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북한 ICBM 발사에 제재 단행…'외교' 강조했지만 대북정책 딜레마 봉착

2022.03.25 13:14 입력 2022.03.25 17:01 수정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화의, 유럽연합 정상화의, 주요 7개국 정상회의에 잇따라 참석한 다음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브뤼셀|A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화의, 유럽연합 정상화의, 주요 7개국 정상회의에 잇따라 참석한 다음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브뤼셀|A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24일(현지시간) 북한의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 시험발사 직후 새로운 제재, 한국·일본과 협의 및 공조 재확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 소집 요구 등 일련의 대응을 동시다발로 내놨다. 바이든 행정부는 북한의 ICBM 시험발사를 규탄하고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다짐하면서 ‘외교의 문’은 닫히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북한이 ICBM 발사로 ‘레드라인’을 넘은 데 대해선 제재와 압박을 가하는 동시에 외교적 해법을 추구한다는 기존 대북정책 기조는 유지한 것이다.

미 국무부는 이날 네드 프라이스 대변인 명의로 낸 성명에서 이란·북한·시리아 비확산법(INKSNA·이하 비확산법)을 위반한 혐의로 북한과 러시아, 중국의 개인 및 단체에 대한 신규 제재를 부과한다고 밝혔다.

북한의 미사일 개발과 관련된 민감한 물질을 조달한 혐의로 북한의 첨단 무기 연구·개발을 주도하는 제2자연과학원과 북한 국적자 리성철 인민보안성 참사가 제재 명단에 포함됐다. 같은 혐의로 러시아의 아르디스 그룹 등 2개 기관과 러시아 국적자 1명도 제재 대상에 올랐다. 미 국무부는 “이번 조치는 북한의 미사일 개발 능력을 억지하기 위한 조치의 일환”이라며 “그들은 국제 무대에서 무기 확산자로서 러시아의 부정적 역할을 부각하고 있다”고 규탄했다. 미 국무부는 시리아에 생화학무기 비확산 협정의 통제를 받는 물자를 제공한 혐의로 중국 기업 1곳도 제재 대상으로 지정했다.

북한의 ICBM 시험발사에 대한 미국의 대응은 비교적 기민했다. 백악관은 ICBM 발사 4시간 만인 이날 오전 5시30분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 명의로 미국의 기본 입장을 담은 규탄 성명을 냈다.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 백악관에서 북한의 탄도 미사일 발사 때 성명까지 내놓은 것은 이례적인 일로 평가된다. 백악관은 “이번 발사는 다수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대한 뻔뻔한 위반”이라면서 “우리는 모든 나라들이 북한의 이 같은 위반에 책임을 물을 것을 요청하며, 북한이 진지한 협상 테이블에 나올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백악관은 이어 “외교의 문은 닫히지 않았지만, 북한은 불안정을 야기하는 행위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면서 “미국은 미국 본토와 동맹국 한국, 일본의 안보를 보장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을 수행해 유럽을 방문 중인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은 각각 한국과 일본의 카운터파트와 전화로 상황을 공유하고 공조 방안을 협의했다. 바이든 대통령도 브뤼셀에서 주요 7개국 정상회의에 참석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만나 한국·일본에 대한 안보 공약을 재확인하고 외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후 미국은 영국, 프랑스 등 5개국과 함께 북한의 ICBM 발사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안보리 공개회의 소집을 요구했다.

이처럼 신속한 대응은 미리 준비한 시나리오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한달째에 접어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에 모든 역량을 쏟아 붓고 있고, 북한의 미사일 발사 당시 바이든 대통령을 비롯해 블링컨 국무장관, 오스틴 국방장관,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 외교·안보라인이 벨기에 브뤼셀에 총출동한 상태였다. 미국은 지난 10일 북한이 지난달 26일과 지난 4일 실시한 미사일 시험발사가 ICBM 시스템을 포함하고 있다면서 북한이 조만간 추가 실험을 할 수 있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

미국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북한의 ICBM 시험발사는 예견된 일이었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두연 김 신미국안보센터(CNAS) 선임연구원은 트위터에 “수차례 경고했듯 북한의 ICBM 시험은 시간문제였을 뿐”이라면서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은 바이든 대통령과 세계가 러시아·우크라이나 등의 문제에 관심을 쏟고 있을 때 그렇게 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여겼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같은 맥락에서 북한이 추가 핵실험을 단행할 가능성도 농후하다는 전망도 나온다.

당분간 미국의 대응은 북한에 대한 제재와 압박 강화에 모아질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이날 추가적인 독자 제재의 포문을 연 데 이어 오는 25일 안보리 공개회의에서도 기존 대북 제재의 철저한 이행과 함께 추가 대북 제재를 강하게 주장할 예정이다. 다음달 열리는 한·미 연합군사훈련 계획은 이미 윤곽이 잡혔겠지만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북한에 대한 제재와 압박 수위를 원하는 만큼 높이기도,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복귀시키기도 쉽지 않다는 점이 바이든 정부의 고민거리다. 미국과 러시아·중국은 우크라이나 사태로 탈냉전 이후 최악의 대립 구도를 형성한 상태다. 대북 제재의 키를 쥐고 있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러시아는 추가 대북 제재에 동의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 미국의 ‘조건 없는 대화 용의’ 메시지에 응답하지 않고 신형 ICBM으로 ‘몸값’을 키운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복귀시키기 위해 제공할 수 있는 ‘당근’에 대한 논의가 미국 내에서 전개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한·미연합군사훈련 확대 등 군사적 압박은 핵실험 등 북한의 추가 도발 빌미로 작용하면서 한반도 위기가 심화되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바이든 정부는 지난 1년 간 북한이 핵실험과 ICBM 발사 모라토리엄을 유지하는 동안 ‘현상유지’에 안주하는 모습이었다. 북한은 ICBM 발사로 단박에 북핵 문제의 우선순위를 끌어올렸다. 바이든 정부 스스로 인정했듯 지난 30년 간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을 괴롭혔던 난제에 새삼 직면한 것이다. 조셉 디트라니 전 미국 국무부 대북담당 특사는 자유아시아방송(RFA)과의 인터뷰에서 “지금은 인내할 시간이 아니라 협상으로 돌아가야 할 때”라면서 “미국과 유엔은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모라토리엄과 맞바꿀 수 있는 로드맵을 제시해야 하고, 모라토리엄에 상응한 대북제재 완화도 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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