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과 상식, 그리고 부동산

2022.05.17 03:00 입력 2022.05.17 03:03 수정

“부동산은 정치다.”

윤석열 대통령이 아직 ‘어록’을 많이 남기지는 않았지만, 이 말에는 동의할 수밖에 없다. 지난 2년간 많이 봤다. 정부가 어렵게 만든 보유세 인상 개편안이 시행도 못해본 채 사라지는 것도 봤고, 한때는 보유세를 올려야 한다던 모 정당이 앞장서서 종부세를 깎고 업적인 양 우쭐대는 것도 봤다. 윤 대통령이 공약으로 제시한 ‘1기 신도시 특별법’과 ‘GTX 노선 확대’는 대선 승리 요인 중 하나였다. 정책의 일관성이 어찌되든 결과가 무엇이든 상관없다. 표가 되면 삼키고 안 되면 뱉는다. 부동산이 정치인 이유는 차고 넘친다.

송진식 경제부 차장

송진식 경제부 차장

부동산을 정치로 규정했으니 윤 대통령의 상징인 ‘공정과 상식’이 부동산 시장에도 자리 잡길 바란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새로 취임도 했으니 딱 한 가지 짚고 넘어갈까 한다. 원 장관은 스스로를 가리켜 “의외의 인물이 국토부 장관이 됐다”고 말하지만 지나친 겸양이다. 부동산을 정치로 생각하는 대통령이 정치인을 주무부처 수장에 앉힌 건 너무나 자연스럽다. 정치인 출신 국토부 장관이 처음도 아니다.

윤 대통령은 당선된 이후부터는 부동산 문제에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활동을 통해 생각을 가늠할 수밖에 없는데, 인수위가 부동산에 제시한 화두는 ‘시장의 정상화’였다. 정부가 너무 많은 규제를 해 시장이 망가지고 가격이 폭등했으니 이를 되돌려놓겠다는 뜻이다.

취재로 부동산을 처음 담당하면 여러 가지가 낯설지만 몇년이 지나도 적응되지 않는 것이 있으니 바로 ‘주택공시가격’이다. 주택에 대해 정부가 세금을 매기려고 가격을 정해주는 것인데, 볼 때마다 ‘반시장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올해 공동주택 공시가격열람안에 따르면 공시가격은 시세의 평균 71.5%(현실화율) 수준이다. 예컨대 시장에서 10억원에 팔리는 아파트에 정부는 7억1500만원의 가격만 책정한 것이다. 인수위의 시각에서 보면 이보다도 더한 비정상적인 규제는 없다. 물건값이 현실과 다른데 어찌 시장이 정상화될 수 있단 말인가. 윤 대통령이 강조하는 ‘상식’에도 맞지 않다.

공정과는 더더욱 거리가 멀다. 현행 공시가격제도는 비싼 집을 가진 사람일수록 이득을 보는 구조다. 윤 대통령이 거주하게 될 한남동의 경우 수십억원에 달하는 고급 단독주택이 즐비한데, 올해 표준단독주택의 현실화율은 57.9%대로 공동주택보다 더 낮다. 비싼 집을 가졌으니 세금을 더 내라는 것이 아니다. 현재 가치에 맞게 세금을 내라는 얘기다. 그게 공정 아닌가.

염려되는 것은 인수위가 작성한 국정과제에 이런 문제는 언급이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전임 문재인 정부가 향후 20~30년간 단계적으로 현실화율을 최대 97~98%까지 올리려 한 계획을 백지화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것이 과연 ‘공정과 상식’에 맞는지 윤 대통령도 한번 돌아보길 바란다. 공시가격에 대해 원 장관이 선입견을 갖고 있지는 않은지도 우려스럽다. 그는 지난해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면서 공시가격이 큰 폭으로 상승하자 공개적으로 반발하며 공시가격 재산정을 요구했다. 새 정부의 공정과 상식을 실천해야 할 국토부 장관으로서 과연 현행 공시가격제도가 정말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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