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수학소녀’ 거짓말 논란은 왜 나왔을까

2015.06.10 17:51 입력 2016.02.19 10:47 수정

미국 하버드대와 스탠퍼드대 동시 입학 허가를 받아 ‘천재 수학소녀’로 보도된 토머스제퍼슨 과학고 3학년 김모양의 주장이 상당 부분 사실과 다른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파문이 확산되면서 한국 사회의 비뚤어진 교육열이 ‘학력위조’ 시도를 낳은 것이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그간 김양 관련 보도와 의혹, 논란과 함께 다른 학력 위조 사건을 짚어봅니다. 학벌 사회 문제도 살펴봅니다.

김양의 합격 소식은 지난 3일 국내 언론 보도로 알려지며 화제가 됐습니다. 김양은 지난 5일 CBS <박재홍의 뉴스쇼>에 출연해 스탠퍼드대와 하버드대에 모두 합격했다며 “아마 하버드 졸업장을 받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김양의 아버지는 지난 4일 매일경제 인터뷰에서 “딸아이는 스탠퍼드대에 진학해 1~2년간 연구를 발전시키고, 하버드대에서 2~3년을 더 공부할 예정”이라고 했습니다. 경향신문 손제민 워싱턴 특파원이 확인에 들어갔습니다. 두 대학은 김양이 공개한 합격증은 위조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두 대학 홍보 관계자는 스탠퍼드대에서 수학한 뒤 하버드대에서 공부를 마치고 어느 한 쪽으로부터 졸업장을 받는 프로그램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두 대학 수학과 교수들도 김양의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고 확인했습니다.
(▶[단독] ‘천재 수학소녀’ 하버드 스탠퍼드 합격 사실 아닌 것으로 드러나)

김양의 아버지는 10일 이번 사안에 대해 변호사와 상의해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동안 김양의 아버지는 “워낙 특별한 케이스로 두 대학의 교수들 사이에 논의된 것이어서 오해가 있을 수 있다”고 해명해왔습니다.

학벌사회 한국의 ‘민낯’
이번 사건은 한국에서 전 사회적인 ‘학력 위조’ 논란을 불러일으킨 ‘신정아 게이트’를 떠올리게 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김양의 합격기사가 나오고 지난 9일 올라온 온라인 커뮤니티의 반박글(▶천재 한인 소녀의 사기극)에는 지난 2일 김양의 합격 사실을 처음 전한 미주중앙일보의 객원기자가 사설 대입 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가 미주중앙일보에 교육칼럼을 연재하면서 어학원을 운영하고 있다는 내용도 온라인에서 퍼지고 있네요.(▶김양의 기사를 만든 미주중앙일보 객원기자). 김씨 가족이 대입 컨설턴트를 통해 무리하게 합격 사실을 ‘조작’했다는 의혹도 나옵니다.

[정리뉴스]‘천재 수학소녀’ 거짓말 논란은 왜 나왔을까

2007년 한국에서 ‘허위 학력 파문’을 불러일으킨 신정아 씨도 30대 중반의 나이에 허위 학력을 근거로 대학 교수를 하고,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까지 맡으며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하지만 2007년 7월 학력위조 의혹이 처음 제기되고, 두 달여만에 밑바닥까지 추락했죠.

당시 신정아씨는 서울대 미대 동양화과를 중퇴하고, 미국 캔자스대에서 서양화·판화를 복수 전공해 학사 학위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캔자스대에서 MBA를 취득하고, 예일대에서 미술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고도 했죠. 이런 경력(?)으로 금호미술관, 성곡미술관에서 큐레이터를 지냈고, 2005년에는 동국대 교수로 특채됐습니다.

신씨가 밝힌 학력은 모두 거짓으로 판명이 났죠. 브로커에게 위조 학력을 따낸 사실이 드러난 겁니다. 당시 신씨는 고의 학력위조가 아니라 일종의 브로커를 통해 학위를 좀 더 쉽게 취득했다는 주장을 폈습니다. 결국 동국대는 ‘신씨의 학·석사학위가 가짜’라고 발표하고 교수에서 파면했습니다.

신씨의 허위 학력 의혹 제기로 시작된 사건은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 등 고위인사 연루 의혹이 불거지면서 ‘신정아 게이트’로 번졌습니다. 이 사건은 한 교수의 학위 위조에서 출발, 교수와 고위 공직자의 부적절한 관계, 권력형 비리 의혹, 전 대기업 회장의 비자금 수사로까지 이어지면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신씨는 2009년 4월 법원의 보석 허가로 18개월만에 풀려났습니다. 출소 후 에세이 출간과 방송 출연 등으로 활동 폭을 넓히던 신씨는 지난 5월 8년 만에 큐레이터에 복귀하면서 다시 한 번 화제가 됐죠.

‘학력 위조’ 도미노
신정아씨로부터 시작된 학력위조 파문은 한국 사회의 ‘학력위조자 사냥’으로 이어졌습니다. 파문 이후 3개월여 동안 수많은 유명인사들이 학력을 위조한 사실이 드러난 겁니다. 교수, 연예인 등 많은 사람들이 학력위조 사실을 고백하며 용서를 구했습니다.

당시 유명 영어강사 이지영씨, 건축가 이창하씨, 동숭아트센터 대표 김옥랑씨 등 사회 각지에서 활발한 활동을 한 유명인들이 언급됐습니다. ‘행복 웃음 전도사’로 유명했던 정덕희 전 명지대 사회교육원 교수도 학력 위조 의혹에 휘말렸습니다.

연예인들도 의혹을 피할 순 없었습니다. 당시 명지전문대 교수로 활동하던 배우 장미희씨는 ‘이화여고 졸·홍대 미대 중퇴’ 학력이 가짜로 드러났습니다. 한국외국어대 출신으로 알려졌던 최수종씨는 학력위조 논란에 거짓말 파문까지 겹쳐 마음고생을 했습니다. 상명여대 출신으로 위장하며 후배들에게 특강까지 한 방송인 최화정씨도 입학한 사실조차 없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연극배우 윤석화씨는 홈페이지에 “이화여대에 다니지 않았다”고 고백한 뒤 활동을 잠정 중단했습니다. 또한 만화가 이현세, 영화감독 심형래, 방송인 강석씨 등도 학력 위조 사실이 드러났습니다.(▶학력위조 유명인사 뭐하나…‘자숙’은 없었다)

문화·예술계를 덮쳤던 학력위조 광풍은 종교계까지 덮쳤습니다. 당시 서울 강남구 포이동의 유명 도심사찰 능인선원의 원장 지광스님은 “서울대를 중퇴했다는 것은 거짓”이라고 밝혔습니다.

당시 신정아씨를 시작으로 문화·연예계 인사들의 학력 위조 사실이 잇따라 드러나면서 사회문화적으로 원인을 분석하려는 시도까지 나왔습니다.

[정리뉴스]‘천재 수학소녀’ 거짓말 논란은 왜 나왔을까

그들은 왜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었을까
어째서 사회적으로 능력을 인정받은 사람들조차 학력을 속여야 했을까요. 비난과 함께 자조도 함께 나왔습니다. 한국 사회의 지나친 ‘학력 숭배 풍토’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라는 거죠. 신정아씨도 미술사적 의미를 찾기보다는 언론의 주목을 받는 이벤트성 전시회를 주로 기획했다는 지적은 있었지만, 대중들이 선호하는 전시기획을 잘 소화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학력위조에 연루된 유명인들도 대부분 각자 분야에서 입지를 굳힌 사람들이었습니다.

능력은 학벌과 전혀 상관이 없지만, 학벌이 좋으면 뛰어난 능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맹목적 믿음이 ‘학력 위조’를 불렀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또한 제도적으로 초등학교만 나와도 교수가 될 수 있지만 각 대학들이 인위적으로 권위를 만들기 위해 미국 명문대학 박사를 선호하는 풍토를 만들어왔다는 비판도 있었습니다.(▶문화예술계 이어 종교계까지 ‘학력 위조’… “학벌=능력”)

정진홍 한림대 특임교수는 연쇄 학력 위조 논란 때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황우석 교수 파동, 논문표절, 교수임용 비리 등 사회 전반적인 문제가 학력 왜곡이라는 측면에서 불거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연장선상에서 스탠퍼드대 출신 가수 타블로도 학력위조 논란으로 몇년 동안 마음고생을 하기도 했었죠.

학력위조 파문 당시 동숭아트센터 대표 김옥랑씨 말은 복합적인 여운을 남깁니다. 중학교부터 박사학위까지 학력을 위조한 김씨는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그는 법정에서 재판관이 “정상적으로 박사학위를 받고도 일이 안 풀리는 사람에게 미안하지 않았느냐”고 질문하자 “학력이 아닌 능력 때문에 교수로 임용된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김양은 어떻게 봐야할까요. 아직까지는 미국 명문대학에 복수 합격했다는 사실이 거짓인 것으로만 확인됐습니다. 허언증으로 끝나거나 지나친 교육열에 따른 해프닝일 수도 있습니다. 신정아씨 사건처럼 대입 브로커에 의한 위조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네요.

학벌과 계급피라미드
왜 학력을 위조할까요? 한국사회 구성원이라면 이유를 구체적으로 대진 못하더라도 비슷한 답을 내놓을 것 같습니다. “한국사회는 ‘학력사회’니까” “한국에선 ‘학벌’이 중요하니까”

신정아씨 학력위조 사건 당시 설문조사 결과도 이러한 인식을 보여줍니다. 당시 온라인 취업사이트 사람인이 20~30대 남녀를 대상으로 한 ‘취업이나 성공을 위해 학력 위조를 생각해 본 경험이 있느냐’는 설문결과 19.3%가 ‘있다’라고 답했습니다. 학력을 위조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는 ‘입사지원서를 작성할 때’(33.5%)가 1위로 꼽혔습니다. ‘실력보다 학벌만 높은 사람이 취업이나 승진할 때’(33%), ‘서류전형에서 떨어졌을 때’(17.6%), ‘학력을 위조한 후 성공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6%), ‘최종면접에서 떨어졌을 때’(2.9%), ‘면접볼 때’(1.7%) 순이었습니다. 또한 구직활동을 하면서 학력이나 학벌 때문에 차별을 받은 경험을 묻는 질문에는 66.5%가 ‘있다’고 응답했습니다.

채용 시즌이면 ‘OO기업은 XX대학 밑으로는 서류전형에서 거른다더라’ ‘△△학교 이상이 아니면 시험에 붙어도 고위직까지는 못 올라간다더라’는 얘기부터 특정 대학 몇 곳에 집중된 고시합격자 등 사회생활 곳곳에서 ‘학벌사회’를 실감하게 되기도 합니다.

고려대 총학생회가 지난해 9월 ‘대학평가 거부 운동’을 선언하면서 만든 포스터. 이들은 “마음도 받지 않겠다”며 “대학 순위평가가 대학을 서열화할 수 있다는 마음, 대학을 기업화해도 무방하다는 마음, 모든 대학을 천편일률적인 기준으로 평가해도 된다는 마음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고려대 총학생회가 지난해 9월 ‘대학평가 거부 운동’을 선언하면서 만든 포스터. 이들은 “마음도 받지 않겠다”며 “대학 순위평가가 대학을 서열화할 수 있다는 마음, 대학을 기업화해도 무방하다는 마음, 모든 대학을 천편일률적인 기준으로 평가해도 된다는 마음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마침 한국에서 발행부수가 가장 많은 조선일보도 10일자 신문에서 대학평가순위를 발표했습니다. 중앙일보, 동아일보도 각각의 잣대로 만든 대학평가를 해마다 발표하고 있죠. 언론이 대학순위를 발표하면, 대학들은 결과를 홍보에 이용하고, 기업들은 이 결과를 참고하고, 다시 언론은 사회적 평판을 대학평가에 인용하면서 학벌시스템이 재생산된다고 볼 수도 있을까요. ‘설연고서성한중경외시…’로 이어지는 한국사회의 대학 서열이 프랑스 ‘앙시앵 레짐’을 표현한 계급 피라미드를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성공 사다리’가 끊긴 한국
한국에서 학벌은 ‘개천에서 용이 나는’ 통로였습니다. 집안이 가난해도 열심히 공부하면 성공한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경향신문이 지난해 보도한 기획기사는 ‘돈’이 ‘꿈’을 갈라놓은 한국사회의 현실을 전했습니다.(▶[양극화, 문제는 분배다]상·하 계층 자녀 대학 진학률 24%P 차이… ‘돈’이 ‘꿈’도 갈라놨다)

이 기사에서 강남의 중학교에 다니는 김모군은 외교관 꿈을 이루기 위해 ‘진로 코칭 과외’부터 영어·수학 과외 등으로 한 달에 200만원 이상을 씁니다. 고소득 가정에서는 온갖 사교육을 동원해 대학 진학에 매진하지만, 저소득층 아이들은 부모가 먹고 사는데 바빠 많이 챙겨주지 못하면서 기초학력이 부진한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전북대 반상진 교수와 조영재 박사과정 수료생이 발표한 ‘소득계층별 자녀의 대학진학 격차 분석’ 논문을 보면 소득 최상위(월소득 400만원 초과) 집단 가정의 대학 진학률은 82.6%로 나타났습니다. 반면 소득 하위계층(100만원 이하)의 대학 진학률은 58.3%에 그쳤습니다. 특히 유명대학 진학률에서는 소득 최상위 집단 자녀가 소득 하위 집단 자녀보다 유명 대학 진학률이 17배 이상 높았습니다. 이러한 학력 차이는 결과적으로 일자리와 임금 격차로 이어집니다. 2012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1년 미만 경력 대졸 이상 취업자 임금은 220만3662원으로 고졸 출신 임금(149만8142원)보다 47% 많았습니다. 학력 격차가 소득 격차를 가져오고 소득격차가 다시 자녀의 학력 격차를 불러오는 악순환이 계속됩니다.

[정리뉴스]‘천재 수학소녀’ 거짓말 논란은 왜 나왔을까

지난 4월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도 ‘부모 재력=자녀 학벌’이라는 연구보고서가 나왔습니다. 부모의 경제력에 따른 교육 격차가 커지면서 교육이 계층 간 대물림 현상을 심화시키고 있다는 겁니다. 김희삼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은 ‘세대 간 계층 이동성과 교육의 역할’ 보고서에서 “교육이 계층 이동을 가능케 하는 사다리보다는 대물림의 통로로 인식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 보고서에서는 교육이 계층 간 대물림 현상을 심화시키면서 ‘노력의 보상’에 대한 비관론도 확산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성공·출세하려면 ‘성실성과 노력’이 중요하다는 답변은 2006년 41.3%에서 2010년 29.7%로 줄고, ‘학벌과 연줄’이 중요하다는 답변이 같은 기간 33.8%에서 48.1%로 증가했다는 겁니다.(▶부모 재력 = 자녀 학벌 ‘성공 사다리’ 끊긴 한국)

현재 거짓말에 대한 공분 외에도 한국사회의 구조적 병폐가 또다시 드러났다는 비판도 함께 나옵니다. ‘김양은 왜 그랬을까’라는 배경에 대한 질문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거기에 ‘학력사회’ 한국의 민낯이 있습니다.

2007년 윤석화씨가 ‘가짜 학력’을 고백할 당시 문화계 인사들의 발언은 생각거리를 던집니다. 당시 실력으로 검증받은 사람조차 학력을 속여야 하는 한국 사회의 지나친 학력 숭배 풍토에 대한 안타까운 토로입니다.

원로급 연출가 임영웅씨의 말입니다. “우리 사회가 사람의 능력을 평가하는데 너무 학위 등의 외형에만 집착하다 보니 이런 일이 벌어졌다. 배우가 연기만 잘하면 됐지 학력이 무슨 상관이냐”

연극배우 손숙씨의 말입니다. “윤씨가 더 일찍 바로잡지 못한 건 잘못이지만 졸업증명서에 연연하는 분위기가 더 문제다. 우리나라 대학은 현장에서 40~50년 경력을 쌓은 예술가들에게도 강단에 설 수 있는 자격으로 학위를 우선적으로 요구한다.”

‘학벌없는 사회 만들기’ 대표를 맡고 있던 홍세화씨의 말입니다. “학력을 속인 잘못은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학벌 중심 구도로 개인을 억압하고 있는 사회구조 자체의 혁신이 훨씬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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