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의동의 사람·사이-소설가 장강명

“남 모멸감 주기 쉬운 언어 체계…질문 용납않는 헬조선 만들어”

2017.02.10 21:13 입력 2017.02.10 21:14 수정

소설가 장강명이 지난 6일 경향신문 편집국 회의실에서 인터뷰 도중 웃고 있다. 그는 “일본의 사회파 소설가 겸 논픽션 작가로 당대 현실을 소재로 왕성한 창작활동을 한 마쓰모토 세이초를 닮고 싶다”고 말했다. 박민규 선임기자 parkyu@kyunghyang.com

소설가 장강명이 지난 6일 경향신문 편집국 회의실에서 인터뷰 도중 웃고 있다. 그는 “일본의 사회파 소설가 겸 논픽션 작가로 당대 현실을 소재로 왕성한 창작활동을 한 마쓰모토 세이초를 닮고 싶다”고 말했다. 박민규 선임기자 parkyu@kyunghyang.com

신문사를 그만둔 지 3년이 넘었지만 소설가 장강명(42)은 아직 ‘취재모드’다.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단편을 쓰려고 낯모르는 학생들에게 페이스북 메신저로 약속을 잡는다. 문학 공모전에 관한 논픽션을 준비하면서는 대학 문예창작과 학생 수백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도 했다. 팩트를 찾아 현상과 본질을 그려내고, 메시지를 담으려 애쓰는 자를 기자(記者)라고 정의한다면 그는 여전히 그리 불려야 할 것 같다.

동아일보에 다니던 2011년 청년 집단자살을 그린 장편소설 <표백>으로 한겨레문학상을 받아 등단한 장강명은 매일 아침 부엌 탁자에서 스톱워치를 켜놓고 글쓰는 생활을 7년째 지키고 있다. 지난 한 해 2400시간, 올 들어 지난 6일까지는 264시간을 썼다. 설 연휴와 주말을 빼면 하루에 11.5시간꼴이다.

<댓글부대> <한국이 싫어서>에서 ‘헬조선’의 청년들을 그려 이 세대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다. 지난해 11월 출간한 <우리의 소원은 전쟁>은 북한 정권 붕괴 이후 황해도에서 마약 밀수출을 놓고 벌어지는 배신과 복수를 그린 액션 드라마다. ‘북한 붕괴의 가장 밝고 이상적인 시나리오’를 전제로 했지만 소설 속 북한은 또 다른 ‘헬조선’이다.

지난 6일 경향신문 편집국에서 장강명을 만나 소설과 논픽션, 언어와 소통, 공채제도와 청년문제를 놓고 이야기를 나눴다. 방금 막 웃고 난 것 같은 눈매가 겸손·싹싹함을 풍기는 인상이지만 사회를 보는 시선은 날카롭고 직선적이었다. 장강명은 “한국은 질문을 용납하지 않는 사회여서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이 힘들다”며 “모멸감을 주기 딱 좋은 한국어의 특성이 자유로운 소통을 막는 데다 공채 기반의 신분질서도 이를 강화시킨다”고 지적했다.

질문하기 어려운 사회다 보니 담론시장도 형이상학적 비평이 넘쳐나는 반면 현장에 주목해 해법을 찾는 ‘글쓰기’가 부족하다고 했다. 장강명은 “한국 사회의 스트레스가 혁명, 전쟁이나 유혈사태 직전의 상태인 것 같다”면서도 “카카오택시가 여성들의 밤길 택시공포를 해소한 것처럼 의외로 조그만 기획이 모이면 사회를 그나마 조금 바꿀 수 있지 않을까”라고도 했다. 최근 논픽션에 공을 들이는 것도 현장에서 답을 찾아내려는 시도로 보인다.

[서의동의 사람·사이-소설가 장강명]“남 모멸감 주기 쉬운 언어 체계…질문 용납않는 헬조선 만들어”

■ 한국의 ‘글쓰기’는 진단과 비평과잉

- 올 들어 오늘(6일)까지 몇 시간이나 글을 썼나.

“264시간이다. 매일 8시간을 채우지는 않지만 ‘필 받으면’ 10~11시간 쓸 때도 있다. 내내 자판을 두드리고 있지는 않고 멍하니 창밖을 보거나 집 안을 청소하는 시간도 포함된 거다. 취재하거나 강연하는 시간, 인터넷 하는 시간은 뺀다.”

- 글을 쓰기 위해 취재도 많이 다닌다고 들었다.

“기자 때 취재원이 의외로 폭이 좁고 소설 쓸 때 큰 도움은 안되더라. 고교 시절을 테마로 한 단편 ‘다행히 졸업’을 작가들과 협업했는데 1년 전 급식비리 사태를 쓰기 위해 고교생들을 만났다. 이미 시간이 좀 흘렀고 익명으로 실릴 거라고 하면 부담 없이 이야기해준다. 기자할 때는 세상을 많이 보고 다닌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가 않더라.”

- 장 작가의 소설은 가끔 ‘르포르타주’ 같은 느낌을 받는다. 한국은 르포문학이 활성화돼 있지 않다.

“일본 작가 중에서는 체르노빌 현장 르포를 하는 이들도 있다. 미국도 르포, 평전, 논픽션 시장이 활성화돼 있다. (논픽션 대가인) 말콤 글래드웰류의, 르포도 분석도 섞인 책들이 많다. 학교(신문사)에서 10년간 하드 트레이닝을 받았으니 도전해 보고 싶다.” 장강명은 민음사의 격월간 문예지 ‘리터’에 문학 공모전에 관한 논픽션을 연재하고 있다.

장강명은 한국 사회의 글쓰기에 대해 “현장에 천착한 글이 별로 없다”고 했다. “문화비평이나 사회비평은 예리하고 표현도 절묘하지만 문제는 (현장이 아닌) 텍스트를 보고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정도 분석이 가능하다면 현장을 가서 사람들을 만나든가 (취재)하면 얼마나 좋을까. 아쉬움이 있다.”

- 왜 현장 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가.

“두 가지일 거다. 우리 교육은 정전(正典)을 빨리 소화하는 방식, 텍스트 기반의 교육이다. 반면 미국은 학생들이 발표를 위해 리서치를 한다. 하찮은 내용이라도 현장에서 자기 손발과 눈으로 뭔가를 꾸려낸다. 텍스트를 직접 만들어내는 훈련이다. 또 하나는 청년이 명함 없이 어디 가서 질문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린애가 감히 나한테 물어보겠다고’라는 식으로 질문을 비판이나 공격으로 본다. 같은 거 다시 물어보면 화내고. 질문이 조금만 삐끗해도 건방지다는 말을 듣게 되고.”

- 호칭이나 존댓말을 보면 소통하기 어려운 구조인 것 같다.

“한국 사회의 단점 중에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이 안되는 문제도 있는 거 같다. 조직 내에서도 윗사람에게 편히 물어볼 수가 없다. ‘사장님 외람된 말씀이지만’ 이런 걸 서너 번 해야 할 말을 할 수 있다. 보통 사람들은 그걸 못하니 수첩에 받아 적기만 한다.”

-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이 안되고 그래서 현장형 글쓰기가 안되는 것의 부작용은 뭔가.

“한국의 담론시장에 진단이나 분석·비평이 많은데 그것의 부정적 측면은 매사에 굉장히 근원적이고 추상적인 접근을 하게 된다는 거다. 어디서 교통사고가 많이 난다고 하자. 물질문명과 속도 중시의 문화를 지적하는 칼럼은 많지만 교통사고 줄이는 데 도움이 안된다. 횡단보도 내고 신호등 세우는 게 가장 효과적인 해결책이다.”

- 담론 과잉인 반면 액션 플랜은 실사구시적이지 않다는 거네.

“대한민국에 2~3년에 한 번씩 전 국민이 경악할 사고가 일어난다. 갑질문화가 심해지면 ‘땅콩 회항’이 터진다. 그게 관심을 확 끌면서 에너지가 분출하지만 결국은 현실과 동떨어진 해결책이 나온다. 논자들은 안방에 앉아 ‘정부가 해결하라’고 채근하고, 그럼 공무원들이 부랴부랴 대책을 내놓지만 각론을 뜯어보면 몇 년 전 내놨던 거를 재활용하는 수준이다.”

- 해결책을 내놓고 나서도 위기가 지나면 잊어버린다.

“잊어버리는 수준이 아니라 해결책이 심각한 비효율을 일으키고 손발을 옥죄는 단계가 되고 있다. 한국의 적폐는 손발 없는 탁상공론과 조급주의 때문에 쌓인다. 우리가 빨리 엉성하게 만드는 걸 아주 잘하고 그걸 빨리 무너뜨리는 것도 잘하는 거 같다.”

■ 한국어 콘텐츠는 공급부족 상태

- 한국은 소설가에게 어떤 토양인가.

“한국어가 번역하기 어렵고 사용 인구가 적은 게 단점인 반면 작가를 우대하는 풍토여서 강연이나 기고 같은 2차 시장이 꽤 크다. 또 자국 영화나 드라마가 영향력이 있는 나라가 많지 않은데 한국은 1000만명이 보는 영화가 있고 드라마는 해외 수출도 한다. 일본 소설이 원작인 한국 드라마가 나오는 걸 보면 한국 소설이 콘텐츠 수요를 충족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한국어 콘텐츠를 사줄 물주들이 있는 거다. 작가 지망생들에게 ‘소설가 할 생각마라’는 이들이 있지만 그 정도는 아니다. 소설가 대신 카페, 치킨집 차리면 성공할까. 자릿값만 많이 들고 망할 확률이 더 크지 않나.”

- <우리의 소원은 전쟁>의 미덕은 통일 이후의 가상도를 독자들이 체험토록 했다는 데 있다. 가장 온건한 통일방식인데도 북한의 이라크화는 피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더라.

“‘한반도의 급변사태는 재앙’임을 보여주고 싶었다. 북한이 붕괴된다고 자유민주한반도공화국이 생기고 국내총생산이 올라가고 하는 게 절대 아니다. 뭐가 됐든 외환위기 몇 배의 충격이 올 것이고, 그 피해는 약자가 고스란히 받게 된다. 갑작스러운 흡수통일이 좋지 않다는 인식에는 대체로들 동의하지만 ‘북한 붕괴’라면 ‘긴가민가’하는데 ‘그것도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었다.”

- 또 어떤 테마에 관심이 있나.

“내 도덕의식과 충돌하는 현상을 볼 때 흥미를 느낀다. 서바이벌 방식으로 아이돌 선발하는 방송 프로그램을 보면 10대 애들에게 ‘애교부려라, 춤춰라’ 해서 떨어뜨리고 그걸 즐긴다. 연예기획사와 방송국, 청취자 전 국민이 합심해 아이들을 착취하고 있는 거다. 몇 해 전에 걸그룹이 행사 뛰다 교통사고로 죽었는데 건설현장에서 안전모 없이 일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이런 프로그램의 뒷면을 소설로 쓰면 또 다른 각도로 보일 것이고, 메시지를 담을 수 있을 거 같다.”

■ 한국 사회 각론에 천착해야

장강명은 ‘모든 사람에게 존댓말 쓰기’ 운동을 한다고 했다. “사람들 간에 대등한 대화가 이뤄지지 않고, 상호존중 문화가 정착되지 않는 데는 존대-반말 체계의 탓이 크다. 그래서 몇 년 전부터 새로 만나게 되는 사람들에게는 존댓말을 쓰고 있다.”

- 공모전에 왜 관심을 갖게 됐나.

“한국의 공채문화를 들여다보고 싶었다. 공모전, 공채, 대학입시 다 마찬가지다. 시험 결과가 사회적 신분이 된다. 이상한 것이 졸업에는 신경을 안 쓴다. 서울대 중퇴를 해도 서울대 출신으로 인정하고, 다른 대학 다니다 연세대 편입하면 그것은 인정 안 한다.”

- 논픽션 쓰려면 취재도 필요할 텐데.

“삼성 필기시험 보는 날 현장 르포도 가고, 취업 컨설턴트 인터뷰도 했다. 요즘은 중간 순위 그룹의 입사 1~2년차들도 삼성으로 재입사하려고 시험 본다더라. 처음에 어디 들어갔느냐가 평생을 좌우한다. 사위·며느리를 고를 때 내 자식을 얼마나 행복하게 해줄 거냐가 아니라 ‘19세 때 수능 성적이 몇 점이었는지’가 더 중요한 거다.”

- 심각한 문제다.

“공채는 타국의 성장경로를 따라가는 시대엔 유용한 인재채용 전략이었다. 당시엔 제너럴리스트가 필요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창발적 혁신을 일으키는 저커버그나 잡스가 필요하다. 자동차 만들어 파는 현대차 공채시험에 역사 문제가 나오는데 그렇게 뽑힌 사원들 중에 저커버그나 잡스는 없을 거다. 미래 이끌 엘리트는 ‘괴짜’인데 공채로는 절대 못 뽑는다.”

- 공채제도와 함께 언어도 ‘헬조선’을 만드는 것 같다.

“공채가 사람에게 딱지를 붙이고, 그 딱지가 수평적인 대화를 가로막는다. 한국어의 문제는 경어가 아니라 반말에 있다. 남에게 상처주고 나보다 낮은 사람에게 효과적으로 모멸감을 주는 언어다. 거래 대금 깎는 것보다 대기업의 어린 대리가 반말하는 게 더 아플지 모른다. 나이·신분과 상관없이 상호존중하는 사회에 우리의 언어관습이 맞지 않는다.”

- <한국이 싫어서>는 ‘탈조선’하는 이야기인데, 사회가 청년에게 줄 수 있는 모범답안이 없다고 어디선가 이야기한 것 같다.

“근데 한국만의 문제는 아닌 듯하다. 트럼프나 유럽 극우파의 득세도 결국 기존 시스템에 좌절하면서도 해법이 안 보이기 때문인 것 같다. 매우 복잡하고, 모든 것들이 톱니처럼 맞물려 있어서 변화가 어렵다. 그래서 무력해지고 단순한 구호에 혹하게 된다.”

- 뭔가 기존 시스템과의 단절 같은 비상한 조치가 없는 한 개선은 어렵지 않을까.

“낙관주의일지 모르지만 조그만 기획들이 많이 합쳐지면 조금 바뀌지 않을까 생각도 한다. 여성들이 택시 타기 두려워하는데 카카오택시라는 안심이 되는 솔루션이 생기며 은근히 쉽게 해결됐다. 국회의원과 대통령 임기만 같아져도 선거를 한번에 몰아 치르고 나머지 기간에 일하도록 할 수 있다. 그렇게 작지만 바꿔서 효과를 보는 게 꽤 있을 수 있다. 추상적인 거대담론과 현장의 사이 어딘가에 있는 각론에 주목해야 한다.”

- 존경하는 소설가는 누구인가.

“일본 작가 마쓰모토 세이초(松本淸張)다. 저널리스트이자 사회파 소설가·논픽션 작가였고, 당대 현실을 소재로 재미있는 작품을 많이 냈다.”

- 책을 얼마나 읽나.

“1주일에 2~3권 정도 읽는다. 지하철에서 읽고 엘리베이터에서 읽는 분량도 꽤 된다.”

- 작가 외 다른 일을 할 생각도 있나.

“아니, 작가를 계속 하고 싶다. 소설뿐 아니라 논픽션도 쓰고 싶다. (시대의 기록자 같은 역할을 하겠다는 뜻인가.) 너무 거창하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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