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계급’에서 자란 아이들이 같은 날 같은 시험을 치르는 게, 공정한 경쟁인가요

2021.06.11 13:29 입력 2021.06.11 21:25 수정
은유 작가

[은유의 책 편지] 다른 ‘계급’에서 자란 아이들이 같은 날 같은 시험을 치르는 게, 공정한 경쟁인가요

능력주의와 불평등
박권일 외 지음
교육공동체벗 | 228쪽 | 1만4000원

학교에서 학생들을 만난 날은 쉬이 잠들지 못합니다. 내내 무표정하다가 잠깐 마주친 눈빛이 떠올라서 벅차기도 하지만, 답변을 잘하지 못한 것 같은 후회, 아이들의 곤란은 모르고 뜬구름 잡는 얘기만 했나 싶은 자책까지 온갖 상념이 몰려오죠. 그래서 강연 소감을 담은 윤아님의 편지가 반가웠어요. 제 말이 어딘가에 착지했구나, ‘수신 확인’을 한 것 같은 안도감이랄까요.

[은유의 책 편지] 다른 ‘계급’에서 자란 아이들이 같은 날 같은 시험을 치르는 게, 공정한 경쟁인가요

그날 줌 강연에서 한 학생이 물었죠. “수많은 사회문제가 생기고 사라지는 가운데 가장 해결해야 할 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질문이 너무도 어려워서 저는 면접관 앞에선 수험생처럼 얼어붙을 뻔했는데요. 순발력을 발휘해 마침 옆에 있던 책을 모니터에 내보였습니다. <능력주의와 불평등> 이 책 제목으로 답변을 대신했어요. 윤아님이 불평등한 세상을 바꿔나가는 일에 관심이 생겼다고 하니 책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고 싶습니다.

능력주의란 단어가 생소할지 몰라도 우리에겐 무척 익숙한 관념입니다. 더 많이 노력한 사람에게 더 많이 보상하는 원칙에 따르는 자본주의 사회의 분배 규범이죠. 가령 임용고시를 거쳐 교사가 되면 기간제 교사보다 높은 임금과 안정된 지위를 보장받고 그것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노력에 따른 정당한 대가로 봅니다. 이렇게 진리로 떠받들어지는 능력주의가 과연 공정한 것인가. 이에 대해 사회비평가, 노동운동가, 청소년인권활동가, 교사, 여성학자 등 저자들이 다각도에서 질문을 던집니다.

우선 능력은 개인의 것인가? 저는 교육열이 높기로 이름난 동네에 살았어요. 가까이서 본 그곳 아이들은 잠자리에서 동화책을 읽어주고 매 끼니 유기농 음식을 만들어주는 부모의 손길 아래 자랐죠. 잘 꾸며진 자기 방이 있고 책상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는 게 어려서부터 훈련이 돼 있어요. 초등학교부터 질 높은 사교육을 병행한 그 아이들이 세월이 흘러 소위 명문대에 진학하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책에는 현수의 사례가 나와요. 현수는 영구임대아파트에서 가족 6명이 살아요. 엄마는 장애가 있고 학교와 교육적인 의사소통이 불가능합니다. 현수처럼 적절한 정보와 돌봄을 제공받지 못하는 환경에서 ‘배움이 느린 학생’으로 자라는 아이들이 사회 곳곳에는 있습니다. 이렇게 다른 계급에서 성장한 아이들이 같은 시험지로 같은 날 시험을 치른다고 공정한 경쟁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한 사람의 ‘능력’이란 것은 타고난 재능이나 자질보다 가족으로부터 우수한 학업 기회가 제공되느냐, 행운이 따르느냐 등 비능력적 요인에 의해 많은 것이 좌우됩니다. 그런 점에서 “부모를 잘 만나지 못한 능력이 현수의 능력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말해도 무리가 없게 되죠. 저자는 말해요. “능력은 환경적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것이며 ‘온전히 개인에게 속한 능력’이란 환상이다.”

또 하나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왜 능력을 꼭 학력과 성적으로만 측정하는가? 즉, 능력을 도대체 누가 평가하느냐의 문제죠. 떠오르는 일화가 있어요. 한번은 제 책을 읽은 고등학생이 이런 후기를 남겼어요. “글쓰기를 배우지 않아도 글을 잘 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은유 작가님은 글쓰기를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았는데도 엄청난 흡입력을 가지며 독자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해보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과한 칭찬이지만 사실 오류가 있어요. 저는 글쓰기를 배웠거든요. 동서고금 훌륭한 작가들의 책으로 독학을 했지요. 다만 대학을 다니지 않았고 등단 같은 평가 시스템을 거치지 않아서 ‘전문적’인 배움이 아닌 것처럼 보였을 뿐이고요. 저 학생처럼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능력주의에 기반해 사고합니다. 그리고 능력주의를 작동시키는 기제는 바로 시험이고요.

윤아님도 우리나라가 시험공화국이라는 말에 동의하겠죠. 시험은 실력 측정의 도구를 넘어서 “모두가 결과를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순응의 장치”가 되었고, 그래서 평가를 거치지 않는 능력은 무능력으로 보이게 해요. 가령 비정규직이 현장에서 쌓은 경험과 실력은 단지 시험을 보지 않았다는 이유로 의심을 받잖아요. 노동자로서 권리도 주어지지 않죠. 일하다가 죽는 사람도 비정규직 비율이 높거든요. 저는 이 책을 덮으며 공정해 보이는 능력주의가 차별과 불평등의 근거가 된다는 사실에 좀 어지러웠습니다.

윤아님, 창밖은 싱그러운 햇살이 일렁이는데 묵직한 이야기만 한껏 쏟아냈네요. 하지만 무거운 현실에 압사당하지 않으려면 현실의 무게를 잘 측량한 책이 필수 같아요. 생존 장비가 되죠. 이 무심한 세계의 지속에 눈뜬 윤아님 마음이 치열하게 번져가길 바라며, 책에서 외우고 싶은 문장 하나 덧댑니다. “시험이 능력을 제대로 검증해주는 것이 아니고 게다가 한번의 시험이 지속적인 차별을 정당화할 근거가 되지도 못한다.” 의심 없이 행했던 일을 의심하는 순간 이미 해방의 바람은 불어오고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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