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미의 공감 스토리텔링

괴테와 실러, 두 남자와 바이마르를 함께 걷다

2014.07.23 15:48 입력 2014.07.23 17:09 수정
<바이마르 | 글·사진 박상미 문화평론가>

뜨거운 ‘우정의 힘’을 보여준 매력남 괴테. ‘의리’ 열풍이 한창인 요즘, 이 남자를 빼놓고 어찌 ‘의리’를 논할 것인가. 그리고 또 한 남자 실러. 한 사람은 식물을 일컬어 ‘경험’이라 했고, 다른 한 사람은 ‘이념’이라고 했다. 이런 근본적인 차이를 가진 두 사람이 평생을 함께한 친구였다면 믿겠는가.

독일 바이마르로 가는 건 여고시절부터 꿈 꾼 일이었다. 프랑크푸르트부터 바이마르까지, 생가부터 무덤에 이르는 그의 일생을 따라 걷게 된 여름. 20년 만에 우리는 만났다. 여덟 살에 시를 쓰고, 열세 살에 시집을 낸 문학 신동. 문학뿐만 아니라 철학, 과학, 신학, 지질학, 광물학, 원예학 분야에서도 재능이 빛났고, 법학을 전공하고 변호사 활동을 했다. 사람에게는 없는 줄 알았던 ‘앞니 뼈’를 발견해 낸 비교해부학자이기도 한 이 남자는 26세에 바이마르의 수상이 된 유능한 관료이기도 하다. 뭐 이런 ‘괴물’이 다 있나!

바이마르 중앙역에 위치한 국민극장 앞에 마련된 야외무대. 중앙에 괴테와 실러의 동상이 우뚝 서 있다.

바이마르 중앙역에 위치한 국민극장 앞에 마련된 야외무대. 중앙에 괴테와 실러의 동상이 우뚝 서 있다.

바이마르 중앙역에 위치한 국민극장 앞에 마련된 야외무대. 중앙에 괴테와 실러의 동상이 우뚝 서 있다.

문학적 원천은 음식, 여자, 그리고 우정
‘쾨스트리처 슈바츠비어’를 한 모금 들이키면 진한 초콜릿 향이 입 안 가득 퍼진다. 이 맥주가 ‘괴테 맥주’로 불리게 된 것도 초콜릿 향 때문이다. 괴테는 초콜릿을 사랑했다. 미식가이자 대식가였던 그는 “남의 후식을 빼앗아 먹는 놈은 때려 죽여야 한다”는 유머 넘치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구상에서 완성까지 60년이 걸린 <파우스트>에는 이런 구절이 있지 않은가. “영원한 여성만이 우리를 구원하리라.” 그의 문학적 원천은 ‘음식과 여자, 그리고 우정’이다.

사실 이 남자는 뜨거운 ‘우정의 힘’을 보여준 매력남이다. ‘의리’ 열풍이 한창인 요즘, 이 남자를 빼놓고 어찌 ‘의리’를 논할 것인가. 한 사람은 식물을 일컬어 ‘경험’이라 했고, 다른 한 사람은 ‘이념’이라고 했다. 이런 근본적인 차이를 가진 두 사람이 평생을 함께한 가장 친한 친구였다면 믿겠는가. 요한 볼프강 폰 괴테(1749~1832)와 프리드리히 폰 실러(1759~1805)의 이야기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내린 첫날, 뢰머 광장을 돌아서 괴테의 생가로 갔다. 1749년 여름, 프랑크푸르트의 구시가지 그라세 히르슈그 라벤에서 그는 태어났다. 괴테는 26세까지 이 집에 살면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쓰기도 했다. 하지만 진짜 괴테를 만나고 싶다면 반드시 바이마르로 가야만 한다.

괴테는 바이마르 공화국 카를 아우구스트 대공의 초대로 26세에 바이마르로 간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베를린까지 이어지는 약 600㎞의 도로를 ’괴테 가도’라고 부른다.

괴테가 일생을 보내고 대작을 남긴 도시 바이마르. 그곳에 머물며 괴테와 실러의 흔적을 따라 걷는 동안, 나는 왜 그들이 바이마르를 창작의 고향으로 선택했는지 명쾌하게 이해했다. 작은 도시의 구석구석에 괴테의 흔적이 진하게 남아 있어서, 그와 함께 깨알 같은 대화를 나누려면 바이마르 성부터 괴테의 집 앞까지 관광객을 태우고 다니는 마차를 탈 수가 없었다. ‘당신도 이 길을 걸어다녔으리라’ 고개를 끄덕이며 느리게 걸었다.

도심 속에 자리 잡은 광대하고 몽환적인 일룸공원을 거닐 때에는 이곳에서 살 수만 있다면 나 또한 대작을 쓸 수 있으리라는 확신에 설레기도 했다. 그런 생각에 빠져서 길을 잃고 헤맬 때에는 영원히 출구를 찾지 못했으면 싶었다. 광대하지만 잘 가꾸어진 영국식 정원 속을 거닐며 다짐했다. 앞으로 나에게 한 달 이상의 휴가가 주어진다면 나는 단 1분의 망설임도 없이 바이마르로 와서 다락방을 얻으리라.

뉴에이지 그룹 멤버처럼 분장한 배우들이 괴테의 대사를 읊고 있다. 동네 사람들과 관광객들이 배꼽을 잡고 함께 웃고 떠드는 동안, 괴테도 슬쩍 슬쩍 웃는 것만 같았다.

뉴에이지 그룹 멤버처럼 분장한 배우들이 괴테의 대사를 읊고 있다. 동네 사람들과 관광객들이 배꼽을 잡고 함께 웃고 떠드는 동안, 괴테도 슬쩍 슬쩍 웃는 것만 같았다

뉴에이지 그룹 멤버처럼 분장한 배우들이 괴테의 대사를 읊고 있다. 동네 사람들과 관광객들이 배꼽을 잡고 함께 웃고 떠드는 동안, 괴테도 슬쩍 슬쩍 웃는 것만 같았다

다른 곳을 바라보지만 같은 화관을 잡고…
바이마르 중앙역에 내린 사람들은 서둘러 국민극장 앞에 우뚝 서 있는 ‘괴테와 실러’를 만나러 간다. 1번 버스를 타면 그 앞까지 갈 수 있지만, 빙빙 둘러서 괴테 광장과 바이마르 성을 지나 마르크트 광장을 걸어보기로 했다. 괴테 광장을 지나면, 괴테의 <파우스트>와 실러의 <빌헬름 텔>이 초연된 국민극장이 나온다. 「Sommer-theater」라고 써 있는 야외무대가 극장 광장을 다 차지하고 있는데, 아무리 살펴보아도 괴테와 실러의 동상은 보이질 않는다. 벽면에 선글라스를 쓴 괴테와 실러의 그림만 보인다. 중세 유럽에 널리 알려진 민중설화인 ‘여우 이야기’를 제재로 하여, 괴테가 번역하고 개작한 ‘여우 라이네케’(Reineke Fuchs)를 매일 밤 야외무대에서 공연하고 있었다. 안국선의 <금수회의록>을 떠올릴 수 있는, 풍자와 해학의 맛이 일품인 극. 선글라스를 낀 괴테가 상징하듯, 풍자와 해학은 오늘의 옷을 입고 젊은이들을 밤마다 극장 광장으로 불러 모으고 있었다.

그곳에 들어선 순간, 나는 숨이 멎을 뻔했다.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던 괴테와 실러, 당신들이 무대 중간에 우뚝 서 있는 게 아닌가. 동상을 중심으로 무대를 설치한 아이디어가 돋보였다.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비가 오는데도 빈 무대 곳곳엔 오늘 방학을 맞은 김나지움 학생들이 모여 앉아서 놀고 있었다. 괴테와 실러의 그늘에서 놀 수 있는 바이마르의 소녀들이 부러울 따름이었다.

야외무대인지라 비를 피할 길이 없었지만 객석에 앉아서 괴테와 실러, 두 남자를 바라본다. 드레스덴 출신의 조각가 에른스트 리첼, 그의 재치에 나는 감탄했다. 190㎝의 거구였던 실러와 169㎝의 작은 남자 괴테의 키를 똑같이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닌가.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는 괴테와 실러. 하지만 그들의 손은 함께 화관을 들고 있다. 실러는 왼손에 종이뭉치를 들고 있고, 괴테는 왼손을 실러의 어깨 위에 올려놓았다. 두 사람의 시선 각도 또한 무척 흥미롭다. 실러는 45도 각도로 하늘을, 즉 이상세계를 바라보는 듯하고, 괴테는 현재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는 듯하다.

괴테는 자연과 경험을 중시하는 자칭 ‘완고한 리얼리스트’였기에 이념에 매달리는 철학적 사변이 창작에 해가 된다고 믿었다. 실러의 미학 이론을 빌려 말하면 괴테는 ‘소박한 문학’을, 자신은 ‘감상적 문학’을 추구했다. 괴테가 ‘현실 그대로’를 바라본다면, 실러는 ‘이상세계’를 바라본다. 바라보는 세계가 다른 두 사람, 괴테의 표현대로 ‘대척적인 정신들’은 서로를 인정했기에 벗이 되었고,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지만 똑같은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괴테는 실러와의 만남을 ‘행운의 사건’이라고 말했다. <크세니엔>이라는 시집을 공동 집필하고, 문학적 동지로 평생을 함께한 두 사람. 1799년에 실러는 예나대학의 교수직을 포기하고 바이마르로 이주하기에 이른다. 괴테의 권유에 따른 것이었다. 그래서 괴테의 손은 실러의 어깨 위에 올라가 있다. ‘고맙네, 친구!’

서로 다르기 때문에 서로에게 끊임없이 자극을 주면서 세계문학에 불멸의 업적을 남길 수 있었으리라. 그래서 저 화관은 한 사람이 쓸 수 없다. 맞잡아 들어야 합당한 것. 에른스트 리첼, 제 해석이 어떤가요?

극장 광장에서 실러의 집을 지나 괴테의 집에 이르는 길은 화려하다.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두 집은 이미지부터 다르다. 실러 하우스는 소박한 반면 괴테 하우스는 웅장하다. 실러의 서재에는 그가 <윌리엄 텔>을 썼던 책상 위에 원고지가 그대로 놓여 있다. 괴테 하우스는 박물관을 능가하는 소품과 책들이 보존돼 있다. 6500권이 넘는 책을 소장하고 있는 괴테의 도서관을 보면서 감탄하다가, 양서를 다독하는 그의 성향이 맛있는 음식만 많이 먹는 음식 취향을 파생시킨 것이라고 혼자 결론지었다. 두 사람이 자주 들렀던 레스토랑 ‘가스트하우스 줌 바이센 슈반’에서 이른 점심을 먹고 괴테의 산장을 찾아갔다.

일룸 공원의 입구에 있는 소박한 리스트의 집, 거기서 공원 깊숙이 숨어 있는 괴테의 산장에 이르는 길은 ‘몽환적 아름다움’에 취할 만한 풍경을 펼쳐 보인다. 몽중몽(夢中夢) 속을 헤매듯 걷다보면 무릉도원 끝자락에 있는 ‘괴테의 산장’을 만나게 된다. 카를 아우구스트공으로부터 선물 받은 이 산장에서 괴테는 크리스티아네와 함께 지내며 자연을 노래하는 시를 많이 썼다.

지독한 낭만주의자, 당신과 함께한 바이마르에 곧 돌아올게요. 비스단!
사랑에 빠질 때마다 대작을 낳은 당신. 지독한 사랑의 고통을 노래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고 당신을 짝사랑하게 되었다. 친구 요한 케스트너의 약혼녀 샤를로테 부프에게 첫눈에 반해 짝사랑을 앓던 괴테는, 그 무렵 사랑 때문에 자살한 한 친구의 소식을 듣고 감정이입에 몰두하여 14주 만에 그 작품을 완성했다. 첫사랑 프리드리케와 이별할 때 지은 <지센하임의 노래>, 릴리와 파혼했을 때 쓴 <에그몬트>. 그 중에서도 압권은 단연 <마리엔바트의 비가>! 74살의 늙은 당신이 19살의 울리케에게 실연당했을 때 쓴 시를 읽으며 자꾸만 웃음이 나는 건, 지독한 낭만주의자인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당신이 사랑한 자유와 낭만의 도시 바이마르, 곧 돌아오리라. 비스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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