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행동 반대하는 전공의·의대생들 “의사 수 충분치 않아…공공의료 대안 논의해야”

2020.08.27 06:00 입력 2020.08.27 06:01 수정

수도권 의대생 C씨가 지난 21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 사내 복도에 서 있다. / 권도현 기자

수도권 의대생 C씨가 지난 21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 사내 복도에 서 있다. / 권도현 기자

수도권 병원 전공의 유모씨는 의사 파업에 참여하지 않는다. 병원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근무시간을 쪼개 참여한 인터뷰에서 “의과대학 증원을 반대하는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와 대한의사협회(의협)의 입장에 동의할 수 없어 파업에 불참했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 정책안이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단순히 인력을 늘리는 것을 넘어 공공의료 인프라 구축과 인력 배치 문제도 논의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의사 수가 부족하지 않다’며 공공의료에 대한 구체적 논의 없이 단체행동에 나선 이들 단체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유씨처럼 파업과 의사고시 거부, 동맹휴학 등 의사 집단행동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집단이기주의, 파업이라는 방식의 부당성, 소수 의견을 배제하는 절차, 대안 제시 부족 등 이들이 꼽은 반대 이유는 다양했다.

정부는 26일 수도권 병원 전공의와 전임의에게 업무개시명령을 내렸지만, 대전협은 업무에 복귀하지 않겠다고 맞섰다. 경향신문은 단체행동에 참여하지 않거나 이를 반대하는 전공의와 의대생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집단이기주의 맞다”

동네병원 문 닫고 대한의사협회 2차 총파업 첫날인 26일 서울 마포구 한 병원에 휴진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이준헌 기자

동네병원 문 닫고 대한의사협회 2차 총파업 첫날인 26일 서울 마포구 한 병원에 휴진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이준헌 기자

‘코로나로 공공의료 부족’
분석에도 대전협·의협 침묵
뒤늦게 수련환경 문제 언급
파업 진정성 의심할 수밖에

주요국 대비 의사수 적은 편
의사 수 적정 수준 검증 필요

이번 파업의 본질을 ‘집단이기주의’라고 보는 전공의들이 있다. 의사들이 사익을 위해 단체행동에 나섰다는 얘기다. 한 지역 의대 단체 카카오톡 대화방에는 ‘변호사 수가 늘어나면서 변호사 대우가 떨어졌다’는 내용의 글이 공유됐다. 정부 정책대로 의대 정원이 늘어나면 10년 동안 의사 4000명이 추가로 시장에 나온다. 이로 인해 의사들 간 경쟁이 치열해진다고 보는 것이다. 유씨는 “전공의가 화난 건 밥그릇 때문”이라며 “지금 전공의들은 당장 더 많은 사람과 경쟁해야 한다고 판단해 자기 이익에 맞게 움직였다고 본다”고 말했다.

유씨는 “내 돈 내고 내가 공부해서 의사가 됐는데, 내가 왜 정부 말을 들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을 품는 의사들도 많다”며 “대전협과 의협은 파업 이전에, 그리고 코로나 사태로 공공의료에 공백이 있다는 분석이 나왔을 때 공공의료에 대한 언급도 없었다. 갑자기 공공의료와 전공의 수련 환경 문제를 언급하는 데서 파업의 진정성이 의심된다”고 말했다.

‘의사 수가 충분하다’는 대전협과 의협의 주장을 검증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전공의 A씨는 “읍·면 단위 지역에선 의료 인력이 부족하다. 의사 한 명이 내과, 외과, 정형외과 등 여러 과의 진료를 보는 일이 있다”며 “전공의들은 의사 수를 늘리는 데 반대하면서 전공의 환경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의사 수와 전공의 환경 개선은 별개 문제”라고 말했다. 전공의 B씨는 “나라마다 의료 현장은 다르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인구당 의사 수는 한국이 적은 편”이라고 말했다. OECD가 발표한 1000명당 의사 수 통계(국가별로 2015~2019년 시점 상이)에서 한국은 OECD 36개 국가 중 6번째로 적었다.

■“코로나19 환자 급증하는데…”

잘릴 걱정 하는 전공의 없어
파업은 압박 수단에 불과
장기화 땐 의료공백 불가피

코로나19 확진자가 폭증하는 상황에서 의사들의 파업은 적절치 않다고 이들은 봤다. A씨는 “‘환자를 볼모로 한다’는 비판도 일리가 있다”며 “파업은 직장을 잃을 각오로 하는 것인데 잘릴 걱정을 하는 전공의는 없다. 파업은 압박 수단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파업이 이어지자 병원은 진료나 수술 일정을 늦추고 있다. 아직까진 남은 인력에게 업무가 과중되지 않는 상황이지만, 장기화 시 의료 공백 가능성은 피할 수 없다. A씨는 “응급수술은 진행되지만 다른 수술은 늦춰진다. 환자는 하루하루 급한 처지”라고 말했다.

파업한 전공의의 업무를 간호사나 보조인력인 PA, 전문의가 떠맡아 부담이 커지는 측면도 있다. 인천 인하대병원 관계자는 “전문의 위주로 대체인력을 투입하고 있다”며 “파업이 장기화되면 전문의가 지칠 것 같아 고민된다”고 말했다. 이 병원은 파업이 계속되면 외래진료와 수술 일정을 연기할 예정이다. 서울아산병원도 진료 일정을 조정했다. 아산병원 관계자는 “환자분들이 불편해질 게 우려된다”고 말했다.

■소수 의견 배제하는 절차

의사들은 가운 벗고 대한의사협회 2차 총파업 첫날인 26일 경기 수원시 아주대병원에서 의료진이 벗어놓은 가운 앞으로 시민이 지나고 있다. 연합뉴스

의사들은 가운 벗고 대한의사협회 2차 총파업 첫날인 26일 경기 수원시 아주대병원에서 의료진이 벗어놓은 가운 앞으로 시민이 지나고 있다. 연합뉴스

의대 선배들이 인사에 영향
동참 압박…소수의견 배제

단체행동 과정에서 소수 의견이 배제된다는 주장도 있었다. 의사 집단 특유의 폐쇄성과 동질 의식으로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기 힘들다고 이들은 말했다. A씨가 얼마 전 친한 동료에게 단체행동에 반대한다고 말하자, 동료에게서 돌아온 답은 “다른 레지던트 선생님들한테 얘기하면 안 좋을 것”이었다고 한다. 선배 전공의는 병원에서 마주칠 때마다 A씨에게 “파업은 무조건 해야 한다. 숭고한 일”이라며 파업 참여를 강요했다. A씨는 반강제적으로 파업에 참여하고 있다.

의견 수렴 과정에서 익명성을 보장하지 않아 주변 눈치를 보는 경우도 생겼다. 지역 의대에 재학 중인 이모씨는 말했다. “의대에서는 배우는 내용이 많다 보니 시험 기출 내용을 선배가 후배에게 공유해줘요. 그렇다 보니 선후배 사이의 수직적 권력관계가 생기죠. 선배들이 인사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전공의 때 좋은 과에 가려면 잘 보여야 해요. 그런 분위기에서 실명 투표는 ‘찬성하지 않으면 무언의 압박을 받을 줄 알라’는 신호죠.”

수도권 의대생으로 페이스북의 ‘다른 생각을 가진 의대생들’ 페이지를 운영하는 C씨도 소수 의견이 존중받지 못하고, 지역에 의사가 부족하다는 현실에 대한 논의 없이 반대만 앞세우는 상황이 문제라고 봤다. 일부 의대에서는 의사고시나 휴학, 수업거부에 참여하지 않는 이들을 대상으로 ‘블랙리스트’가 만들어졌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의대생 시험 거부 및 동맹휴학의 이면을 고발합니다’라는 트위터 계정도 생겼다.

■“공공의료 책임감 갖고 논의를”

지역·전공 불균형 해소
정부 취지엔 공감하지만
정책 자체는 미흡한 점 많아

이들은 지역·전공 간 불균형을 줄여야 한다는 정부 정책 취지에는 대체로 공감했지만, 정책 자체는 미비점이 많다고 입을 모았다. 유씨는 “의사 인력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공공 지역의사들이 많아지는 만큼 이들이 공공의료에 종사할 수 있는 인프라도 형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B씨는 “의사들이 정부 정책에 대해 시민단체나 의료 취약지역 주민 등과 같이 모여 얘기해보는 자리가 필요하다”며 “이번 일이 의사들에게 의료의 공공성에 대해 서로 같이 이야기하고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의대생 시험 거부 및 동맹휴학의 이면을 고발합니다’ 계정을 운영하는 의대생은 말했다. “의사들이 대안을 찬찬히 고민해봤으면 좋겠다. 국민들이 왜 의사들의 입장에 공감하지 못하는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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