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핵우산 넓히고 ‘일방 외교’ 불씨 키운 한·미 정상회담

2023.04.27 20:55 입력 2023.04.27 20:58 수정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한 뒤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워싱턴 | 김창길 기자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한 뒤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워싱턴 | 김창길 기자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6일 정상회담을 갖고 ‘워싱턴 선언’을 발표했다. 두 정상은 북한의 핵공격 시 압도적 대응을 다짐하며 확장억제 강화를 위해 핵협의그룹을 신설키로 했다. 핵협의그룹은 미국의 핵전력 정보를 공유하고 작전을 공동 기획·실행하기 위해 분기별로 여는 차관보급 협의체로 정해졌다. 정상 차원에서 확장억제 운용에 한국 목소리를 반영하기로 한 건 이전과 달라진 것이다. 하지만 그 의미를 과대평가해선 안 되며 미국에 너무 많은 것을 의존하면서 치를 비용도 생각해야 한다.

한·미 핵협의그룹은 미국이 냉전 때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 만든 협의체를 모델로 했다. 한국에 핵무기가 배치돼 있지 않아 나토 모델과는 다르다. 핵무기가 미국 것이고, 사용 결정도 미국이 하기 때문에 핵공유란 말도 정확하지 않다. 그럼에도 핵전력 운용과 관련해 한국의 발언권이 거의 없었던 과거와 비교해 일부 진전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이 오판해서 한국을 공격하는 것을 막는 데 기여할 수 있고, 한국 내 핵무장 여론을 낮추는 효과가 있을 수 있다. 자체 핵무장, 전술핵 재배치라는 더 나쁜 선택지는 피한 것으로 평가한다.

하지만 만사에는 양면성이 있다. 미국의 핵무기가 북한에만 쓰이라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두 정상이 “공동의 안보에 대한 모든 위협에 맞서 함께할 것이라는, 확고한 메시지를 국제사회에 전하며”라고 한 부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 입장에서 ‘모든 위협’에는 중국·러시아도 포함된다. 그런 점에서 주한미군뿐 아니라 한국군이 미군 전략자산과 함께 한반도 외 지역으로 출격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걱정을 기우로 치부하기 어렵다.

실제로 한·미는 회담 곳곳에 중·러가 반발할 여지를 남겼다. 두 정상은 별도의 공동성명에서 대만 문제를 언급하며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그 어떤 일방적 현상변경 시도에도 강력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중국으로선 ‘하나의 중국’ 원칙을 깨는 발언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한국의 우크라이나 살상무기 지원 가능성도 열어뒀다. 바이든 대통령은 윤 대통령의 한·일관계 개선 조치를 “대담하다”고 환영하며 안보·경제에 관한 한·미·일 협력 심화를 강조했다. ‘한·미·일 대 북·중·러’ 대결 구도 고착화에 한국이 주요 행위자로 나서는 모습이다.

반면 한국이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를 만들어가려는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워싱턴 선언의 95% 이상이 확장억제에 할애됐고, 한반도 비핵화 언급은 맨 끝에 한 줄 언급됐다. 대화 문을 닫진 않았지만 실제로 그렇게 할 의지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이번 회담은 지난 30년의 북핵 외교가 북한 핵무장을 막는 데 실패했다는 점을 한·미가 시인한 자리이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다. 한국이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아무도 그 일을 대신해주지 않는다.

무엇보다 모든 걸 미국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으로 몰려가는 것이 우려스럽다. 노무현 정부 이후 지난해 윤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의 회담까지 15년 이상 한·미 정상회담 때마다 성명에 포함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내용이 처음 빠진 것도 예사롭지 않다. 한국은 외교안보 자율성이 줄어들고, 미국의 어떠한 요구도 쉽게 거절하기 어려운 관계로 변해가고 있다. 윤 대통령은 그런 방향을 선택했지만, 그 방향에 온전히 동의하지 않는 국민도 많음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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