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빙자간음죄’ 존폐 논란

2009.09.23 00:56

김일수 “혼인에 대한 사회적 압력 악용한 범죄…처벌이 마땅”

조 국 “기소율 5% 불과…‘도덕적 부녀’만 보호 여성간 차별”

지금 헌법재판소에서는 ‘혼인빙자간음죄’가 위헌인지 합헌인지를 따지는 공개변론이 한창 진행 중이다. 혼인빙자간음죄가 공론의 마당에 오른 것이다. 형법 302조에는 ‘혼인을 빙자하거나 기타 위계로써 음행의 상습없는 부녀(여러 남성과 성관계를 맺지 않는 여성)를 기망하여 간음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 조항은 결혼을 할 것처럼 약속하고 여성을 농락하는 남성들을 처벌한다는 의미에서 오랫동안 유지돼 왔다. 그러나 성풍속도가 바뀐 요즘 시대에는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과 개인의 사생활을 법이 단속하는 데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여성부조차 “피해자를 여성으로 한정하는 것은 여성에 대한 차별”이라며 위헌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혼인빙자간음죄에 대해 존치 의견을 갖고 있는 김일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63)와 폐지를 주장하는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44)가 지난 14일 경향신문에서 만나 의견을 나눴다.

혼인빙자간음죄의 존치를 주장하는 고려대 김일수 교수(왼쪽)와 폐지를 요구하는 서울대 조국 교수가 지난 14일 경향신문에서 토론을 하고 있다.    <김기남기자>

혼인빙자간음죄의 존치를 주장하는 고려대 김일수 교수(왼쪽)와 폐지를 요구하는 서울대 조국 교수가 지난 14일 경향신문에서 토론을 하고 있다. <김기남기자>

“혼인빙자 간음은 기망범죄” “입증 어렵고 현실에 안맞아”

김일수 교수(이하 김일수) = 형법이 개인의 사생활에 개입할 수 없고 개입해서도 안 된다는 것은 근대 형법의 확립된 원칙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회적으로 보호할 가치가 있는 법익이 훼손되면 그것은 이미 사생활 영역을 벗어나 공적인 영역이 됩니다. 도덕이라도 순전히 주관적인 범주가 아니라 타인과의 공존관계에서 상호존중돼야 할 객관적 질서 영역에 속할 때는 법의 개입이 필요해지는 것이죠. 개입하느냐 마느냐보다는 어느 정도 개입하느냐가 논쟁 대상이라고 봅니다. 혼인을 빙자해 간음을 당한 여성에 대해 사생활이라고 모른 척한다면 법익 보호의 의무에서 봤을 때 ‘너무 소극적인 처사’라고 생각합니다.

조국 교수(이하 조국) = 사기사건이라면 가해자와 피해자의 문제가 명확하게 구별됩니다. 그러나 혼인빙자간음죄에서는 항상 남성의 ‘진의’가 문제가 됩니다. 마음이라는 것은 변할 수 있기 때문에 명확하게 입증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대부분의 피고인들은 성관계를 맺을 때는 결혼할 생각이었지만 마음이 바뀌었다고 주장합니다. 실제로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과연 성관계 시점에서 여성이 속았냐, 안 속았느냐를 판단해야 하는데 쉽지 않습니다. 문제 되는 상황에 있는 남녀가 항상 ‘카사노바’와 ‘성녀’라면 아주 간단하겠죠. 그러나 현실은 누가 피해자이고 어떻게 피해를 입증할 것인지 명확지 않습니다. 남녀가 혼인할 의사로 합의하에 관계를 맺었다가 혼인이 이뤄지지 않은 경우 여성이 복수심으로 이 조항을 이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남성은 기소된 것만으로 파렴치한으로 몰릴 수밖에 없습니다.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혼인빙자간음죄는 기소율이 평균 5%밖에 안 됩니다. 95%는 혐의 입증이 안 된다는 얘깁니다.

김일수 = 입증의 어려움이나 악용·남용의 가능성은 어느 범죄에나 있습니다. 입증이 어렵다고 해서 피해자의 문제에 대해 국가가 방임해야 할까요. 일반적으로 범죄 입증에서 피해자의 견해는 중요한 증거가치가 있고, 특히 성범죄의 입증에서는 여성인 피해자의 인격을 신뢰할 수밖에 없습니다. 범죄인의 관점뿐 아니라 피해자의 관점까지 소통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보듬어야 범죄 문제로 인한 사회적 갈등을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형법에서 확립된 관점입니다. 특히 범죄 피해자들이 입게 되는 정신적 외상 중 가장 심각한 트라우마는 신뢰 배반을 통한 박탈과 상실의 아픔을 초래하는 기망범죄입니다. 혼인빙자간음죄가 그 중 하나입니다.

조국 = 대다수 현대 민주주의 국가는 강간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강간 피해자를 보호하는 등 여성의 목소리를 형법에 반영하면서도 위계에 의한 간음을 비범죄화하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강간죄의 경우 죄의 책임이 명확하고 불법성이 어느 한 쪽에 있는 것이 확실하지만 혼인빙자간음죄는 강간범죄와 다릅니다. 앞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카사노바와 성녀 사이에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어느 정도 세속화된 남녀 사이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1950년대 형법이 제정될 시점과 지금은 여성의 주체의식과 성문화도 급속도로 변하지 않았습니까. 국가 형벌권이 어떤 범위에서 여성의 자기성적결정권을 보호할 것인가에 대해 새로운 결단을 할 때가 되었습니다. 혼인빙자간음죄가 존재하는 나라는 쿠바와 루마니아, 터키밖에 없습니다.

김일수 = 시대와 사회에 따라 법이 바뀌어야 한다는 데는 동의합니다. 그러나 서구사회와 우리나라에서 여성들이 ‘혼인’에 대해 갖는 사회적 의미는 다릅니다. 독일의 경우는 이미 여성이 혼자 사는 것에 대해 사회적인 압력이 없는 사회입니다. 한국 사회도 많이 변화하긴 했지만 우리 사회 여성들은 과연 혼인 문제로부터 자유로운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여전히 여성이 나이를 먹으면 결혼에 대한 압력이 있고 그렇기 때문에 그와 같은 약점을 이용하여 혼인을 빙자한 기망이 생기는 것이지요. 그래서 형법이 일정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조국 = 물론 결혼에 대해 유·무형의 압박이 있습니다. 그러나 세대별로 차이가 많은 것 같습니다. 최근 10·20대의 성생활에 대해 조사한 것을 봤는데 지금의 30·40대는 상상할 수도 없는 성개방 상태가 됐습니다. TV에선 연예인들이 13~14살 때 첫키스를 했다고 스스럼없이 밝힙니다. 여고생·남고생들의 성문화도 놀라울 정도로 변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혼인을 전제하지 않고 성생활을 즐기고 있습니다. 여성은 원래 성에 소극적이라거나 소극적이어야한다는 인식은 이미 낡은 것이 된 지 오래입니다. 우리 사회는 10대부터 80대까지 다양한 세대가 같이 살고 있습니다. 그에 맞춰 조정이 필요해 보입니다.

김일수 = 세상이 바뀌고 사회가 달라졌다는 점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성범죄의 주된 피해자가 누구인지에 대해 생각해야 합니다. 아무리 성적으로 개방되고 있는 사회라고 해도 통계적으로 보면 성범죄의 피해자는 여성이 압도적입니다. 유사 이래 바뀐 적이 없습니다. 독일에서는 성범죄와 성풍속을 두루뭉술하게 묶는 입법례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풍속범죄와 성범죄를 구별하고 후자의 범주에서 강제추행과 강간죄, 혼인빙자간음죄 등을 구별한 것은 우리 입법자들이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 노력의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조국 = 가장 경계하고 싶은 것은 국가가 여성 보호를 위한 여러 조치는 소홀히하면서 혼인빙자간음죄는 유지해 ‘여성의 수호자’ 또는 ‘도덕의 화신’처럼 행세하는 것입니다. 혼인빙자간음죄에서 보호 객체를 ‘음행의 상습이 없는 부녀’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음행의 상습이 있는 부녀란 어떤 뜻일까요. 대부분의 형법 책은 다수의 남성 파트너와 동시에 교제하는 여성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한 여성이 여러 남성을 만나면 형법상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여성이 되는 것이죠. 그러나 한 여성이 여러 남성을 동시에 만나기도 하고 한 남성이 여러 여성을 동시에 만나기도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여성을 음행의 상습이 있는 여성과 조신한 여성으로 나누는 것, 보호할 대상과 보호할 필요가 없는 대상으로 나누는 것, 이런 식으로 여성을 두 부류로 나누고 차별하는 것 자체가 평등의 원칙을 위반한다고 봅니다. 법조문을 보면 혼인빙자간음죄는 ‘심신미약자 간음’과 ‘미성년자 간음’ 사이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는 입법 당시 성의식을 반영한 것인데, 여성을 남성과 달리 성적자기결정권을 주체적으로 행사할 만한 능력이 약한 존재로 보고 있다는 점에서 반여성적입니다.

김일수 = ‘음행의 상습이 없는 부녀’라는 것은 공창제가 존재했던 일본 형법가안을 참작했고, 사실상 매음이 영리적으로 시행되고 있던 당시 상황을 반영한 것이죠. 오늘날 우리의 기본권 질서 아래서 이 문언의 의미를 당시처럼 해석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단지 성매매자나 자유로운 성생활을 영위하는 자라는 이유만으로 본죄의 보호객체가 아니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혼인빙자간음죄는 모든 여성들이라기보다는 여성들 중에서도 특수한 피해계층을 고려한 법률입니다. 시대가 변해도 그 안에서 피해를 당할 수 있는 여성들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 중요하고, 법은 그런 소수의 피해자라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죠. 이 법을 유지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아닌지는 ‘의심스러운 때는 기존의 상태에 유리하게’라는 법원칙에 따라 피해자에게 유리하게 적용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입법정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국 = 혼인빙자간음에 의한 피해자가 있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이런 사건의 경우 대부분 사기죄와 결부돼 있습니다. 재산 편취 등은 형사재판을 통해 해결하되 위계에 의한 성관계에 대한 부분은 민사재판으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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