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서린 문 미 브루킹스연구소 초대 한국석좌 “기지촌 여성 문제도 보편적 여성 인권과 인신매매의 관점에서 봐야”

2014.07.20 21:41 입력 2014.07.21 00:27 수정

‘일본군 위안부’는 잘 알지만 ‘미군 위안부’는 생소하다. 하지만 ‘기지촌 여성’이라고 하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인다.

지난달 미군 기지촌 여성 112명이 ‘미군 위안부’란 이름을 내걸고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는 소식에 반응이 궁금한 사람은 브루킹스연구소 초대 한국석좌 캐서린 문(50)이었다. 문 박사는 미군 기지촌 성매매 문제를 조명한 선구적 연구인 <동맹 속의 섹스: 한·미관계에서의 군대 성매매> 저자다.

캐서린 문 브루킹스연구소 한국석좌가 지난 15일 워싱턴의 연구실에서 미군 기지촌 성매매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미군 기지촌 여성에 대해 ‘고용계약을 맺은 노예’나 다름없었다고 말했다.  워싱턴 | 손제민 특파원

캐서린 문 브루킹스연구소 한국석좌가 지난 15일 워싱턴의 연구실에서 미군 기지촌 성매매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미군 기지촌 여성에 대해 ‘고용계약을 맺은 노예’나 다름없었다고 말했다. 워싱턴 | 손제민 특파원

▲ 일본에 입지 약해질 우려에 한국, 기지촌 문제에 소극적
70년대 ‘국익 기여’ 격려 등 정부·미군, 일부 관여 명백
본질적으론 위안부와 같아

미국에서 태어난 한국계 미국인인 문 박사는 박사논문 현지조사차 한국에 머무르던 1990년 이 여성들과 처음 만났다. 미군 기지촌 문제는 “정치학도로서 느낀 윤리적 의무감”에서 택한 주제였다고 했다. “그들은 한국 사회에서 인도 카스트제도의 불가촉천민과 같았다.”

주변의 만류에도 동두천, 평택, 군산을 오가며 이 여성들을 만나 얘기를 들었고 “내가 이들의 환경에서 태어났다면 내 삶은 어떻게 바뀌었을까”라는 생각에 겸허해졌다고 했다. 인간으로서 공감과 학자로서 의무감은 한·미동맹을 은밀히 지탱해오던 치부를 밝혀내는 작업으로 이어졌다.

문 박사는 한국 사회의 엘리트들과 얘기하며 ‘이 여성들은 강제로 그런 일을 한 게 아니다’라는 통념을 깨는 것이 그때나 지금이나 어렵다고 했다.

“14세에 강간 당하고 약물을 복용하면 사실상 강압적인 분위기가 된다. 차에 태워져 어디로 가는지 모른 채 끌려간다면 그건 사실상 납치다. 일단 기지촌에 팔려가면 빚의 족쇄에 매이고 빠져나오기 어려웠다. ‘고용계약을 맺은 노예’나 다름없었다.”

돈을 벌려고 자발적으로 했다는 식의 얘기를, 일본 우익들도 위안부 여성들에 대해 한다. 위안부는 군의 관여가 더 직접적이기는 했지만 본질적으로 위안부와 기지촌 여성이 다르지 않다고 문 박사는 말했다. “법률적 측면에서 관이 관리했느냐 민간이 관리했느냐는 중요하겠지만 현실적으로 관과 민은 대부분 공모관계였다”는 것이다.

기지촌의 경우 여성들의 모집에 관여하지는 않았지만 미군과 한국 정부가 여성들을 수용소에 몰아넣고 성병 검사를 한 점에 비춰 관의 역할을 부인하기 어렵다.

“1970년대에 청와대 관리는 정기적으로 기지촌에 나가 여성들에게 한·미동맹과 국익을 위해 큰 봉사를 하고 있다고 격려했다. 어떤 미군부대는 ‘오락’을 위해 기지촌 여성들을 버스에 태워 기지 내에 데려온 경우도 있었고, 여성들의 성병 검사를 한 경우도 있었다. 문헌 증거들은 한국 정부와 미군이 이 관행의 일부로 관여돼 있었음을 보여준다.”

문 박사는 “기지촌 여성의 자리를 외국인 여성들이 채우고 있는데 이들은 법적 지위 때문에 과거 한국인 여성들에 비해 더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며 현재진행형인 문제에도 관심을 가져달라고 주문했다.

위안부 문제는 1990년대 중·후반 한국 시민사회에서 점차 관심을 얻고 ‘전시하 성폭력’을 중심으로 한 국제 여성운동의 흐름을 탄 반면, 기지촌 여성 문제는 제대로 주목받지 못했다.

문 박사는 초기에 기지촌 여성 문제 활동가들과 위안부 문제 활동가들이 연대하려 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위안부 피해할머니들이 ‘우리는 이 여성들과 다르다’고 반발하며 무산됐다고 한다. 문 박사는 “한국 정부로서도 기지촌 여성 문제를 다루면 일본에 대한 도덕적 입지가 약화될 것을 우려해 기지촌 여성 문제에 상대적으로 더 소극적이었다”고 말했다.

문 박사는 기지촌 여성 문제가 이슈화되기 쉽지 않은 여건임을 인정했다. “한국인들의 일상적인 삶에서 이해하기 매우 먼 문제로 여겨지기 쉽고, 끊임없이 에너지를 제공하는 반일 민족주의와 달리 한·미관계에서 한국인들을 분노시키는 큰 이슈가 없다는 점도 타이밍상으로 좋지 않다.”

그럼에도 문 박사는 “여성들이 쓰레기처럼 대우받고 미군이 아시아 여성들의 성을 잘못된 관점에서 바라보는 태도가 바뀌어야 한다는 점에서, 기지촌 여성들이 일어났다는 소식에 안도감을 느낀다”고 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안도감을 느낄 입장이 아니다. 여성들이 아직 미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낸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언제 국경을 넘어 미국에 상륙하고, 오키나와·필리핀 등 다른 미군 주둔지에서의 소송을 촉발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판도라의 상자’인 셈이다.

미 의회가 일본에 사과를 요구하는 결의안까지 통과시킨 위안부 문제를 미국 정부가 강하게 제기하지 못하는 것은 일본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그것이 자신에게 되돌아올 부메랑이 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문 박사는 2007년 하원 위안부 결의안 통과 직후 ABC방송 기고문에서 “위안부 정치가 국가 간에 서로 민족주의적 공격의 기회가 되고 있을 뿐, 정부나 사람들로 하여금 전시하 민간인 보호와 여성 인권 개선을 위해 진지하게 모색하는 일로는 이어지지 않고 있다”고 썼다. 전시건 평시건 군대의 여성 성폭력 문제를 보면 국가는 가해자일 수 있어도 피해자가 될 수 없음이 분명하다. 피해자는 여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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