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입원 무상진료가 가능하려면

2016.09.25 21:02 입력 2016.09.25 21:04 수정
이진석 | 서울대 의대 교수

지난 한 해 동안 각종 질병으로 목숨을 잃은 아동·청소년의 수가 2000여 명에 이른다. 매년 태어나는 아이들 200명 중의 1명은 성인이 되기 전에 각종 질병으로 사망하는 셈이다. 사고까지 포함하면, 140명 중의 1명은 성인이 되기 전에 목숨을 잃는다. 아이를 잃은 가족의 고통은 말할 것도 없고, 한 명이 아쉬운 우리나라 처지에 비춰볼 때도 무시 못 할 규모이다. 저출산 문제 해결의 출발은 아이를 많이 낳는 것이다.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있는 여건 조성의 중요성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이미 태어난 아이가 건강하게 잘 자랄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것도 간과할 수 없다. 애써 얻은 아이가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해 목숨을 잃거나 심각한 장애를 가지게 된다면, 국가 차원에서는 그만큼의 저출산 대책 성과가 상쇄되는 것이다.

[정동칼럼]어린이 입원 무상진료가 가능하려면

이런 맥락에서 최근 정치권 일부와 시민사회의 ‘어린이 입원 무상진료’ 요구는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 정책을 넘어서는 의미를 가진다. 저출산 문제에 대응하는 인구정책의 일환이기도 하다. 정의당 윤소하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의 비용추계 결과에 따르면, 15세 이하 어린이의 입원 진료를 무상으로 제공하는데 연간 5000억원이 소요된다. 적지 않은 액수이지만, 가치가 높은 투자이고, 현재의 건강보험이 감당하지 못할 만큼의 재정 규모도 아니다. 입원 진료를 받은 어린이들에게 연간 1인당 50만원의 혜택을 더 주는 수준이다.

일각에서는 입원 무상진료를 시행하면, 공급자와 이용자양측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겨서 불필요한 입원의료가 급증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가격 장벽이 낮춰지면, 당연히 이용량이 늘어난다.

그러나 호들갑을 떨 정도는 아니다. 공짜라고 해서 멀쩡한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고 병원에 입원시키고, 생계를 접은 채 병실에서 불편한 쪽잠을 자처할 부모는 없다. 2006년부터 2년 동안 6세 미만 영·유아의 입원진료비 중 법정본인부담금을 면제했던 적이 있었는데, 이 기간에 영·유아의 입원의료 증가율은 전체 인구의 그것과 별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취지가 타당하고, 재정적 여력이 있더라도, 기술적 실행 가능성이 담보되지 않으면, 그 정책은 액면 그대로 실현되기 힘들다. 아쉽게도 ‘어린이 입원 무상진료’가 여기에 해당한다. ‘어린이 입원 무상진료’는 입원의료의 본인부담금을 전액 면제한다는 것이다. 의료이용을 하면서 환자가 내는 본인부담금은 법정본인부담금과 비급여본인부담금을 합친 금액이다. 법정본인부담은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서비스 항목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해당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대상자, 서비스 횟수 기준까지 모두 정해져 있다. 불필요한 과잉진료의 여지가 적고, 추후 관리도 가능하다.

문제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서 환자 본인이 전액을 부담해야 하는 비급여본인부담이다. 선진국에서는 환자 진료에 필요한 대부분의 서비스 항목에 건강보험을 적용한다. 선진국 건강보험에서도 비급여 항목은 있다. 환자 진료에 필수적이지 않고, 환자의 편의나 선호에 좌우되는 항목들로 매우 제한적이다. 이 비용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환자 본인이 전액을 부담한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의 비급여 항목은 매우 광범위하다. 건강보험을 적용해 줄 필요가 없는 것도 많지만, 환자 진료에 필수적인 것도 부지기수이다. 이런 이질적인 서비스 항목들이 한데 뒤엉켜 환자에게 제공되고 있다. 정해진 기준이 없기 때문에 오남용의 여지도 크다.

비급여본인부담을 면제하려면, 이렇게 뒤엉켜 있는 비급여 항목들 중에서 필수적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하나하나 발라내야 한다. 환자의 임상 상태에 따라 판단이 달라지기 때문에 일률적인 기준을 적용하기도 힘들고, 의사가 아닌 행정인력이 감당할 수도 없는 일이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어린이 입원 무상진료’가 가능하려면, 비급여 문제가 해결돼야 하고, 여기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된다. 취지는 살리되, 실행 가능한 현실적 대안이 강구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사망률이 높거나, 1인당 비용 부담이 큰 질병에 국한해서 우선적으로 시행하는 것이 그 예이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다양한 진보적 의제들이 거론되고 있다. 이런 움직임이 결실을 맺어, 국민에게 삶의 희망을 줄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실행 가능성을 잘 뜯어봐야 한다. 자칫하면, 가뜩이나 무책임하고 무능한 정부 탓에 지칠 대로 지친 국민에게 삶의 희망이 아니라, 냉소와 불신만 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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