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진상규명법 개정안이 17대 국회의 첫 시험대로 대두됐다. 열린우리당은 5일 조사대상 범위를 대폭 확대한 개정안을 고수하며 강행처리 방침을 밝혔다. 반면 한나라당은 실력저지 방안을 거론하면서 독자안 제출을 검토 중이다. 경우에 따라선 물리적 충돌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보인다.
이부영 의장은 5일 기자회견을 열고 “한나라당이 과거사 진상규명을 하지 말자는 쪽으로 끌고가는데 대단히 유감스럽다”면서 “이번에도 과거사, 특히 친일진상의 규명을 저지·방해하면 민족사의 중요한 선고가 내려질 것임을 경고해둔다”고 강조했다. 법 개정을 주도하는 김희선 의원도 “한나라당이 기득권 세력을 대변해 어떻게든 피해 가려는 것 같다”며 “법 개정을 위한 공청회 때에는 가만히 있다가 이제 와서 다른 소리를 하는 것은 결국 하지 말자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개정안을 다룰 국회 행자위의 여당 간사인 박기춘 의원은 “8일 행자위에서 법 개정안을 상정하고, 23일 친일진상규명위원회 발족 때까지는 본회의에서 통과시키겠다”고 말했다. 그는 “한나라당 주장대로 학자 중심으로 진상규명위원회를 구성하면 학문적 논리에 치우치게 되고 조사권도 없어 실질적 규명을 못하게 된다”며 “합의가 안 되면 국회법대로 개정안을 처리하면 된다”고 표결처리를 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한나라당=친일진상규명법 개정안 단독처리는 저지하겠다는 입장이다. 남경필 원내수석부대표는 “이번달은 국회법상 예산 관련 법안만 다루게 돼 있으며, 여야가 합의하지 않는 한 다른 법안은 상정하지 못하게 돼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당이 표결로 밀어붙일 경우 사실상 방법이 없다는 게 한나라당의 고민이다. 실력으로 저지하자는 주장도 있지만 친일진상규명에 반대하는 것으로 비치는 데다 구태의연한 몸싸움으로 여론의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부담이 따른다. 한나라당이 대안 제시로 선회한 배경이다. 한나라당은 대안으로 ▲친일 조사대상의 범위를 계급이 아닌 행위 기준으로 하고 ▲증언자나 기록이 있는 부분을 조사하는 ‘증거주의’ 조사원칙 ▲헌법 파괴행위, 반국가행위자는 조사위원에서 배제 ▲조사결과 확정전까진 공표 금지 등 보완 방향을 제시했다.
같은 맥락에서 한나라당은 여의도연구소를 중심으로 친일진상규명법 개정안을 만드는 방안과 과거사기본법에 이를 포함시키는 방안 등에 대한 구체적인 검토에 들어갔다.
〈최우규·이주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