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정부, 대북지원 첫발 “시기·규모 남북 상황 고려”

2017.09.21 21:58 입력 2017.09.21 22:02 수정

“유니세프·세계식량계획 등 통해 800만달러 공여”

인도지원 원칙론과 모순

정부는 21일 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과 세계식량계획(WFP) 등 국제기구를 통해 북한의 영·유아와 임산부 등 취약계층을 돕는 사업에 800만달러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다만 실제 지원 시기와 규모에 대해서는 남북관계 상황 등을 고려해 결정하기로 했다. 최근 북한이 잇따라 핵실험과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면서 악화된 국내외 여론을 고려해 실제 지원 시기는 탄력적으로 접근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조명균 통일부 장관 주재로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교추협)를 열고 유니세프와 WFP에 남북협력기금에서 800만달러를 지원하는 방안을 심의·의결했다.

유니세프의 북한 아동 및 임산부 보건의료·영양실조 치료 등 지원사업에 350만달러, WFP의 북한 탁아시설·소아병동 아동 및 임산부 대상 영양강화식품 지원사업에 450만달러를 지원키로 했다.

이번 결정은 ‘대북 인도적 지원은 정치적 상황과 분리해 추진한다’는 정부 기본 입장에 따른 것이라고 통일부는 설명했다. 조 장관은 회의 모두발언에서 “북한 정권에 대한 제재와 북한 주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은 분리 대처해 나간다는 것이 국제사회가 공유하고 있는 보편적 원칙이자 가치”라고 말했다. 두 기구는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각각 정부에 공여를 요청한 바 있다.

통일부는 그러나 “실제 지원 시기와 규모는 남북관계 상황 등 전반적인 여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서 추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 방침은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지난 19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앤서니 레이크 유니세프 총재를 만났을 때 밝힌 내용과 궤를 같이한다.

강 장관은 “남북관계와 북한 핵·미사일 도발 등 제반 상황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시기 등 관련 사항을 판단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의 ‘인도적 지원과 정치적 상황 분리’라는 원칙론과 ‘남북관계 상황 감안’이라는 상황론은 모순된다는 지적도 있다. 정부가 지난주 유니세프·WFP에 대한 공여를 추진한다고 밝히면서 북한 취약계층이 처한 열악한 상황을 들어 지원의 ‘시급성’을 강조한 마당에 ‘시기를 조절하겠다’는 정부 입장은 논리적 모순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가 이런 입장을 취한 것은 국내외 반발 여론을 의식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통일부 당국자는 “대북 인도적 지원에 대해 많은 국민적 관심과 우려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했다.

관심사는 지원이 실제 언제 이뤄질 것이냐에 맞춰지게 됐다. 예년 사례를 보면 정부가 국제기구에 공여를 결정하더라도 실제 집행이 이뤄지려면 한두 달 실무협의를 거치는 경우가 많다고 통일부는 설명하고 있다. 결국 이번 결정은 박근혜 정부 시절 완전히 중단됐던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재개하기 위한 첫 단추를 끼운 것이고 실제 집행까지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있음을 정부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이번 지원사업은 문재인 정부 들어 첫 대북지원이다. 국제기구를 통한 대북지원은 2015년 12월 유엔인구기금의 ‘사회경제인구 및 건강조사 사업’에 80만달러를 지원한 게 마지막이며, 지난해 1월 북한 4차 핵실험 이후 중단됐다.

박근혜 정부도 ‘인도적 지원은 정치적 상황과 관계없이 추진한다’고 했지만 4차 핵실험 이후 ‘지원 규모와 시기 등은 종합적으로 고려해 검토해 나간다’는 단서를 달아 지원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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