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급식노동자들 “숨 쉴 때마다 폐암 공포, 움직일 때마다 인대·관절 통증”

2023.03.30 21:47 입력 2023.03.31 09:58 수정

조리실 가득한 초미세분진 들이마시고…수백명분 식재료 들고 이고 지고

한 급식노동자가 대형 튀김기 앞에서 튀김요리를 하고 있다. 기름을 사용해 튀김 등을 조리할 때 발생하는 초미세분진이 급식노동자들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왼쪽 사진). 또 다른 학교 급식노동자가 바닥에 놓인 쌀 수십 포대를 힘겹게 나르고 있다. 전국교육공무직본부 경기지부 제공

한 급식노동자가 대형 튀김기 앞에서 튀김요리를 하고 있다. 기름을 사용해 튀김 등을 조리할 때 발생하는 초미세분진이 급식노동자들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왼쪽 사진). 또 다른 학교 급식노동자가 바닥에 놓인 쌀 수십 포대를 힘겹게 나르고 있다. 전국교육공무직본부 경기지부 제공

창문·환기시설 없는 조리실서
오래 일하며 발암물질에 노출
“동료 9명 중 5명이 폐 결절
산재 신청 안 되는 부상 빈번”

“최근 폐 결절 진단을 받았어요. 매일 수백명분 식사를 만들면서 각종 유해물질에 노출됐지만 급식실에는 제대로 된 환기시설도, 작은 창문 하나도 없습니다.”

학교 급식노동자 정경숙씨(56·이하 가명)가 담담하게 말했다. 예상했던 일이었다는 듯한 반응이었지만, 결국 피하지 못했다는 자괴감도 느껴졌다.

교육부는 최근 ‘급식노동자 2만4000명 중 139명은 폐암이 의심된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기자가 지난 22일부터 29일까지 만난 학교 급식노동자 5명은 하나같이 “우리도 언제 (폐암 같은 병에) 걸릴지 몰라 두렵다”고 말했다. 정씨를 비롯한 이현지·김영미·이미숙·최경희씨는 40~50대로, 수도권 초·중·고등학교 급식실에서 근무 중이거나 일한 경험이 있다. 이현지씨는 1년, 정씨는 8년, 이미숙씨는 12년, 김씨·최씨는 18년간 일했다.

학교 급식노동자의 폐암 원인으로 지목되는 건 조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초미세분진(조리흄) 등 각종 발암물질이다. 조리흄은 주로 기름을 사용해 튀김·볶음·구이 등을 조리할 때 발생한다. 환기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급식실의 경우 각종 유해물질이 외부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노동자들이 이를 흡입하게 되는 것이다.

정씨는 “20평 남짓한 급식실에서 튀김류 요리를 하면 그 증기를 그대로 들이마시게 된다”면서 “이런 환경에 장기간 노출되다 보니 저를 비롯한 동료 노동자 9명 중 5명이 폐 결절을 진단받았다”고 말했다.

노동자들은 청소할 때 사용하는 세정제로 인한 어려움도 호소했다. 김씨는 “피부에 닿으면 화상을 입을 정도로 독한 세정제를 써야 기름때가 벗겨진다”면서 “이때 발생하는 화학 증기의 독한 냄새는 잠깐만 맡아도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라고 했다. 학교 급식노동자들에게 폐암이 언제 닥칠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라면, 장시간 반복 노동에 따른 근골격계 질환은 매일 마주해야 하는 ‘현실’이다.

노동자들은 출근하면 무거운 식자재를 옮기고 커다란 통의 밥과 국을 휘젓는 등 반복적인 업무를 매일같이 수행한다. 이런 일을 할 때마다 통증을 느껴 인대와 관절에 무리가 가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달리 방법이 없다.

“급식노동자들은 손가락만 봐도 알 수 있어요. 오랫동안 앓은 관절염 때문에 이렇게 두꺼워요.”

최씨는 급식 일을 시작하면서 손가락이 두꺼워진 것을 실감한다. 젊은 시절 맞춘 반지는 지금 손가락엔 들어가지도 않는다.

김씨도 손목이 시린 듯한 통증을 느끼고 있다. 일을 그만둘 수 없어 근육이완제를 먹으면서 버텼다. 그는 “병원에서는 장기 복용 시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했지만 복용하지 않으면 일을 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먹고 있다”며 “같이 일하는 동료 8명 중 3명은 통증 때문에 근육이완제를 먹어가며 일한다”고 말했다.

급식노동자로 일한 지 이제 막 1년을 넘긴 이현지씨는 얼마 전 대형 조리기구에 발이 찍혀 뼈가 부러졌다. 이씨는 “학교 급식이 이렇게 험한 일인지 모르고 시작했다”며 “산재 신청을 받지 않는 비교적 가벼운 화상이나 베임 등 사고는 급식실에서 너무나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식사 책임 ‘1인당 평균 146명’
중노동에 퇴사 반복 ‘악순환’

노동자들은 현재 학교 급식실에서 벌어지는 문제가 ‘부족한 인력’ 탓이라고 지적한다. 30일 민주노총 전국교육공무직본부에 따르면, 전국 유·초·중·고등학교 급식실의 노동자 1인당 평균 식수인원은 146명 수준이다. 1명이 146명 식사를 책임진다는 의미다. 이는 8개 공공기관 급식실(64명)보다 2배 이상 큰 규모이고, 군대(육군 기준) 급식실 평균인 75명보다도 많다.

대체인력을 구하기 어려운 상황까지 더해지면서 노동자들의 부담은 가중되고 있다. 김씨는 “휴가와 산재 등으로 공백이 생기면 그 자리에서 일할 다른 사람이 있어야 한다”며 “하지만 행정기관에서 모집해도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학교 급식노동자들은 결국 자체적으로 수소문해 인력을 구하려 한다. 대신 일할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될까. 김씨는 한숨을 쉬며 “부족한 대로 운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씨는 2년 전 물기 있는 바닥에서 미끄러져 꼬리뼈가 골절됐다. 산재로 인정받았지만 자신을 대신할 인력을 구하지 못해 제대로 쉴 수 없었다. 그는 “내가 일을 쉬면 다른 사람들이 그만큼 더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면서 “어쩔 수 없이 아픈 몸으로 복귀해야만 했다”고 했다.

근무환경이 열악한 탓에 노동자들이 단기간에 퇴사하는 문제도 반복되고 있다. 이현지씨가 일하는 학교에는 노동자가 총 12명 있어야 하지만, 줄곧 10명이 일해왔다. 그는 “노동강도는 높지만 처우는 열악하다. 하루를 못 버티고 나가는 사람이 허다하다 보니 지금 일하는 학교에서 가장 경력이 오래된 분이 3년차”라며 “결국 남은 사람들은 더 힘들어지고 그로 인해 그만두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2일 인터뷰 중이던 정씨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학교 급식실에서 같이 일하는 동료였다. 동료는 그날 배식을 마치고 급식판을 나르다가 사고를 당했다고 했다. 식판을 옮기던 중 높게 쌓인 급식판이 쓰러지면서 그를 덮쳤고 발가락뼈가 부러졌다는 것이다.

“너무 걱정 말아요. 대체인력은 어떻게든 구해볼 테니까 몸부터 생각해요.” 정씨가 동료를 다독였다.

두 사람의 짧은 통화는 학교 급식노동자가 겪고 있는 열악한 노동환경 문제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이들은 당장 수술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다친 몸보다 자신의 몫만큼 추가로 더 일해야 하는 동료들을 걱정했다. 정씨는 “사람이 조금만 더 있어 일을 나눌 수만 있다면 벌어지지 않을 사고였다”면서 “우리는 이렇게 매일 산재 위험 속에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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