둘러 ‘웨딩마치’
일자리·육아·편견 3중고
수업 중 교수가 애 돌봐주기도

▲ ‘자녀와 친구처럼’ 장점도 많아
“어리다고 책임감 없진 않아”

“자, 이제 사라집니다, 짠!” 지난 19일 오후 4시, 서울 성북구의 한 키즈카페에서 열린 마술 교실. 마술사의 손만 쳐다보는 아이들 사이로 쉴 새 없이 사진을 찍어대는 ‘어린 부부’가 눈에 들어왔다.

올해 스물여섯. 여드름 자국이 채 가시지 않은 남편 김현석씨는 첫째딸 소윤이(7)가 신기해하는 표정을 카메라에 담았다. 이마와 눈가에 잔주름이 잡힌 부모들 사이에서 김씨의 얼굴은 유독 앳돼 보였다. 김씨는 “내가 아이를 일찍 낳았으니 나이 칠십을 먹었을 때는 50년 전 아이 모습이 기억나지 않을까봐 걱정될 때가 있다”며 “그래서 항상 아이 사진을 찍는데, 아이 사진만 1년에 3000장 넘게 찍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혼을 늦게 하는’ 풍조가 국가적 고민거리가 됐지만 김씨처럼 이른 결혼을 택하는 이들도 있다. 갑작스레 들어선 아이 때문에, 한시라도 함께하는 삶을 원해서, 20대 초반에 결혼식을 올린다. ‘사고를 쳤다’는 주변의 편견을 참아내며 여느 부부와 같이 가정이라는 소우주를 꾸린다.

김현석(26)·이미숙(27)씨 부부가 아이들과 함께 결혼사진을 보고 있다. 이들 부부는 두 아이를 낳아 키우다 지난해 결혼식을 올렸다. |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김현석(26)·이미숙(27)씨 부부가 아이들과 함께 결혼사진을 보고 있다. 이들 부부는 두 아이를 낳아 키우다 지난해 결혼식을 올렸다. |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 그들이 ‘일찍’ 결혼한 이유

20대 초반의 어린 신랑·신부들은 갑작스레 들어선 아이 때문에 결혼한 경우가 많다. 3년 전 신부가 된 민서영씨(25·가명)가 그런 사례다.

민씨는 연애 1년차인 21살에 덜컥 아이가 생겼다. 그는 태어날 아이를 뒷받침해줄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지만 결혼을 하기로 결심했다. 민씨는 “잘난 부모가 아니라 아이에게 특별한 걸 해주진 못해요”라며 “엄마, 아빠를 보고 웃으며 아이가 달려오잖아요? 그럼 모든 힘들었던 기억들이 사라져요”라고 말했다.

홍채아씨(23)도 지난해 아이를 가진 뒤 바로 결혼했다. 남편이 대학생이었지만 결혼을 늦추지 않았다. 홍씨는 “우리 둘 다 어렸지만 믿음이 가서 아이를 낳고 결혼을 하게 됐죠”라고 말했다. 홍씨는 요즘 경조사를 꼼꼼히 챙긴다. 홍씨는 “결혼식 때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셨기 때문에 조금씩 갚아나가야 한다”고 했다.

한시라도 떨어져 있기 싫어 서둘러 결혼식을 올린 부부도 있다. 홍원진(25·가명)·고소연(25·가명)씨 부부는 22살부터 고씨 부모님집에서 함께 살며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홍씨는 “특별한 계기는 없었어요. 와이프랑 무엇이든 같이 하면 정말 즐거우니까 놓치기 싫었죠. 양쪽 집안에서 반대도 없었어요. 오히려 장인, 장모님은 인상이 좋다며 반겨주셨어요”라고 말했다. 첫 아이는 지난해 10월 태어났다.

■ “엄마, 아빠가 휴대폰으로 걸그룹 봐”

20대 초반에 결혼한 부부들은 자신들만이 누리는 ‘혜택’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하루 종일 아이와 뒤엉켜 놀아도 체력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점이 첫번째다. 정윤진(30)·박삼영(31)씨 부부는 8년 전 첫째를 가졌다. 이후 3명을 더 낳아 4남매의 부모가 됐다. 정씨는 “우리 부부가 젊다 보니까 아이 네 명하고 주말 하루 종일 놀아도 쌩쌩해요”라고 말했다.

부부가 젊어 나이 차이가 적다 보니 아이와의 소통도 원만하다. 정씨 부부의 첫째 아들 현근이는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현근이는 엄마의 고민 상담사다. 엄마의 이야기를 가만히 앉아 들어주고 나름의 해결방안도 제시해준다. 정씨는 “첫째는 이제 듬직한 남자친구 같다”며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친구이자 끔찍이 신경 써주는 아들”이라고 했다. 정씨는 “현근이는 앞으로 엄마, 아빠랑 함께 살 날이 많아서 좋다고 한다”고 했다.

김현석(26)·이미숙(27)씨 부부는 자녀와 친구처럼 지낸다. 첫째 아이 소윤이는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소윤이는 종종 “아빠가 또 휴대폰으로 젊은 여자 본다. 걸그룹에 아주 눈이 빠졌어”라고 엄마에게 이른다. 술에 취해서 잠든 아빠의 등에 크레파스로 낙서를 한 적도 있다. 이미숙씨는 “아무래도 우리가 젊으니까 아이와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이라며 “한편으론 너무 버릇없어 질까봐 걱정도 된다”고 했다.

이씨 부부는 지난해 뒤늦게 결혼식을 올렸다. 소윤이는 유치원에서 “우리 엄마, 아빠 결혼식 한다”라며 자랑하고 다녔다. 친구들은 “결혼식도 안 했는데 어떻게 네가 태어났니. 거짓말쟁이”라며 놀렸다. 소윤이가 집에 와서 “결혼식 한다는 것을 아무도 안 믿는다”고 억울해하더라며 이씨는 웃었다.

지난해 결혼한 홍채아씨 부부(맨 위)두 아이를 등에 태운 채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김현석·이미숙씨 부부(가운데)만 30살에 4남매의 부모가 된 정윤진·박삼영씨 부부(아래) | 강윤중 기자

지난해 결혼한 홍채아씨 부부(맨 위)두 아이를 등에 태운 채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김현석·이미숙씨 부부(가운데)만 30살에 4남매의 부모가 된 정윤진·박삼영씨 부부(아래) | 강윤중 기자

■ 엄마는 실습하고 아이는 교수와 놀고

그러나 20대 초반의 결혼생활은 즐거움보다는 난관이 많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면 학업을 이어가기 어렵다. 정윤진씨의 경우 대학을 다니며 아이를 낳고 결혼했다. 학부생 시절 정씨는 아이를 종종 학교에 데리고 다녔다. 제과제빵 실습수업이 있던 날엔 담당 교수가 아이 목마를 태워주고 정씨는 빵을 구웠다. 홍성호씨도 지난해 태어난 딸을 키우려고 휴학한 후 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

가장 큰 걸림돌은 돈이다. 20대 초반엔 경제적 자립이 쉽지 않다. 대부분 부모의 지원을 받거나 학업을 중단하고 생업전선에 뛰어든다. 아이가 있는 여성은 취업도 쉽지 않다. 이미숙씨는 사무보조직 이력서만 100개 넘게 썼지만 모두 떨어졌다. 서류심사에서 붙어도 면접에선 꼭 가족사항을 물어봤다. 이씨는 “아이, 남편과 같이 산다고 하면 모두 탈락시키더라고요”라며 “직장을 구하지 못해 우울증을 겪기도 했어요”라고 말했다.

어린 아빠는 ‘군 문제’ 해결이 급선무다. 노상혁씨(21)도 군대문제가 걱정이다. 아이가 있으면 상근예비역으로 근무하며 동사무소에 출퇴근할 수 있다. 문제는 월급이다. 상근예비역에겐 월급 외에 교통비와 식사비용이 나오지만 가족을 부양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노씨는 “상근하기 전에 일을 많이 해서 돈을 모아두려 해요. 그래야 상근할 때 와이프가 고생을 덜할 테니까요”라고 말했다.

이미숙씨는 육아·교육 관련 정보를 구하기 힘든 게 고민이라고 했다. 이씨는 “육아와 자녀 교육은 정보력이 필수”라며 “첫째를 기를 때는 아무것도 몰랐다. 주변 친구들이 다 학생이니 어디서 정보를 들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요즘 이씨는 각종 학부모 모임에 빠지지 않고 참여한다. 좋은 학원이 어디인지, 학급 내 분위기는 어떤지 하나라도 더 알아보기 위해서다. 이씨는 “저는 온통 육아 생각만 하는데 친구들은 연애, 학점 얘기를 하니까 서로 대화가 엇갈리기도 하죠”라고 말했다.

■ 조혼 커플을 보는 사회의 편견

조혼 커플은 주위의 편견과도 맞서야 한다. 홍채아씨는 얼마 전 유모차를 끌고 지하철역 엘리베이터에 탔다가 황당한 경험을 했다. 어르신 한 분이 홍씨의 등을 때리며 “어린 애가 왜 아이를 일찍 낳았느냐”고 핀잔을 준 것이다. 대형마트에서 단기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 만난 아주머니들도 애가 있다고 하자 홍씨에게 꾸중을 했다.

정윤진·박삼영씨 부부는 “주위의 편견을 깨기 위해 더 당차게 산다”고 했다. 정씨는 “남들보다 조금 더 일찍 부모가 되었을 뿐”이라며 “주위의 편견은 어쩔 수 없다. 우린 아이와 가정의 행복을 위해 보란 듯이 더 잘살고 싶다”고 했다. 홍원진·고소연씨 부부도 “어리다고 책임감이 없는 게 아니에요. 나이보다 사람의 됨됨이가 중요하죠. 어려도 책임감만 있다면 남편이자 부모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올해 결혼 2년차인 손희진씨(22·가명)는 요즘 ‘어머니’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고 했다. 손씨는 “장을 볼 때면 할인코너에 가장 먼저 들르고, 덤을 안 주면 안 사게 되는데, 그럴 때 엄마 생각이 많이 난다”고 했다. 손씨는 “엄마가 시장에서 하나라도 더 깎으려 하고 더 챙겨달라고 할 때는 부끄러웠는데, 나도 엄마가 돼 돈을 써보니 그 심정이 이해가 된다. 엄마 되기가 참 쉽지 않다는 걸 느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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