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의 틀

2022.07.23 03:00 입력 2022.07.23 03:01 수정

김영은, 밝은 소리 A, 2002, 싱글채널 비디오, 멀티 채널 사운드, 16분 56초, (사진). 송은문화재단 제공

김영은, 밝은 소리 A, 2002, 싱글채널 비디오, 멀티 채널 사운드, 16분 56초, (사진). 송은문화재단 제공

강가를 지나 숲길을 구르는 상자 안에는 피아노가 있다. 덜컹거리다 넘어지는 순간은 아찔하지만, 다시 일으켜 세워진 피아노는 여전히 거친 길을 구르며 목적지를 향한다. 김영은은 ‘밝은소리 A’에서 한국에 최초로 들어왔던 피아노의 이동 경로를 구현했다. 1900년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인 리처드 사이드 보텀이 대구로 오면서 들여와 한국 사회에 최초로 등장한 피아노는, 당시 영남지역 물류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던 사문진 나루에 도착한 뒤 대구시 중구 종로에 있는 집까지 사흘에 걸쳐 이동을 마쳤다.

작가는 ‘최초의’ 피아노가 운송되는 과정 위로, 1초간 440Hz의 진동수를 갖는 A(라) 음이 현대 악기 조율을 위한 ‘표준음’으로 자리잡기까지의 역사를 담았다. 다양한 기준을 제치고 단 하나의 기준이 전체를 아우르는 ‘표준’이 되었다는 것은 관계자들이 이미 많은 갈등과 이해의 강을 건넜다는 뜻이다. 세종대왕이 ‘황종’을 만들어 중국과 다른 조선만의 표준음을 선포하면서 독자적인 통치 구조를 정비하려 했을 때, 벌어졌던 갈등과 분쟁의 장면을 떠올려보더라도, ‘표준’을 점하는 것은 주도권을 갖는 일이다.

소리의 정서적 측면은 사람들의 감정을 쉽게 파고들어 영향을 미친다. 악기상을 중심으로, 밝고 맑고 경쾌한 소리를 선호하던 이들은 더 높은음을 표준음의 위치에 놓고자 했다. 하지만 발성의 한계를 가지고 있는 가수들은 높아지는 음높이를 구현하느라 목 부상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고, 이들은 ‘표준음’을 둘러싼 갈등의 한 축을 이루었다.

논쟁 끝에 정착한 표준음의 세계가 완전히 다른 표준음을 중심으로 구성된 한국 음악계에 등장했을 때 한국인의 청각은 어떤 영향을 받았을까. 작가는 그 감각의 변천사를 조심스럽게 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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