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원평가제’ 올바른 방향은

2009.09.01 17:52 입력 2009.09.01 18:40 수정

“교원평가제 연착륙 중요” “전면실시 앞서 근평 개선”

이원희 “무조건 반대는 이기주의…교사들 자극제로 활용해야”

정병오 “평가주체도 학생 위주로…사교육비 절감과 연관없어”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이원희 회장(왼쪽)과 좋은교사운동 정병오 대표가 지난달 28일 서울 정동길에서 교원평가제의 올바른 방향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강윤중기자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이원희 회장(왼쪽)과 좋은교사운동 정병오 대표가 지난달 28일 서울 정동길에서 교원평가제의 올바른 방향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강윤중기자

<토론자>
이원희 한국교총 회장
정병오 좋은교사운동 대표

‘교원능력개발평가제도’(교원평가제)를 놓고 교육계가 시끄럽다. 한동안 잠잠했던 교원평가제 논란은 최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가 수용 방침을 밝히면서 다시 뜨겁게 일고 있다. 그동안 ‘수용 불가’ 입장을 고수하던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도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겠다”며 교원평가제 논의에 참여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교원평가제가 찬성·반대의 기존 논의 틀에서 벗어나 이제는 ‘어떻게 시행할지’ 문제로 무게중심이 옮겨진 것이다.

국회 계류 중인 법안을 찬성하는 한국교총의 이원희 회장과 더욱 신중한 접근을 요구하는 ‘좋은교사운동’의 정병오 대표가 지난달 28일 경향신문사에서 만나 ‘교원평가제의 올바른 방향’을 모색했다. ‘좋은교사운동’은 개혁적 성향의 교육시민단체다.

이 회장은 “법적 근거를 토대로 시행하는 정책을 무조건 반대만 하면 국민들로부터 교원 이기주의로 매도당할 뿐 아니라 교육 발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교원평가제의 조속한 실시를 촉구했다. 반면 정 대표는 “교원평가제 실시에 앞서 교원근무평정제도가 개선돼야 하고, 평가주체도 동료 교사가 아닌 학생들이 주가 되어야 한다”고 반박했다.

정병오 대표(이하 정병오)=교원평가제 논의에서 핵심적인 사안 중 한 가지는 인사 연계 여부이다. 하지만 교원평가제의 취지는 교원들의 전문성 향상이다. 교사들의 학생 지도 능력을 배양하는 데 이 제도의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교원평가제가 정착되기도 전에 그 결과를 인사에 연계시키는 건 본래의 취지를 훼손하는 것이다. 인사와 연계한다고 할 때 객관성과 정확성이 중요하다. 수업평가를 할 수 있는 여러가지 기준이 있는데 엄밀성이 담보되기 쉽지 않다. 또한 굳이 결과를 인사와 연계시키지 않아도 얼마든지 효과를 볼 수 있다. 현재도 학생들로부터 자발적으로 수업평가를 받고 있는 교사들이 많고 스스로 자극을 받는 교사가 대부분이다. 교사들이 자신의 수업에 대해 학생들의 반응만 알 수 있어도 그 효과는 충분하다.

이원희 회장(이하 이원희)=많은 국민이 교원평가제 결과를 갖고 교사들을 퇴출시키는 용도로 생각하고 있다. 아직 본격 시작도 안됐는데 교사들의 정서를 자극하는 것은 옳지 않다. 다만 국회에 계류 중인 교원평가제법(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은 평가 결과를 교원들의 연수에 활용하는 것으로 명시했는데 이게 적절하다고 본다. 대학의 안식년제를 도입해 국내외 대학과 전문교육기관 등에서 연수 기회를 부여하면 교사들에게 자극제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종류의 인센티브를 교사들에게 주면서 교원평가제를 우선 연착륙시킨 후 평가 결과를 객관적으로 지표화하는 작업이 가능해질 때 인사와 연계시키는 방안도 장기적으로 검토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병오=교원평가제의 전면 실시에 앞서 근무평정제도(근평)가 개선돼야 한다. 현재의 근평 아래서는 교사들이 수업을 잘해야겠다는 생각보다 인사고과 점수를 잘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강한 것이 사실이다. 특히 근평은 상대평가로 진행된다는 점에서 근평과 교원평가를 섞어서 시행하게 되면 교원평가제도는 인사와 연계될 수밖에 없고, 교육현장에는 각종 부작용이 초래될 수밖에 없다.

이원희=근평은 교원들에게 승진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고 교원평가제는 교사들에게 수업을 잘할 수 있도록 동기부여를 해주자는 것이다. 교원평가 결과를 교원들의 승진에 사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하지만 근평에 문제가 있으니 교원평가를 수용하지 못하겠다는 논리는 결국 교원평가를 거부하겠다는 뜻이다. 근평과 교원평가를 어떻게 연결시킬 수 있는지는 향후 연구 등을 통해 발전적인 방향으로 논의하면 된다.

정병오=교사들을 평가하는 주체는 학생들이 주가 돼야 한다. 교사들의 수업을 듣는 대상이 학생이기 때문이다. 물론 학생 중심의 평가가 될 경우 교원평가제가 인기영합주의로 흐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학생끼리 모의해서 수업은 잘하지만 엄한 교사들에게는 점수를 낮게 줄 수도 있지만 학생들의 양식이 그 정도로 저급하지는 않다. 지금까지 결과로 볼 때도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잘 알아서 교사들에 대한 평가를 잘해 왔다. 반면 동료 교사들에 의한 평가 위주로 교원평가가 진행된다면 교사들이 수업보다는 동료 교사를 지나치게 의식해 교원평가의 본질이 훼손될 우려가 있다.

이원희=교원평가제를 교사의 수업만을 놓고 봤을 때는 학생 중심의 평가가 맞다. 하지만 교원평가에는 교장·교감에 대한 평가도 포함돼 있다. 따라서 교장·교감의 학교 경영 능력을 평가할 때는 학부모의 의견을 설문조사 등을 통해 들어보는 것이 좋다. 또 학생·학부모의 평가만 가지고는 교원평가를 하기에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교사들이 서로 평가해서 수업 준비과정 등에 대해 체크하는 과정도 있어야 한다. 학생·학부모들이 알 수 없는 부분을 동료 교사들이 평가해줘야 한다는 의미다. 학생·학부모·교사 간의 균형잡힌 평가가 조화롭게 진행돼야 한다.

정병오=법에 명시돼 있는 ‘교원능력개발평가관리위원회’의 운영도 중요하다. 교원·학부모·외부전문가·교육청 관계자 등 5인 이상 11인 이내 위원으로 구성하도록 돼 있는데 교사와 학부모가 동수로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위원장은 학부모가 해야 한다. 위원장을 교사가 할 경우 교원평가의 과정 및 결과에 대해 교장이나 교감이 간섭할 가능성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위원회의 성패는 불신이 개입할 여지를 사전에 차단하는 데 달려 있다.

이원희=위원장은 외부전문가가 맡는 것이 온당하다고 본다. 학부모 중 전문성을 갖추고 있는 분이 많지만, 행정체계에 능숙한 외부전문가를 위원장으로 위촉하는 것이 옳다. 수십명의 교사를 평가하는 것 자체가 굉장한 업무 부담이다. 관리 위원으로 참석한 교사들에게는 이 자체가 수업 이외의 잡무에 포함될 수 있다. 관리 위원 교사들이 여러 달 동안 잡무에 시간을 뺏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정병오=안병만 교육기술과학부 장관이 “국회에 계류 중인 교원평가제 법안이 올해 정기국회를 통과하지 않아도 내년 3월부터 전면 실시하겠다”고 했는데 교육 수장으로서 부적절한 발언이다. 불법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평가받는 사람들의 동의도 중요하다. 평가받기 싫은데 억지로 받으라는 제도는 현장에서 무력화될 수도 있다. 따라서 교원 단체의 역할이 중요하다. 교원평가제를 실시하면 사교육비가 줄어들 것이라는 정부의 설명도 수정될 필요가 있다. 사교육 문제의 핵심은 서열 경쟁이기 때문에 교원평가제와 사교육비 절감은 직접적으로 연관되지 않는다. 사교육비 문제는 정부가 또 다른 정책으로 해결해야 한다.

이원희=안 장관께서 처음 그 발언을 했을 때만 해도 ‘국회의 조속한 통과’를 강조한 말로 이해했는데 반복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법 없이 시행하는 것은 시범실시 이상의 결과물이 나올 수 없다. 또 교원평가제가 시행된다고 해서 사교육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인식에 공감한다. 교원평가제의 정착으로 공교육이 신뢰를 얻게 되면 사교육이 줄어들 수는 있겠지만 문제의 근본적 치유는 어려울 것이다.

정병오=교원평가제에 대해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이라는 이유로 상당수 교사가 반대하고 있다. 교육에 대한 불신이 갈수록 높아지는 상황이다. 교원들의 능력과 자질이 날이 갈수록 향상되는 것과는 반대다. 따라서 국민들과 소통한다는 차원에서 교원평가제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구조조정 문제도 나오는데 교원평가를 받는 게 오히려 구조조정을 막을 수 있다. 교원들 스스로 자기 혁신을 해야 구조조정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다. 지금까지는 교실이 교사의 왕국이었는데 교원평가는 이제 교실이 열린 공간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교원평가 도입 자체가 의미가 있고, 전체 교육을 위해 도움이 된다는 인식이 확산될 필요가 있다.

이원희=평가받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교사들 정서상 교원평가에 대한 거부감이 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부에서 법적 근거를 토대로 시행하는 정책을 반대하면 국민들로부터 교원 이기주의로 매도당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제도의 연착륙이다. 교사들이 불안감을 느끼지 않도록 서서히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원평가를 하기로 했으면 ‘교원평가를 해도 교육문제 해결이 안된다’는 불만으로 연결되지 않도록 초점을 맞춰야 한다. 교원평가제를 하지 않아 나타나는 불만이 “교원평가를 해도 마찬가지”라는 불만으로 재생산돼서는 안된다는 의미다.

정병오=전교조가 국민들의 신뢰를 상실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교원평가제를 반대한다는 인상을 국민들에게 심어줬기 때문이다. 전교조는 이제 교원평가제 수용에서 한 걸음 나아가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하는 등의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것이 국민들로부터 신뢰받을 수 있는 지름길이라는 점에서 전교조 입장에서는 반전의 기회다.

이원희=전교조도 이제 교원평가제에 대한 구체적 대안을 만드는 모습을 보여줄 때라고 생각한다. 정부가 교원평가제를 일방적으로 추진하고 교원단체가 마지못해 끌려가는 식의 모양새가 아니라, 교원단체들이 먼저 나서서 함께 논의하고 경쟁하는 모습이 바람직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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