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 총선의 공식 선거운동이 28일 개막됐다. 최대 승부처인 수도권에서 출발한 여야는 각각 ‘심판론’을 호소하며 본격적인 선거전에 나섰다.
국민의힘은 ‘이(재명)·조(국) 심판’을 앞세워 ‘거야 심판론’을 지폈다.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 겸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은 “범죄자 세력이 선량한 시민들을 지배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며 “이·조 심판을 위해 힘을 모아달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실이 있는 서울 용산에서 출정식을 갖고 ‘정권 심판론’을 외쳤다. 이재명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2년 만에 퇴행시킨 장본인”이라며 “윤석열 정권 심판은 대한민국 정상화와 민생 재건 출발점”이라고 밝혔다.
심판론 대결은 이번 총선의 특징과 무관치 않다. 산업화·민주화 이후 대전환의 시기에 치러지는 선거임에도 정치권은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지 못했다. 실제 22대 총선은 무쟁점·혐오 선거, 대선 연장전이라는 비판을 면치 못했다. 비전과 희망보다 심판론이 여야의 유일한 선택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집권 3년 차 선거는 회고적 투표 경향이 강하다. 정권 중간평가로 치러질 수밖에 없고, 결과의 책임을 따진다 해도 야당에 견줘 대통령·여당이 짊어져야 할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다.
현재 각종 여론조사 결과는 정권 심판 민심이 더 강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갤럽이 지난 19~21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대상으로 4·10 총선 성격을 조사한 결과(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 정부 견제론이 51%로 정부 지원론(36%)을 앞섰다. 민주당의 공천 파동으로 압승을 예상하던 국민의힘이 고전하게 된 요인은 중도층 이탈 때문으로 보인다. 중도층에서 정권 심판(58%) 응답은 전체 평균보다 7%포인트 높았다. 근본 원인은 윤석열 정권실정 탓이다. 채모 상병 사건 수사 외압 피의자인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호주대사 임명, ‘875원’ 대파 논란이 대표적이다. 의·정 갈등 이슈도 증원 규모에 집착하는 윤 대통령의 불통 문제로 확산되고 있다. 그런데도 여권은 이념전을 불사하며 민심을 거스르고 있다.
‘반윤석열’만 외치고 있는 민주당도 정부 실정에 맞서는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면 혹독한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민생 의제를 주도하고, 남북관계 해법을 제시하고, 기후위기·저출생 문제 등 미래가치의 엄중함을 인식하는 건 국회 다수당의 책임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윤 대통령만 물러나면 새 세상이 열린다고 확신하듯 ‘200석’ ‘승기를 잡았다’며 오만한 모습이다. 명백한 오판이다. 국민의힘을 심판하고 싶은데 그렇다고 민주당에도 마음을 열지 못하는 민심은 지표로 확인되고 있다. 조국혁신당 상승세만 봐도 드러난다.
이처럼 여야는 서로를 겨누는 수준에 머물러 있지만 주권자는 심판 이후의 세상을 내다봐야 한다. 주권자인 나를 대신할 정치적 대표를 뽑는 무대가 국회의원 선거이고, 선거 결과가 나의 삶과 고단한 우리의 현실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거부한 노동자(노란봉투법), 농민(양곡관리법)들은 벼랑 끝으로 몰린 지 오래고, 여성·청년들은 윤석열 정부에서 ‘지워진’ 시민이 됐다. 민주주의와 공정은 중우정치 회오리에 쓸려 남루한 깃발만 남았다. 주권자인 우리가 바로 세워야 한다. 아무리 모순이 무르익어도 미래를 이끌어갈 비전이 없으면 주권자는 선택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야 할 때다. 남은 13일, 온전히 주권자의 시간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