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의 그물망 위에 세우는 복지국가

2017.03.21 22:09 입력 2017.03.21 22:51 수정
양난주 | 대구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어쩌면 ‘독립적인 인간’이 허구인지도 모른다. 태어나면서부터 누군가의 보살핌이 없으면 생존조차 불가능한 게 인간이다.

[전문가 기고 ]돌봄의 그물망 위에 세우는 복지국가

서로 기대고 위로하고 도와가며 살아가는 게 어디 노인만인가. 우리는 삶의 굴곡을 만날 때마다 가까운 또 낯선 사람들의 보살핌을 받는다. 그랬기에 아이가 어른이 되고, 몸과 마음의 질병을 안고도 살아갈 수 있으며 쇠약해진 상태에서 일상을 유지할 수 있다. 그렇게 돌봄은 우리 생애 전반에 걸쳐 이루어진다.

누군가를 돌보고 돌봄을 받는 일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온전한 시민은 독립적이며 단지 소수의 의존적인 사람들에게 돌봄이 필요한 것이라고 가르쳐왔다. 돌봄을 수행하는 사람도 돌봄을 받는 사람도 온전한 시민으로 대접받지 못해왔다. 노동하고 세금을 납부하는 시민을 키워내고, 돌보며, 밥상을 차리고, 병간호를 해온 사람과 그 돌봄노동은 인정되지 않았다. 이를 미국의 경제학자 낸시 폴브레는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의존하고 있는, 돌봄이라는 ‘보이지 않는 가슴’이라고 불렀다.

그 돌봄을 가족이 전담하던 시절은 끝났다. 이제 성인의 상당수는 고등교육을 받고 경제활동을 한다. 2015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여성의 대학진학률이 74.6%로 67.3%인 남성보다 높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70%의 경제활동참가율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는 남성에 비해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51.8%에 머물고 있지만 고등교육을 받은 남녀 모두 경제활동참여를 기대하고 기대받는다.

모든 가족 안에 돌봄을 전담하는 누군가가 언제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현실과 맞지 않는다. 가족관계와 가족구성은 끊임없이 변한다.

통계청의 가구추계 자료에 의하면 2017년 우리 사회에서 부부와 자녀로 이루어진 가구는 전체의 31%로 절반도 되지 않는다. 약 28%를 차지하고 있는 1인 가구와 큰 차이가 없다. 이 단독가구의 3분의 1은 65세 이상 노인이다. 부부가구는 전체의 약 18%인데 이 가운데 40%는 노인부부가구다. 이제 가족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가족 외부에서 지원이 필요한 형국이다.

돌봄의 사회화는 이러한 인구사회적 변화, 가족의 변화를 반영하여 사회정책으로 추진되었다.

보육제도와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장애인활동지원제도 등 돌봄의 제도화는 가족이 전담했던 사적 돌봄을 공적인 돌봄노동으로 전환한 것이었다. 정부는 사회서비스 시장을 만들어 공급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공적 재정으로 운영되는 보육과 요양 등 사회서비스정책에서 돌봄서비스 판매와 수익추구가 합법적으로 보장되었다. 정부의 지원금이 고정되어 있기에 돌봄의 가치를 낮게 보상할수록 민간공급자의 수익은 높아진다. 돌봄의 가격을 낮추는 경쟁시장에서 각종 안전사고가 터져나왔고 정부의 뒤늦은 규제는 큰 힘을 발휘하기 어려웠다.

가족이 돌봄을 전적으로 도맡는 것이 불가능하듯이, 사회서비스 제도가 돌봄을 대신하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돌봄의 사회화는 정부와 기업, 시민사회, 그리고 가족과 개인이 돌봄의 그물망을 같이 짜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만의 아이를 키우고, 자신만의 부모를 모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미래 세대를 건강히 키우고, 우리 사회의 쇠약해진 노후를 각자의 몫으로 돌리지 말아야 한다.

연대에 기초한 사회적 돌봄은 부모 사랑, 자녀 효도를 칭송하듯이 보육과 요양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을 존중하고 보상하는 방식으로 드러나야 한다. 직업으로 돌봄을 선택한 사람들이 건강하게 살 수 있고 자신의 아이와 부모를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을 보장해주어야 한다. 경제활동을 하는 남녀 시민들도 아이와 부모, 친지, 이웃을 돌보며 일할 수 있도록 문화와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

이렇게 돌봄의 그물망을 짜고 그 위에 수립된 복지국가만이 우리에게 숨돌리며 살 수 있는 여유를 보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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