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계 아이돌그룹 전성시대 문제 없나

2009.11.19 17:53

“대중문화 다양성 훼손 우려”

“한류 주도 문화수출의 첨병”

토론자: 정욱 JYP엔터테인먼트 대표· 강헌 음악평론가

현재 한국 대중문화계는 아이돌그룹이 장악했다. 가요, 예능, 음악 프로그램 등 모든 TV프로그램은 물론 라디오, 영화, 뮤지컬, CF까지 이들 손에 달려 있다. TV를 켜도, 길거리를 나가도, 잡지를 펼쳐도 온통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아이돌그룹 멤버들뿐이다. 게다가 특정 대형 연예기획사가 현재 활동하는 아이돌그룹을 대부분 배출해 사실상 대중문화계를 장악하고 있는 상태.

대중문화의 다양성이 사라졌다는 지적이 크지만 한편에서는 이들 아이돌이 주축이 돼 한류를 이끌며 문화수출의 첨병 역할을 한다는 의견도 많다. 이에 대해 대중음악 비평가인 강헌씨와 그룹 <원더걸스> <2PM>의 소속사인 JYP엔터테인먼트 정욱 대표가 지난 17일 경향신문사에서 만나 3시간가량 대담을 나눴다.

정욱 JYP엔터테인먼트 대표(왼쪽)와 강헌 음악평론가가 지난 17일 경향신문사에서 만나 아이돌그룹 중심으로 재편된 한국 대중문화 시장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있다. 박민규기자

정욱 JYP엔터테인먼트 대표(왼쪽)와 강헌 음악평론가가 지난 17일 경향신문사에서 만나 아이돌그룹 중심으로 재편된 한국 대중문화 시장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있다. 박민규기자

정욱 대표(이하 정욱)=아이돌이 대중문화를 장악하고 있다고 하니까 괜히 우리가 주범 같습니다(웃음). 대형 기획사 이야기를 많이 하시는데 저희는 구체적으로 이러저러한 아이돌그룹을 만들어야지 해서 한 적은 없습니다. 그저 가능성 있는 신인들을 발굴해 교육시키고 양질의 아티스트를 배출하자는 취지이지요.

강헌 음악평론가(이하 강헌)=현재 제일 큰 문제는 아이돌이 아니라 아이돌이 지배하고 있는 문화입니다. 미국은 록음악이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모든 것을 록음악이 지배하고 있는 것은 아니거든요. 굉장히 다양한 분야, 장르에서 활동하는 아티스트들이 존재하고 넓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건강하다고 말할 수 있지요. 그런데 우리는 다릅니다. 하나가 모든 것을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지배합니다.

정욱=아이돌이 판치고 있다는 문제가 생산자의 문제인지 소비자의 문제인지, 방송과 매체의 문제인지 고민해볼 만합니다. 솔직히 저희도 궁금합니다. 방송사나 어디든지 가보면 왜 아이돌그룹 매니저가 아닌 사람은 설 자리가 없는지 말입니다.

강헌=제 생각에 제일 큰 문제는 플랫폼, 즉 미디어의 문제가 아닐까 해요. 그중에서도 특히 공중파 TV의 문제죠. 물론 이는 어제 오늘의 문제는 아닙니다. TV가 한국의 대중음악을 시녀화한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늘 있어왔던 문제입니다. 한국 영화가 그 극명한 사례입니다. 90년대 이전까지 한국 영화는 ‘방화’ 수준이었지만 이후 방송의 지배(예를 들면 방송이 해주는 홍보)를 받지 않고 독립해 독자적으로 관객을 끌어모으고 성공했기 때문에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를 이끌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지금 공중파의 예능프로그램과 아이돌 스타의 유착관계는 너무 심합니다. 가수들은 노래 대신 개인기를 팔고 사생활을 팔고…. 이를 깨지 않는 한 대중음악이 발전할 길은 없는데 시청률 때문에 어쩔 수 없겠지요. 한국 음악산업에서 가장 열광적인 소비자는 10대이고, 살인적인 입시경쟁에 찌들린 이 세대들에게 삶의 숨통을 터주는 것이 그나마 스타를 중심으로 한 대중문화입니다. 결국 이러한 소비자들의 요구가 이어지면서 끊임없이 10대에게 맞춘 대중문화 생산이 반복되는 것 아닐까요.

정욱=10대 위주로 만든다고 말씀하시는데 저희는 지난 10년간 이 분야에서 일하면서 10대 위주로 공략한 적은 없습니다. 오히려 20대, 30대를 주요 대상으로 했지요. 비의 경우만 봐도 티켓을 구매하는 팬들의 평균 계층은 34.5세의 여성입니다. 짐승돌이라는 2PM도 20·30대를 대상으로 준비해왔지요. 그런데 문제는 특정 연령대가 아니라 산업 규모나 시장 자체입니다. 인구가 적다보니 내수시장도 작고 다양성을 논할 여지도 없습니다. 대형 기획사라는 저희 회사와 SM, YG 3곳의 한 해 매출이 모두 합해 900억원이 되지 않습니다. 국내 노점 어묵, 떡볶이 사업도 연간 2500억원 규모라는데 그 정도도 안 된다는 자조가 나옵니다. 또 가요뿐 아니라 팝, 클래식, 국악 등 모든 음악 장르를 다 더해 음원제작자가 벌어들이는 돈이 1년에 1000억원 수준입니다. 음반시장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이야기죠.

강헌=물론 소비자들의 책임도 큽니다. 미국은 30대 이상이 대중문화를 이끌고 갑니다. 우리나라는 10대가 주류이지요. 자연히 구매력에서 차이가 납니다. 결국 대중문화 권력은 구매에서 나옵니다. 제품이 생산되면 음반을 사주고 영화를 봐주고 소비해줘야 다양한 문화가 만들어지고 스타가 만들어집니다. 그런 점에서 예전에 조용필, 들국화를 좋아했던 그 많던 사람들이 다 어디 갔는지 묻고 싶습니다. 나이들면서 먹고 사는 데 바빠 그렇다고 이해해야 하나요? 전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정욱=대중문화도 산업입니다. 그런데 사정이 이렇다보니 국내 시장에서는 해답이 안 나옵니다. 그러니 다 해외로 나가는 겁니다. 원더걸스도, 비도, 동방신기도, 보아도 다 해외로 나가는 것은 이곳 시장이 빤히 보이기 때문이죠. 요즘도 하루가 멀다하고 많은 아이돌그룹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 계속 이런 식으로 가다간 결국 제로섬게임밖엔 되지 않습니다. 국내는 국내대로 활동하면서 가능하다면 해외로 나가 해외시장을 넓히는 것이 답입니다. 원더걸스처럼 우리 가수들을 해외에 보내는 것이 1차적인 진출이라면 2차적으로는 2PM처럼 해외에서 외국인들을 뽑아 활동하는 것, 궁극적으로는 시스템을 수출해 현지화하는 것입니다.

강헌=그런 해외전략은 불가피하고 또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만 위험성도 있습니다. 미국에 가서 현지화하는 것은 그들의 시스템을 어느 정도 좇지 않을 수 없는 것인데 그것이 우리의 지침이 되어서는 곤란합니다. 음악산업은 자동차, 반도체와 다릅니다. 문화는 그 나라의 정체성을 가진 콘텐츠라는 점에서 우리 독자성을 유지할 수 있는 대안이 필요합니다. 또 지금처럼 아이돌그룹 중심의 해외진출은 더 위험할 수 있습니다. 비즈니스 측면에서 봤을 때 아이돌그룹은 투입되는 비용에 비해 이익은 너무 낮은, 위험성이 큰 사업입니다.

정욱=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미국이 최근 획일화되고 있습니다. 미국 대중음악 시장은 ‘아메리칸 아이돌’과 ‘디즈니’ 양자가 지배하는 형태입니다. 가수를 데뷔시키고 영화에 출연시키고 스타로 만들면서 통합 엔터테이너를 만드는 형태지요. 미국이 한국 시장의 시스템을 모델로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우리나라 멀티플렉스 극장에 가면 그래도 그나마 다양한 영화를 볼 수 있지만 미국의 멀티플렉스는 어느 곳 할 것 없이 <2012> 일색입니다. 음악도 마찬가지지요. 거대한 산업의 흐름을 개인이 바꿀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나 할까요. 이 같은 흐름은 개별 음악 생산자가 노력한다고 해서 변화되는 부분이 아닌 것 같습니다.

강헌=산업이라는 측면은 분명하지만 그래도 음악은 보수적인 산업이고 지금과 같은 모습에 대해서는 반성이 진지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 음악사에서 희망과 모델을 찾을 수 있습니다. 80년대 중반에서 90년대 초반 정치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불투명한 시대였는데 이때는 조용필로 대표되는 주류, 들국화로 대표되는 비주류, 여기에 노찾사를 중심으로 한 운동권 노래패, 시나위를 위시한 헤비메탈 등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었죠. 공연과 음반 산업이 꽃을 피운 시기였습니다. 이런 전례가 있었기에 다시 이런 문화를 만들지 못할 것도 없습니다.

정욱=저는 그런 면에서 오히려 아이돌에 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낸 2PM의 ‘하트비트’가 각종 음원차트마다 1등을 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건 일반적으로 아이돌이 들려주던 댄스음악이나 후크송이 아니고 듣도보도 못한 새로운 시도입니다. 브아걸의 ‘아브라카다브라’나 2NE1의 ‘파이어’도 그동안 국내 가요계에선 성공할 수 없던 음악입니다. 속칭 ‘아이돌그룹’이 음악적 다양성에 도전하면서 스펙트럼을 넓혀가고 있는 셈이죠.

강헌=그 반대로 수많은 무명가수들에 의해 시도되는 다양한 음악적 실험들은 완전히 묻혀 있지요. 결국 이 같은 일방통행 현상을 현명하게 극복하고 벗어나는 것이 과제입니다. 이렇게 가다간 한국 대중문화 전체의 동맥경화 현상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언더그라운드 밴드, 로커, 재즈 등 여러 분야의 아티스트들이 활동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그런 콘텐츠들이 활성화될 수 있는 역할을 메이저 회사들이 맡아주면 좋지 않을까요.

정욱=물론 고민하고 있습니다. 저희들도 언더에서 활동하는 래퍼나 밴드들을 발굴하고 있고 이들의 인디문법을 어떤 식으로 대중 앞에 선보이는 것이 좋겠느냐는 것도 과제로 삼고 있습니다. 또 지금과 같은 형태로 춤과 노래가 중심이 된 아이돌그룹뿐 아니라 춤을 추다가 록밴드로 변신하는 등 가능한 한 진화된 형태의 새로운 아이돌도 나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강헌=아이돌의 라이프사이클이 짧은 것도 문화적으로는 굉장한 손실입니다. 또 이들의 노하우나 축적된 자산이 음악에 투입돼 재생산되는 것이 아니고 다른 곳으로 다 새나갑니다. 음악으로 시작해 그저 그런 연예인으로 남는 사례를 많이 보아 오지 않았습니까.

정욱=결국 멤버들 자신의 노력이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제가 롤링스톤스 이야기를 담은 <샤인 어 라이트>라는 영화에서 젊은 시절 믹 재거의 인터뷰를 봤는데, 기자가 그에게 앞으로 이 밴드가 얼마나 갈 것 같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1년 정도?’라는 시큰둥한 대답이 나오더군요. 결국 지금까지 40년간 이어진 전설적인 밴드가 됐잖습니까. U2도 마찬가지고요.

강헌=아이돌그룹이 트렌드를 먹고 살려고 하면 절대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자신의 근원인 음악이라는 콘텐츠의 완성도를 높이고 끊임없이 좋은 음악을 생산해내려는 처절한 노력이 필요하겠죠. 우리나라에서도 그렇게 활동하며 오래 성장해가는 아이돌그룹을 보기를 희망합니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