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문장이 너울대고 단어가 걸어다녀요”

2009.08.05 17:51
이준규 의학전문기자·보건학박사

‘코끼리’→‘ 끼리코’로 넘겨짚는 등…지능 정상이나 글자 읽는데 어려움

옛말에 ‘읽거나 쓸 수 없어 생기는 마음의 상처는 인생을 황폐화시킨다’는 말이 있다. 또 ‘초등시절 읽기능력은 평생 성적을 좌우한다’는 교육원칙에 많은 교육자들과 부모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만큼 읽기능력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읽기능력은 단순하게는 학습능력에서부터 길게는 한 사람의 사고, 가치관, 상상력 등을 자극하는 원천이 된다. 그런데 이러한 읽기능력에 장애를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난독증 극복하기](1)“문장이 너울대고  단어가 걸어다녀요”

‘난독증(dyslexia)’을 겪고 있는 경우다. 그 수도 결코 적지 않아 학습장애의 원인 중 40%를 차지할 정도다. 방학을 맞아 아이들에 대한 부모의 관심과 집중도가 높아지는 요즘 우리 아이의 읽기능력에는 이상이 없는지, 어떠한 치료법이 있는지 등에 대해 3회에 걸쳐 알아본다.

초등학교 2학년 윤석민군의 어머니인 박선영씨(38)는 요즘 고민이 많다. 맞벌이를 하느라 크게 신경을 못썼는데도 어려서부터 말도 빠르고, 성격도 활발해 주변으로부터 영특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아들이었다. 그런데 한글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달라졌다. 동화책 읽어주는 내용은 줄줄 외우던 아이가 스스로 읽은 책은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했던 것. 반복학습도 시켜보고, 다그쳐도 봤지만 오히려 대충 얼버무리는 눈치다. 아예 책 자체에 관심을 끊은 듯하다.

난독증 조기발견이 치료 관건

박씨는 고민 끝에 담임선생님의 권유로 여러 검사를 받도록 해봤다. 검사결과는 박씨의 가슴을 철렁하게 했다. 읽기능력이 떨어지는 ‘난독증’이었던 것. 담당의사와의 마음을 연 대화에서 아들은 “책을 읽을 때마다 문장이 물결치듯 보이고, 각 단어들이 걸어다니는 것처럼 보였다”며 “처음에는 누구나 그런 줄 알았었는데, 그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된 후부터는 아예 읽기가 두려워졌다”고 털어놨다. 박씨는 그동안 아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다그치기만 한 자신이 몹시 부끄러웠다.

난독증은 지능은 정상이지만 글자를 읽는 데는 어려움이 있는 증세로, 학습지진아로 오인되기 싶지만 오히려 시각적인 미술이나 음악, 연극 등 다른 분야에서는 매우 월등함을 보인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영국 처칠 총리, 아인슈타인, 토마스 에디슨, 피카소, 톰 크루즈, 축구선수 데이비드 베컴 등 유력인사들이 난독증이었다는 사실을 봐도 알 수 있다.

[난독증 극복하기](1)“문장이 너울대고  단어가 걸어다녀요”

난독증인 아이들은 ‘코끼리’를 ‘끼리코’, ‘cat’을 ‘⊃at’라고 하는 등 마음대로 읽는다. 사물의 이름을 혼동하거나 잊어버리기도 한다. 문장 하나, 행 하나를 통째로 빼먹기도 하고, 있는 단어를 빠트리거나 없는 단어를 추가하기도 한다. 특히 처음 보는 단어는 전혀 조합하지 못하는 경향도 보인다. 선천성 난독증은 주로 유전적인 것이 원인이며 출산 전후의 뇌손상 또는 미숙아에서 많이 나타난다. 심리적 혹은 시각적 문제가 원인으로 논의되고는 있지만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강북삼성병원 정신과 신동원 교수는 “난독증은 치료기간도 일정하지 않고 개인차가 크지만 일단 치료를 시작하면 증상개선 효과가 뚜렷하고, 심하지 않은 난독증일 경우 획기적인 치료가 가능하다”면서 “아이가 글자를 잘 읽지 못하고 난독증 증세를 보이는 것 같다면 지적하고 나무랄 것이 아니라 바로 전문의로부터 적절한 진단과 조치를 받아야 좋은 예후를 보이게 된다”고 말했다.

개인별 처방 ‘크로마젠’ 시스템 효과

아이가 난독증이라는 것을 빨리 알아채는 것이 중요하지만, 사실 쉬운 일만은 아니다. 어떤 어린이는 과잉 행동장애나 주의력 결핍장애로 혼동되기도 한다. 특히 어린이 스스로가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하고, 부끄럽게 여기기 때문에 더욱 확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난독증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갖고, 난독증이 부끄러운 것도, 우둔한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아이에게 잘 이해시키면서 관심을 기울인다면 더욱 난독증 치료시기를 앞당길 수 있다.

아이가 난독증이 아닐까 확인하려면 연령대별, 발달단계별에 따라 다른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취학 이전의 아이라면 상대적으로 주의력이 산만한지, 이야기는 즐겨하는데 단어나 글자에는 관심을 덜 보이는지, 위나 아래, 안쪽과 바깥쪽 같은 방향성 단어를 헷갈린다든지 한다면 난독증을 의심해볼 수 있다. 초등학생이라면 읽기에 앞서 추측해 넘겨짚은 단어를 지나치게 많이 사용하거나, 오른쪽과 왼쪽을 혼동, 시간표나 알파벳, 요일명칭 등을 순서대로 옮기기 어려워한다면 전문적인 진단을 받아보는 것이 좋다.

효과적인 진단도구가 아직 없는 상황이다. 신경정신과 등에서는 지능검사와 기초학습검사를 포함한 인지기능검사를 통해 진단하기도 하며, 난독증이 시각 전달세포의 이상으로 발생한다고 보는 견해에서는 색맹, 색약처럼 눈을 검사한다. 최근에는 시각세포가 서로 전송속도를 맞춰 일치할 수 있도록 대세포의 시각정보 속도를 늦춰주는 ‘크로마젠’이라는 시스템도 나와 있다. 영국 ‘캔토&니셀’ 사가 개발하고 ‘범산통상’이 국내에 출시한 시스템으로 난독증을 판별해 개인에 맞게 렌즈를 처방해주는 시스템이다. 영국은 물론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아 현재 24개국에 판매되고 있다.

난독증 체크리스트

▲취학 이전

- 상대적으로 주의력이 산만하다.

- 유아용 리듬과 압운 단어를 기억하기 힘들어한다.

- 단어 끝말잇기를 어려워한다.

- 이야기는 즐기는데 단어나 글자에는 관심이 없다.

- 방향성 단어를 헷갈린다.

- 말로 하는 전체 단어가 뒤죽박죽이다.

- 잡기, 던지기, 공차기, 점프하기, 균형잡기 등의 운동을 어려워한다.

▲초등학교

- 지속적인 읽기와 쓰기를 어려워한다.

- 읽기 전에 추측해 넘겨짚은 단어를 지나치게 많이 사용한다.

- 엇비슷한 글씨나 숫자를 자주 쓴다.

- 시간표나 알파벳, 요일명칭 등을 순서대로 옮기기 어려워한다.

- 오른쪽과 왼쪽을 혼동한다.

- 조심성이 없고 산만하다.

- 신발끈을 묶거나 마무리하는 데 서툴다.

- 필기작업의 완벽성을 기하기 위해 시간을 많이 쓴다.

- 없는 단어를 쓰거나 다른 줄에 이러한 글씨를 써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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