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의 서예가, 20세기의 조각가…100여년의 시공간을 초월한 ‘밀애’

2015.09.07 21:47 입력 2015.09.07 21:52 수정
한윤정 선임기자

추사 김정희, 우성 김종영


이동국 서예부장과
박춘호 학예실장이
기획한 2인전
한국 미·정신
담아낸 데 공통점

2인전의 묘미는 서로가 서로를 비추는 데 있다. 상대가 있음으로써 나의 특징이 돋보이는 것이다. 19세기 서예가인 추사 김정희(1786~1856·왼쪽 자화상)와 20세기 조각가인 우성 김종영(1915~1982·오른쪽 자화상)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불계공졸(不計工拙)과 불각(不刻))의 시공’전이 그렇다.

11일 학고재갤러리(서울 삼청로)에서 개막하는 이 전시는 한국 추상조각의 선구자로 불리는 김종영의 조각이 추사의 글씨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에 착안, 기획됐다. 김종영은 생전에 한번도 발표하지 않았으나 1000여점의 서예를 남겼고, “진정한 예술가는 동양의 추사와 서양의 세잔밖에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전시를 통해 줄곧 브랑쿠시와 비교되던 김종영 조각은 한국적 맥락을 얻고, 추사의 글씨에서는 조각에 비견되는 구축성과 구조미를 재발견하게 된다.

이번 전시는 이동국 예술의전당 서예부장과 박춘호 김종영미술관 학예실장이 기획했다. 3년 전 김종영미술관에 부임한 박 실장이 수장고에서 수많은 서예작품을 발견하고 이 부장을 찾아가면서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됐다.

이동국 예술의전당 서예부장(왼쪽)과 박춘호 김종영미술관 학예실장이 학고재 갤러리에 전시된 추사와 우성의 작품 앞에서 전시 의도를 설명하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biggun@kyunghyang.com

이동국 예술의전당 서예부장(왼쪽)과 박춘호 김종영미술관 학예실장이 학고재 갤러리에 전시된 추사와 우성의 작품 앞에서 전시 의도를 설명하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biggun@kyunghyang.com

이동국(이하 이) = 통나무같이 고졸한 사물의 본성을 그대로 드러낸다는 추사의 ‘불계공졸(不計工拙)’과 미는 창조하는 게 아니라 자연에 내재되어 있는 형태를 드러내는 것이라는 우성의 ‘불각(不刻)’은 서로 통하는 정신입니다. 우성은 추사의 예술성이 리듬보다 구조의 미에 있다며 추사 글씨가 세잔의 큐비즘을 연상시킨다고 말하기도 했지요. 자신의 조각에서도 구조미를 추구했고요.

박춘호(이하 박) = 우성은 조각 230점, 드로잉 3000여점, 서예 1000여점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조각전은 서울대 동료 교수들이 열어준 신세계미술관전(1975)과 국립현대미술관 초대전(1980) 두 번밖에 없었죠. 서예를 한다는 것을 가까운 이들조차 거의 몰랐어요. 탄생 100주년인 올해 열리는 전시를 중심으로, 최근에야 조각과 함께 서예가 일부 공개됐습니다.

전시 통해 김종영 조각은
한국적 맥락을 얻게 되고
추사 글씨선 조각에 비견된
구축성·구조미 재발견

이 = 서예를 모르는 현대미술계와 미술을 모르는 서예계가 서로 모르고 있었을 뿐 두 사람은 100여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밀애를 즐기고 있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추사 글씨를 보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는데요. 이번에는 구축미와 비대칭성(asymmetry)이 돋보이는 작품을 골랐습니다. ‘蓴로鄕(순로향)’에서 ‘순’자를 보면 획을 쌓아올린 것 같죠. ‘自身佛(자신불)’에서 ‘불’의 획을 길게 늘이면서 공간을 운용하는 방식은 파격을 보여주고요. 이런 특성은 우성의 조각에서도 발견됩니다.

추사 김정희, 우성 김종영

추사 김정희, 우성 김종영

박 = 우성은 주로 인체로 제한된 조각의 모티브에 회의를 가졌는데 오랜 모색과 방황 끝에 추상예술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부터 자신이 가졌던 숙제가 풀렸다, 지역적 특수성과 세계적 보편성과의 조화도 어떤 가능성을 발견했다고 현대미술관 전시에서 밝혔습니다. 그는 예술이 추상으로 가는 데 필연성이 있으며 동양의 서예가 서양 추상미술보다 앞섰다고 봤죠.

이 = 추사는 중국 서예를, 우성은 서구 미술을 수용하면서 한국의 미와 정신을 담아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추사는 글씨의 근본을 집요하게 추궁한 끝에 서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고예(古隸·전한의 예서)를 찾아냈고, 왕법(王法·왕희지의 글씨) 중심의 종래 글씨에다 고예를 녹여내 비첩(碑帖) 혼융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죠. 미술평론가 임영방이 지적한 우성 추상조각의 특징인 복합성이 이에 해당합니다.

박 = 내년 초 재개관하는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우성의 조각과 서예의 관계를 보다 깊이 보여줄 예정이에요. 서양미술 연구자들이 우성을 서구 앵포르멜의 영향을 받은 추상조각 작가로 자리매김해온 데서 벗어나 서예의 역할, 전통의 계승이란 측면을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이번 전시는 추사의 서예와 그림, 우성의 서예·그림·드로잉·조각을 합쳐 50여점으로 구성됐다. 추사의 ‘자화상’, 우성이 그린 ‘금강전도’와 ‘세한도’는 서예·조각이 아닌 색다른 작품세계를 보여준다. 학고재갤러리는 고미술 전문화랑이란 설립 취지를 살려 작품을 판매하지 않는 순수 전시로 진행한다. 10월14일까지. (02)720-1524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