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왕가의 예술혼 품고 서민 곁으로…평등과 조화, 순백에서 꽃피다

2017.11.24 21:10 입력 2017.11.24 21:34 수정
김동훈 서양고전학자

로얄코펜하겐

1860년대 제작된 로얄코펜하겐 자기.

1860년대 제작된 로얄코펜하겐 자기.

브랜드는 천지인(天地人)의 조화다.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이 대등하게 어우러져 은은한 빛으로 둥글게 남는 것. 인간 사이만이 아니라 하늘과 땅까지도 인간과 대등한 경지. 로얄코펜하겐은 우리 마음에 잔영으로 남는 백자, 시간과 공간을 빨아들이고 토해내는 음영을 선물한다.

■ 시공간을 빨아들이고 토해내는 백자

1991년 아프리카 케이프타운 앞바다, 1690년대에 침몰된 난파선이 발견됐다. 네덜란드 상선 우스터랜드호. 빛도 들지 않는 해저 깊은 곳 난파선 안에는 윤광을 드러내는 게 있었다. 중국에서 만든 청화백자. 흰바탕 자기 그릇에 푸른색 코발트 문양. 13세기 초 마르코 폴로는 <동방견문록>에서 이것을 ‘포르셀라(porcella)’라 소개했다. 라틴어인 이 단어는 ‘작은 돼지’ 또는 ‘조개’라는 뜻으로, 백자 표면이 돼지 등이나 조개 내부처럼 반질반질해서 붙여진 이름. 백자는 이후 ‘포슬린(Porcelain)’이라 불리며 중국 열풍의 주역이 된다. 유럽인들이 백자에 완전히 매료된 데는 이유가 있었을 것. 다음의 시로 그 이유를 짐작해 보자.

조명도 없고, 울림도 없는

방이었다

이곳에 단 하나의 백자가 있다는 것을

비로소 나는 알았다

그것은 하얗고,

그것은 둥글다

빛나는 것처럼

아니 빛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있었다

(…)

점층적으로 사라지게 되면서

믿을 수 없는 일은

여전히 백자로 남아있는 그 마음

(…)

여름이 지나가면서 나는 사라졌다

빛나는 것처럼

빛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황인찬, ‘단 하나의 백자가 있는 방’에서)

화자는 불 꺼진 방에 우연히 들어갔다. 어둠과 침묵의 방, 윤광이 천천히 드러나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마치 카메라 줌을 확 끌어당긴 듯 백자가 시선 중앙에 들어왔다. “빛나는 것처럼/ 아니 빛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백자는 거기에 그렇게 있었다. 백자가 천천히 빛을 빨아들인 상태라 “조명도 없고, 울림도 없는/ 방”에서 화자가 숨을 죽이고 눈을 껌벅일 때 백자는 비로소 빛을 토해냈다. 삼백여 년 전 침몰된 난파선 안에서 백자는 여전히 빛을 빨아들였다 토해내기를 반복했고, 사람들은 드디어 그 신비한 백자를 발견했다. “나는 사라졌다/ 빛나는 것처럼 빛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당신의 “그/ 마음”도 백자와 다를 바 없단다. 화자는 백자를 보면서 ‘방’이라는 공간과 ‘여름’이라는 수많은 시간을 빨아들이고 토해내는 당신을 본다. “수많은 여름이 지나갔는데” “모든 것이 여전했다”.

■ 연금술로 찾아낸 ‘하얀 금’

18세기 후반의 로얄코펜하겐 자기.

18세기 후반의 로얄코펜하겐 자기.

17세기 유럽 전역에 백자의 인기가 폭발적이었다. 중국의 백자가 유럽에 들어오자 ‘하얀 금’이라 불리며 비싼 가격에 거래됐다. 유럽의 왕실과 귀족들은 백자를 비롯한 중국적인 취향을 ‘시누아즈리(chinoiserie)’라고 하면서 바로크나 로코코 양식과 결합시킨다. 18세기 대항해 시대를 열면서 유럽은 상류층에서 살롱문화가 급속하게 번진다. 살롱에서 담론을 펼칠 때 아프리카 커피와 중국차를 마시는 게 최고의 호사였으며 백자로 품격이 더해졌다. 당시 개인 접시와 음식에 따라 다른 종류의 접시를 사용하는 식탁 문화가 생기고 테이블웨어가 유행한다.

하지만 백자를 만드는 기술은 중국인들만의 비밀. 유럽은 비싼 가격을 중국에 지불하면서 백자를 수입할 수밖에 없었다. 이탈리아의 메디치 포슬린을 비롯하여 유럽 각지에서 백자를 만들려는 다양한 시도가 있었다. 흰색을 내는 온갖 재료를 사용했지만 유리를 섞어 만드는 수준. 실패의 원인은 백자의 주원료인 고령토를 알지 못했고, 1100도 이상의 가마를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중국 백자의 제조 비밀은 유럽의 과학기술로도 밝혀지지 않았던 것이다.

작센의 아우구스투스 2세는 독일 마이센의 성에 연금술사 요한 프리드리히 뵈트거를 가두고 황금을 만들도록 한다. 하지만 실패를 거듭하자 아우구스투스는 화학반응으로 금을 만들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금과 맞먹는 대체품인 백자를 만들도록 명령한다. 뵈트거는 백자를 만들고자 대리석이나 뼛가루를 사용했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그는 1708년 3년 만에 마이센에서 고령토 광산을 발견했고 장석 성분을 추가하여 백자의 성분 문제를 해결한다.

또한 발터 폰 치른하우스의 도움으로 렌즈와 거울을 이용한 1400도 가마가 가능해졌다. 하늘에서의 고온과 땅에서의 고령토, 그러니까 천지의 조화를 통해 백자는 만들어졌고 뵈트거는 이 결과를 기록에 남겼다. 이후 마이센의 백자 기술은 오스트리아의 빈, 프랑스의 스트라스부르, 덴마크의 코펜하겐, 이탈리아의 피렌체, 영국의 런던 등으로 유출되면서 백자의 유럽 생산 시대가 열렸다.

■ 불과 흙, 그리고 평등한 인간의 조화

1790년 러시아 여왕 예카테리나 2세에게 선물한 자기에서 모티브를 얻은 로얄코펜하겐의 ‘플로라 다니카’ 시리즈.

1790년 러시아 여왕 예카테리나 2세에게 선물한 자기에서 모티브를 얻은 로얄코펜하겐의 ‘플로라 다니카’ 시리즈.

1770년대에 덴마크 왕실은 자국의 흙으로 백자 생산에 성공하면서 ‘왕립자기공장’을 세웠고, 1775년에 지금의 로얄코펜하겐으로 불렀다. 왕실은 특별히 장인들을 불러 모아 초벌구이된 백자 위에 직접 그림을 그리게 하고 유약을 발라 재벌구이하는 언더글레이즈(underglaze) 기법을 전수케 했다. 지금도 로얄코펜하겐의 접시 한 장에는 장인들의 붓 터치와 자신들의 사인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백자는 비로소 불, 흙, 인간, 그러니까 천지인이 어우러져 예술이 됐다. 브랜드 로얄코펜하겐은 천지인의 예술성을 심어 유럽인들을 사로잡게 된다. 로얄코펜하겐은 18세기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에 있는 많은 왕실 자기회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상류층을 위한 화려한 장식과 문양을 발전시킨다.

하지만 19세기를 맞이하면서 로얄코펜하겐은 프랑스혁명과 함께 위기를 맞는다. 절대왕정 국가들의 심한 동요 속에 덴마크는 1849년 왕정이 끝나고 군주는 있지만 통치는 하지 않는 입헌군주제로 바뀐다. 로얄코펜하겐은 80여 년간 왕실의 보호를 받다가 이제는 성난 민중의 공격 대상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 됐다.

1890년대 제작된 로얄코펜하겐 자기.

1890년대 제작된 로얄코펜하겐 자기.

1885년 로얄코펜하겐은 문을 연 지 110년 만에 아놀드 크로그를 총감독으로 영입한다. 그는 왕실과 귀족만 독점하는 백자가 아닌 모든 인간의 백자를 만들고자 굳게 결심한다. 순수미술과 건축을 전공한 디자이너였던 그는 중국 청화백자의 아름다움에 매료돼 있었다. 당시 백자의 화려함은 원래의 청화백자와 너무나 큰 차이가 있었던 것. 그는 단일한 색깔로 단순한 형태의 백자를 만들어 낸다. 단순미를 백자의 아름다움으로 재해석한 것. 그 결과 중국 전통을 가장 잘 반영하는 것으로 블루플루티드 라인이 재런칭된다.

블루플루티드 플레인, 블루플루티드 풀레이스, 블루플루티드 메가 등 매끄러운 하얀 백자 바탕에 맑은 청색이 수채화처럼 장식된다. 블루플루티드는 중국의 청화백자 안에 있는 국화를 추상화한 것. 크로그는 왕실의 화려함을 버리고 단순함을 통한 백자가 주는 아름다움의 본질을 표현해 냈다. 그렇게 할 때 비로소 작은 돼지의 하얀 등과 조개 속의 매끄러운 표면에 있는 아름다움이 살아난다.

또한 로얄코펜하겐은 왕실의 독점하에 귀족에게만 판매하던 백자를 일반 시민들에게 소개하기 위해 대다수 국민들이 경험할 수 있도록 거리에 상점을 열었다. 왕실과 귀족에게 갇혀 있던 백자가 시민들에게 더 친숙하게 다가갔다.

1914년 제작된 로얄코펜하겐 자기.

1914년 제작된 로얄코펜하겐 자기.

로얄코펜하겐은 귀족 계급에 대한 저항의식과 혁명을 겪고 나서 순수한 예술의 본성을 순백색의 매끈한 표면과 단순한 청색 문양에서 찾았다. 그것이 원래 동양에 있던 청화백자의 신비라 여겼다. 유럽의 다른 자기 브랜드가 화려하지만 로얄코펜하겐은 단순하다.

■ 에밀리 디킨슨의 시에 나타난 백자의 美

백자의 단순함과 화려함을 비교한 시인이 있다. 에밀리 디킨슨. 그의 전기 영화인 <조용한 열정>에서도 그녀가 사용한 접시와 찻잔이 나오는 장면이 있다. 한 번은 식사하는 장면에서 딸을 나무라는 듯 “접시가 더럽다”는 아버지의 말에 디킨슨은 그 자리에서 접시를 산산조각낸다. 그리고 “이제는 더럽지 않죠?”라고 말한다. 또 한 번은 자신의 시를 이해해 주는 목사가 방문했을 때 그 부부 앞에서 차를 대접할 때다. 어찌 보면 과격하다 싶을 정도로 과감하게 깨뜨린 접시는 단순한 문양의 백자였으며, 자신의 시를 인정해 줄 것 같은 사람에게 차를 대접하는 잔은 화려한 문양의 백자였다. 단순한 백자는 구태의연한 가부장의 질서를 깨뜨리는 척력의 자장을 남기고, 화려한 백자는 뭔가 잘 보이려는 듯한 인력의 자장을 남긴다. 백자의 단순성과 화려함의 대조는 다음의 시에서 더 분명히 드러난다.

전 당신과 함께 살 수 없어요―

그것만이 생명이건만―

생명은 저기로 건너갔죠―

찬장 뒤쪽으로

교회 무덤지기가 열쇠를 갖고―

처박아 놓죠

우리 생명을― 그의 포슬린을―

마치 찻잔마냥―

여주인이 버려둔―

고풍스럽고― 하지만 이 빠진 잔―

새로 나온 세브르는 대접받지요―

오래된 부서진 잔―

(에밀리 디킨슨, 640번에서)

포슬린, 그러니까 단순한 중국풍의 백자는 금이 가고 이가 빠져 찬장 구석에 처박혀 있다가 부서지고 버려진다. 화자는 “찬장 뒤쪽”에 처박힌 “포슬린”이 “우리 생명”이라고 한다. “여주인”은 우리의 생명인 포슬린을 버려둔다. 반면에 세브르, 그러니까 루이 15세의 애인 퐁파드루 부인이 만들게 했다는 화려한 금채색 백자는 대접받는다. 사람들의 관심은 온통 새로 나온 화려한 찻잔에만 있다. 고풍스러운 단순한 문양의 찻잔은 이 빠진 채 찬장 구석에 버려졌다가 끝내 부서진다.

“교회 무덤지기”가 그 찬장의 열쇠를 갖고 있다는 것으로 추측건대 찬장은 무덤을 상징한다. 찬장 뒤에 처박힌 포슬린은 한 개만 있지 않고 모아지고 모아진다. 그러니까 포슬린은 생명이기도 하지만 또한 무덤에 사는 존재들이다. 그렇다면 백자를 죽음의 존재들로 묘사하는 디킨슨의 또 다른 시를 보자.

죽음은 달콤한 청혼자

마침내 그것이 이긴다

살금살금 함께 살자고

처음엔 파르스름하게 빛을 내고

다음엔 희멀겋게 다가와

용감하게 마침내 뿔피리로

수레를 두 동강 내고선

개선가 부르며 싣고 간다

알 수 없는 서약으로

거기엔 공명하는 족속들

백자처럼.

(에밀리 디킨슨, 1445번에서)

로얄코펜하겐의 블루플루티드 풀 레이스 시리즈.

로얄코펜하겐의 블루플루티드 풀 레이스 시리즈.

화자는 백자를 바라보면서 살금살금 다가와 생명까지도 빨아들이는 죽음을 감지한다. “처음엔 파르스름하게 빛을 내고/ 다음엔 희멀겋게 다가”오는 죽음이 백자와 같다. 하지만 화자는 그 앞에서 무방비 상태. 당신의 “수레를 두 동강 내고선” 또 그 둥근 속에서 “백자처럼” “공명”되는 족속들에게로 이끌려 간다. 더 이상 시간도 공간도 빛도 없는 거기서 “뿔피리”의 “개선가”만 들린다. 디킨슨은 백자를 보면서 생명과 죽음, 그리고 생명과 죽음 건너편에 공명되는 존재를 떠올렸다. 그녀는 자신의 골방 안에서 하늘(신)도 땅(자연)도 인간(자아)도 생명과 죽음이라는 우리의 ‘말놀이동산’을 건너가면 공명만을 울리며 있을 것이라고 상상한다. 난파선 내부에서 빛을 빨아들이고 토해내는 청화백자처럼 여전히 남아 있다.

그래서일까. 로얄코펜하겐은 2013년에 핀란드 기업 피스카스에 매각되었지만 아직까지도 여전히 인기 있는 백자 브랜드로 남아 있다. 천지인의 어울림 속에 어떤 자장과도 같은 백자의 윤광이 “빛나는 것처럼 빛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남아있다.

나는 오늘 자기로 만든 접시와 찻잔을 보면서 무엇을 감지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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